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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방앗간 스크랩 ?엄마의 노래 ...눈물로 읽어야만 했던 수필
김 성윤 추천 0 조회 45 13.02.19 22:4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엄마의 노래 ...눈물로 읽어야만 했던 수필

 

 

 

엄마의 노래

 

일요일 저녁밥을 먹고 설것이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물 묻은 손을 급하게 수건에 닦고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수화기 저편에는 "여보세요"랄것도 없이

한잔하신 목소리로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시골에 홀로 계시는 엄마였습니다.

평소에 노래도 잘 안하시고 음치라고

시켜도 하지 않던 노랫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계속 몇 곡이 들려왔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습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우리 엄마를 노래를 시켰을까?

나는 일단 흥얼흥얼 엄마의 노랫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수화기를

어깨에 기대게하고 박수도 쳐습니다.

 

일단 엄마의 기분을 맞춰야 할 것 같았습니다.

"엄마 웬일이야, 노래방도 다 차리고?"

"한잔했다"

"어디에서 ,뭐 좋은일 있었어요"

 

사연인즉 같은 동네 의남매를 맺었던 분의

칠순잔치라고 식당에서 거하게 한 잔 하시고

또 다시 그댁으로 가셔서 기분좋게

또 한 잔 하시고 집에 돌아와보니

쓸쓸하셨는지 전화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엄마는 다복한 자녀들과 무엇보다

건강한 남편이 곁에셔 칠순 잔치를

함께 했음이 가장 부러웠을 것입니다.

3년전 엄마의 회갑잔치를 하는데

홀로 앉아 계신 엄마 옆의 아버지의 빈자리가

그렇게 허허로울수 없었거든요

 

그때 저는 계단에 올라가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큼 잉꼬부부이셨는데

아버지께서 5 년 전 돌아가시고

시골에서 홀로 계신 엄마의 외로움과

고독은 자식들이 넷이나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였습니다.

아마 그 자리는 아버지만이 채울수 있는

유일한 자리였겠지요.

 

세삼 그 자리가 하늘만큼 커다란 빈 자리인 것을

바보같이 돌아가시고서야알게 되었지요

태어나서부터 진자리 마른자리 거려가며

물고 빨고했던 자식들도 채워 줄수없던 그곳...

아버지의 자리 그 자리...

 

아버지 살아 생전 시골 밭에서

고추와 밤을 주워도 삼시 세끼 식사도

봄이면 밭이랑에 씨앗을 뿌릴때도

거의 하루 왠종일 함께 하시고

 

마당발 아버지의 부부동반 모임과

여행도 많이 가셔서 부러움의 대상이시고

언제나 엄마께 반말 한 번 안하시고

엄마를 깍듯이 예우해 주시던 아버지...

 

사람들을 좋아 하셔서 동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덩 달아 항상 소주가

떨어지지 않게 준비하고 얼큰한 김치째개와

곁에서 한잔 두잔 배운 소주 실력이 이제는

동네 장년들과 마주하고 함께 드시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시는 우리 엄마

술한잔 기울이시면 아버지는

노래를 곧잘 하셨습니다.

 

카세트를 들으며 따라서 흥얼흥얼

노래도 배우고 녹음도 해 놓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에 이미자씨의 동백아가씨.

총각 선생님 등등 하춘화.조미미.나훈아.남진등

한번은 동네 몇몇 아주머니와 엄마께서

아버지께서 녹음한 노래테이프를 듣고 있는데

모르는 분이 아버지를 찾아오셔서

마당에 서 계셨습니다.

 

아마 방에서 노랫소리 때문에

대문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못들었나 봅니다.

 

 "이 강호씨 계세요"

엄마은 급하게 나가셔서

 "외출하시고 안계신데요"했더니

 "무슨 소리예요 방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며

두고두고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직도 가끔씩 아버지 성함으로

우편물이 날라오면 비록 호적엔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버지를 대하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 너무나 잘 부르시던

동백아가씨 등이 흘러나오면 너무도 그립고

아버지를 떠올리며 예전에 부르시던

그 노랫가락이 귓전을 메아리칩니다.

 

 해당화 피고지는 섬 마을에 .......

 헤일수 없는 수 많은 밤을 ......

삶의 무게 속에 맛과 멋을 알고 살아 가셨던

아버지의 자리 이 세상에 외로움과 고독만큼

정신을 병들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아버지 없는 쓸쓸하고 조용한 집에서

오늘도 엄마는 혼자떠드는 TV를 마주하며

찬 없는 식사를 홀로 드신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메여옵니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게 여위고

힘으로 하는 시골일들을 버거워 하시지만

평생 땅을 지키시고 사셔서 그만 쉬라고해도

 "어떻게 밭에 풀이 자라는 것을 볼수 있니"

하시며 오늘도 밭에 나가 콩을 거둬들여

마당에 갖다 놓으십니다.

 

 가장 안스럽고 죄스러울 때는

감기에 걸려 아프시다고 할 때입니다.

 

가보고 싶지만 아이들 학교 때문에

가보지도 못하고 주말에 가려하면

감기가 너무 심하여 아이들에게

감기 옮긴다고 오지 말라하십니다.

 

말로만하는 걱정들이 수화기 저편에서

항상 공허하게만 울립니다.

자식들이 같이 상경하여 살자고해도

시골이 훨씬 편하시다며 계시다가

겨울에 추울대 올라 오셨었는데

올해는 벽난로를 설치해드려 동네 사람들과

놀면서 겨울을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딸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의 애정과 목마름은

엄마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것의 애정과 목마름 중

어느것이 더한 것일까요?

 

아버지의 딸,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지금의 저는 엄마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것의

애정과 목마름이 더 간절할 것 같습니다.

 

전 아버지의 자리를 생각할때면

지금 곁에 있는 남편에게 그 무엇보다

잘 해야겠다고 생각을 곱씹어 봅니다.

 

어느날 남편에게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돼!"

 "왜"

 "여자는 평균적으로 남편보다 8년은 더 살잖아"

 "그래,그러니까 잘해"

하면서 거드름을 피운답니다.

남편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구요

 

지금의 남편이 없다면 암흑세상그 자체일거예요....

 엄마와 나는 전화기 덕분에 함께

노래방은 갈 수 없었지만 노래를 부르고

박수도 치며 함께 합창도 했답니다.

 

 "선화야 선화야 선화야,

 

어디 너도 노래 한번 불러봐라"

 "그래 엄마"

 "이 노래 생각나 아버지께서 잘 부르시던 것"

 "똑똑똑 구두 소리 빨간 구두아가씨...."

내 노래가  끝나고 엄마는

'꽃을 든 남자'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외로운 가슴에 꽃씨를 뿌려요...."

 "엄마 이런 신곡을 어떻게 알아 우리 엄마 세련된네"

 "그래!테이프 사다가 연습했지.

태진아 노래도 알어"

엄마는 그렇게 홀로 서서

그길을 묵묵히 걷고 계셨습니다.

 

우린 그렇게 1시간여남짓 주거니 받거니

노래도 부르고 TV보고 있는 사위도

전화기를 붙잡고 박수치고 합창혀며

환호와 추임새도 곁들이며

'부산 갈매기'도 부르며 다음에 시골에 가면

노래방을 함께 가자고 약속했답니다.

 

전 알수 있습니다.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엄마의 마음 가득

수화기를 타고 가슴 징하게 전해오는 그 무엇을 ...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고 바쁘다고

자식노릇 재대로 못하는 못난 딸이 됐네요.

 

이제부터 반성하며

엄마와의 추억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우리엄마 정말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항상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의 곁에서 지켜보고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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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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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2.20 09:22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 14.01.07 17:54

    선이 깔끔하면서도 생명력이 꿈틀거는것같은~~~그림 감상 잘 하고 갑니다.
    - 마지막 그림 정말 욕심 나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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