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건동상(王建銅像) : 당시 高麗가 건국된 한반도 중북부 지방에서 高句麗계승의식과도 결합되어 내려오는 뿌리 깊은 동명왕(東明王) 숭배의 신성한 상징물인 동명왕상(東明王像)의 양식, 즉 옷을 입히는 나체상 양식을 적용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불보살상이나 유교의 조각상, 군주의 조각상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착의형 나체상양식인 왕건상은 이러한 高句麗계통의 문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 왕건상은 제례용 상징물이었다. [참고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71025]
* [高麗史] (風入松)
海東天子, 當今帝佛, 補天助敷化來. 理世恩深, 遐邇古今稀. 外國躬趍盡歸依, 四境寧淸罷槍旗, 盛德堯湯難比.
해동의 천자는 지금의 부처님이라, 하늘을 보조(補助)하여 교화(敎化)를 펴러 오셨네. 세상을 다스리시는 은혜가 깊으시니, 원근(遠近)과 고금(古今)에 드문 일이네. 외국에서 친히 달려와서 모두 귀의(歸依)하여 사방의 변경이 편안하고 깨끗해져서 창과 깃발을 내던지게 되니 성덕(聖德)은 요(堯)임금이나 탕(湯)임금에게도 견주기 어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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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구월산 한인 - 한웅 - 단군 (영정) | 홍산문화(조선) - 편발개수 단군추정 (問) | 1909년 [신궁건축지] 단군천황 왕검의 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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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 東明聖帝 고주몽 [三國遺事](王曆篇) 檀君之子 | 高麗 태조 왕건 황제들만 쓰는 '24량 通天冠 [보덕왕 참고목록] 王姓高氏 | 檀君大皇組 (단기 4200년 - AD 1867년) |
※ 高麗 태조 동상이 '벌거벗은 임금님'인 것은 그 위에 비단옷을 입힐 것을 전제로 만드는 고구려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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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 - 흑피옥 | 단군추정(問) - 편발개수 | 흑피옥 - 편발개수 | 흑피옥 - |
☞ 檀君 이전에도 있었을 지라도, 檀君시대에 君臣의 上下질서가 성립 - 따라서, 檀君은 편발개수를 하지 않았을 수도.
※ 編髮蓋首한 단군상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나 있는 고구려인의 고유한 헤어스타일 "편발"에 대한 연구는 아래와 같이 이미 진행
Gagye style of Goguryeo Murals - 作者 L Yim,EJ Kim
This study considers the Gagye(Added Hair) style shown in ancient Goguryeo Murals and examines its values and significance through an in-depth study on the relevance to the style of China. In Gagye style, the Korean Hwan-gye(Round-rolled Hair) hair type was different from that of China in letting the hair down and using accessories. The Korean Sseu-gye(Covered Hair) hair type features textile-made and Bokbal (Covered hair) styles. The Korean Go-gye(Highly-rolled up Hair) hair type was different from that of China in style and
[출처] 선사문양의 상징성 (12) : Neolithic Symbol & Myth (편발개수(옥저룡)+ 檀君)|작성자 박주식
※ 編髮蓋首한 단군상
내몽골 오한기 흥륭구(興隆溝) 유적-진흙으로 만든 남신상도 발견되었는데 머리카락을 땋아 머리를 덮은 그 헤어스타일
[檀君世記] 癸卯 三年 九月 下詔 使民編髮 蓋首服靑衣
[記言] (東事) 肅愼氏。一名挹婁。在不咸山北 (중간생략) 男女皆編髮
* [揆園史話] (檀君紀) 盖靺鞨者 古肅愼之後 而亦檀帝遺族也 [新五代史] (四夷附錄第三) 韃靼 靺鞨之遺種
* [三韓 拾遺紀] 檀君之後 爲肅愼.夫餘.靺鞨 [隋書] 靺鞨 卽古之肅愼氏也
* [新五代史] 高麗 - 本扶餘人之別種也.*勃海, 號靺鞨, 高麗之別種也 (別 = 나뉘어진, 갈라진)
[修山集] (東史本紀) 朝鮮王檀君者。祖曰神人桓因。桓因有庶子。曰桓雄。桓雄居太白之山。有神熊之異。而生君於檀樹下。號檀君。或曰。檀君名曰王儉。或曰。姓桓氏。檀君之時。東夏無君長。百姓蚩蒙。禽獸與羣。於是檀君乃敎民編髮盖首。始有君臣男女之分。
[李朝實錄] 정조실록 22권, 정조 10년 8월 9일 기유 1786년 청 건륭(乾隆) 51년
己酉/修檀君墓, 置守塚戶。 承旨徐瀅修啓言: "檀君, 卽我東首出之聖, 史稱編髮蓋首之制。 君臣上下之分, 飮食居處之禮, 皆自檀君創始, 則檀君之於東, 實有沒世不忘之澤。 其所尊奉, 宜極崇備。
단군(檀君)의 묘소를 수리하고 무덤을 수호(守護)할 호(戶)구를 두었다. 승지 서형수(徐瀅修)가 아뢰기를,
"단군은 우리 동방의 맨 먼저 나온 성인으로서 역사에 편발 개수(編髮盖首)의 제도를 제정하였다고 일컫고 있습니다. 군신 상하의 분수와 음식과 거처의 예절을 모두 단군이 창시(創始)하였다면 단군은 동방에 있어서 사실 세상이 끝나도록 잊지 못할 은택이 있는 것이니, 모든 것을 극도로 갖추어 높이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承政院日記] (탈초본 86책) 정조 10년 8월 8일 1786년 乾隆(淸/高宗) 51년 瀅修曰, 檀君, 卽我東首出之聖, 而史稱編髮蓋首之制, 君臣上下之分
[紀年東史約] 卷1 檀君朝鮮紀 戊辰 [출처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唐堯二十五載
檀君立 - 東方 初無君長 有神人降于太白山今寧邊妙香山檀木下 國人立以爲君 是爲檀君 高麗僧無極一云三國遺事曰 古記撰人不傳云 降於神壇樹下故稱壇君時 唐堯二十五載戊辰也 遺事云 檀君以唐堯五十年庚寅 卽位徐居正本朝人以爲檀君與克同日 而立竝未知何所據也 鄭獜趾本朝人高麗史 申翊聖本朝人經世補編 以戊辰爲檀君元年 今從之 或曰 檀君名王儉 非是按魏書曰 往在二千載有檀君王儉古記及遺事皆因此 以王儉爲檀君名 而漢史以儉爲險註曰 王險地名 金富軾高麗人三國史曰 平壤古仙人王儉宅 魏書無乃誤耶 ○ 昔有桓因麗史作檀因帝釋 庶子桓雄得天符印三箇 率徒降太白山頂神檀樹下 謂之神市 將風伯雨師 在世理化 時有一熊願化爲人 雄遺艾蒜食之 三七日化女 每於檀樹下呪孕 雄乃與之交 生子曰檀君 ○ 按桓因帝釋出於法華佛書荒誕之說 不可信也
都平壤 今平壤
初都平壤 今平壤城有檀君祠 ○ 按魏書曰 檀君立都阿斯達 蓋自平壤徙都也 檀君疆域無可攷而箕子代檀君 其提封半是遼地 則檀君之世亦當然矣北扶餘 在遼東北千餘里 蓋檀氏世衰子孫北遷 而舊疆因入箕封矣 今江華縣南摩尼山頂有塹星壇 諺傳 檀君祭天處 傳燈山有三郞城 亦云檀君命三子而築之
國號朝鮮
按魏書曰 檀君國號朝鮮 高麗史以檀君爲前朝鮮 索隱曰 朝鮮音潮仙因水爲名 又云 鮮明也 地在東表日光明 故名 山海經 朝鮮在列陽列水名 張晏曰朝鮮有泉水洌水汕水合爲洌水 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 ○ 或云 檀是國號故其子孫皆稱檀君 按後漢書濊傳云 樂浪檀弓出其地 檀非弓材 則似以國名而稱之然 未可信也
敎民 編髮蓋首
此在洪萬宗本朝人 歷代総目 未知本於何書 而亦必有據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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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王과 天使 편발개수와 송골(매) = 鶻 | 天王과 天使 편발개수와 송골(매) = 鶻 | 天王과 天使 편발개수와 송골(매) = 鶻 |
[三國遺事] 昔有桓𡆮 謂帝釋也(或 昔有桓國 謂帝釋也) (중간생략) 是謂桓雄天王也 (중간생략) 孕生子號曰壇君王儉
[李朝實錄] (端宗實錄) [遺事]註云, 桓因天帝, 卽柳觀書所謂檀因也, 桓雄天帝之庶子, 卽所謂檀雄也
(중간생략) 北壁有檀因天王, 東壁有檀雄天王, 西壁有檀君天王, 縣人稱之曰‘三聖堂。
[承政院日記] AD 1732년 雍正(淸/世宗) 10년 檀君, 實爲東方之天皇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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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 창천 1호분 - 가부좌의 인물 | (檀君일까 桓雄일까 桓因일까) | 고(구)리 창천 1호분 - 신단수 |
[檀君世記](道奚) 命建大始殿 極壯麗 奉 天帝桓雄 遺象 而安之 頭上 光彩閃閃 如 大日有圓光 照耀宇宙 坐於檀樹之下 桓花 之上 如一眞神有圓心 持天符印 標揭大圓一之圖旗 於樓殿 立號居發桓 三日而戒 七日而講 風動四海
그 해 겨울 10월에 (단제께서) '대시전(大始殿, 한웅을 모신 성전)'을 건축하도록 명하셨다. (완성된 대시전의 모습이) 매우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대시전大始殿은 소도蘇塗 안에 있는 한웅전이다.)
돌아가신 천제 한웅의 모습(遺像)을 받들어 모셨는데, 머리 위에 광채가 번쩍 번쩍하여 마치 큰 태양의 원만한 빛이 우주를 환히 비추는 것 같았다. 신단수(神檀樹) 아래 한화(桓花, 무궁화, 천지화) 위에 앉아 계시니, 마치 한 분의 살아계신 신(一眞神)이 원융무애한 마음(圓心)으로 천부인(天符印, 천제한인에게서 받은 조칙)을 손에 쥐고 계시는 것 같았다. '대원일(大圓一, 배달한웅의 신시개천의 정신)'의 그림을 그려놓은 깃발을 대시전의 누각에 걸어 놓으시고 이름을 '거발한'이라고 하셨다.
→ 天王, 地神, 千秋, 萬歲 : 天王地神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