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도 먹는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 여러 곳 있다.
가장 먼저 창세기2장에 나오는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사건이다.
그리고 출애굽기에서는 광야에서의 굶주림에 의한 불평에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맛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배고픔을 풍족히 채워 주시는 내용이 있다.
또한 물을 마시는 사건이 있고
레위기에는 먹을 것과 먹지 말것에 대해서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시작에 금식이야기가 등장하고
또한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에 예수님의 이적에 의해 오병이어 사건과 칠병이어 사건이 있다.
복음서와 바울서신에서 먹는 것에 대해 여러 등장한다.
배고픔, 굶주림,
배부름, 충만함,
육의 양식
영의 양식
하늘을 향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경의 메세지는 영의 양식을 채워라는 것이다.
육의 양식이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는 삶에 필요하듯이 영의 양식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육의 양식을 채우기 위해 밥을 매일 먹고 배를 채우는 것처럼
영의 양식 또한 매일 먹어야 한다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육의 양식을 때에 따라 채워주시는 것처럼
영의 양식 또한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채워진다는 것이다.
영의 양식을 먹지 않으면 성도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영의 양식을 갈급해 하지 않는 자는 성도라고 말할 수 없다.
구약에서 맛나를 광야에서 매일 먹었던 것처럼
신약에서는 참 맛나가 되시고 영원한 양식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매일 먹고 마셔야 함을 말씀하신다.
하루 이틀, 영의 양식에 대한 갈급함이 없는 성도는 진정한 성도가 아니다.
하루 이틀, 생명의 양식에 대한 굶주림을 느끼지 못하는 목사는 진정한 목사가 아니다. 빨리 내려놔야 한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매일 깨어 체크하지 않는 성도는 지금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영적 돌아봄이 없는 목회자는 지금 참 목동이 아니라 위장된 삯군이요 이리다.
저들은 씨가 마음밭에 뿌려져도 옥토와 같은 마음밭에 뿌려지지 않는다. 결코...
옥토와 같은 마음밭에 뿌려지는 것은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신령한 양식에 대한 갈급함과 굶주림을 느끼며 간절해지는 마음과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이다.
신령한 양식을 먹고 구하는 자가 성도다.
신령한 양식을 구하고 찾고 부르짖는 자에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한 채움과 열매가 따른다.
주님은 언제나 풍성하시다. 그리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시다.
그곳에는 신령한 꼴과 생수가 넘치고 또 넘치게 준비되어 있다.
영의 양식은 공짜다. 아무런 공로나 족적이 필요없다.
살아계시며 사랑이신 예수님께로 나의 몸과 맘을 향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