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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규 목사
한국의 초대 교회에 유명한 길선주 목사님에게는 3남 1녀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길 목사님은 맏아들 진형이가 자신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기를 원했고, 진형도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형은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고 나온 후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길선주 목사님은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름을 깨닫고, 자녀들에게 자신의 희
망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도록 권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말씀하고 계시듯이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놀라운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사 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인간의 생각과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가끔 믿음이 좋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자기가 바라는 소원이 주님의 소원이요, 자기 생각은 주님의 생각이요, 자기가 바라는 것이 주님이 바라는 것이요, 내 기도제목은 주님이 주신 것이다.”라고 하면서 결국은 “나의 생각 전부는 꼭 하나님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부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단히 경계해야 할 위험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서 창조된 고귀한 피조물입니다만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많이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 지성이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몸부림쳐도 따라갈 수 없고, 우리가 아무리 고상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놀라운 생각에 미칠 수 없습니다. 아무리가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 거룩한 생각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생각은 다 읽을 수 없습니다.
가끔 우리가 빠지는 함정이 있는데 “하나님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같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또한 “나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속단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지나치게 되면 영적으로 유익보다도 손해를 더 많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라고 긍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건전한 사고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긍정할 때만이 하나님의 생각에 대한 깊은 사려를 우리 마음속에 담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뜻을 보시고 어떻게 생각하실까?”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항상 자신의 생각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기도가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생각이 그토록 절대적이라면 하나님께 간구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사람의 길과 다릅니다. 어느 정도 놀랍습니까?
1.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높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미칠 수 없는 至高性(지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높음’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가바흐’라고 하는데 ‘굉장히 높고 위대하며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에 보면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 나의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마치 하늘이 땅보다 아득한 것처럼 우리가 도저히 미칠 수 없는 경지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친구였던 나사로가 죽을병이 들었을 때 그 누이들은 사람을 보내어서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오시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주님께서 한시라도 빨리 자기 집에 찾아오셔서 오라비를 고쳐줄 것을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11:4)
마리아와 마르다의 슬픔을 생각한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마땅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뭐라고 말씀드립니까?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뭔가를 잘못알고 계시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요 11: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낮은 사람의 생각과 매우 높은 주님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비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생각을 제자들도 마리아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삼일장을 치러도 시체가 금방 부패하는데 하물며 중동지방에서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될 수 있는 데로 하루 만에 장례를 치른다고 합니다. 나사로의 무덤은 시체 썩는 냄새로 진동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하여 주님은 시간을 지체하신 것입니다. 결국에 주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썩은 냄새가 펄펄 나는 나사로를 살려 내심으로 많은 유대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생각의 위대성과 지고성, 초월성과 절대성, 그리고 완전성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각이 놀랍다는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보다 높습니다. 믿습니까?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을 진데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2.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 55:6“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다른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때’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소위 ‘타이밍’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읽고 계시는 타이밍과 우리가 읽고 있는 타이밍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찾을 때요,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부를 때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이 '때'는 우리 예수님께서도 엄청나게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의 그 날을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 '그 때에'를 무려 11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을 찾을 때요, 하나님을 부를 때요,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때인 줄 믿습니다! 이 '때'를 놓치면 하나님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고,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고, 회개하고 싶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네가 사느냐 죽느냐'를 판가름하는 때다 이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지금입니다. 지금 당장 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뇨 조금만 더 있다가…….'입니다. 지금 오면 용서가 되고 구원을 받지만 조금 뒤가 되면 문은 닫히고 맙니다. 노아의 방주가 항상 열려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닫히면 아무리 두드려도 절대 열리지 않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기름을 사가지고 왔을 대에는 이미 신랑이 도착했고 잔치 집 대문은 닫혔습니다. 아무리 두드리며 사정했으나 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돌아오는 자가 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용서의 선포이며, 하나님의 용서는 사람이 생각하는 용서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지금,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용서하지 못할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에게서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오직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선하시고 거룩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은 부패하고 오염됐기 때문에 그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은 언제나 자기중심이지만 진실 되시고 선하신 하나님에게서는 언제나 Good News만 나옵니다. 기쁜 소식뿐입니다. 어떤 기쁨이냐 하면 용서받고 사랑 받고 축복 받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인류 구원입니다. 바로 나를 구원하는 것만을 온통 생각하십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면서, 오냐 오냐 열 번, 백 번, 죄를 짓고 또 짓고……. '그래도 좋다, 돌아만 와다오, 내게 돌아만 오라, 나를 찾기만 하라, 나를 찾으라, 나를 부르라, 내가 다 용서하리라!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내 것으로 만들었으니 허물이 있으면 어떻고, 죄가 있으면 어떠냐? 내가 다 용서하리라 돌아만 와 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자기를 만날 적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루고 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지금이 바로 자신을 만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내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아닌데요.” “지금 믿으라.”라고 말씀하셔도 “조금 더 있다가요.”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 피조물이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차이입니다.
3.하나님의 생각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사 55: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사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비가 내려서 땅을 촉촉하게 만들고 그래서 싹이 나고 자라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합니다. 목적을 수행하지 않고는 절대로 그냥 돌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욥 37:12 “구름이 인도하시는 대로 두루 행하나니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세계상에 이루려 함이라
욥 37:13 혹 징벌을 위하며 혹 토지를 위하며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구름으로 오게 하시느니라“.
시 104:13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땅에 물을 주는 것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는 생각은 절대로 되돌아오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자기 생각대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1)하나님의 약속들은 모두가 적절한 시기에 완전히 성취를 이룰 것이며 그 일점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왕상 8:56 “여호와를 찬송할 찌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비가 땅에 내려 열매를 맺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비롭고 은혜로운 약속은 믿는 영혼을 성결하게 하고 위로하는데 효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2)말씀은 보내시는 용도에 따라 상이한 효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말씀은 항상 양면성을 띄고 있습니다. 축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으로 나타납니다. 즉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지 않으면 사망을 좇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될 것입니다. 만약 말씀이 양심을 각성시키거나 부드럽게 하지 않는다면 양심을 마비시키고 마음을 강퍅하게 할 것입니다.
사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3)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은 마치 이슬이 하늘에서 내리듯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호 14: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하나님의 생각 즉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성취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길입니다. ‘길’은 하나님의 생각을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이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를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원하고 예상하던 길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 생각에 비해 하늘이 높듯이 그의 길 역시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길은 반드시 우리가 생각한 좋은 길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평안한 길을 원합니다. 순탄한 길을 원합니다. 그러면서 불순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때로 가시밭길, 고통스러운 길, 십자가의 길과 같은 어려운 길을 통하여 우리를 자기 생각대로 다루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나를 보십시오.
요나는 절대로 니느웨에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수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니느웨가 망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생각이 아닌 자기 생각대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된 것입니다. my way를 간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 있습니다. 마이웨이를 달려가는 요나를 바로 잡기 위하여 대풍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결국에는 하나님이 이기고 말았습니다. 요나는 KO패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과 충돌하려 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생각과 싸워서 이기겠다는 어리석은 망상을 버리십시오. 이것이 지혜입니다. 반항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