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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의 사람은 좋은데, 조직은 엉망진창?”이란 생각을 줄곧 한다.
동네 책방 지난 10년, ‘지역인증서점 시스템 도입’(유령서점 시장퇴출)을 위하여 시청·교육청·구청 공공기관 (방문) 면담 때마다 든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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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인홀드 니부어)을 좀 일찍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무식하게 계란으로 바위 치는 짓, 수많은 시행착오를 격지 않았을 것이다. 책의 주제는 단체는 개인보다 더 많은 죄를 범한다, 개인에게 있는 양심이 단체에는 없다는 내용이다.
(사실, 니부어의 말은 틀렸다. 만공 스승이 읽는 독세에 따르면, 용산골 쥴리궁 걔들을 보면 개인에게 양심도 없고 떼거지에게는 국가의 법도 없다. 오로지 집단으로 떼쓰는 양아치 도사가 즐비할 뿐!)
오랜 시간동안 고통스런 경험으로 깨우치기에 앞서 니부어를 만났더라면…. 아니다, 오래전에 책방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숫자로 들이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고 수치로 말을 해도 빅데이터를 운운하는 조직은 여전히 현란한 립서비스뿐이다.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다. 아웃풋이 없다.
올해 초장에 약속한 시청주관 “지역인정서점” 제도는 올해도 물 건너갔나 보다? 숫자 데이터가 하는 말을 봐서는 분명히 속에 소 없는 공갈 찐빵이다. 역시 윗물 “날리면”이 진화한 듯, 아래서는 <뭉개면> 이다. 날리면, 개X끼라 욕하지 마시라.
아무려면, 머리의 뇌와 따로 노는 손발 때문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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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 「노인과 바다」(헤밍웨이)를 올해만 서너 번 읽는 이유는 지금의 이 동네책방을 몇 년 더 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다.
요즘은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The old man was dreaming about the lions.)”를 아침에 책방 문을 열 때, 혹은 저녁에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 나의 책방 길 안내를 핸드폰의 지도 내비게이션이 아닌, 산티아고 늙은 어부의 고기잡이 이야기가 한다. 동네책방이 가는 길을 안내하고 걷는 방법뿐만 아니라, 심지어 용기와 희망까지 받는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인디언 기우제”처럼 산티아고 노인이 홀로 쉼 없이 물질하듯, 나도 망망대해 뙤약볕 아래 출렁이는 물결(?)과 사투를 벌이며 수집·분석한 공개 공공계약 빅데이터를 들이댄다.
상어 떼의 공격에 기진맥진한 산티아고 노인은 바다에 침을 뱉으며 말한다.
“이거나 처먹어라, 이 갈보 놈아….”
“상어가 저토록 잘 생기고 멋진 꼬리를 달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라고 구경꾼이 해안 모래밭에 널브러진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큰 고기의 등뼈를 보고 내뱄듯이 “어머, 여기 책방이 있네요.”라는 인사에 나도 “예, 안녕하세요.”라며 웃는다. ‘지역인증 서점’이란 신조어가 나온 배경, 그 환경·문화가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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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학생이 문학작품 글의 구성이 어떻고 주제가 먼가 하는 질문지 시험을 보는 궁극의 목적은, 장차 어른이 되어 마주할 세상 부문에서 부분 또는 전체가 하나의 기승전결로 돌아가는 체계(시스템) 분석을 통한 신속한 핵심 주제파악 능력을 키우기 위한, 삶의 현장 실전을 앞두고 책으로 하는 예행연습이 아닌가.
이야기 속 (숨은) 주제파악을 못하면,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정치인) 말의 거짓과 참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노인과 바다 이야기의 구성과 주제파악이 아니라, 일터에서 일이 돌아가는 체계를 이해하고 뭘 해야 할지 같은 주제파악 감조차 잡지 못하면 남이 시키는 일만 엉거주춤 하는 것은 필연. 병사월급 2백만 원 주겠다, 는 미끼 덥석 물고 방죽에 끌려나와 숨을 몰아쉬는 월남붕이 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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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오줌도 못 가리는 모지리가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리고 천방지축 날뛴다.”는 말을 어린 시절 시골동네에서 종종 들었다. 또 “밥 팔아 똥 사 묵을 놈”이란 말도 사흘들이 길바닥을 굴렀다.
하는 일마다 재앙적 재를 저질러 골치덩이 돌열이 소문이 이웃 동네 들판까지 돈다.
책의 구성과 주제를 파악하듯, 용산 천공줄리 세상 돌아가는 꼴을 헤아려보니 꼭 그 유년의 역사로 회귀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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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현실세계를 살피고 생각하여 행동하는 능력을 키우는 세상읽기, 독세讀世 다음으로 독서가 아닌가?
사실 나는 독세를 독서보다 더 좋아한다. 올해 현실세계의 용산궁 돌아가는 시스템을 읽고 쓴 이야기가
단편소설 「굥」(The Tribe of Shaman-Cross Cutor Cult)이다.
십무왕검사족(十巫王檢事族) 나라가 쪽팔리고 열 받아 담벼락에 대고 욕도 하고, 또 감히 만공도사 흉내로 십무왕 검사족국의 앞날까지 예언한다. 이 쌔끼 저 새끼는 양반 아닌가. 삶은 개 대가리 걸고 말고기 판다고, 개 새끼 말 새끼라 욕 할 수는 없잖은가.
물에 둥둥 떠다니는 열 밑밥 속에 갈고리를 숨긴 지렁이 하나를 생각 없이 덥석 물고 숨을 몰아쉬는 월남붕어, 태극기로 눈을 가린 노인에게 책에서 길을 찾으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유튜브 동영상에 빠져 길 잃은, 밥 팔아 똥 사 먹듯 자기 발등 스스로 찍는 외눈박이는 구제불능이다.
하나, 20대는 다르다. 살아갈 날이 창창하다. 방죽 물속에 둥둥 떠다니는 낚시 밑밥을 덥석 물어 속에 숨은 강철 바늘에 입이 끼어 숨을 할딱이지 않는 방법과 길이 책에 있다, 눈 감고 세상을 읽는 월남붕어 2찍들아, 돌아가는 세상 주제파악 단디 좀 하고 숨 쉬자. 뇌 따로 손발 따로 놀아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