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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에서 배우는 지혜<智慧>
송도삼절(松都三絶)
*절색, 절승, 절륜,
송도삼절(松都三絶)은 황진이(黃眞伊)의 절색(絶色)과 박연폭포(朴淵瀑布)절승(絶勝)과 서경덕(徐敬德)의 도덕적 절륜(絶倫)을 말합니다. 황진이는 당대의 명기로서 미색이 뛰어날 뿐 아니라, 시(詩)나 음률(音律)에도 최고라고 해서 절색絶色이라고 합니다. 미색과 기예가 뛰어났다는 말입니다. 박연 폭포는 절경 중에 최고 명승지라고 해서 절승絶勝이라고 합니다. 서경 덕 선생은 황진가 유혹을 해도 요지부동이라 해서 절륜絶倫 이라고 합니다. 금계필담(錦溪筆談)이란 책에 보면 황진이와 벽계수(碧溪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금계필담은 조선말엽 학자인 서 유영(徐有英)1801~1874)이 쓴 책입니다. 저자가 칠십 평생을 보고 듣고 알고 느낀 것과 역사에 누락된 한국인의 미담 일사를 모아 놓은 책입니다. 금계필담에 황진이와 벽계수편에 보면 황진이는 송도에 이름난 기생으로 아름다움과 기예가 함께 뛰어나서 그 명성이 온 나라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왕족 중에 벽계수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황진이를 한번 만나 보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손곡(蓀谷) 이달(李)에게 계책을 물었습니다.
이달이 말하기를 황진이는 풍류객(風流客)이 아니면 마음을 사기가 어려운데 공은 내말을 따르겠소? 내 마땅히 그대 말을 따르겠네! 공은 본래 거문고를 잘 타니 황진이 옆집 누각에 올라 거문고를 한곡 탈것 같으면 황진이가 반드시 마음이 움직여서 그대를 보러 올 것이니. 그대는 보아도 못 본체 하고 일어나 곧장 나귀를 타고 돌아오면 되네. 그러면 황진이가 반드시 자네 뒤를 따라 올 걸세. 따라 와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게. 그러면 그대 뜻을 이루게 될 것일세. 벽계수는 그의 말을 따라서 당나귀를 타고 동자를 거문고를 들게 해서 황진이 집을 지나 누각에 올라서 거문고 한곡을 탄 후 곧장 당나귀를 타고 오니, 과연 황진이가 뒤를 따라왔다.
황진이가 동자에게 물어 그가 벽계수(碧溪守)라는 것을 알고 노래를 불렀다. 청산리 벽계수야 쉬지 않고 감을 자랑마라(靑山裏碧溪水 莫誇去未休) 한번큰 바다에 이르면 다시 보기 어려우니(一到滄海難再見) 어찌 잠깐 쉬어가지 않을 소냐.(那得不少留) 명월이 공산에 가득하니(明月滿空山) 놀다 간들 어떠하리(臨去願一游) 한시漢詩를 그대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시도 음식과 같아서 양념을 쳐야 맛이 납니다. 똑 같은 詩여도 윤색을 잘 하면 이렇게 맛이 납니다.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 어떠하리! 벽계수가 이 노래를 듣고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취적교(吹笛橋)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다가 나귀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황진이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벽계수는 멋진 선비가 아니라 풍류객에 불과 했구나! 하고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벽계수는 부끄러워 스스로 한탄했다고 합니다. 황진이가 벽계수(碧溪守)를 벽계수碧溪水로 바꾼 것도 재치가 있습니다. 벽계는 별호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고을 이름이 하기도 합니다. 수(守)는 왕족에게 내리는 관직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면 벽계수는 누구인가? 세종대왕 열일곱 번째 아들인 영해군 손자인 이종숙李終叔이라고 합니다. 황진이 하면 벽계수가 떠오르는 것은 황진이가 기생이지만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는 기생이 아닌 것이 드러납니다. 결국 벽계수는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황진이 하면 또 떠오는 것은 당대 최고의 기철학氣哲學자인 서경덕선생徐敬德先生과의 일화라고 봅니다. 도덕군자로 알려진 서경덕을 유혹하는 내용은 가지가지입니다. 비 오는 날 하얀 속치마 저고리를 입고 찾아 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공부를 핑계로 몇 달을 같이 지냈다고 하고 하기도 합니다. 유혹이 좀 그럴듯하려면 비에 젖는 여인의 몸이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착 달라붙은 여인의 요염한 모습은 어지간한 남정네는 다 넘어 갑니다. 그런데 서경덕은 오히려 황진이를 반갑게 맞으면서 아예 젖은 옷까지 벗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젖은 몸까지 닦아주면서 이부자리를 펴주고 몸을 말리라고 했다 합니다. 그리고 서경 덕 선생은 태연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황진이도 당황할게 아닙니까? 그렇게 밤이 깊어지자 서경 덕 선생이 황진이 옆에 누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코를 골고 자버리는 것입니다. 아침에 황진이가 눈을 떴을 때는 서경덕은 벌써 일어나서 밥까지 차려놓았다고 야사에 전하고 있습니다. 이 도학자의 눈에는 황진이를 여자로 보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황진이는 평생을 스승으로 섬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당시 서경 덕 선생의 사회적 위치나 나이차이가 워낙 커서 그랬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 마는 남녀 문제가 어디 나이로 됩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황진이 같은 절색미색에도 유혹되지 않는 서경 덕 선생은 그 후로 도덕군자로 칭송을 받게 됩니다. 서경 덕 선생의 저서로는 원리설(原理說), 이기설(理氣說), 태허설(太虛설) 귀신사생설(鬼神死生說)등이 있습니다. 선생은 이(理)보다 기(氣)를 중시(重視)하는 주기철학(主氣哲學)을 정립했습니다. 태허(太虛)설에서는 우주의 근본 원리를 태허(太虛) 또는 선천(先天)이라고 하였다. 태허(太虛)에서 생성(生成)된 만상(萬象)을 후천(後天)이라고 하였다. 귀신 사생 론에서는 인간의 죽음도 우주의 기에 환원된다는 사생일여(死生一如)를 주장합니다.
서경덕 선생은 이렇게 자기 철학을 정립한 당대 최고 유학자였습니다. 그런 위치에 있는 학자가 유혹에 넘어 가겠습니까? 또 황진이 하면 또 떠오르는 것은 당대의 佛家에 최고 禪僧으로 알려졌던 지족선사知足禪師와의 일화입니다. 지족 선사를 유혹해서 破戒시켰다는 일화도 가지가지입니다. 비 오는 날 갔다고 하기도 하고, 남편 49재기도 핑계를 되고 갔다고 하기도 합니다. 어떻든지 지족선사는 황진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세 번째는 황진이 하면 떠오는 것이 소세양(蘇世讓)과 일화입니다. 소세양은 대제학을 지낸 문신입니다. 그는 항상 친구들에게 장담하기를 여색(女色)에 유혹(誘惑)되는 것은 남자가 아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개성에 황진이가 있다고 하나 그녀와 30일만 살고 나면 나는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황진이와 30일을 살고 마지막 되는 날 황진이가 송별소양곡(送別蘇陽谷)을 지어주자, 황진이를 떠나지 못하고 6개월을 더 살았다는 일화입니다. 그때 소세양이 자탄하면서 하는 말이 나는 사람이 아닌가? (吾其非人哉) 마음이 동하여 다시 머물렀다(爲之更留)고 합니다. 이 외에도 황진이는 많은 남자들과 교류를 했습니다.
그 일화는 다 들 수가 없습니다. 황진이를 소재로 삼는 것은 그가 남긴 시(詩) 때문입니다. 그 당시 사회적 규범의 굴레만 아니었으면 많은 명시名詩를 남겼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때문입니다. 황진이가 남긴 시(詩)는 몇 편이 안 됩니다. 전해진 것을 다 모아 보았습니다. 한번 봅시다. 소세양과 헤어질 때 읊었다는 별소양곡(別蘇讓谷)이 있습니다.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月下梧桐盡) 서리 맞는 들국화 노랗게 피었구나(霜中野菊黃) 누각 높아 하늘은 자 남짓 한데 (樓高天一尺) 오가는 술잔 취하여도 끝이 없네(人醉酒千觴) 물소리는 거문고에 마냥 차갑고(流水和琴冷)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梅花入笛香)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明朝相別後)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 (情與碧波長), 暘谷는 소세양의 호號라고 합니다. 헤어지기 전 날 밤에 읊은 시詩입니다. 시 내용으로 보아서는 오동잎 지고 누런 국화꽃이 피는 가을밤 인가 봅니다. 전체적으로 시정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쓸쓸하고 애잔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헤어졌는데 소식이 없으니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그래서 읊은 시詩가 황진이 야사하夜思何는 소세양(蘇世讓)과 동거하고 헤어진 뒤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 소세양을 그리는 애타는 마음으로 시비(侍婢) 동선이를 시켜서 한양에 보냈다는 詩입니다.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나요?(蕭寥月夜思何思)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을 꾸나요?(寢宵轉輾夢似樣)
붓을 들면 때로는 내 얘기도 쓰나요?(問君有時錄忘言)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此世緣分果信良)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것이 궁금해요,(悠悠憶君疑未盡) 하루 중에 내 생각 얼마만큼 하나요?(日日念我幾許量) 바쁠 때 나를 돌아 보라하면 괴롭나요? 반갑나요?(忙中要顧煩或喜)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喧喧如雀情如常), 떠나고 난 소세양에게 투정어린 애교 시로 묻고 있는 시입니다. 30일을 같이 살고, 또 6개월을 살붙이고 살았으니, 정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토록 구구절절이 얼마만큼 생각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세양은 답한 시가 없습니다. 황진의 야지반시(夜之半) 詩는 정말 맛깔 나는 詩입니다.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截取冬之夜半强)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春風衿裡屈轓藏) 어른 님 오시는 밤 이 어든(有燈無月朗來夕) 굽이굽이 펴리라(曲曲寸寸長), 밤도 동짓날 밤이 가장 길다고 합니다. 지구와 태양이 가장 먼 원일점에 있기 때문에 밤이 깁니다. 그것을 황진이는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낸다고 했습니다. 혼자 있기에는 너무나 긴긴 밤이라 반을 베어낸다고 했습니다. 연모의 정을 시정으로나마 만끽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너무 애잔하지 않습니까? 손님도 다 떠나간 기방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옛 임을 그리는 심정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음은 상사몽(相思夢) 詩입니다.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 밖에 없는데(相思相見只憑夢) 내가 임 찾아 떠났을 때, 임은 나를 찾아 왔네(儂訪歡時歡訪儂)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遠使同作路中逢)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났으면(一時同作路中逢),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임. 황진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임은 누구였을까? 소세양 이였을까? 서경덕이었을까? 그냥 읊어본 시詩였을까?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어 져 내일이야” 시詩를 보면 또 이별한 임을 그리워하는 시詩입니다. 어 져 내일이야 그런 줄을 몰랐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있으라고 하면 있었을 턴데 잡지 않고 보내고 그리워하는 것을 나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임을 언제 속여관대,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 이토록 황진이의 마음을 못 잊도록 사로잡은 임은 누구였을까? 소세양이 아닐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화담 서경 덕 선생이 황진이에게 준 시詩가 있습니다.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느 임이 오리 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귄가 하노라. 이 시는 어느 날 황진이가 서경덕을 찾아와서 소세양과 이별한 뒷이야기를 듣고 위로 차 준 시詩라고 합니다. 네 마음이 어리석구나. 서울로 돌아간 양곡을 기다리다니, 하고. 일깨워 준 시詩 라고 합니다. 황진이의 시중에는 소 백주(小栢舟)시詩가 있습니다. 잣나무 작은 배라는 시입니다. 저 강 한 가운데 떠있는 조그만 한 잣나무 배(汎彼中流小栢舟)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幾年閑繫碧波頭)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後人若問誰先渡)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文武兼全萬戶侯), 영반월(詠半月詩도 있습니다.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내어(誰斷崑山玉)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裁成織女梳) 견우와 이별한 후에 (牽牛離別後)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愁擲碧空虛) 이 시도 역시 반달을 가지고 읊은 시이다.
다음은 산은 옛 산이로되,란 시詩이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 로다, 주야로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 손가? 인걸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는 것을. 자신을 청산에 비유 하고, 떠나간 사람을 물에 비유한 시詩입니다. 이번 시詩은 청산은 내 뜻이요, 입니다.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綠水)는 임의 정이라, 녹수는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 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 예어 가는고. 이 시詩도 자신을 청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다음 시詩는 “별김경원(別金慶元)”이다. 김경원과 이별하면서 지은 시詩이다. 삼세의 굳은 인연 좋은 짝이니(三世金緣成燕尾), 이 중에 생사는 두 마음만 알리로다(此中生死兩心知), 양주의 꽃다운 언약 내 아니 저버렸는데(楊洲芳約吾無負), 도리어 그대가 두목처럼 한량이라 두려울 뿐( 恐子還如杜牧之), 박연폭포(朴淵瀑布), 한 줄기 긴 물줄기 바위에서 뿜一아나와(一派長川噴壑壟), 폭포수 백길 넘어 물소리 우렁차다(龍湫百仞水潨潨)
나는 듯 거꾸로 솟아 은하수 같고(飛泉倒瀉疑銀河), 성난 폭포 가로 드리우니 흰 무지개 완연하다(怒瀑橫垂宛白虹), 어지러운 물방울이 골짜기에 가득하니(窇亂霆馳彌洞府), 구슬 방아에 부서진 옥 허공에 치솟는다(珠聳玉碎徹晴空), 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遊人莫道廬山勝), 천마산은 해동에 으뜸인 것을(須識天磨冠海東), 황진이는 송도삼절로 박연폭포를 꼽고 있다. 박연폭포는 개성시 개풍군 천마산 기슭에 있다. 시구에 보면 중국의 여산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여 산은 蘇東坡가 名勝地라고 자랑하던 곳이다, 황진이는 朴淵瀑布를 해동의 으뜸이라고 자랑을 하고 있다. 애향심도 짙은 황진이가 아닌가? “만월대 회고(滿月臺懷古),”는 옛 절은 쓸쓸히 어구 옆에 있고(古寺蕭然傍御溝), 저녁 해가 교목에 비치어 서럽구나( 夕陽喬木使人愁), 연기 같은 노을은 스러지고 중의 꿈만 남았네(煙霞冷落殘僧夢), 세월은 첩첩이 깨진 탑머리에 어렸다(歲月崢嶸破塔頭), 황봉은 어디가고 참새만 날아들고(黃鳳羽歸飛鳥雀), 두견화 핀 성터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네(杜鵑花發牧羊牛), 송악의 번화롭던 날을 생각하니(神松憶得繁華日), 어찌 봄이 온들 가을 같을 줄 알았으랴 (豈意如今春似秋),
만월대는 옛 절터 인 것이 시구에 나타납니다. 탑은 조각조각 깨어지고 스님들은 온데간데없고, 절터에는 소나 양이 풀을 뜯고 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는 시정이 풍부한 시입니다. 다음 시詩는 송도(松都)라는 시詩입니다. 눈 가운데 옛 고려의 빛 떠돌고 (雪中前朝色) 차디찬 종소리는 옛 나라의 소리 같네(寒鐘故國聲) 남루에 올라 수심 겨워 홀로 섰노라니(南樓愁獨立) 남은 성터에 저녁연기 피어오르네.(殘廓暮烟香), 다음 시詩는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평양도사로 부임하는 길에 송도를 자나게 되었는데 황진이 무덤을 일부러 찾아 치제(致祭)를 하고 읊은 시詩이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 다 누었난다, 홍안은 어데 두고 백골만 묻혔난다
잔 잡아 권 할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백호는 이 시로 인해서 조야에 비난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이 사건으로 파면을 당하게 됩니다. 명색이 평양 도사라는 사람이 기생 묘에서 술을 따르고 치제를 하고 시詩를 지었으니 사대부 양반가 에서는 체통이 말이 아니라고 입방아를 찧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말 많은 세상이라 그렇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가족들에게 내가 이 같은 좁은 나라에 태어난 것이 한 이로다 하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허 균이 쓴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 보면 황진이가 거문고를 즐겨 타는 것으로 나온다. 황진이는 성품이 남자같이 소탈하고 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를 잘 불렀다고 한다. 평생을 서경덕을 스승의 예를 섬기고 틈만 나면 찾아가서 거문고도 타고 가르침도 받고 인생을 즐겼다고 합니다. 서경 덕 선생도 거문고를 즐겨 탔으며, 거문고에 대한 몇 편의 시를 남겼다. “무현금명(無絃琴銘)”을 보면 이렇습니다.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이라는 뜻입니다. 거문고에 줄이 없는 것은 (琴而無絃) 본체(體)는 놓아두고 작용(用)은 뺀 것이다.(存體去用) 참말로 작용을 뺀 것이 아니라(非誠去用) 고요함에(靜)에 움직임(動)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靜基含動)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 (聽之聲上)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不若聽之於無聲) 형체를 통해서 즐기는 것은(樂之形上)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不若樂之於無形)
형체가 없음에서 즐기므로 (樂之於無形) 그 오묘함을 체득하게 되고(乃得其) 소리 없음에서 그것을 들음으로써(聽之於無聲) 그 미묘함을 체득하게 된다(乃得其妙) 밖으로는 있음(有)에서 체득하지만(外得於有) 안으로 는 없음에서 깨달게 된다(內得於無) 그 가운데서 흥취를 얻음을 생각 할 때(顧得趣平其中) 어찌 줄(絃)에 대한 노력을 기우리게 되는가( 爰有事於絃上工夫) 그 줄을 쓰지 않고(不用其絃)
그 줄의 줄 소리 밖의 가락을 쓴다(用其絃絃律外官商) 나는 그 본연을 체득하고(吾得其天) 소리로써 그것을 즐긴다(樂之以音) 그 소리를 즐긴다지만(樂其音)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요(音非聽之以耳)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聽之以心) 그것이 그대의 지표거늘(彼哉子期) 내 어찌 거문고를 귀로 들으리(曷耳吾琴) 금명(琴銘) 거문고에 새기는 글. 그대의 가락을 뜯으며(鼓爾律)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樂吾心兮) 여러 가지 곡조를 고르되(諧吾操) 밖으로 지나치지 않는다(無外淫兮) 강단으로서 조화 시키며(和以節) 날이 가고 사철이 바뀌듯 하며(天其時兮) 통달함으로써 조화 시키며(和以達) 봉황새도 법도를 따라 춤추게 한다(鳳其儀兮) 그것을 뜯어 조화시킴으로써(鼓之和) 요순시대로 돌아가며(回唐虞兮) 사악함을 씻어 냄으로써(滌之邪) 자연과 융화되는 사람이 된다(天與徒兮) 높다란 소리 넓은 소리 타지 마라(操峨洋) 그 누가 귀담아 듣겠는가(人孰耳兮) 번거롭기도 하거니와(繁而簡) 간략 하는데 뒷맛이 있구려(有如味兮)
우음(偶音) 우연히 짓다. 잔월도 서쪽으로 진 뒤에(殘月西沈後) 오랜 거문고 타기를 비로소 쉬네(古琴彈歇初) 밝고 소란함과 어둡고 적막함이 섞이니(明喧交暗寂) 이 속의 오묘함이 어떠하냐?(這裏妙如何)
황진이와 김경원은 야사 어우야담에서는 6년간 계약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부운거사浮雲居士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서경덕 선생의 무현금명과 같이 중국에 시인 도연명은 줄 없는 거문고를 탔다고 한다. 그는 거문고 한 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줄은 하나도 없었고. 그는 술을 너무 좋아 했는데, 술이 취하면 줄 없는 거문고를 치며 흥취를 만끽했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한 책 금계필담은 황진이와 벽계수 일화를 비롯해서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율곡 선생의 양병 십만 설(養兵十萬說)을 비롯하여 전복 한 그릇 때문에 벼슬을 내놓(生鰒封餘)은 윤지 환 일화와 단 종의 원한을 풀어준 사람 등 141가지의 일화가 있습니다. 저자는 역사에 누락된 것을 모아썼다고 했습니다. 페친님! 들께서도 삼복더위를 독서삼매로 잊으십시오, 和翁합장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