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 명장면] 8. 마명과 불교문학
文學의 그릇에 佛敎 담아 대중에 전파
1. 마명과 불교문학
인연과 교훈비유 담긴 율장서 불전문학 발전
대시인 마명 ‘불소행찬’ 등으로 금자탑 세워
<사진설명> : 왼쪽 끝에 집에 있는 신부 순다리를 잊지 못해 고민하는 난다의 모습과 부처님 발우를 들고 따라가는 난다가 조각돼 있다. 마명은 화려한 문학적 수사로 난다의 일대기를 형상화함으로써, 저자가 믿는 불교를 설하여 사람들에게 권했다. 파키스탄 스와트박물관 소장
제3차 결집을 통해 경율론 삼장이 문자로 기록되면서 불교는 광범위하게 전파됐다. 뒤이어 삼장에 기초한 부파불교의 교리적 발전과 찬불승들로부터 비롯된 불전문학 그리고 불탑 신앙에 의지해 대승불교가 흥기하기 시작했다. 불자들은 열반에 든 부처님의 진신을 직접 만나고자 벌판에다 부처님 사리를 모신 불탑을 세우기 시작했다. 칠보로 보시.공양.공경.예배하는 불자들이 모이면서 불탑 주위에는 경제권이 집중됐다.
그러나 재가자들이 주도했던 ‘불탑 신앙’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찬불승들이 찬술하는 경전을 통해 공덕 신앙을 제창했던 출가자들은 이내 ‘경전 신앙’으로 전환시켜 갔다. 이렇게 되자 불자들은 점차 ‘부처님의 생애’와 ‘성불의 인연’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경전에 대한 갈망을 일으켰다. 이로부터 반야부를 비롯한 대승의 여러 경전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대중부계의 설출세부가 전해온 대표적인 부처님 전기(佛傳)인 〈마하아바스투〉의 십지(十地)설이 〈십지경〉의 보살 십지 계위설과 관련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부파와 대승은 긴밀히 연속되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즉 법장부 전래의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끝부분에서 이 〈마하아바스투〉를 대중부는 〈대사〉(大事), 유부는 〈랄리타비스타라〉(大莊嚴), 음광부는 〈불생인연〉(佛生因緣), 법장부는 〈석가모니불본행〉(釋迦牟尼佛本行), 화지부는 〈비니장근본〉(毘尼藏根本)이라고 언급하고 있어 당시 각 부파의 불전문학자들이 ‘문학’의 스펙트럼 속에서 서로 불전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불전연구가인 빈뎃슈는 불전문학이 본디 율장에서 발전된 것이라고 증명했다. 그는 〈마하아바스투〉의 서두에 이 텍스트가 설출세부의 율장에 수록됐다고 적힌 점과, ‘큰 장’을 의미하는 ‘마하아바스투’라는 명칭 역시 ‘장’이나 ‘절’을 나타내는 ‘바스투’(vastu), ‘박가’(vagga), ‘칸다카’(khandhaka) 등처럼 팔리율 대품(大品)의 제1장 ‘마하아칸다카’에 상당한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율전에는 계 제정의 니다아나(인연)와 파계를 훈계하는 아바다아나(교훈비유)가 발달되어 있다. 때문에 계 제정의 인연을 담은 율장과 부처님의 성불 인연을 담은 불전은 인연과 교훈비유의 형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 전기(佛傳)는 부처님이 성불한 인연을 추구하고 성불을 가능하게 한 수행(本行)을 그려내고 있다.
즉 부처님이 그 동안 어떠한 수행을 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경로를 거쳐 성불에 도달했는지 등을 밝혀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불하기까지의 인연(本起)과 성불을 위한 본행(本行, 所行) 의 관심이 불전문학의 핵이 됐고 나아가서는 당래 성불의 수기까지도 묘사하였다. 때문에 이러한 물음이 자연스럽게 부처님 찬탄문학으로 발전해 갔다.
불교사 속에 등장하는 아슈바고샤(마명)는 대략 여섯 명이다. 그런데 〈붇다짜리따(佛所行讚)〉를 지은 마명과 〈대승기신론〉의 저자 마명에게서 사상적 연루를 찾기는 쉽지 않다. 유부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마명은 〈불소행찬〉과 〈단정한 난다〉 등을 지은 대시인이다. 그는 이 두 편의 서사시로 부처님 전기 문학의 기초와 함께 이후 불교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2. 부처님 일대기의 서사시화
화려한 필치로 부처님 생애 담은 인도문학 선구
조선 ‘월인천강지곡’ 등 한국-중국 등에도 영향
‘부처님 생애’로 옮겨지는 〈붇다짜리따〉는 기원 1~2세기에 활동했던 마명의 궁정 서사시이다. 산스크리트 원칙에 맞추어 화려한 필치로 부처님 일대기를 그려낸 이 저술은 인도문학사에서 선구적인 서사시로 평가받아 왔다. 본디 28장으로 추정되는 이 저술은 현재 17장의 범본만이 남아있다. 14장 후반부터 17장까지는 후대에 덧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대기 내용이 현존하는 티베트 번역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어 범문 원작 후반부를 잃어버린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마명이 직접 지은 총 14장(품) 전반부는 ‘태어나다’(生品), ‘궁궐에 살다’(處宮品), ‘싫어하고 근심하다’(厭患品), ‘애욕을 떠나다’(離欲品), ‘성을 나가다’(出城品), ‘찬다카가 돌아오다’(車匿還品), ‘고행림에 들다’(入苦行林品), ‘궁중이 모두 슬퍼하다’(合宮憂悲品), ‘태자를 찾아가다’(推求太子品), ‘빔비사아라 왕이 태자에게 나아가다’(甁沙王詣太子品). ‘빔비사아라 왕에게 대답하다’(答甁沙王品), ‘두 선인을 찾다’(阿羅藍鬱頭藍品), ‘악마들을 깨뜨리다’(破魔品), ‘부처가 되다’(阿惟三菩提品)까지 서술되어 있다.
마명 연구가인 일본의 금창원조(金倉圓照)는 〈불소행찬〉(5권) 번역자가 담무참(曇無讖)(412~421년 한역)이 아니라 보운(寶雲)이라고 확정하고 있다. 한역은 다소의 증감이 있지만 비교적 산스크리트 원본에 충실한 번역본이다. 원문이 서사시이니만큼 전문을 5언의 게송으로 번역했지만 범본이 지닌 간결하고 명료한 부분을 번잡하게 옮긴 경우도 더러 있다.
추가된 14장 후반부와 15장부터는 ‘진리의 바퀴를 굴리다’(轉法輪品), ‘빔비사아라왕과 여러 제자들’(甁沙王諸弟子品), ‘큰 제자들이 출가하다’(大弟子出家品), ‘급고독 장자를 교화시키다’(化給孤獨品),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만나다’(父子相見品), ‘기원정사를 보시 받다’(受祈洹精舍品), ‘술에 취한 코끼리를 항복받다’(守財醉象調伏品), ‘암마라녀가 부처님을 뵈옵다’(菴摩羅女見佛品), ‘신이한 힘으로 수명을 유지하다’(神力住壽品), ‘리차비들이 떠나다’(離車辭別品), ‘열반에 다다르다’(涅槃品), ‘열반에 드시다’(大般涅槃品), ‘열반을 탄식하다’(歎涅槃品), ‘사리를 나누다’(分舍利品)까지 그려져 있다.
마명이 부처님 일대기를 서사시로 빚어낸 이후 그의 문학적 후계자들은 줄곧 이 형식을 이어왔다. 중국 승우의 〈석가보〉, 한국 운묵 무기의 〈석가여래행적송〉, 세종의 〈월인천강지곡〉과 김달진의 〈큰 연꽃 한 송이 피기까지〉등이 〈불소행찬〉을 자양삼아 태어난 아들들이다.
3. 난다 일대기의 서사시화
부처님 이복동생 수행과정 묘사한 인도 최고 걸작
마명의 또 다른 서사시 〈사운다라난다〉(18장)는 ‘마하아까아비야’ 형식으로 된 산스크리트 문학의 대표작이다. ‘단정한 난다’로 옮겨지는 이 작품은 문학적 형식과 사상적 체계 면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불소행찬〉과 달리 이 작품은 한역이 되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도문학 최고 걸작품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부처님의 배다른 동생인 난다가 부처님 지도로 출가한 뒤 수행을 통해 도를 이루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카필라성에 대한 서술로부터 인왕(人王)에 대한 서술, 여래에 대한 서술, 아내의 바람, 난다의 출가, 아내의 비탄, 난다의 비탄, 부녀라는 장애, 교태를 비탄함, 천계를 구경함, 천계를 비난함, 지계를 권함, 계근(戒根)의 승전(勝捷), 초발심에 나아감(初發趣), 심사(尋思)를 끊어 버림, 성제(聖諦)의 해명, 불사(不死)의 증득, 성지(聖智)의 수기까지 총 18장으로 되어 있다.
즉 전반부에는 부처님이 태어난 카필라성이 본디 카필라 선인의 고행림이었지만 그것이 석가족에게 주어지게 된 경위, 도성에 대한 묘사, 난다 탄생과 부처님 탄생의 유사함 등이 그려져 있다. 이어 부처님의 출가.수행.정각.전법륜, 카필라성 방문, 부왕과의 면담, 교화의 성과 등이 묘사되고 있다. 난다의 출가와 아내 순다리의 비탄, 난다의 갈등과 천계의 구경과 비난을 그려낸 중반부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수행에 힘써 아라한과를 얻은 난다가 부처님의 수기를 받고 감사를 표한 뒤 포교에 힘쓰게 되는 후반부로 엮어져 있다.
화려한 문학적 수사로 난다의 일대기를 형상화해 낸 이 저술의 목적은 저자가 믿는 불교를 설하여 사람들에게 권하려는 데에 있다. 외형적 모습과 저술의 태도가 소승적인 것과는 달리 대승적인 색채가 농후한 작품이다. 특히 선정(禪定)을 작품 체계의 중심으로 삼고 있어 후세의 유가행파와의 연루를 보여주고 있다. 〈불소행찬〉에 상응하는 마명 불교문학의 또 다른 성취라 할 수 있다.
4. 불교문학과 대승경전
대중언어로 문학적 형상화
대승경전 탄생으로 이어져
대승불교 흥기 전후인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1세기에 이르러 본격화된 불교문학은 혼성 산스끄리뜨로 된 작품들을 통해 불교를 크게 대중화시켰다. 대개 운문과 산문 모두가 혼합 산스끄리뜨로 된 작품과 운문은 혼합 산스끄리뜨이고 산문은 정통 산스끄리뜨로 된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1~2세기의 마명과 2~3세기의 마뜨리체타(摩里制) 등으로 대표되는 불전문학자들은 속어인 쁘라끄리띠어로 된 문헌들뿐만 아니라 혼합 산스끄리뜨로 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이들 대중적 언어들에 의해 부처님 일생 및 성불의 인연들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면서 대승경전의 탄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갔다.
본디 부처님 전기는 계를 제정하는 과정을 담은 율장의 니다아나(인연)와 아바다아나(교훈비유)로부터 비롯됐지만 오래지 않아 율장에 포함된 불전이 증광되면서 율장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불전문학의 주체인 찬불승들이 대승경전들을 찬술하면서 문학과 경전은 연속과 불연속의 스펙트럼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불교’와 ‘문학’의 세계관적 대립은 예정된 것이었다. 하여 새로운 불교문학의 과제는 불교와 문학의 건강한 어울림에 있다. 마명은 이들 두 기호의 소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불교문학의 아버지였다.
고 영 섭/ 동국대 교수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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