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 베네딕도 신부님 연중 제34주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 주간 특전 미사(2022. 11 . 19 토)
"찬미 예수님!"
"찬미 예수님!"
오늘은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연중 제34주일 마지막 주일 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달력으로 벌써 한 해가 다 지났습니다.
평소 주일은 '주님의 날', '부활의 날'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연중 34주일이라는 의미는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34번이나 체험을 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힘으로 살았다는 것을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부활 체험을 잘했습니까?"
"조용"(신자들)
"주님의 은총을 많이 받으셨습니까?"
"조용"(신자들)
오늘이 마지막 주일이라는 것은 전례력으로 종말론과 신앙고백을 통하여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있을 때 한 편으로는 예수님을 모독하고 조롱하였으며, 또 다른 한 편은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모독하는 이를 꾸짖으며 또한 예수님께 구원을 청하게 됩니다.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 축일을 맞아 섬김과 보살핌으로 오늘 강론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교구장님께서는 목자이시잖아요?
목자이시기 때문에 지팡이가 있습니다
"주교님은 목동, 목자이십니다. 목자"
"목자들의 지팡이?
아십니까?"
"조용"(신자)
"몰라요?"
"저는 그 지팡이가 없습니다. 없지요?"
제게 지팡이는 있지만 말 그대로 그냥 지팡이, 등산 갈 때 가지고 다니는 평범한 지팡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교님은 목자, 목동의 지팡이를 가지고 계십니다.
주교님이 갖고 계시는 지팡이로 방향을 가리키면 가리키는 곳으로 가라는 뜻입니다.
"서쪽을 향해 가리켰는데 동쪽을 향하여 가면 안 되겠지요?"
"양 때의 무리가 사방으로 흩어지면 안 되겠지요?"
목자, 목동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는 실제로 양 때를 돌보는 지팡이입니다.
이리 때가 오면 그 지팡이로 자신과 양 때를 지키겠지요.
실질 적으로 몽둥이 즉 자신과 양 때를 보호하는 무기입니다.
그러니 목동이 가라고 지시를 하면 가야 되겠지요?
저쪽으로 가리켰는데 이쪽으로 간다면 안 되겠지요?
그럼 2년 동안 주교님은 우리에게 어디로 가라고 가리켰습니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 다 함께 말해 봅시다!"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성당 우측)
(좌측은 우리 성당이 나아가야 할 길)
목자들의 지팡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향해 지팡이로 그 방향을 지시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읽고, 쓰고, 듣고, 기도하십시오
"주교님이 그렇게 방향을 지시를 했을 때 우리는 그 주교님 말씀을 잘 따랐습니까?
"솔직하게 묻습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으시지요?"
"그렇게 한 것은 잘한 것은 아니지요?"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오늘 1 독서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헤브론으로 다윗왕을 찾아가서 주님 앞에서 계약을 합니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계약을 보면 항상 상관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임금으로서 의무가 생깁니다.
즉 백성을 잘 보살피는 것의 그의 의무입니다.
이때 나이가 많은 사람은 영도자로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목동, 목자들은 목동과 목자들로서 의무가 생기는 것이지요
왕은 하느님에 의해서 탄생하셨습니다.
백성들과 예언자들은 기도의 힘을 받고 하느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으셨습니다.
스스로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다음으로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이지요.(어린양 때)
다시 말씀을 하자면 목자로서 의무를 지니고 살아는 동안 왕으로서 계약을 맺습니다.
2 독서 콜로새서 복음 묵상입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교리입니다
"따라 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보이지 않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모든 피조물의 맏이 만물은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다..
"하늘과 땅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왕권과 주권, 권세와 권력,
모든 만물이 그로 향해서 창조되었다.
만물의 으뜸이다."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평화는 전쟁이 아닙니다.
구원은 세상의 그 어떤 누군가? 그 누군가의 힘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과 권세와 권력은 오직 유일하신 주님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고, 권력과 권세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지 개인의 것은 아닙니다.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한다면 군림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면 바로 '하느님의 교리'로 산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고(지도자로서 직위가 높다고) 만물의 다가 아닙니다.
그것이 분열의 바로 원질의 체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겪게 되는 많은 사건 사고들,
그 상황들은 가만히 살펴보면 바로 분열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그것이 원질 결과의 시작입니다.
우리 눈으로 보고, 우리 삶으로 체험하고, 귀로 듣는 것은 매일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미사일을 쏘고 사람 죽이고 합니다.
그런 분열은 원질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분열에 동요할 수 없는 지성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지성인이기 때문입니다
루카복음 묵상입니다.
지도자들과 군사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고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또 옆에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죄수 한 명도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하고 예수님을 모독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모든 삶을 조롱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창으로 옆구리를 찌릅니다.
주님의 죽음마저도 그들은 모독을 하였습니다.
주님의 죽음을 모독하는 그들에게 모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까?
그 권한이 있는지. 없는지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봅시다.
"그들에게 있습니까?"
"(신자들) 조용."
"권한이 있어요?"
그들에게는 그런 권한과 권리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죽음도 삶도 모두 그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직 하느님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모독할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까지도 평화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회개해야 합니까?"
"우리는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우리는 누구를 선택해야 합니까?"
"우리는 누구에게 선택을 받아야 합니까?"
'누구에게?'라는 것을 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예수님!
저는 주님의 나라에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고백을 할 수 있는 영적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날
우리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따라 해 봅시다."
"저는 회개하고 싶습니다."
"당신께 당신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 우리는 그렇게 고백을 해야 하겠지요?
"그렇지요?"
"예!" (신자들)
우리 오늘 다시 고백을 합시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는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아멘
2022년 11월 19일
[(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토요일 특전미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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