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교문학 제9호 (24년 봄호)<시 3편>
1).봄비
인묵 김형식
곡우(穀雨)댁이
밭둑에 앉아
젖을 물리고 있다
보채는
봄순이
파랗게 옹알이 한다
ㅡㅡㅡ
2).검지가 없다
인묵 김형식
검지에는 뿌리가 있다
뿌리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으로
다시 미 군정으로 제주4.3사건으로
여순 반란 사건으로 뻗어 내렸다
좌와 우
밤과 낮을 가르는
손가락질 하나로
무고한 수많은 양민이 죽었다
손가락질 하나로
생때같은 두 손자를
졸지에 잃은 할아버지는
검지가 없다
ㅡㅡㅡㅡㅡ
◇. 시작노트
追慕碑文으로 쓴 詩 임.
ㅡ.여순 반란 사건
1948년에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 · 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일으킨 사건이다.
이승만 정부는 1948년 10월에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에 제주 4 · 3 사건 진압을 명했으나
이들은 친일파 처벌과 남북 통일 등을 주장하며 들고일어나 여수와 순천을 장악한 뒤, 주변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8ㆍ15 광복 이후 좌익과 우익이 대립하는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이들은 여수와 순천 지역을 장악한 뒤 이승만 정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항했지만 며칠 만에 진압되었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정부는 여수와 순천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군사 고문단의 협조 아래 반란군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반란군은 물론이고 많은 민간인이 무고한 양민 1만 4천여명이 죽었다. 반란군 중 일부는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이 되어 저항하기도 했다.
이후 이승만 정부는 군부대 안에서 좌익계 군인들을 처벌하면서 광복군 출신의 군인은 물론이고 이승만 정부에 비판적인 군인들까지 함께 처단했다.
해방과 함께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일본 순사들이 미군정 경찰로 옮겨 앉아
그 앞잡이들의 손가락질 하나로
●.고흥 봉덕리 (삼불리) 여순 사건 희생자 명단
ㅡ..희생자 명단 <8인>
<기일: 음력 10월 20 일>
1.김성택 (김호길 친형)
2.김양수 (김진용 부친)
3.오인택 (오기택 친형)
4.김영채 (김봉채 친형)
5.유기순(유종표 친형)
6.유기만 (유종표 친형)
7.김창석 (김창문 친형)
8.오문택(오상록 부친)
ㅡㅡㅡㅡ
3).부처님 오신 날
인묵 김형식
새벽 찬물에
얼굴을 씻고 나니
들리는 것은
모두가 부처님 법문이다
새소리
바람 소리
개울 물소리 건너
보니
부처 아닌 게 없다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
어제도
내일도 오늘
부처님 오시는 날
나 무 아 미 타 불
나 무 아 미 타 불
아 미 타 불
ㅡㅡㅡㅡ
●.프로필
시인 평론가. 한국문인협, 극제팬크럽 회원. 매헌윤봉길사업회지도위원. 고흥문학회 초대회장. 불아문부회장. 시서울선정위원장.보리피리편집주간.한강문학 편집위원. 대지문학심사위원. 송문시분과위원장.한국 청소년 문학대상.(사)창작문학대상. 시서울문학대상. 시집 [그림자 하늘을 품다][오계의 대화][광화문 솟대][글, 그 씨앗의 노래] [인두금의 소리][성탄절에 108배][ 질문]
이메일: hyeongsik2606@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