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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안식일(2)
1. 제7일안식일의 시작
1). 최초의 안식일계명 제정
①. 출애굽 직후에 제정되었습니다.
요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이는 율법의 시작이 모세라는 의미가 아니라 출 애굽하는 이스라엘에게 모세5경에 기록된 율법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모세 이전에도 구전되어진 하나님의 명령과 율례와 계명이 있었으나 십계명 등 체계화된 명령은 없었습니다.
안식교인들은 십계명 특히 제4계명이 창세부터 명령된 율법이라 주장하나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요1:17에는 제4계명도 모세에게 주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도록 명령한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법을 제정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안식일 준수를 요구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성구들에서는(신명기 5:2,3) “여호와께서 이 계약을 우리 조상과 맺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 맺으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 그들 대대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이것은 한정 없는 때까지 이르는 표이다”라고 알려 줍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이미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면, 신명기 5:15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제7일안식일준수가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일곱째 날에는 만나를 주워 모으러 나가지 말라는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하였다는 사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새로운 마련이었음을 시사해 주는 증거입니다. (출 16:11-30) 시내 산에서 율법이 주어진 후에 기록상 최초로 안식일을 범한 사람과 관련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는 점도, 안식일이 제정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사실입니다.(민 15:32-36)
매주 24시간의 안식일을 지키는 관행의 역사는, BC1445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둘째 달에 광야에 있을 때 시작됩니다.(출 16:1)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여섯째 날에는 만나 공급이 갑절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자 그 회의 수장들은 그 일을 모세에게 알렸으며 그때에 매주의 안식일 마련이 공표되었던 것입니다.(출 16:22, 23) 그때 이래로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키게 됩니다.
매주의 안식일은, 얼마 뒤 시내 산에서 율법 계약이 정식으로 발효되었을 때, 안식 제도의 긴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출 19:1; 20:8-10; 24:5-8) 이안식 제도는 여러 형태의 안식으로 구성됩니다. 일곱째 날, 일곱째 해, 오십 번째 해(희년), 니산월 14일(유월절), 니산월 15일, 니산월 21일, 시완월 6일(오순절), 에다님월 1일, 에다님월 10일(속죄일), 에다님월 15일, 에다님월 22일 등 입니다.
②.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안식일은 둘째 달 15일 부터 7일후 입니다.
출애굽 후 둘째 달 15일(출16:1-4), 그 후 7일이 지난 날, 즉, 22일이 안식일입니다.(출16:23)
출16: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출16:22~23 “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지도자가 와서 모세에게 알리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③. 안식일은 건져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후 일곱째 되는 날을 축복하신 가운데 암시적으로 나타난 그의 백성을 위한 영원한 안식의 계획을 반영합니다(창 2:2∼3 / 출 20:8∼11 참조). 또한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구속적 구출 사역 역시 반영하고 있습니다(신 5:12∼15 참조). 이처럼 안식일은 기원에 있어서 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표현입니다. 이사야 1장13절에서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제도화된 안식일 회합을 미워하신다고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회합들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회합들이 무의미한 이유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행동들 때문이었습니다(사 1:15∼17).
출1:8에 등장하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과거 요셉을 총리자리에 앉혔던 왕과는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투르모세 1세(1529-1517)로 요셉을 알지 못할 뿐더러 이스라엘과 애굽인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요셉에 대한 모든 것을 말살하려고 했던 왕이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최강의 나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 이면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한 어마어마한 인력자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애굽의 왕이었던 '파르오(פרעה)'를 단순한 왕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애굽의 왕은 곧 '신'적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굽의 왕 '파르오(פרעה)'의 이름을 살펴보면 앞으로 그 왕을 통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애굽어로 '프로'라고 하는데 '커다란 집'이라는 뜻입니다.
פ는 '입'을 뜻하고, 가운데 히브리글자 רע는 '악'이라는 뜻이요. 나머지 פה는 '고통,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즉, 파르오(פרעה)는 입에서 고통과 괴로움, 악함이 나옴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출1:15-22에서 '파르오(פרעה)'는 히브리 남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히브리 산파 '쉬프라'와 '푸아'를 통해 먼저 그 일을 하도록 명령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잠1:7, 9:10)으로 애굽 왕의 명령을 아니 애굽 신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산파는 히브리어로 ירד(야라드)다. '손이 생명을 향해 가리킨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 산파들의 용기를 통하여 많은 생명들이 지켜지게 됩니다.
'쉬프라(שפרה)'라는 이름은 '선명하다', '분명하다', '좋게하다'는 뜻 특히 שפ는 정의, 공의, 재판이라는 뜻이요. 산파였던 '쉬프라'와 '푸아'의 행동은 토라 안에서 공의롭고 정의로운 행동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습니다.
모세의 출생과 성장기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의 딸을 통해 물에서 건져진 모세는 왕궁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출5장을 보면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서게 됩나다. 다시 말하자면 애굽의 신적 존재인 바로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 좋은 예가 '에스더'입니다. 에스더는 왕후였지만 마음대로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만을 통해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몰살당할 위기임에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허나 금식과 기도 가운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감니다. 왕후라 할지라도 왕 앞에 함부로 나섰다가 목이 달아나기 일 수 였습니다. 허나 에스더의 목에 칼이 날아오기 전에 왕은 자신의 금 규(막대기)를 내어줍니다. 그것을 잡은 에스더에게 내리치던 칼은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냥 노예로 살던 히브리 민족 중 한명일 뿐이었다면 감히 왕 앞에 나갈 수나 있었을까? 바로가 만나주기는커녕 잡아서 옥에 가두던가 아님 목이 달아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허나 모세는 과거 왕궁에서 살면서 애굽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를 보고 듣고 자란 왕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는 모세를 만나주기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출애굽을 위한 놀라운 계획이었습니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חג)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출 5:1)
출애굽의 목적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바로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광야에서 지킬 절기”는 아직 출애굽하기 전으로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절기인 유월절이 이뤄지기 전입니다.
바로는 광야에서 절기를 지키게 해 달라는 그들의 요구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출 5:4)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출 5:5)
4절의 '쉬게 하다'는 '단순히 일에서 떠나게 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5절의 '쉬게 하다'는 "안식하다" 혹은 "안식일을 지키게하다"라는 단어 שבת(샤바트 sabbat)입니다.
바로는 모세의 요구를 단지 "일을 안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에서 떠나 안식일을 지키려는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 하고 있을 때 감독들이 매주 요구되는 작업량을 증가시켰다.
그로 인해 안식일에도 노동을 시킴으로 안식일 준수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 5:15)
모세가 바로에게 요구한 절기는 바로 안식이 없어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이스라엘에게 안식일(Shabbat)을 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④. 안식일 알림
랍비 자료에 의하면,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는 금요일 제9시 곧 오후 3시경에 세 번 나팔을 불어서 안식일이 가까웠음을 알렸다고 합니다. 이때 모든 일과 업무는 중단해야 하였으며, 안식일 등잔을 켜고, 축제용 옷을 입었으며, 그 후에 나팔을 세 번 더 불어서 안식일이 실제로 시작되었음을 알렸다고 합니다.
임무를 마치는 제사장 조는 안식일에 아침 희생을 바치고 임무를 시작하는 제사장 조는 저녁 희생을 바쳐서, 신성한 곳에서 두 조가 함께 안식일을 지냈으며 각각의 조는 각 조가 몫으로 받는 빵의 절반을 대제사장에게 주었습니다. 그 빵은 깨끗한 상태에 있는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먹었습니다. 임무를 시작하는 조에 속한 가족들의 우두머리들은 어떤 가족이 그 봉사 주간 중에 각각의 특정한 날에 섬길 것이며 누가 안식일에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것인지를 제비뽑기로 결정하였습니다.(레 24:8, 9; 막 2:26, 27.)
2). 안식일의 종류
①. 제7일안식일
안식일은 신성한 날로(신 5:12), 모두 — 이스라엘인, 종, 외국인 거주자, 동물 — 가 온갖 노동을 중단하고 쉬며 기뻐하는 날로 지켰습니다.(사 58:13,14, 호 2:11, 출 20:10, 34:21, 신 5:12-15, 렘 17:21,24) 매일 정기적으로 “항상 바치는 번제물”에 더하여, 특별한 번제물이 곡식 제물 및 음료 제물과 함께 바쳐졌습니다.(민 28:9, 10) 신성한 곳에서는 진설빵을 새것으로 바꾸었으며, 새로운 제사장 조가 임무를 시작하였습니다.(레 24:5-9, 대상 9:32; 대하 23:4) 제사장들의 임무가 안식일에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마 12:5) 유아는 생후 8일째 되는 날이 안식일이어도 할례를 받았습니다. 후대에 유대인들 사이에는, 제사장들의 임무는 안식일에도 수행되었다는 의미로, “신성한 곳에는 안식이 없다”는 속담이 있었다고 합니.(요 7:22, 레 12:2, 3.)
②. 절기 안식일
유월절(출12:1~14) - 1월14일
무교절(출12:15~25) - 1월15일~21일 (유월절, 무교절을 합하여 큰 안식일 임)
초실절(출34:22) - 유월절부터 50일
나팔절(레23:24) - 7월1일
속죄일(레23:27~29) - 7월10일
초막절(레23:34~37) - 7월15일~21일
정기적인 매주의 안식일과, 축제와 관련이 있는 안식일 즉 “거룩한 대회”와는 요구되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레 23:2) 일반적으로 말해서, 매주 안식일의 제한이 더 엄격해서, 힘이 드는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신성한 곳은 예외임). 나무를 하거나 불을 피우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민 15:32-36, 출 35:3) 속죄일도 마찬가지로 모든 종류의 일을 쉬는 때입니다.(레 16:29-31, 23:28-31) 하지만 축제의 거룩한 대회 날에는 힘이 드는 일이나 장사 또는 상거래를 할 수는 없었지만, 요리나 축제 준비 등은 허용되었다고 합니.(출 12:16, 레 23:7~8, 21,35,36.)
때때로 두 종류의 법적 안식일이 똑같은 24시간에 겹치면, 이날을 “큰” 안식일이라고 불렀습니다. 니산월 15일(안식일)이 정기 안식일과 같은 날이 된 경우가 그 예입니다.(요19:31)
③. 안식년
안식년 법에 관한 규례에서 우리는 안식년 법들의 기초가 되고 있는 땅에 대한 여호와의 소유권 개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Henry는 이 법이 출애굽기 23:10-11절과 아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레위기의 이 규례에서는 아주 독특한 동기가 발견되어진다고 이야기 합니다. 즉, 출애굽기 23:10-11절에는 가난한 자들이 경작하지 않는 땅에서 자연히 자라난 곡식들을 먹을 수 있게 한 인도주의적인 사회적 기능을 볼 수 있는데 반하여, 레 25:4의 "제 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는 안식의 개념을 통하여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는 종교적인 동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Wright는 Gordon과 Lemche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안식년 법이 고대 이스라엘에 하나의 제도(Institution)로서 정착하기 전에, 이미 안식년 법의 개념과 그 실행에 있어서 분명한 종교적이며 제의적인 의미를 함의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안식년 법은 어떻게 지켜졌으며, 안식년의 양식의 종류와 용도는 무엇이었으며, 안식년 법의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안식년은 개별적 혹은 부분적으로 지켜졌는가? 아니면 동시에 전체적으로 지켜졌는가?에 대한 학자들 간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Killian 과 Porter는 개별적인 안식년 즉, 돌아가면서 땅을 휴경하는 견해에 동의하는데, 이들은 돌아가면서 이루어지는 안식년은 농부들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안식년에 의해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둘째로, Ginzberg는 전체적인 땅의 휴경으로 말미암은 사람들의 굶주림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가나안의 정복이 같은 해에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안식년이 지켜졌는지 결정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 했다.
셋째로, Wright는 안식년 법은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들에 대해 인도주의적인(Humanitarian) 동기를 가지고 있는데, 전체적인 땅의 휴경은 이들로 하여금 더욱 어려운 시간을 가지게 할 것이라고 하면서, 땅의 휴경은 전체 농부들에 의해서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개별적인 농부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적으로 돌아가면서 땅의 휴경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하는 견해에 대해서 전체적인 안식년 즉, 땅의 휴경을 지켰을 것이라고 하는 견해를 가진 많은 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첫째로, Wacholder는 안식년 법과 안식일 사이의 매우 밀접한 성격과 연관성을 지적하면서 안식일 법이 모든 백성이 동시에 전체적인 준수를 했다면, 안식년도 동시적이며 전체적인 준수를 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둘째로, Safrai와 Eisenstein은 만약에 개별적인 안식년의 준수가 이루어진다면 희년의 계산에 아주 치명적인 혼선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을 했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안식년의 준수는 모든 지파가 각각 땅을 분배받은 뒤에 이루어졌다고 했다.
셋째로, Paton은 땅의 휴경와 노예해방과의 관계를 주시하면서, 특별한 부분적인 휴경은 땅의 주인으로 하여금 나머지 7분의 6에 해당하는 땅을 매년 농사지어야 하는 부담과 욕심을 주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노예해방을 시행하지 못하도록 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넷째로, 제 2성전 말기의 제 1 마카비서와(I Macc. 6:49, 53) 요세프스의 기록(Ant. XII. 377-378; Ant. XIV 475ff)의 역사적 자료들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음식부족으로 인한 기아가 도래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부분적인 휴경의 준수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다섯째로, 레 25:20절의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 칠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에 있는 질문은 7분의 6의 농사를 지을 땅이 있는 상황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물음이다.
이러한 안식년의 휴경법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와 역사적인 증거 그리고 성서 텍스트의 증거들은 부분적인 휴경보다는 전체적이며 동시적인 안식년 법 준수의 견해를 더 타당한 안식년 준수 방법으로 말하고 있다.
안식년의 양식의 종류와 용도
레 25장에는 안식년을 위한 두가지 양식 즉, 레 25:5-7절의 저절로 자라난 양식과 레 25:20-22절의 저장된 양식이 나타난다. Noth와 Saith는 비록 안식년에 수확하는 것이 없다하더라도 전년도 수확기에 떨어진 이삭으로부터 저절로 자라난 곡물들이 양식이 되어 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Hartford-Battersby도 이들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안식년에 곡식을 거두지 못하게 한 것은 상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수확들을 금지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Brown, Driver 그리고 Briggs도 '떨어진'의 히브리어 어원적 접근을 통하여 이전 수확기에 우연히 떨어진 곡물들이 안식년에 자라난 것으로서 이것을 양식으로 사용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5절의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네지레'는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드리는 나실인의 모습중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민 6:2, 13, 18-21절), 이처럼 전혀 수확을 위한 노력이 들지 않은 포도나무 열매를 가르친다. Ginzberg도 안식년에 저절로 자라난 곡물의 매일 양식으로서의 이용은 저자의 humanitarian적인 배려라고 보았다.
이러한 일련의 견해들을 볼 때 안식년에 사용된 양식은 전해에 저장된 양식과 저절로 자라난 곡물인데, 특별히 이 저절로 자라난 곡물은 가난한 자들을 비롯해서 필요한 사람들 모두에 의해서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일용할 양식으로 사용되어졌음을 볼 수 있다.
안식년의 기원
안식년의 원래적인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의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첫째 견해는 인도주의적인 관점이다. Weber와 Kugler는 휴경 즉, 안식년은 순수한 인도주의적인 관점을 반영한다고 했다. Eichrodt도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떨어진 곡물뿐만 아니라 모퉁이에 곡물도 남겨놓으라고 한 레 19:9-10절에 주목하면서 the Holiness Code의 전반적인 인도주의적인 강조점을 말했다.
둘째 견해는 안식년의 제의적인 기원을 이야기 한다. North는 소유주의 땅의 소산물에 대한 권한포기를 하나님에 대한 경배의 방법으로 간주하면서 안식년 제의의 기원을 이야기 한다.
셋째 견해는 안식년의 농경적인 기원을 이야기 한다. Penderson은 땅과 사람과의 밀접한 관련성에 주목하면서 안식년의 농경적인 관점을 이야기 한다. 그는 토양의 성질에 대한 성경의 구절 즉, "언제 내 토지가 부르짖어 나를 책망하며 그 이랑이 일시에 울었던가"(욥 31:38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눅 19:40절),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19-22절)을 언급하면서 땅의 본질상 자유의 시간 즉, 휴경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안식년의 기원에 대한 여러 견해들은 각각 어느 한 기원의 설명이 안식년 기원증거로서 필요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비록 안식년의 일차적인 초점이 인도주의적인 관심에 있다하더라도 다른 두 요소 즉, 제의적이고 땅에 대한 농경적인 관점도 또한 이 안식년 기원의 한 뿌리로 간주하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
④. 희년
“희년”이라는 말은 “요벨” 즉, “양의 뿔” 이라고 하는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용어로서 히브리 성경에 모두 26번 나온다고 합니다. 희년을 맞이하는 해의 일곱 번째 달의 열 번째 되는 날 즉, 대속죄일에 이 양의 나팔이 울려퍼지게 되면, 기업의 원주인에게로의 회복을 포함한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자유가 선포합니다. Liber, van Selms, Lemche 그리고 Wright와 같은 학자들은 “요벨”의 정확한 어원적 의미를 설정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지만, Morgenstern, Noth, Patrick, Heinisch, Chirichigno, North, Snaith 그리고 Neufeld등과 같은 대다수의 학자들은 “양의 뿔”에서 그 어원적 의미를 찾습니다.
Morgenstern은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은 특별한 때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어졌다고 보면서, 일반평민들은 “쇼파르”라는 나팔을 사용한 반면 제사장들만이 요벨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또한 일반적인 해는 그 해의 첫해에 “쇼파르”를 통해서 선포되어진 반면에 희년은 “요벨”에 의해서 선포되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Chirichigno는 “요벨”과 “쇼파르”를 동의어라고 보았는데, 출 19:16절과 여 6:4-8, 13절에 나타나는 “쇼파르” 역시도 양의 뿔로서 묘사가 되어진 점을 본다면 이 Chirichigno의 견해가 더 타당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희년의 선포는 49년째인가? 50년째인가?
첫째, 희년이 50년째에 선포되었다는 견해
50년 희년 설은 주로 초기의 보수적인 학자들에 의해서 주로 주장되었다. Lesetre는 신 16:9절의 "칠주를 계속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주를 계수하여"에 나타나는 맥추절은 49일 다음에 오는 날이며, 요세프스와 파일로 등과 같은 랍비 주석가들이 모두 50년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고 한 레 25:11절의 파종을 금지하며 충분한 양식을 약속한 말씀은 50년설에 더욱 적당한 것이라고 보았다. Paton역시도 49년 설은 본문과 고대증언들과 상치된다고 보았고, 구체적으로 랍비중 한 사람인 Yehuda Ben-Ilai를 들며 랍비의 전통적인 견해는 50년 설에 서있다고 주장했다.
Delitschz는 49년 희년 주기설은 인본주의적인 계산법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레 25장의 내용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는 희년은 레 25장에 기록된대로 7번째 안식년 다음 해, 일곱 번째 달, 열흘 째 되는 날 양의 뿔 나팔 소리로 선포되었다고 보았다. Strack 역시도 50년 희년 설을 받아들이면서, 매 7번째 희년은 어느 한 안식년과 일치되어질 수 있기 때문에 희년은 안식년주기의 어느 해와 겹쳐질 수 있음을 지적했다.
둘째, 희년이 49년째에 선포되었다는 견해
Hoenig와 Wenham은 희년을 49일의 '도약된 점핑된 해'(leap year)로 제안을 했는데 제 2성전기의 월력에서 희년에 사라진 것은 이 견해를 뒷받침해준다고 보았다. Box는 창세기에서 출애굽기 14장까지의 역사를 49주기로 등분하여 재구성한 가경중의 하나인 'The Book of Jubilees'의 저자가 50에 대한 이해를 49로 하여 역사를 49등분하여 기록한 것을 주목하면서 일곱 번째 안식년과 희년의 동일성을 이야기 한다. Morgenstern역시도 'The Book of Jubilees'의 49주기를 주목하면서 마키비와 마카비후기에는 희년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다. Heinisch, Reventlow, Elliger, Cardellini, van Selm, Kugler 그리고 Noth와 같은 학자들은 히브리인들이 날짜 계산시에 마지막 숫자에서 처음 숫자를 빼고 남은 날수를 계산하는 히브리 계산법을 염두에 두면서 49년설을 지지한다. 즉, 히브리인들은 7일에서 12일 사이에는 6일이 아닌 5일이 있는 것으로 계산한다. Vaccari는 또한 고대 로마의 월력에서 희브리 계산법과 비슷한 자료 즉, 이틀전이라는 것을 'tertio calendas'로 표현한 것을 들어 49년설을 이야기 한다. 한편 Kaufmann은 '요벨'과 고대 바빌론의 'misarum' 선포를 비교하면서 희년은 49년에 선포되었다고 했는데, 현재 희년주기의 마지막 해는 다음 희년 주기의 첫해가 되어진다고 보았다. Hartley는 만약에 단 9:24절의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에 나타나는 490년을 10번째 희년이라고 본다면, 일곱 번째 안식년이 희년이라고 하는 견해를 지지해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50이라는 숫자는 실제적인 특별한 월력을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고 상징적인 것이라고 보았으며, 희년은 다른 안식년들과는 달리 일곱 번째 안식년을 구별하기 위한 특별한 표식이라고 보았다. Stone은 50년은 두 월력 체계 즉, Sun과 Moon력의 상이한 길이에 의해서 발생되어지는 현상이라고 보았다. 그는 희년을 두 월력사이의 차이를 조절하기 위한 Moon력에 부가된 길이의 시간으로 보았다. Klostermann역시 두 월력사이의 차이점을 보면서 49번째 Sun year는 50번째 Moon year의 이어지는 달수로 보았다. 그러므로 49년의 Sun year 시작은 50년의 Moon year의 후반기 시작이 되는 것이다. 즉, 50년 Moon year는 49년 Sun year 일곱번째 달 열흘째 되는 날에 끝나게 되는데 이때 희년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희년선포 시기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들은 확실한 희년 선포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으나, 다니엘서의 490년에 대한 해석과 중간기 가경인 'The Book of Jubilees' 저자의 희년의 49주기 이해나 Sun-Moon 월력의 차이는 49년째 희년 선포를 더 지지해주고 있는 듯하다.
문제점 - 2년 연속 땅의 휴경의 농경적 비현실성
Wetzstein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토양은 안식년이 지난 8년째에는 기경을 해야만 농산물을 얻을 수 있는 농경적 환경조건에 주목하면서, 만약에 2년 연속 휴경이 되어진다면 양식을 얻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Kugler역시도 땅과 기후의 조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땅의 기경이 없는 연속된 휴경은 곡물을 생산할 수 없는 땅의 황폐함을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North는 마카비 일서 6:49절의 안식년 준수로 인한 기근의 도래를 사례로 들면서, 2년 연속의 휴경을 전제로 하는 50년 희년설 보다는 일곱 번째 안식년과 희년의 일치를 주장하는 49년설을 이야기 했다.
⑤. 신약의 안식일
예수께서는 율법 아래 태어나신 유대인으로서, 하나님 말씀이 명령하시는 대로 안식일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마 12:12)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한 바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되십니다(롬10:4), 따라서 성도들은 “율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롬7:6) 예수님도 그리고 제자들도 이른바 도덕에 관한 법과 의식에 관한 법을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이 “법령들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였으니“우리를 거스르는 손으로 쓴 문서를 지워 없애셨으며”“예수님은 그것을 고통의 기둥에 못박아 없애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폐하”고, “지워 없애”고, “없애” 버린 것은 모세의 율법 전체였습니다.(엡 2:13-15, 골 2:13,14)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에 의하여 안식 제도 전체가 — 안식일이든 안식년이든 — 율법의 나머지 부분과 함께 끝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고, 안식일이든 다른 어떤 날이든, “한 날을 다른 모든 날과 같다”고 여길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롬 14:4-6, 골 2:16) 바울은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세심하게 지키는 사람들에 관하여, “나는 어떻게든 여러분에 대하여 내가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았나 싶어 여러분이 염려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갈 4:10, 11.)
이와 같이 예수께서 죽으신 후에 사도들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15:28,29나 그 이후의 기록에서 안식일은 그리스도인의 요구 조건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새로운 안식일 즉 “주일(主日)”을 제정하지도 않았습니다. 현재 일요일로 불리는 날에 예수께서 다시 사셨지만, 성서 어디에서도 그분이 부활되신 이날을 “새로운” 안식일로 또는 여타의 방법으로 기념해야 함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고전 16:2, 행 20:7을 근거로,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초기교회시대에서 교회가 이방인들 속으로 들어가면서 유대인들에 의한 안식일에서 다른 날에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초기교회에서 할례제도와 성전제사제도 사라지고, 부정한음식에 관한 것 등의 규례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행15:29)
안식일만 회당에 모여 예수님께 예배하던 때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당연하였으나(행15:5) 교회가 성장하여 이방인이 구원에 참예하고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모세의 율법으로 이방인을 괴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사도들이 깨닫게 됩니다(행15:19“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던 때인 AD55이전의 초대교회는 유대인 중심의 교회이었으나 이후부터 빠르게 이방인중심 하나님중심의 교회로 변화됩니다.
예배드리는 날, 예배드리는 시간, 예배방법 등등이 변화됩니다.
안식교도들은 이것이 배교라 말합니다만 성경은 배교가 아니라 이같이 변화하는 것을 비판하고 유대방식만 고집하고 교회를 향하여 핍박하는 유대인들의 모임을 사단의 회(계2:9, 3:9)라고 예수님은 정죄하십니다.
안식교인 들은 “초기교회가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켰다, AD321년 콘스탄티누스가 일요일(라틴어, 디에스 솔리스. 점성술 및 태양 숭배와 관련이 있는 고대 명칭으로, 사바툼[안식일]이나 디에스 도미니[주일]가 아님)을, 농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쉬는 날로 포고하였다. 그래서 안식일이 아닌 일요일에 예배드림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이 주장에는 전혀 근거 없음을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드릴 것입니다.
3). 샤밭 שבת (안식일)의 의의
①. 언약으로 돌아감. <שב(슈브) 돌아가다 ת(타브)언약(브리트)>,
(출 31:12∼17, 겔 20:10∼26).
②. 휴식하는 날(출20:9~11 - 주인, 종, 객).
③. 거룩하게 지켜야 할 날(출20:11, 출 31:15, 고전3:14~15)
④. 괴롭게 하는 날(레23:32) - 겸손(humble:겸손, 낯추다, 꺽다)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괴롭게 하는 자세가 아니면 도와주지 않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경우에만 속죄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를 해야 비로소 용서를 받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괴롭게 할 생각은 안하고, 자기를 감추기 위해서 율법을 취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할 때에도, 바리새인들과 이 죄인에 대한 개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신랑을 빼앗겼다고 아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이고, 신랑이 없어도 율법이 있으면 된다고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⑤. 일하는 자는 죽임 당하는 날(출 31:15, 민 15:32-36)
⑥. 속죄일(레23:28) - 예수님이 십자기로 우리 죄를 씻어주시는데, 그것은 우리가 깨닫는 범주 안에서 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성령이 오셔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괴롭게 함으로 죄를 깨닫고, 그래서 주님의 하나밖에 없는 제사를 통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안식일입니다.
⑦. 제사 드리는 날 - 제사장 만
⑧. 세상과의 단절이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역으로 삼겠다는 말씀입니다(레26:9~14).
⑨. 하나님나라를 보여주는 도구 -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방법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롬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요 5:45~46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⑩. 약속의 땅을 상속받음을 말하기 위해(레26:42~46)
출애굽의 완성자는 예수님(히11:1~)
⑪. 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
골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⑫. 구원하신 일을 기념하는 날(신 5:15)
⑬.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헌신의 척도다(출 31:12-17; 사 58:13-14).
⑭. 하나님을 본받는 행위(출 20:8-11, 레 19:2-3)
⑮. (히) Shabbat ('중지하다' 또는 '그만두다'라는 뜻의 shavat에서 유래).
⑯.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종교세 거두기 시작 - 예언서에 나타나는 안식일 제의적 활동들에 관한 자료들은 주전 8세기께 이르러 안식일이 국가적 축제들 가운데 하나로 정착되어 있었으며, 그 날에 모종의 형태의 회합이 이루어졌음을 제안해준다(사 1:13, 호 2:13). 늦어도 에스겔 시대에 이르러서는 안식일에 제사장들과 군주뿐만 아니라 백성도 성전에 출석하였습니다(겔 46:1∼3).
4). 안식일 제정 목적
①. 하나님의 자비로우심,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성품과 '종말론적 안식' (마11장 28∼30)
②. 사람을 위해서 제정된 제도(막2:27, 호세아 6:6) - 안식일은 짐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으로 주어졌습니다.
마카베오 시대(BC 2세기)에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무기를 들고 방어를 하느니 차라리 살육당하는 편을 택할 정도로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켰으나 그렇게 하다가는 멸종당할 수도 있음을 깨닫고는 안식일에 다시 공격해오면 싸우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탈무드는 이 결정을 인정했으며, 생명이나 건강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경우, 39가지 금지된 노동이 유예된다고 말하면서, "안식일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③. 종말론적 안식에 들어가는 것 -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고 그 안에 현존하는 종말론적 안식(=구속)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안식일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때문에(즉 그의 성취의 영향권 하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결과 예수님께서 성취하시고 제공해주시는 안식일의 궁극적 목표였던 종말론적 안식 가운데 참여하는 것입니다.
④.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 (마 12:8)
5). 구약의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
①. 제사 드리는 일 - 제사장에 한하여 가능하였습니다
②. 성전 안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해도 죄 없음
(민 28:9∼10, 마12:5,레 24:8-9)
③. 할례를 행하는 일(창 17:12, 레 12:3)
④. 선을 행하는 일(마 12:12) - 이는 오직 예수님만의 의견 이었습니다.
6). 구약의 안식일에 금지된 일
①. 일반적인 노동 이외에도 불을 피우는 일(출 35:3)
②. 음식을 만드는 일(출 16:23)
"안식일에는 미리 준비된 것 외에는 먹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음식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이유는 일하지 말라(불을 피우지 말라는 계명)는 구약의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출 35:3: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은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음식을 하려면 불을 피워야 하므로 불을 피우지 않아야 한다면 당연히 음식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세푸스의 책 "유대전쟁"은 유대인들이 안식일 전날에 음식을 준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③. 나무를 줍는 행위(민 15:32~35)
④.여행(사 58:13)
유대인들은 2000규빗(3/4마일) 이하의 거리만 걸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합니다.(랍비들처럼, 출 16:29과 민 35:5를 근거로 해석)
안식일 여행 한계가 2천 규빗(약 900m)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식일 여행 한계에 관한 1세기 랍비들의 규칙은 매우 상세하고 세부적이다. △이방인이 한 사람을 다른 도시나 가축(家畜) 우리에 데려다 놓았을 때, 그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거리 △바다 위에 항해하고 있는 배 위에서 걸을 수 있는 거리(전 영역; 4 규빗) △여행 중에 밤이 된 줄을 모르고 잠이 들었던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거리(2천 규빗, 4 규빗, 2 규빗) 등.
⑤. 금식하는 일 - 희년서 50:12-13은 안식일에 금식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날에 일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 금식을 하거나 ... 이 중에 어떤 것을 안식일에 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죽여야 한다.
Judith 8:6은 경건한 유대인이 금식을 하는 경우에도 안식일에는 금식을 중단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안식일에 금식을 금한 이유는 랍비문헌에 의하면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슬픈 날이 아니라 기쁜 날이었으며, 안식일은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⑥. 랍비문헌에 나타난 안식일 - 주후 약 200년경에 구두전승을 토대로 결집된 유대인들의 경전 미쉬나 Shabbath 7:2은 39가지 항목의 일들을 안식일에 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추수 즉, 곡식 베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40에서 하나 감한 것은 40가지가 되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바벨로니안 탈무드 Shabbath 128a에서 갈릴리 사람인 랍비 Judah는 안식일에 밀이삭을 훑어내어 손바닥으로 비비는 것은 허용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도구를 사용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다른 주류 랍비들에 의해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다른 랍비들은 손가락 끝으로 소량만을 비벼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메킬타의 출 31:13 주석에서 주후 180년경의 랍비 Simeon ben Menasha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너희들에게 안식일이 주어진 것이지, 너희들이 안식일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메킬타 출 31:14에서 약간 바뀌어 반복된다. "안식일이 너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너희가 안식일에게 주어진 것은 ..."
⑦. 병 고치는 일(마12:3)
⑧. 안식일 이전에 일 끝내기
⑨. 기타 안식일에 금지된 행동들
랍비들은 안식일에 허용된 행동들과 금지된 행동들을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하고 있습니다. 랍비 엘리에젤은 여인이 안식일에 관(冠;일명 '황금 도시'), 헤어네트, 향수병 등을 장식하고 집을 나가는 것을 허용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랍비들은 이들 모두를 금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 사람이 말린 무화과 용량보다 적은 양의 채소 씨앗이나, 두 개의 오이 씨앗, 두 개의 조롱박 씨앗 등을 집에서 가지고 나간다면 그는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랍비 엘리에젤은, 만일 한 사람이 그의 손톱이나 머리카락 등을 깎거나 뽑으면 그리고 한 여인이 자신의 머리를 손질하거나 자신의 눈꺼풀에 화장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그러한 자는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7). 안식일 법보다 우선되는 법
①. 할례(창 17:12, 레 12:3)
②. 제사법(레 24:8, 민 28:9-10)
③. 선을 행하는 일(요9:1~34 등)
④. 성년식 - 안식일 아침 예배를 드리는 동안 그 전 주일에 13번째 생일을 맞은 유대인 소년은 관례에 따라 바르 미츠바(종교적 성년식)를 치르며, 하프타 찬송을 할 수 있다 합니다.
⑤. 일하는 것(요5:17)
⑥. 기타 안식일에 우선하는 문제들
△화재로부터 성경이나 음식물을 구해내는 일 △생명을 구하는 일 △자기 방어적 전쟁.
한편 랍비 아키바는 무슨 일이든지 안식일 전날에(혹은 전야에) 행해질 수 있는 일은 안식일에 우선하지 않지만, 안식일 전날에(혹은 전야에) 행해질 수 없는 일은 안식일에 우선한다는 일반 원칙을 규정하였습니다.
8). 안식일 정신
①. 하나님의 궁휼(마 12:7)
②. 성전보다 더 큰 예수님권위(마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