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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교회 시대의 강해(3부)-에베소 교회 시대
*소 개*
월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는 1960년 12월 4일부터 11일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요한계시록1~3장까지
일곱 교회 시대에 관한 메시지를 연속으로 설교했는데, 이 지면을 통해서 시리즈로 소개해 드리고자합니다.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님의 놀라운 사역은 말라기4장:5~6절, 누가복음17장:30절, 계시록10장:7절, 등등,
성경에 예언된 말씀에 대한 성령께서 입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의 세계적인 사역은 다른 여러 성경 예언들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이 마지막 때에 성령께서 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그의 사역은 신부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켜 휴거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이 메시지를 읽는 동안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비(마음 판=고후3:3)에 쓰이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정확하면서 편집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였지만, 영어 오디오 파일들이
브래넘 형제님이 하신 설교를 있는 그대로 전해 줄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설교한 1,100여개의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통역과 번역이 되어 있으며, www.messagehub.info 에서 다운로드 받고 인쇄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메시지 책자들을 보고자 하시면 한국성서교회 (biblechurch.kr) 를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 책자에 대해서 문의하실 일이 있으신 분들은 이 메일 주소는 biblechurch77@gmail.com 입니다.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바이블 애플 KJV 흠정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 일곱 교회 시대의 서문.
저는 여러분들이 교회 시대의 메시지를 완전히 이해하실 수 있도록 제게 사자들의 이름이나 시대의 기간이나
거기에 연관된 여러 요소들을 알게 해 준 다양한 원리들을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이 연구는 제가 이때까지 해온 것 중 가장 중요한 주제였으므로 저는 성령의 영감을 달라고 하나님께 여러
날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 시대에 대한 성경구절들을 읽었고, 편견 없이 공평한 역사가들이 쓴
교회사들을 자세히 읽고 연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제 기도에 응답하여 주셔서, 제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읽어 내려갈 때, 성령께서는 저에게 수 세기 동안에 계속 지속되어오고, 현재 이 마지막 교회 시대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유지되어온 한 특정한 행동(패턴=Pattern)이 그대로 드러나는 걸 보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그 열쇠로 저는 각 시대의 사자들을 정할 수 있었는데 그 열쇠는 가장 성서적인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성경의 근본 원리라고 불러도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변치 않으시며 그의 행하시는
방법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불변한다는 계시입니다. 히브리서13장8절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3장14~15절에,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불변하는 방법들을 가지신 불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처음에 행하셨던
것을 마지막으로 행하실 때까지 계속 하셔야만 할 것입니다. 중간에 바꾸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일곱 교회시대에 그대로 적용해 보십시오. 첫 시대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 사람의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표명하시는 가는 나머지 다른 시대들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에베소 교회시대에서 행하신 일은 나머지 다른 교회시대에서도 하시고자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에 의해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처음, 최초의 교회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어떻게 표명하셨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말씀은 바꿀 수 없으며 바꾸어질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장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 말씀에서 말씀을 하나 바꾸는 것은,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죄와 사망을 가져올 것입니다.
계시록22:18.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만일 어떤 사람이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그래서 오순절날의 교회의 모습이 표준이며 기준입니다. 그것이 패턴입니다. 다른 방식은 없습니다.
신학자들이나 목사님들이 아무리 뭐라고 말하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패턴을 조금도 바꾸시지 않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대 오순절날 행하신 것을 교회 시대가 끝마칠 때까지는 계속 하셔야만 합니다.
신학자들이 여러분에게 사도시대는 끝났다고 말해도 여러분 그 말을 듣지 마십시오. 그런 진술은 두 가지 이유로
옳지 않습니다. 우선, 처음 열두 사도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사도는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오늘날 보냄을 받은 자들은 많이 있습니다만 그들은 선교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부름을 입고 생명의 말씀을 들고 보냄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 한 사도시대는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성경이 책으로 엮어진 이후로는 “표명된 성령의 권능”의 시대가 끝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 말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게 제시하는 성경 구절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경 구절들이 그와는
반대되게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 두 가지 반론이 그르다는 성경말씀의 증명이 있습니다.
사도행전2장38~39절에,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니라." 사도들이 오순절날
받았던 권능의 약속은 "너희와(유대인들) 너희 자녀와(유대인들) 모든 먼데 사람과(이방인들)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유대인과 이방인 모 두)"에게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심을 마치기 전까지는,
오순절 메시지와 권능은 그치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사도시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순절날 교회가 가지고 있던 것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입니다. 원래, 그 교회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여러 표적들과 기사들과 성령의 은사들로 표명된 성령의 권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2장1~4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지금까지 들은 것들에 더 열심히 주위를 기울여야 하리니 이것은
언제라도 그것들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천사들을 통해 하신 말씀이 확고하였고 모든
범죄와 불순종이 정당한 보응의 대가를 받았거늘 3.우리가 이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
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이요. 그분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것인데
4.하나님께서도 자신의 뜻에 따라 표적들과 이적들과 다양한 기적들과 성령의 선물들로 그들에 대하여 증언하셨
느니라." 그 초대 교회는 사람들에 의해서 조직되지 않았습니다. 그 최초의 교회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리 크지도 않았습니다. 미움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억압도 받았습니다. 또 죽을 정도로 핍박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 교회는 원(原) 말씀의 패턴을 따랐습니다.
여기서 딴 길로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그의 방법들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저는 교회와 교회의
사자들이 변할 수 없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는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했던 것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불변하는 방법들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
가서 첫 번째 완벽한 하나님의 행동을 보고 그리고나서 그것을 표준으로 삼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참 교회는 항상 오순절 날의 초대 교회를 닮으려고 애쓸 것입니다. 오늘날의 참된 교회는
항상 초대교회를 닮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보냄을 받은 사자들은, 그들 안에 동일한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고, 그들도 사도 바울을 닮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들은 정확히 바울 같지는 않을 것이지만 참된
사자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자유롭고, 하나님께 팔려서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고 성령의 능력을 표명했던
바울을 가장 많이 닮은 자들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최초의 것을
보고 그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유유상종이라고, 참 교회는 항상 오순절날 교회의 창설자(Founder)들의 발자국을
따르려고 애쓰는 교회일 것이고 교회의 사자들은 첫 번째 교회 시대에 보냄을 받은 첫 번째 사자인 사도바울을
따를 것입니다. 그 정도로 단순하고(Simple) 그 정도로 아주 훌륭한 (Wonderful) 일입니다.
너무도 단순하면서 너무도 훌륭한 이 열쇠로, 저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계시록 책과 역사서들을 읽고
그 속에서 각 교회시대와 각 교회시대에 보내진 사자들과 각 시대의 기간과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서 초대
오순절 날로부터 그 시대들이 끝날 때까지 각각 담당해온 역할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참 교회는 항상 사도행전에서 제시된 초대 오순절의 교회와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말씀들과
유전들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성령께서 표적들과 기사들로 그것을 확증시켜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기준을 정했는지 이해하셨으니까? 이제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실패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처음 교회시대로 들어 왔던, 사도행전과 계시록 그리고 에베소서에서도
나타내어진 기본적인 오류 또는 여러 가지 오류들은 연이어 오는 각 교회시대에서도 눈에 띄게 점점 더 많이
나타날 것이고,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에서는 진리가 완전히 깜깜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았던 이 첫째 열쇠로부터 또 하나 약간 덜 중요한 훌륭한 사실이 나옵니다.
저는 참 교회는 항상 사도행전에 있었던 교회와 닮아가려고 애쓰리라고 말했습니다. 그건 정말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오류의 침입이 있고 마침내 주님이 나타날 찰나인 마지막 시대에는 진리가
완전히 꺼진 정전상태가 되리라고 가르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제 이런 의문이 우리들 마음에 생겨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을 버리시고 그들이 완전히 속는 상태에 빠지게 놔두시는가? 어떤 일이 생겨도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면 성경이 마태복음24:24에서 “택하신 자들은 속을 수 없다.”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그러면 무엇입니까? 대답은 우리 앞에 불 보듯 명확합니다. 참 교회가 있고 거짓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진짜 포도나무가 있고 가짜 포도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 거짓교회, 가짜 포도나무 몸은 항상
참 교회의 위치를 뺏으려고 할 것이고 자기가, 택하신 자가 아니지만, 진짜 인정받은 교회라고 주장하려고 할
것입니다. 종교적이었던 가인이 참된 씨인 아벨을 죽이고 그 자리를 독차지하려고 했던 것처럼 거짓 교회들은
참 교회를 죽이려고 지금도 애쓸 것입니다. 그런 일이 사도행전에 있었던 일이었고, 일곱 교회시대에서 전개되는
일이고 여러 서신에서도 선언된 바 있습니다. 항상 그렇게 되어 왔습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건 변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점을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합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위해서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제 첫 시작인 창세기로 돌아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빛이었고 하나는 어둠이었습니다. 한 나무는 생명을 낳고, 다른 한 나무는 사망을 냈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처음으로 바친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거듭 말하겠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창세기4장3~5절 "시간이 흐른 뒤에 가인은 땅의 열매 중에서 헌물을 가져와 주께 드렸고 4.아벨도 자기 양
떼의 첫 새끼들과 그것들의 기름 중에서 가져왔는데 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관심을 가지셨으나 5.가인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갖지 아니하셨으므로" 한 사람(가인)은 악했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악한 자)에게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벨은 여호와 앞에 의로웠습니다. 자 같은 부모의 육체로부터 태어난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삭과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들이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였고 다른 하나는 택함받지 못한
자였습니다. 둘은 다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경배하는 문제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항상 악인들은 의인들을 미워했고 의인들을 핍박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악인들은 의인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잘 보십시오. 그들은 함께 심겨졌습니다. 그들은 같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둘 다 하나님을 불렀고 경배했습니다.
이런 예증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뿌린 사람과 같은 데 원수가 와서 그 좋은 씨들 사이에
가라지를 심었다고 하신 비유를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지를 심으신 게 아닙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좋은 씨 사이에다 그 가라지들을 심은 것입니다. 그 두 종류의 식물들은(사람들), 두 개의 다른
종류의 씨에서 나왔고, 함께 자랐습니다. 그들은 똑같은 대지의 영양분을 섭취했습니다. 그들은 똑같은 해와 비와
다른 모든 혜택을 나눠가졌고 때가 되자 추수되었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일곱 교회시대와 나중에 일곱인봉을
공부해 나가는 동안 이 사실들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라지가 불태워지기 위해 묶이고
있고, 주님께서 모으실 알곡을 밀어낼 때는 이 마지막 시대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저는 이 생각을 앞으로 계속 가져가고 싶습니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갑시다. 여러분 부흥사를 연구해 보신 적
있습니까? 그런데 부흥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의 움직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때마다
사탄도 거기에 나타납니다. 한 번의 예외도 없습니다. 위대한 웨일즈 부흥이 일어났을 당시(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정신 병동은 금세 만원이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마귀세력이 대단하게
표출되었습니다. 웨일즈 부흥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흉내내려고 사탄에게서 온 것이 틀림없는
굉장히 특이한 행동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루터 시대에, 루터의 사역이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로마
카톨릭 교회를 저항하는데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에 있지 않고 진짜 기적은 루터가, 종종 그릇된 영들에 충만되어
있고 그 영의 조종을 받는 광신자들 사이에서도 건전하고 맑은 정신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었고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라 적혀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지막 시대의 사역을 잘 살펴보시면, 그릇되고 악한 영들이 또다시 침입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되어야만 합니다. 지금 저는 여러분들이 영적인 마음을 가져서 그것을
이해하시고 그것을 이용하실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러시리라 믿습니다.
한데 섞여서 활동 중인 두 영을 나타내는 참 포도나무와 거짓 포도나무에 대한 이 요점에 결말을 내기 위해,
요한1서4:1~4절을 먼저 봅시다. "1.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그것들을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서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이라. 2.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라.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였고 3.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고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그 영이니라.
그것이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그것이 지금 이미 세상에 있느니라. 4.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적그리스도의 영)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분이(하나님의 영)세상에 있는 그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 유다서3,4,12절. "3.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으로 얻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를
느꼈노니 4.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 들어온 어떤 자들이(성도들이 아닙니다.) 있기 때문이라.(이 사람들은
문을 통해 양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강도입니다.) 그들은 이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이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라. 12.이들이 너희와 함께 잔치를 할 때에 두려움도 없이 먹으니 너희의 사랑의
잔치에 얼룩이라. 그들은 바람에 밀려다니는 물 없는 구름이요, 열매가 시들고 열매가 없으며 두 번 죽어 뿌리째
뽑힌 나무요." 진실한 교회와 거짓 교회는 다른 종자이지만 함께 심겨져서 서로 가지가 얽혀 있다는 사실은
이 성서구절들 앞에서는 부인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게 또 있습니다. 요한이 말하고 있는 일곱 교회들은 소아시아에 있고 다
이방인들의 교회입니다. 그는 약간의 이방인들이 있을 수도 있는, 대부분이 유대인들인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서 이방인들에게로 향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시대
전체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다루시고, 이방인 신부를 자기에게로 불러내시는 은혜의 시대인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시대들”과 “이방인의 충만한 수”를 하나로 만들며 동일한 것으로 만듭니다. 사도행전13장44~48절,
"44.그 다음 안식일에는 거의 온 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함께 나아왔으나 45.유대인들이 그 무리들을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그것들을 대적하여 말하고 반박하며 신성모독 하거늘 46.이에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너희에게 먼저 말할 필요가 있었으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너희 자신을 영생 얻음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보라, 우리가 이방인들에게로 향하노라.
47.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이방인들의 빛으로 세웠나니 이것은 네가 땅 끝까지
이르러 구원을 위한 일꾼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느니라. 하매 48.이방인들이 이 말을 듣고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에 영생을 돌리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진 자들은 다 믿더라."
로마서11장1~8절에, "1.그러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니라. 2.하나님께서 자신이 미리
아신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 기록이 엘리야에 대해 말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하나님께 중보하여 이르되, 3.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주의 제단들을 파헤쳤으며
나만 홀로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도 찾나이다. 하니 4.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대답이 무어라 말하느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의 형상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노라. 하나니 5.그런즉 이와 같이 이
현 시대에도 은혜의 선택에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그것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 7.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은 자기가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였으나 선택받은 자는 얻었고 그 나머지는 이 날까지 눈멀게 되었으니 8.(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잠들게 하는 영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도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11장25~29절에, "25.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에 대해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곧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눈멀게 된다는 것이라. 26.그리하여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은 기록된바, 시온에서 구원자가 나와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돌이키리니 27.내가 그들의 죄들을 제거할 때에 이것이 그들을 향한 내
언약이니라. 함과 같으니라. 28.복음에 관하여는 그들이 너희로 인해 원수 된 자들이지만 선택에 대하여는 그들이
조상들로 인해 사랑받는 자들이니 29.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
소아시아에 위치해 있던 이 일곱 교회는 그 당시 독특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특성들은 나중 시대에
익은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때에는 단지 씨에 불과했던 것이 나중에는 풍성한 추수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누가복음23장31절
* 에베소 교회 시대에 주신 메시지.
계시록2:1.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있는 이 곧 일곱 금 등잔대의 한
가운데를 거니는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또 네가 사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함을 아노니 네가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알아내었으며 3.또 네가 참고 인내하며 내 이름을 위해 수고하고 낙심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조금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 5.그러므로 네가 어디로부터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하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네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네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기리라. 6.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곧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그것을 미워하노라. 7.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 한가운데에 있는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을 주어 먹게 하리라.
* 에베소 교회의 천사.(사자.)
에베소 교회의 사자는 바울이었습니다. 그가 그 시대에 보내진 사자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을 위한 문을 열 권세가 주어졌지만, 이방인의 사자이자 사도가 될 권세는 바울에게 임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선지자인 동시에 사자였습니다. 바울의 예언적인 직분은, 이방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의
충만한 계시를 얻었고, 그가 이방인들의 사도이며 사자임을 확증시켜 주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은
이 사실에 동의했습니다. 갈라디아서1장에서. “12.나는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아니하고 배우지도 아니하였으며
다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느니라. 13.과거에 유대인들의 종교 안에 있을 때에 행한 나의
행실에 관해 너희가 들었거니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극도로 핍박하여 피폐하게 하였고 14.내 조상들의 전통에
대해 심히 열심을 내어 내 민족 가운데 나와 동등한 많은 사람들보다 유대인들의 종교에서 더 득을 보았느니라.
15.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나를 구별하시고 자신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16.자신의 아들을 내
안에 계시하사 내가 그분을 이교도들 가운데 선포하는 것을 기뻐하실 때, 내가 즉시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였고
17.예루살렘으로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자들에게로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오직 아라비아로 들어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그 뒤 삼 년이 지나서 내가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와 함께 십 오
일을 지냈으나 19.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는 다른 사도들을 보지 아니하였노라.”
갈라디아서2:2.내가 계시로 말미암아 올라가 내가 이방인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출하되 명성
있는 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하였으니 이것은 어찌하든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6.그러나 무엇이나 되는 것 같이 보이는 이 사람들에 관하여는(그들이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는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무엇이나 되는 것 같이 보이는 그들이 회의에서
내게 아무것도 더해 주지 아니하였느니라. 7.오히려 반대로 베드로가 할례자를 위한 복음을 맡음 것 같이 내가
무할례자를 위한 복음을 맡은 것을 그들이 보았나니 8.(베드로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사 할례자를 위한 사도직을
주신 바로 그분께서 내 안에서도 강력하게 일하사 이방인들을 향하게 하셨느니라.) 9.또 기둥 같이 여겨지던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내게 주신 은혜를 깨닫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교제를 청하였으니 이것은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들에게로 가고자 함이라.
로마서11:13.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들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존귀히 여기나니.
* 바울은 첫 세기의 중반에 에베소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사실로 우리는 에베소 교회 시대가 시작된 날짜를 대략 A.D. 53년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그가 사역하는 방식은 패턴을 정해 두었는데 그 패턴은 나중에 올 사자들 모두가 본받을 훌륭한 패턴이었고,
바울의 영적인 경지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의 참된 종들 모두를 위해 실제로 패턴을 정해두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세 가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바울은 절대적일 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 나든지 결코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1:8.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9.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2:11.그러나 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그가 책망 받아야 했으므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4.그러나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바르게 걷지 아니하는 것을 내가 보고 그들 모든 앞에서 베드로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 방식대로 살고 유대인들처럼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 이방인들을
강요하여 유대인들처럼 살게 하느냐? 하였노라.
고린도전서14:36.도대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나왔느냐?
혹은 그것이 너희에게만 임하였느냐? 37.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를 선지자나 영적인 자로 생각하거든
그는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들이 주의 명령인 줄 인정할지니라.
* 바울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기 위해 모세 위에 임하셨을
때처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음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공회가 바울을 파송한 것도 아니고, 다른 어떤 조직들이나
권한이, 바울을 파송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홀로, 바울을 보내기도 하시고 인도하기도 하셨습니다.
바울은 어떤 유명한 사람이나 조직에서 부르심을 받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1:1.(사람들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사람으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자들로부터
그분을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갈라디아서2:3.그러나 나와 함께 있던 그리스 사람 디도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나하였으니
4.이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아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고 몰래 들어왔으나 5.우리가 그들에게 단 한 시간도 굴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복음의 진리로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게 하려 함이라.
* 두 번째로, 바울의 사역은 성령의 능력 가운데 있어, 그 능력으로 말해진 말씀과 기록된 말씀을 나타냈습니다.
고린도전서2: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언을 너희에게 밝히 말할 때에 말이나 지혜의 뛰어난
것을 가지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나니 2.나는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느니라. 3.내가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면서 너희와 함께 있었으며 4.또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를 사람의 지혜의 유혹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권능을 실증함으로 하였으니
5.이것은 너희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 안에 서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 안에 서게 하려 함이라.
사도행전14:8.루스드라에 발이 허약한 어떤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나면서 불구가 되어 걸은 적이 없더라.
9.그 사람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음을
알고는 10.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똑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고 걸으니라.
사도행전20:9.유두고라 하는 어떤 젊은이가 창문에 걸터앉아 있다 깊은 잠에 빠지니라. 바울이 오랫동안 말씀을
선포하매 그가 졸다가 삼 층 다락방에서 떨어져서 죽은 채 일으켜 지니라. 10.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를 껴안고 이르되, 그의 생명이 그 속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하고 11.그러므로 그가 다시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이처럼 떠나니라. 12.그들이 살아난 젊은이를 데리고 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사도행전28:7.바로 그 지역에 그 섬의 우두머리인 보블리오라 하는 사람의 소유지가 있더라. 그가 우리를 받아
들여 사흘 동안 친절히 머물게 하더라. 8.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피설사로 앓아 누워 있을 때에 바울이 그
에게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그를 고치니라.
9.그러므로 이 일이 있은 뒤에 그 섬에서 질병을 가진 다른 사람들도 와서 고침을 받고.
고린도후서12:12.진실로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와 표적들과 능한 행위들로 사도의 표적들을 행하였노라.
* 세 째로,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사역에 확실한 열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12:11.내가 자랑함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었거니와 너희가 억지로 나를 시켰느니라. 내가 너희에게서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노니 내가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무슨 일에서나 가장 으뜸가는 사도들보다
결코 뒤지지 아니하노라.
고린도전서9:2.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분명히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너희는 주 안에서 나의
사도직을 보증하는 봉인 이니라.
고린도후서11:2.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는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바울은 이방인 양떼들이 한 목자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이는 하나님이 보낸 수단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의로운 열매를 맺고 이방인 신부의 일부로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될 때까지, 이방인 양떼를 먹이고
보살폈습니다. 그는 이방인 신부들을 위해 복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계시록이 주워졌을 당시에, 전통에 의하면
바울은 이미 순교 당하였고, 바울 대신 요한이 바울이 살아서 사역을 행했던 그대로 전수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이 주어지기 전에 바울이 죽었다고 해서 그가 에베소 교회에 보냄을 받은 사자라는 사실이 변경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 시대에 보냄을 받은 사자는, 언제 나와서 언제 사라지든지에 상관없이, 말씀이 표명하는
사역을 수단으로 삼아 하나님 대신에 그 시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바로 에베소 교회에 보내진 바로 그 사자였습니다.
#. 에베소성
에베소성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세 성읍 중 하나였습니다.
에베소는 그리스도 신앙의 세째 가는 도시라고 종종 불리웠습니다. 예루살렘이 첫째이고, 안디옥이 둘째였습니다.
에베소는 제일 부유한 성읍이었습니다. 정부는 로마식이었지만 사용하던 언어는 헬라어였습니다.
역사가들은 요한, 마리아, 베드로, 안드레, 빌립이 모두 다 이 아름다운 성에 묻혔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 진실한 믿음을 세운 바울은 대략 삼 년 동안 이 곳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곳 양떼로부터 떠나 있을 때에도 항상 기도 가운데서 그들을 염려했습니다.
디모데가 이 교회의 첫 번째 감독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1:1.우리의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된
바울은 2.믿음 안에서 나의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을지어다. 3.내가 마케도니아로 갈 때에 에베소에 머물 것은 네게 간청하였나니 이것은
네가 어떤 사람들에게 명하여 그들이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며.
*에베소라는 이름은 복합된 의미 "목표삼다(Aimed at)"와 "느슨해지다(Relaxed)",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 즉 "하나님의 깊음",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을 목표로 삼고 강력하게 시작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시작한 이 시대의 높은 열망은 시간이 지나서 경계를 소홀히 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열정에서 느슨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다가 올 시대에 교회라는 물리적 기구가 "사탄의 깊음"의
끔찍한 상태에까지 가라앉으리라는 전조로서 표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점점 느슨해지고, 세상적으로 떠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이 시대는 다시 타락하고 있었고 능력의 복음으로 시작된 첫 사랑에서 떠났습니다.
에베소 시대에 심어진 그 조그만 미혹의 씨는 장차 미혹의 영으로 자라 마침내 공중의 온갖 더러운 새들이
가지마다 보금자리로 삼을 것입니다. 그 조그만 식물은 새 이브(새 교회)에게는 인간적 추론에 하나도 거슬리지
않는 것으로 보였으므로 다시금 사탄에게 속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녀에게 하나님의 최고로 좋은 것에 대한 기회를 제시했고, 그래서 잠시 동안 승리했다가
나태해졌고, 그 방심한 틈을 타 사탄은 그렇게도 무방비한 순간에 사탄은 완전한 파멸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에베소의 종교는 완벽하게 이 첫 교회 시대를 나타내고 있고 앞으로 올 시대들의 경향을 정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웅장한 다이아나 신전은 수년 동안 건축했고, 거룩한 뜰 안에 도무지 광택이 없고 수수한 가상의 다이아나
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녀는 다른 신전에 모셔진 것들과는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거의 형태가 없는
여자의 모습에 불과해서 조각목 덩어리 속으로 파묻혀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두 팔은 두 개의 단순한
철봉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첫째 시대에 풀어 놓여져 있었던 적그리스도의 영을 너무도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누구도 그가 하고 있던 일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사람들은 그 무쇠팔을 가지고 그의 `행위'가 `교훈'이 되고 그의 교훈(교리)이 한 제국의 법이
되었을 때, 그때는 누군가는 알게 될 것입니다. 신전 예배의 체계는 또한 시사적입니다. 맨 먼저, 내시인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이 내시 제사장들은 말씀으로부터 떠날 사람들의 불임성(不姙性)을 예고합니다.
왜냐면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식을 못 낳는 내시처럼 생명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신전에는 그 구역 내에 신전의 종교 행사를 치루던 처녀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식과 형식과
의식과 행위들이 성령의 자리를 대신하고 더 이상 성령의 은사적 표명이 하나님의 전을 채우지 않을 날을
나타냈습니다. 그들 위에는 대제사장 즉 정치적 세력과 종교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미 진행 중에 있던 것을 묘사하는 것으로 아직은 그리 밖으로 표출되지는 않았습니다.
즉 교회가 성령의 지도력이 아닌, 인간의 계획과 인간의 야망을 가진 인간의 지도력에 넘겨져서
"성령이 말씀하시기를"은 “성령의 인도하심"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실재가 되지 않을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밑에는 종교적 계급 체제에 복종하는 것 외에는 아무 선택권이 없는 신전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장차 제복을 입은 성직자들이, 정치적으로 조종된 정치적인 도움을 입고, 말씀과 성령을 신조들과
독단적 교리들로 대체하고, 인간적 지도력에 힘입어, 평신도들을 노예로 삼아 지도자들은 부당하게 번 돈으로
호화롭게 살며 더러운 쾌락을 향유하고, 하나님에 의하자면 섬김을 받기로 되어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
종이 되어 있는 날이 오리라는 걸 의미하지 않으면 뭘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 예수와 그의 사자와 교회들.
계시록2:1.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있는 이 곧 일곱 금 등잔대의 한 가운데를 거니는 이가 이것을 말하노라.
이 사람은 말씀에서, "이 동일한 예수는 주요 그리스도라."고 기록된 그 사람입니다.
한 분이시고 유일한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거기 계시고 그분 옆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구세주이신 그가 거기에 계십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요나2장9절),
그는 일곱 교회시대에 있는 교회들 가운데 걷고 계십니다. 첫 번째 시대에 계시던 그는 다른 시대에도 똑같은
그 분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한 번 행하신 일은 지금도 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계속하실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그의 교회들 사이에 혼자 걷고 계심을 아실 것입니다. 그 옆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홀로 교회에게 구원을 이루어 주셨고,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사서 교회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회의 주이며 주인입니다. 교회는 그분에게 모든 영광을 드리고 그 영광을 그는 다른
이와 나누지 않을 것입니다. 그 옆에는 교황도 없습니다. 그의 지상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옆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하지도 않고 몸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그가 곧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령에게 지시를
내리려고 몸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이며 영원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생명을 주면서 흐르고
있고 박동하는 것은 그의 생명입니다. 그분이 없이는 아무 생명도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주께 있습니다.
그가 극렬한 풀무불의 진노의 맹렬함을 밟을 때, 그 옆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자기 피를 준
분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분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믿음을 시작하신 분이시며, 또 끝맺으실 분입니다.
그는 우리 구원의 알파요, 오메가이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분께 결혼했습니다.
우리는 세상 교회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오직 말씀이신 그분께 속해 있습니다. 그의 말씀이 곧 우리의 법입니다.
인간들의 신조, 독단, 준칙, 헌법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들 사이를 걷고
계신 분은 예수님 혼자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교회를 보호하면서, 좋은 것을 주시고자 거닐며 그의 선한 뜻을
생각하시고 행하시는, 교회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도 그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께 단 하나의 관계가 있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딱 한 가지의 관계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이고
오직 예수뿐입니다. 그는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들고 계십니다. 오른 손이나 오른 팔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의미합니다. 시편44:3.그들이 자기들의 칼로 그 땅을 얻어 소유하지도 아니하였고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하지
도 아니하였으며 오직 주께서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셨으므로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빛이 그리하셨나
이다. 그 권능의 오른 손 안에 일곱 별이 있는데 계시록1장20절에 의하자면 그 별은 일곱 교회 사자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각 시대에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들 뒤에 그들을 보호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사자들은 말씀을 가지고 성령의 불길과 능력으로 나아갑니다. 그들은 빛을 반사하므로 별들입니다. 그들이
반사하는 빛은 그분의 빛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세상의 참 빛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빛이 없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의 불빛 가운데 걷게 하고자 자기 불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이사야50장11절)
때는 밤입니다. 별들이 나오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깜깜한 죄의 밤입니다.
모두가(세상 전체가) 죄를 짓고 계속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3장23절)
이 일곱 사자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영접하는 자는 그들을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3:20.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내는 자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를
받아들이며 나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느니라. 하시니라. 그들은 그분의 권세를 가지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는 그들 뒤에 서 계시고 신성의 모든 능력도 그러실 것입니다.
마태복음28:18.예수께서 그들에게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느니라.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20.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시대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불길로 불타서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있고,
하나님은 그들을 지지하며 서 계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시대라도 어떤 신자든지 "내가 사도들이 처음 보냄을 받았던 첫째 시대에 살았었더라면,"
하고 속으로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뒤를 돌아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위를 쳐다보십시오! 시대마다 교회들
사이에 거닐고 계신 그분을 보십시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분을, 본질적으로나 행동 방식에서나
변함이 없으신 그분을 보십시오. 두세 사람이 그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그분도 그 가운데 계십니다!
만족스러운 구경꾼 또는 기록하는 천사로 계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그대로 표현하면서 지금 서
계십니다. 그는 생명이며 보혜사이며 교회를 지금도 보호하시면서 모든 선한 은사를 주시는 분입니다. 할렐루야!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 말들은 "우리 생명 되신 그리스도"라고 그분을 묘사하고 있는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의미 있는 말입니까? 왜냐하면 진정 그리스도는 교회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다른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교회는 종교적 사교 단체, 클럽, 아무런 의미 없는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합니다. 시체에 아무리 보석을 달고 옷을 입혀도 시체는 시체이듯이 교회도, 프로그램과 은혜스러운
노력이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한다 해도, 그리스도 없이는 시체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가운데 모시고 주님이
교회에게 지시를 내리고 계시는 한, 교회는 놀람을 금치 못할, "그의 몸 즉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는 그분의
충만함"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리스도는 마지막 시대 금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십니다.
첫 시대 그분의 모습은 마지막 시대에도 똑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일곱 금 촛대"에 대해서 알아보시면, 출25:31절을 보면,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교회 즉 신부는 정금에
비유됩니다. 의로움은 그의 의로움입니다. 그녀의 속성들은, 그의 영광스러운 속성들입니다.
그녀의 정체는 그분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모습은 그녀가 반사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가진 것은 그녀가 표명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녀 안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녀는 안으로나
밖으로나 모두 영광스럽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자기 주인의 작품이며, 그의 작품들은 다 완벽합니다.
사실 그녀 속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와 목적이 집대성되어 있고 표명되어 있습니다. 누가 그것을 헤아릴 수
있으며 누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촛대는 금으로 만들어졌고 또한 쳐서
만들어졌습니다. 성령께서 설계하신 교회의 청사진에 따라서, 손으로 쳐서 만들어진 정금입니다. 교회의 주이며
주인이신 그리스도 밖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들만큼이나 얻어 맞고 정결케 함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그녀는 그리스도가 남기고 간 고통을 다 채우고 있습니다. 소유가 약탈당했고 목숨은 위태한 지경에 있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갈 양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온 종일 죽임을 당합니다. 많은 고통을 당하지만 보복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랑스런 신부들이야말로 복음에 합당한 자입니다.
그런데 금이 펴 늘어날 수 있는 것처럼, 놋은 때리면 끊어집니다, 하나님의 이 금은 주를 위한 고통을 참을
것입니다. 굽히거나 끊어지거나 멸망당하지 않고 이생의 시험과 시련들을 통해서 영원히 아름답고 기쁜 것으로
형성될 것입니다.
계시록2: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또 네가 사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함을 아노니 네가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알아내었으며 3또 네가 참고 인내하며 내
이름을 위해 수고하고 낙심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구세주께서 그의 자녀들을 칭찬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분은 그들의 영적 태도들과 행동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 가운데 연약함이 있음을
아시지만 아직 그것을 꾸짖지 않습니다. 정말 주님답지 않습니까? 그는 옳은 일에 있어 우리를 어떻게 격려하고
그른 일에 있어 우리를 어떻게 나무래야 할지 아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회와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데 있어
좋은 교훈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이와 똑같이
다루신다는 좋은 교훈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성도여, 하나님은 여러분의 사랑의 수고를 잊으실
정도로 엄격한 분이 아니시니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하든, 누군가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물 한 컵을
주는 것까지도 주께로부터 상과 축복을 받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그는 교회 사이를
거닐면서, 그의 백성들의 고통을 알고 계시고 염려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포로로 있을 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던 것처럼, 변하지 않으시는 그분은 그들 가운데
거닐면서 압제 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여전히 듣고 계십니다. 수고라는 말은 압제로 인한 곤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랑의 수고로 그를 위해 일할 뿐만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고난도 받습니다. 그들은 멍에를
지면서도 인내합니다. 이 첫째 시대는 정말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몸소 열심히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삶의 높은 소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그들의 삶의 소망들이
꺾여 졌을 때 그들은 참고 지상에서 그들이 주를 위해 포기한 것들에 대해 하늘에서 영원한 보상을 약속하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저는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핍박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생각을 한번 다뤄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창세기는 여러 가지 것들의 시작을 보여주는 책임을 아실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것은 계시록에 이르면서 연결되어 있고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가인은 아벨이 하나님을 기쁘게 했다는 한 가지 사실로 인해서 아벨을 핍박하고 살해했음을 압니다.
다음, 아브라함의 육신의 아들 이스마엘에게서도 완벽한 모형을 볼 수 있는데, 이스마엘은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괴롭히고 싸움을 걸었습니다. 또 에서가 있는데, 그는 야곱을 미워했고,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야곱을
죽였을 것입니다. 신약에서 우리는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걸 봅니다. 그 때 1 세기의 종교적인 체제는 초기
신자들을 멸망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마귀의 미혹을 받고 있는 이 세상 종교적인 체제의 자녀들은 성령의
지배와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항상 미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의롭고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동료들에게 친절과 착한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데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방언과 예언과 병고침과 기적들을 행하며 성령 은사들의 움직임을
인정하면 그는 사람들로부터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영은 하나님의 영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영은 주님의 영을 이길 수 없으므로 진리의 영이 내주하는 그릇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핍박과 시험들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일부분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들 모두 주님께 맡기고, 판단하지 말고, 일의 완성과 최종적인 판단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에베소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거룩해야 된다고 믿었습니다.
이 절에 의하면 그들은 몸을 죄라는 누룩에 섞이지 않도록 지키는 단계에까지가 있었습니다.
분명하게 신앙의 변절(배교)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죄가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가운데 악한 자들을 없애라고 한 바울의 복음에 복종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그들 가운데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는 죄를 멀리 못했습니다. 거룩함은 하나의 문구나 어법상의 비유가 아닌 생활이었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세상에, 그것은 솔직한 진술입니다.
"너희들은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였다." 그것은 주제넘은 일이 아닙니까? 무슨 권리로 스스로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했을까요?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시험했을까요? 오, 저는 이 구절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 방법은 갈라디아서1:8에 있는데.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이미)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 사람들에게 최초의 말씀을 가져온 자들은 사도들이었습니다.
그 최초의 말씀은 변할 수 없습니다. 점 하나 선 하나도. 바울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내가 와서 둘째 계시를 주고자, 처음에 준 것을 약간이라도 바꾸고자 하거든, 나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바울은 첫째 계시가 정확한 계시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첫째 계시를 주고 다음에
둘째 계시를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마음을 자주 바꾸시는 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 계시를 주시고
다음에 거기에 보태실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여자에게 씨(후손)를 약속하시고, 나중에 그 씨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와야만 한다고 정해주시고, 그 다음에는 다윗의 혈통에서 오리라고 정확히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동일한 계시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계시를 이해하는 걸 돕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준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할 수 없습니다. 그 씨는 계시된 대로 정확하게 왔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 거짓 사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 자기네 말을 가지고 왔습니다.
에베소인들은 바울이 가르쳐준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안수 받아 성령으로
충만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거짓 사도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당신들은 바울의 말과는 달리 말합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틀렸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를 정말로 시험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아닙니다. 그들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보냄을 받은 한 선지자가 올 것인데 여러분들은 그가 하나님의 보냄을 입었는지 아닌지
진짜 선지자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셨던 말씀 안에 있게 될 것이고 잠시라도, 글자 하나라도 그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날 그 마지막 시대에, 그들이 여러분에게 자기들과 자기의 하는 말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왜냐하면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날 것인데, 그런데 진짜도
올 것인데, 그 마지막 시대 바울이 말한 선지자가 나오면, 그가 진정 그 선지자라면, "말씀에로 돌아가십시오,
오직, 구원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는 개인적인 계시나 해석이 아니라 말씀 위에 세울 것입니다. 아멘, 아멘!
이 거짓 사도들은 사악한 이리들입니다. "내가 떠난 후에 그들이 와서 동등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리라.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너희를 도우려는 게 아니라 너희를 해치려는 것이라."
사도행전20:27.이는 내가 지금까지 회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너희에게 밝히 말하였기 때문이라.
28.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위를 기울이라. 성령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29.내가 이것을 아노니 곧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30.또 너희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
(그들 자신의 말과 생각들이지 하나님의 생각이나 말씀이 아닙니다)
31.그러므로 깨어서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히 구별된 모든 자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상속 유업을 주리라.
요한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1서4:1에서 말하기를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이미)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그 적-그리스도 영은 이미 슬그머니 교회 속에 침투해 있었는데, 그것은 말씀에 반대함으로써 그렇게 했습니다.
왜 첫째 시대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까요. 이미 그들은 말씀을 부인하고 말씀 대신 자신들의 신조들과 철학을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입니다. 말씀에 대적하는 것은 곧 예수에 대적하는 것입니다.
적(敵)말씀은 적(敵)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과 말씀은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에 반대하면 여러분은 적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첫째 교회에서 시작되었다면 그것이 완전히 정복할 마지막시대에
까지 계속해서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전 시대를 공부해 갈 때, 여러분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에베소 시대에서는 아주 미세한 형태로 시작됐지만 매 시대마다 점점 자라나서는 마침내는 적 말씀 즉
적-그리스도 체제에 의해서 완전히 정복되어서 모든 교회시대를 위해 사도바울을 통해주신 성령의 계시된 순수한
복음의 말씀의 불변의 정통성을 교파교회들의 신학자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고 부인당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너무나도 강력하게 말하므로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에서 나쁜 인상을 받기가 쉬울 것입니다. 이 적 말씀 즉
적-그리스도 영은 말씀을 완전히 부인하고, 나아가서는 성경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계시록22장18~19절입니다, "18.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만일 어떤 사람이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제거시키리라.) 말씀 하나라도 빼거나 더하여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이용한 최초의 수법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다 한 마디를 보탰을
뿐이었습니다. 그 미세한 실수가 잘못된 일을 만들었고 결국 죽음과 파멸을 초래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딱 한 마디의 말이 보태지거나 딱 한 마디의 말이 빼졌을 때,
그 적 말씀인, 적-그리스도 영은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겠죠? 다시 쌍둥이들이 나오는데, 두 종류의 나무가
다시 나오는군요. 그 둘은 똑같은 땅에서 나란히 자라고 똑같은 자양분을 섭취하고 똑같은 빗물을 마시고 똑같은
태양빛을 받고 자랍니다. 그러나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의 말씀을 믿고, 사랑하고 순종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 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씨에서 나왔고 자기 맘대로 말씀을 바꿉니다.
결국 아벨을 죽이게 된 가인이 했던 것처럼 살아있는 참 말씀대신 자기 신조들과 독단적 교리들로 교체합니다.
그러나 적은 양떼여 두려워 마십시오. 말씀에 붙어 계십시오. 그 말씀을 여러분과 마귀 사이에 두십시오. 이브는
그렇게 하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말씀을 버리면 교회는 사탄의 어둠 속으로 깊이 빠지게 됩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수고하고 지치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이 말씀은 2절에서 말한 같은 내용인데,
그러나 2절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는 그들에게 맡겨진 신성한 말씀을 지키는 가운데서 있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대적들을 잘 물리쳤는지. 그들은 바울에게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존재들이었을까요.
그러나 이 절에서 그들의 핍박과 시험과 인내는 복 스런 능력이 있는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인한 것들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아신다면, 그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아실 것입니다.
대적들이 홍수처럼 우리 뒤를 쫓아오게 만들었던 것은 “그 말씀과 바로 예수라는 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의 능력이 수많은 병고침과 이적과 기사들과 다른 여러가지로 표명되었던 그 강력한 말씀은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진실한 신자들의 죽음을 외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미움과 멸시를 받았던 그
이름이 지금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하늘에 앉아계신 한 사람을 믿는
사람들은 어리석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면서 비웃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는 종교적인 핍박자들인 유대인들이
그들에게는 거짓 메시야인 예수를 저주하고 있고, 이곳에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에게는
전혀 신이 아니었던 새로운 신의 이름을 냉소하며 비웃고 조롱하며 예수님을 영적으로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뭔가가 또 있는데 그것은 이 시대에서 시작되어, 마지막 시대까지 더 깊어져 가고,
어두워 갈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람들이 그 이름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것은 절대로 참된 에베소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몰래 들어온 거짓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몰래 들어가서 뱀이 이브를 속인 것처럼 믿는 자들을 미혹시켜 더럽히려고 하던 외부인들이었습니다.
에베소인들은 예수의 그 이름을 알았고 그 이름을 사랑했습니다. 사도행전19장에서 에베소 교회의 시작을 되새겨
보십시오. 메시야를 찾고 있던 소수의 무리는, 메시야에 앞서서 예비하는 한 선지자가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침례를 베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이 사람들은 침례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들에게 와서 그 선지자는 죽었고, 예수께서 이미 오셔서 죄에 대한 희생 제물로서의 그의 삶을
성취하셨고, 지금은 성령이 왔고, 메시야인 예수를 믿는 모든 진실한 신자들 안에 들어가 충만케 하리라는 걸
그들에게 설명하여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재침례를 받았고” 바울이 그들을 위해
안수하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이름인 예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해야만 성령으로 충만
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무도 그 사람들을 다른 방식으로는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19장1~7절.)
그들은 그 이름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름에 힘이 있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심지어 바울이 입었던
옷의 천 조각들조차도 온갖 병으로 시달리던 병자들을 낫게 하고, 악한 영들을 내쫓을 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에베소에 불순한 유대인들이 마귀를 쫓아내려 그 이름을 사용해 볼 정도로 그 이름은 놀라운 일을 표명했습니다.
사도행전19:11.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특별한 기적들을 행하셨으므로 12.심지어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질병들이 그들에게서 떠나고 악한 영들도 나가더라. 13.그때에
떠돌아다니는 유대인들 가운데 마귀를 내쫓는 어떤 자들이 악한 영들이 들린 자들을 향해 스스로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하며 이르되,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가 너희에게 엄히 명하노라, 하더라.
14.유대인들은 제사장들 가운데 우두머리인 스게와라 하는 사람에게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그들도 그와 같이
하매 15.그 악한 영이 응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그 악한
영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그들을 눌러 이기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벌거벗고 상한 채 그 집에서 나와
도망하니라. 17.이 일이 에베소에 거하던 모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도 알려지니 그들 모두에게 두려움이 임하고
주 예수님의 이름이 크게 높여지니라. 그들은 그 이름을 지니는데 합당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죄에서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그릇들을 지니고 있는 너희여, 거룩할 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 에베소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름 하나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 이름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들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었고, 하나님의 삼중으로 표현된 이름(직분)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수고하고 지치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이들은 바울이나 어떤 조직체를 위하여 수고하며
일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세우는데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제도들에 매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들은 주의 종들이었습니다. 조직체에 속한 교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 그 이름에 대해 말하고 나머지 일 주일 동안에는 그것을 잃어버리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 이름을 입으로만 경배 드리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 이름에 바친 것은 그들의 삶 자체였습니다.
행하는 일마다, 그들은 그 이름으로 행했습니다. 그 이름으로 행할 수 없다면 그들은 그 행위를 삼가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 안에서 행동했으며,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속한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짓 포도나무 무리가 가만히 들어와 그 이름을 더럽히고자 어둠 속에 가만히 숨어 있는 이리들처럼,
기회를 보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도들은 시험을 잘 견디며 말씀과 그 이름을 지켰습니다.
* 하나님의 책망.
계시록2: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먼저 성령은 에베소에 있던 성도에게만 말씀하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 교회 기간인 약 120년 동안 지속되었던 전 시대에 걸쳐 해당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은 그 기간 동안에 있는 모든 세대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책망입니다.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이스라엘의 전 세대에서, 우리는 한 세대의 부흥이 일어나면, 그 다음 세대에선
그 불꽃이 훨씬 약해지는 걸 보게 됩니다. 셋째 세대에 이르면 불꽃은 더욱 약해져 약간 빛을 내고 있을지도
모르고, 넷째에 이르면 처음에 탔던 불꽃의 흔적은 더욱 더 약해져서 처음의 빛은 온데 간데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시 부흥의 불꽃을 주시고, 그 과정이 되풀이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은 손주들이 없다는 진리를
단순하게 표명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자연적인 탄생에 의해서 전해지는 게 아닙니다. 교황직 계승이 진리가
아닌 것처럼 그런 말은 말씀 속에는 존혀 없습니다. 진실로 거듭난 신자들을 맨 먼저 두고 시작해 보십시오.
다음 세대가 오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단순한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조직된 교파들의 이름을 취한 상태에 있고,
이제는 침례교인, 감리교인, 기타 등등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역사가 그대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인처럼 종교적인 체제에 속한 종교적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교회의 교리나, 신조나, 사람의 뜻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람들은 모두 다 이제 사람의 뜻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처음에 있었던
부흥의 불은 꺼졌다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처음 시작한 상태와 같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열성적인 바램과 그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열정과 성령 안에서 밖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부르짖던 외침과 처음 가졌던 높은 부르심의 목표에서, 모든 것이 점점 시들해져서 하나님의 불길로 불타던
교회는 서서히 차갑게 식어가고 약간의 종교적인 형식에 치우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 옛날 에베소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던 일입니다. 그들은 약간씩 형식적으로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성령께 의존하던 태도는 식어가고
있었고, 그들은 세상이 자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염려하기 시작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뒤에 온 두 번째 세대는 이스라엘 같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처럼 되려고
왕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알고자 하는 일곱 시대의 교회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것에 대해서 알기를 원하십니다.
로마서15:4.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되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성경 기록들이 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닮아가는 대신에 세상을 닮아가는 걸 더 많이 생각하면 머지않아서 여러분은 그들이 전에
해오던 일들을 멈추고 처음에는 하지 않던 일들을 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옷도 다르게 입고,
태도나 행동도 바꿉니다. 그들은 나태해지고, 해이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에베소"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느슨해지다, 표류하다.” 부흥과 죽음의 주기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마지막
움직임을 보이셨던 때를 회상해 보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때 남자들과 여자들은 다 그리스도인처럼 옷을 입었고
교회에 나가 밤새도록 기도했고 거리 모퉁이에 가서, 성령의 표명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은 오래된
이름뿐인 교회들을 떠나 가정이나 낡은 석조 건물 안에서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실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들은 훌륭한 새 교회를 짓는데 충분한 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직접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는 대신에 성가대를 두고 그 성가대에 가운을 입혔습니다.
그들은 운동 단체를 조직했고 그것은 인간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그들은 곧 읽기에 합당치 않은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차단 봉을 내려놓았고 염소들이 가만히 들어와 정복했습니다. 기쁜 탄성은 사라졌습니다.
영의 자유로움도 사라졌습니다. 오, 그들은 형식을 가지고 지탱해 나갔습니다. 결국 불길은 사그라졌고 까만 재만
남았습니다. 얼마 전 저는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 사랑이 많은 위대한 사도는 분명히 교회가 하나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잃기 시작하는 걸 보았을 것입니다.
요한1서5장3절에서,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그의 말씀) 지키는 것이라.”
그 말씀에서 하나라도 벗어나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한 발짝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
다고 말하면서, 교회에 가서는 소리도 지르고 즐거워하고 찬송하고 좋은 감정적 시간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다 끝날 때, 그들이 그 말씀 안에 있고, 말씀 안에서 행하고 살아가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그들이 다른 모든 일을 세상에서 살면서 겪게 되면 그들은 그 말씀 속에서 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생활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저는 요한이 죽기 전에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을 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 오, 에베소 교회여, 당신들에게 뭔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 말씀에
더하거나 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교묘하게 하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볼 수 있을 정도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숨겨져 있고 그들은 인간적인 추론과 이해로 오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거절하지
않으면 그것에 정복당할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늦기 전에 초대 사도시대로 오순절로 돌아가십시오!
대체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신성한 말씀 위에 세워진 그 부흥의 불길은 너무도
놀랍고 성령의 표명이 너무나 위대해서 그것이 한편으로는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좋은 의도의 걱정이 마음에
들어와 "우리가 가진 이 진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이 부흥이 계속되게 하려면 우린 뭘 할 수 있을까?"그때가 "적-그리스도 영"이 몰래 들어와 이렇게 속삭이는 때입니다. “보아라, 너는 지금 진리를 가지고 있어.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라. 조직을 만들고 네가 믿는 것으로 신조를 세워서. 그리고 그걸 교회 책자로
기록해서, 교회법으로 교인들에게 따르게 해라.”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들은 조직을 만듭니다.
그들은 결국 말씀에 더합니다. 그리고 이브가 한 마디의 잘못된 말을 취함으로 인해 죽었던 것처럼 죽습니다.
생명을 가져오는 것은 조직된 교파들의 신조들과 전통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씀에 대해서 해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들으세요. 계시록2:5그러므로 네가 어디로부터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하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네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네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분명히 뭔가가 그들 마음에서 떠났습니다. 그들은 뭔가를 잊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이 처음 시작한 시점으로 기억을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시초는 오순절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처음 그때의 영광과 능력을 잊었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그 다음엔
삶과 행동이 돌아갈 때였습니다. 그들이,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갈 때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 안에서 처리되었던 때의 순수로 돌아갈 때입니다. 미문의 능력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표류하는 것과 그의 이름을 더럽히는 그런 행위들을 묵인하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죄에서 떠나 자기 그릇을 하나님을 위해 깨끗케 지킬지어다. ~아멘~.
한때 여러분의 마음 속에, 생각 속에, 생활 속에 있던 것들을 보시고 뜨거웠던 처음 상태로 돌아가십시오.
그런데 돌아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 길은 먼저 회개의 길입니다. 죄인이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께 와야 한다면,
미지근하거나 타락했던 자들은 그 만큼 더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하세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세요.
생활로 그걸 증명하십시오. "네가 회개치 아니하면 네 촛대를 옮기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교회라면 세상에 빛을 비출 수가 없습니다. 그 교회의 빛은 어둠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의 충성스런 사자와 목자들을 데려가시고, 삯군 목자들만 남겨 두실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을 하지만 그리스도와는 완전히 상관없는 상태에 있게 될 것입니다.
빨리 회개하십시오! 주저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에베소는 주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의 존재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감소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 성은 파멸되었습니다.
그 성의 영광스러운 신전은 형태가 없는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그 땅은 물새들이 사는 습지가 되었습니다.
몇 안 되는 불신자들이 살고 있고, 단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도 남겨지지 않았습니다.
등(교회)이 그곳에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에베소가 회개를 할 수 없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회개할 수 없다는 걸 뜻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빨리 해야만 합니다.
슬퍼하면서 하나님께 진실 된 마음으로 외치는 소리여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것입니다.
* 니골라당 주의의 씨
계시록2:6.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곧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그것을 미워하노라.
그런데 니골라당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생각됩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은 안디옥에 사는 니꼴라스,
즉 유대교로 개종하고 나중에는 예루살렘에서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 된 사람을 창시자로 삼고 있던 일단의
배교자 무리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방신의 향연을 벌였고 행동은 대개 정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육욕을 정복하려면 먼저 그것을 두루 체험하여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자연히 그들은 방종에
흘러 극도의 타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무절제를 상징했던 구약에 기록된 두 이름 즉 발람과
이세벨을 그들에게 비유했습니다. 발람이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나서 그들을 정복했듯이 니꼴라스도 그렇게
했습니다. 이 무리는 소문으로는 에베소에서 쫓겨나 버가모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믿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역사적 자료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불과합니다.
그런 견해를 채택하는 것은 에베소교회를 절대적으로 오늘날과 아무 연관이 없이 역사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에서 무엇이든 시작하면 각 교회시대에서 계속되어 이어져서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높이시든지, 정죄하여 더러운 것으로서 불못에서 멸망되든지 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계시록2장2절을 잘 읽어 보십시오.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들을 쫓아내야 했습니다. 아니라면 그들이 악한 자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은 잘못
기록된 것입니다. 만일 에베소 교회가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다면, 그러면 에베소 교회는 그들을 용납하고 있었던
게 됩니다. 자, 계시록2장6절을 보면 에베소 교회는 그들의 행위를 미워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니골라당 조직은 그들의 행위를 하면서 첫째 시대의 일부로서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진실된 성도들에게는 미움을 받았지만 그 사람들은 무력한 존재로는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에베소에서 앞으로 계속되어 불못에 까지 또 불못 속으로 가게 될 교리가 될 씨들을 봅니다.
이 니골라당(Nicolaitanes)은 무엇입니까? 그 말은 두개의 헬라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니카오(Nikao)는 정복하다,
라오스(Laos)는 평신도를 뜻합니다. 명백한 사실로, 그 초기교회에서 누군가가 평신도를 정복하는 어떤 일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평신도가 정복된다면 그렇게 하는 어떤 "권위자"가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 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던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때 진행되었던 일과 오늘날 진행 중인 일은 니골라당이 뜻하는 그대로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반대되는 상태에 이르는 복종을 지금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알아보려고 하는 진짜 의미를 얻기 위해, 저는 여러분들에게 종교는(영적인 문제들도 포함해서) 서로
얽혀있지만 흑과 백처럼 정반대인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항상 명심하시라고 주의를 드려야만 하겠습니다.
종교와 영적세계는 에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들 두 나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둘 다 동산 중앙에 서 있었는데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 가지는 서로 휘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 안에 그 동일한 역설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짜 것과 가짜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 포도나무가 교회를 만듭니다. 그들은 나란히 자라고 있는 밀과 가라지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진짜이고, 다른 하나는 가짜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모두에게 얘기할 것이고, 각자에
관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교회들이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그런데 택함 받은 자들만이
어느 것이 참된 성령인지를 정말로 알 것입니다. 택함 받은 자들만이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복음24:24.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 받은 자들을 속이리라.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 (오순절 후 아주 짧은 기간) 가짜
포도나무는 진짜 포도나무 주위를 휘감았고, 우리는 니골라당의 이런 행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은 진짜 포도나무를 대항해 싸우다가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럼 그 교회의 영적인 징후는 어땠습니까?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첫 사랑을 버린 것은 우리에게는 그것의 시작인 오순절로부터
이탈된 것을 계시해 주는 것입니다. 명백하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 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 즉
성령의 통제로부터 벗어나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는 걸 뜻합니다.
이 일은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낸 후에 일어났던 일과 맥을 같이하는 똑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그들을 불과 구름과 예언적 선언과 기적과 표적과 하나님이 주신 이적들로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이 갖춰 주신” “하나님이 보내
신” 사람들과 성령의 움직임으로 지배를 받는 전 진영에 의하여 성취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거역하여 인간적인 규칙들과 신조들을 두고 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 줄 왕을 원하는 단개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배역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똑같이 되고자 했고 완전한 배교와 망각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첫째 교회 시대의 출발이었고 마침내 마지막 일곱 번째 교회 시대에는 성령이 완전히
거절당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멸해야만 할 정도가 될 때까지 점점 더 악화될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십시오. 그것은 처음에는 니골라당의 행위라고 불리웠습니다.
다음 버가모 교회에서 그것은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꿀 수
없는 길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침내는 모든 교회를 장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쪽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은 외면당했고, 교회문 밖으로 밀려나 들어오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처럼 지혜롭고, 겸손하게, 너무도 조용하게, 아주 사랑인 것처럼,
하나도 거슬리지 않게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보기에 너무도 좋았습니다. 그것은 듣기에 너무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먹이를 감고 죄어 죽이는 뱀처럼, 꽉 죄어 교회 안에 있던 모든 호흡을 차단하고
영적인 것을 죽였습니다. 오, 그 거짓 포도나무는 교묘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을 붙잡기 전까지는 광명의 천사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갑니다. 그런데 저는 지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가
믿는 건 사람들의 지도가 아닙니다. 저는 말씀을 통한 성령의 지도를 믿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성령에 의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정해 두심과 그들이 교회를 질서 있게 지키리라는 걸 믿습니다.
저는 그걸 믿습니다. 저는 또 교회는 하나님께서 맡으라고 보내신 사람들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다스림은 말씀에 의한 다스림입니다. 그래서 실상은 사람들이 다스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과 성령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13:7.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깊이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따르라. 그때 일어나고 있었던 일을 보십시오. 그 거짓 포도나무는 일단 발 붙일데를
차지하고 나면 인간에 의한 통치는 옳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또 교회는 지배하에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방식을 행하는 대신에 사람들의 지배를 가르쳤고, 그들은 권위를 취해서 모든
영적인 힘을 자기들 손으로 가리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거룩한 성직자 직분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들은 옛날 아론의 체제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중보자 자격을 대신해서 자기들이 그 역할을 취했기
때문에 적-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걸 미워하셨습니다. 에베소 인들은 그걸 미워했습니다.
믿는 자라면 누구나 역시 그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 동일한 일이 시대마다 활동해 왔고 지금은 가장 악화된
상태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장님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만든 조직이었습니다.
조직은 사람들을 분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여야 되는데, 모두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모두 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고 모두 다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참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으뜸 됨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지배력을 장악했고 주교들은 대주교가 되었고 직함을 갖도록
만들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에 자기 자신들의 교리들을 가르쳤습니다.
급기야 그들의 말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경배하는 방식이 오순절의 초기 시절과는 전혀
닮은 데가 없는 때가 왔습니다. 이 행위들은 교황직 계승의 시초였습니다. 교황직 계승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는 수단으로서의 "교회의 일원됨"에 한 발짝 쉽고 빠르게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의 신조로 축소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그의 영으로 교회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2장4절을 어떤 사람들이 읽는 식으로 읽으신다면 그것을 이런 식으로 읽으시게 될 것입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한 사제가 성체를 가지고 나와 "혀를 내밀으세요"하고 말하고 혀에 성체를 올려놓더라.
그가 직접 포도주를 마시고 `여러분은 이제 성령을 받으셨습니다.'라고 말하더라." 그게 믿어지십니까?
그런데 니골라당이 현재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 쓰지 마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여러분에게 해석해 주어야만 합니다.
성경은 완성되지 않은 책입니다. 시대마다 개정되야 합니다. 우리가 나중에 뭐가 바뀌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진리에 대해 논쟁이 생길 때, "하나님은 참되고, 사람은 다 거짓되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이 얼마나 반대되는 말입니까?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말씀도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실제로는 아닌데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하지만 실제 그들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슬픈 이야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물 침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때나 오순절 후에는 그들은 물속에 푹
잠겨 지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부인하거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흰 장갑에 물을 묻혀서 머리에 갖다 대는 약식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하는데, 마치 그 직함들이 이름인 것처럼, 그리고 유일한 한 분 대신 세 하나님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조직 속에 머물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한다는 성경적인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전하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쫓겨날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보다도 그들의 교리와 전통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계속 그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선지자였습니다.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그가
전한 복음과 다르게 전하는 자는 누구나 저주를 받으리라. 말했다면, 지금은 나태함에서 깨어날 때이며, 처음을
기억할 때이며, 첫 사랑을 회복할 때입니다.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니골라당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입니다.
행20:27.이는 내가 지금까지 회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너희에게 밝히 말하였기 때문이라.
28.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29.내가 이것을 아노니 곧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30.또 너희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
바울은 그런 일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시대에 살고 있는 마지막 교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교묘하게 들어와 거짓 교리들을
가지고 장악할 성직자들에 대해서 미리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사람들에게서 성령 사역에 속한
어떤 부분에서라도 떨어지게 할 다른 경배 방식을 실행하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보면 성령으로
자유롭고 성령 충만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서 우리는 평신도들 가운데는 자유가 그리 많이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최상의 것은 몇몇 영감을 받아 설교하는 설교자들 뿐입니다.
그들이 설교하는 동안 양떼는 앉아서 그것을 흡수하려고 애씁니다. 이것은 모두가 한데 모였을 때,
모두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모두가 영적인 경배에 참여했다고 말한 바울의 사정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단체는 이 교훈을 성경으로부터나 역사로부터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부흥을 베푸셨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들은 그들이 나온 바로 그것으로 조직을 만들어서 자신들을 그것에 묶습니다.
루터가 카톨릭교에서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잠시 동안 자유로운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터가 죽자 사람들은 루터가 믿었다고 생각되는 것을 가지고 그것을 조직했고 자신들의 신조들과
사상들을 내세웠고 그들의 말에 반대되게 말하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약간 다른 양상을 가지고 카톨릭교로 곧장 돌아갔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계시록13장에서 음녀에게는 딸이 많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딸들은 어머니와 똑같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제쳐두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고 평신도를 정복하고 평신도들이 그들을 통해서나
마귀에게 나온 불신의 청사진에 불과한 그들의 패턴을 통해서가 아니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영적으로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깜깜한 광야에 있습니다.
우리는 첫 교회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방황하고 있습니까. 오순절은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고 말씀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교황직 계승은 말씀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방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교회에 그분의 인도자들을 세우신다는 진리를 불합리하게 대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역사가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그들은 거짓말을 하며 그랬다고 말합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역사는 읽었지만 그것을 흘려버리고 사람들의 거짓말을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찾을 수 있습니까? 아무도 그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행해졌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여러분 `첨가된 계시'를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실 것이라고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이미 주어진 계시에 반대되는 계시를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연옥'을 찾으실 수 있습니까?
어디서 `미사'를 찾으실 수 있습니까? 어디서 `지옥에서 나오기 위해 돈을 내라'는 말을 찾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씀에는 없습니다. 인간들이 자기들 자신의 책에 기록했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장악하고 두려움을 이용해
그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사람이 마치 자기가 하나님 인양 용서할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찾을 수 있습니까? "사악한 이리들"이란 말은 그들을 충분히 묘사할 정도로 강한 표현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십시오. 때가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하십시오. 벽에 쓴 손 글씨를 보십시오.
그것은 심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성한 그릇들이 속되게 쓰여져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던 것처럼,
지금은 신성한 하나님의 말씀이 속되게 쓰여지고 성령이 근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심판이 여기 바로 문 앞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회개하십시오! 회개하십시오! 오순절로 돌아가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왜 헛되게 죽으려고 하십니까?
* 성령의 음성.
계시록2:7.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 한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을 주어 먹게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말씀을 듣거나 읽을 사람들은 수백만 명이
될 겁니다. 그러나 몇 명이나 그 말에 귀를 기울일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귀 기울여 진리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자는 그에게 빛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성령을 찾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에 귀를 열고 있으면
하나님의 영이 그 말씀을 여러분에게 생생한 말씀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진리를 가르쳐 드릴 수는 있지만 여러분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고자 하고 마음에 받고자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계시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잘 보십시오, 성경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복수이지 단수가 아닙니다.
성령은 요한이 이것을 당시의 에베소 교회만을 위해서 또는 첫째 시대만을 위해서 쓰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전 교회 시대를 위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것은 여러 가지가 시작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창세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것은 성경전서를 통해 그대로 계속되다가 마침내는
계시록에서 끝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에서 시작하는 이 교회는 라오디게아 시대에서 끝맺을 때까지
전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청사진입니다. 그것을 자세히 지켜보십시오.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은 시작에 불과하므로 전 시대는 주의할지어다. 한 번 심어진 그 작은 나무는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각 시대를 거치면서 자라갑니다. 그러면, 이것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각 시대마다 각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성령이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 약속된 보상.
계시록2:7...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것은 전 시대의 모든 이기는 자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이긴 자에게 주시는 장래의 보상입니다.
전장으로의 마지막 소집 명령이 내려질 때, 우리가 갑옷을 내려놓게 될 때,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낙원에서 쉬게
될 것이며 우리의 분깃은 생명나무일 것입니다, 영원히. "생명나무" 이 말은 정말로 아름다운 비유가 아닙니까?
그것은 창세기에서 세 번 계시록에서 세 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섯 군데 모두 동일한 나무를 말하고 있고
똑같은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나무는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는 그 나무 자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아 봐야겠습니다. 민수기24장6절에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묘사할 때, 발람은 그들은 "여호와의 심으신 백향목“
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전서를 통해 나무는 시편1편에서처럼 사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생명나무는 생명의 사람이어야만 하는데, 그는 예수님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중앙에 두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생명 나무였고,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인간은 생명나무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다른 나무를 먹지 말도록 되어 있었고 만지면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다른 나무에 참예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죽음이 그 죄로 인하여 그에게 들어왔고, 그는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옛날 에덴에 있던 나무, 생명의 근원이던 그 나무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요한복음6~8장에 걸쳐, 예수님은 자신을 영생의 근원으로 기술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자신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고 사람이 자기를 먹으면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을 아신다고 하셨고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존재하셨다고 선언했습니다.
친히 생수를 주시겠고, 사람이 그걸 마시면 결코 다시 목마르지 아니하겠고 영원히 살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대한 자존자로 보이셨습니다. 그는 생명의 떡이고 생명의 우물이며, 영원하신 자시며 생명
나무이십니다. 예수님은 저 옛날 에덴에서 동산 중앙에 계셨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의 낙원중앙에 계실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거기에 두셨던 나머지 나무들과 다름없는 두 나무에 불과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는 분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요한이 도끼가 모든 나무의 뿌리에 놓여 있다고 외쳤을 때,
그는 단순히 자연적인 나무들에 대해 말씀하는 게 아니라 영적인 원리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요한1서5장11절.
에서 "또 증거는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요한복음5장40절에서 말씀하시길,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그래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명백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영원한 생명은 아들 안에 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요한1서5:12.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성경기록은 변하거나 제하여지거나 보태지지 않으므로 생명이 아들 안에
있다는 기록은 사실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산에 있는 나무는 예수님이어야만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생명나무가 사람이라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역시 사람입니다. 그것을 달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자와 악한 자가 에덴동산 가운데 함께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에스겔28장13절 상반부 말씀에서,
"네가(사탄)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여기서 우리는 `뱀의 씨'의 참된 계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 여기 있습니다. 말씀은 이브가 뱀에게 미혹 당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브는 사실 뱀의 미혹에 넘어갔습니다. 고린도후서11:3...뱀이 자기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 같이...
창세기3장1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뱀은 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의 어떤 짐승보다 더 간교하더라."
이 짐승 뱀은 인간과 너무도 비슷해서(하지만 순전히 동물이었습니다.) 추론도 하고 말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직립 동물이었고 침팬지와 사람의 중간에 있는 피조물이었습니다. 사람에 좀 더 가까운 동물이었습니다.
인간과 너무도 흡사해서 그 씨는 여자의 것과 섞일 수 있었습니다. 뱀이 그녀를 미혹해서 잉태케 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자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짐승보다 뱀을 더욱 저주해 현재의 뱀처럼 기어 다니도록 뱀 안에 있는
모든 뼈를 바꾸셨습니다. 더 이상 인간과 접촉할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씨(가인)는 이미 이브의 태를 통해서 심겨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 가운데 하나입니다.
과학은 온갖 방법을 가지고, 노력해도 인간과 짐승을 이어주는 그 없어진 고리를 절대로 찾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창세기에서 처리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영리하여 인간과 동물과의 유사성(연관성)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진화를 통해 증명하려고 노력합니다. 진화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에덴에서 인간과 동물의 피가 섞였습니다. 그것은 에덴에서의 인간이 타락한 최초의 사건으로 다시는 일어 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감춰져 온 하나님의 비밀들 중의 하나인데, 여기서 그것이 드러났습니다.
그 일은 이브가 사망을 영접하기 위해 생명을 버렸던 저 옛날 에덴의 중앙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창세기3:14.주 하나님께서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일을 행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평생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나님께서 동산에서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주의해
보십시오. 창세기3:15.내가 너(뱀)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뱀의 후손)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여자의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우리는 여자가 씨를
가졌다고 한 말씀을 인정한다면, 뱀도 정녕 씨를 가졌음에 틀림없습니다. 만약 여자의 씨가 남자와의 관계없이
태어난 남자 아이였다면, 뱀의 씨도 똑같은 패턴으로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은 남자 인간의 수단이 없이 또
다른 남자가 태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자의 씨가 인간적인 결합 없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온 그리스도였음을
모르는 성경 연구가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예고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사탄에 대적하여 성취할 것에 관한 예언이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거기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했고, 반면 사탄은 주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뱀의 진짜 씨가 땅에 뿌려졌는지에 대한 계시입니다.
누가복음1:26~35절 말씀에는 여자의 씨가 남자의 수단 없이 육신으로 표명되게 되었는지 잘 얘기하고 있습니다.
26.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에 의해 나사렛이라 하는 갈릴리의 동네로 보내어져서 27.다윗의 집에
속한 요셉이라는 이름의 남자와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렀는데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더라. 28.그 천사가 들어가
그녀에게 이르러 말하되, 크게 은총을 입은 자여, 평안 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니 네가 여자들 가운데
복이 있도다, 하매 29.그녀가 그를 보고 그가 하는 말에 불안해하며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인사인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니 30.그 천사가 그녀에게 이르되, 마리아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총을
얻었느니라. 31.보라 네가 네 태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 32.그가 크게 되고 가장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에게 주시리니 33.그가 영원토록
야곱의 집에 통치하며 그의 왕국이 무궁하리라, 하니라. 34.이에 마리아가 천사에게 이르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매 35.천사가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께서 네게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이의 권능이 너를 덮으시리니 그런즉 또한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
여자의 씨(후손)를 통해 하나님이 실제로 자신을 인간의 육 안에 오시기 위해 계획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뱀의 씨도 사탄이 자기가 인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발견한 실제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자신을 낳았던 식으로 자신을 낳을 수가 없는데,(창조 받은 영적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그가 어떻게 자신의 씨를 심웠고, 자신을 인류 안으로 진입시켜, 자신을 알렸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탄이 `뱀'이라 불리운다는 사실을 상기하십시오. 뱀을 통로로 그의 씨(후손)를 인류 안으로 진입시킨 것입니다.
아담이 육적으로 이브를 알기 이전에, 뱀이 그보다 앞서 알아버렸습니다. 거기서 태어난 자가 가인이었습니다.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습니다.(악한 자에게서 태어났습니다, 형성되었습니다.)
요한1서3:12.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 그는 저 사악한 자에게 속하여…성경 어디에서도 아담에 대해 사악한 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3장38절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자기 아버지의 성격을 나타냈습니다. 사망을 가져온 자요, 살인자였습니다. 그의 아비 뱀을 닮았습니다.
가인이 창세기4:5, 9, 13, 14절에서 전능하신 이와 대면했을 때 하나님께 보인 심한 저항은 성격상 절대적으로
비인간적인 그를 비추고 있고 우리가 성서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탄의 대결에 관해 가지고 있는 어느 이야기라도
능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5.가인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갖지 아니하셨으므로 가인이 몹시 분을 내고 그의
얼굴빛이 변하니라. 9.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 하매 13.가인이 주께 아뢰되, 내 형벌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니이다. 14.보소서, 주께서 이날 지면으로부터 나를 쫓아내셨사온 즉 내가 주의 얼굴을 떠나
숨으리이다. 내가 땅에서 도망하는 자가 되고 방랑하는 자가 되리니 나를 찾는 모든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나님의 기록이 가인과 아벨과 셋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보이고 있는 정확한 방법을 잘 보십시오.
창세기4:1.아담이 자기 아내 이브를 알매 이브가 수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주로부터 남자를 얻었다.
하니라. 2.이브가 또 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창세기4: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를 알매 그녀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아담의 육적인 행위 두 번으로 세 명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성경은 정확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인 이상,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우리에게 빛을 비추기 위한 기록입니다. 아담에 의한 두 번의 행위로부터 세 명의 아들이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은 확실하게 그들 셋 중 하나는 아담의 아들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뭔가를 보이시기 위해서 이같이 정확한 방식으로 이것을 기록하셨습니다.
사실인즉 이브가 자궁 안에 별도의 임신으로 말미암아 두 명의 아들 즉 쌍둥이를 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브는 아벨의 임신에 앞서 가인을 잉태하여, 쌍둥이를 배고 있었습니다. 그들 쌍둥이들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나 그렇듯 완벽한 예표입니다. 이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다음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의학상의 기록에는 몇 일간의 간격을 두고 난자가 수정 작용을 하여 별도의 난자와 별도의 수정으로 쌍둥이를
배고 있는 여러 여성들의 사례가 비일비재하며 그뿐 아니라 몇몇 기록은 쌍둥이의 아버지가 서로 다른 경우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에 세계적으로 화제 거리가 되었던 노르웨이인인 산모는 자기 남편에게 자기와 그녀의
쌍동이, 한 아이는 백인이었고, 한 아이는 흑인인데, 그들을 위해 생계비를 지불해 달라 법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흑인인 정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 두 아이의 임신은 약 삼 주의 간격을 두고 있었습니다.
1963년 텍사스 주 버몬트에서 그런 기록이 다시 여러 날 간격으로 임신이 되어 한 번에 여러 명을 낳는 출산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너무 많아서 그 산모는 한 아이를 낳는 도중에 거의 죽을 뻔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까요? 왜 뱀의 씨(후손)가 이런 식으로 와야만 했을까요?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성령)의 안식할 곳은 성전인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7:46.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총을 입고 야곱의
하나님을 위한 한 성막을 찾기를 원하였으나 47.솔로몬이 그분을 위하여 한 집을 건축하였느니라. 48.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께서는 선지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르기를,
49.주가 말하노라. 하늘은 나의 왕좌요, 땅은 나의 발받침이라. 너희가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짓고자하느냐? 혹은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떤 것이냐? 50.이 모든 것을 내 손이 만들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니니라. 51.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않은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는도다. 사탄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이 하시듯이 사람 안에 거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권리를 자신에게 예정해 두셨습니다. 사탄은 그래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창조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사탄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길은 에덴에서 뱀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가다라에서 악한 영으로 돼지 떼들 속에 들어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동물 안에 들어가시지 않지만, 사탄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그렇게 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할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서 아이를 가지셨던 것처럼 이브에게서 직접 아이를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뱀 안에 들어가 이브를 속이고, 유혹했고 이브에게서 사탄의 대리로서 아이를 얻고야 말았습니다.
가인은 사탄의 종교적인 영적인 성격과 뱀의 동물적인(관능적이고 육욕적인)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다고 말한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는 악한 자였습니다.
이제 저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확실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임신 중인 동물의 태로부터 태세포를 꺼내어 인간 속에 주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렇게 하면 그 동물의 갑상선 세포들은 인간의 갑상선으로 곧장 연결되고, 동물의 신장 세포는 인간의 신장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깨달으셨습니까? 어떤 유전 정보들은 그들 동물의 세포를
정확한 위치까지 인도합니다. 그 정보는 그들 세포를 받아들이고 그 세포들을 올바른 곳에 정확히 배치시킵니다.
동물과 사람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둘이 서로 섞일 수도 재생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단 한번 시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 에덴동산에서 그 혼합이 일어났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그 화학적 유사성이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저 옛날 에덴동산에서는 뱀은 두 발로 선 피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뱀은 인간과 흡사했습니다. 거의 인간에 좀 더 가까웠습니다. 사탄은 이브를 속이는데 사용코자 뱀의 육체적인
특징을 이용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뱀의 그 모양을 완전히 바꾸어 더 이상 결합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어떤 짐승도 사람과 섞일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유사성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제가 이 주제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을 구체화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왜, 우리가 “뱀의 씨”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필요성을 깨달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동산 중앙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시작하겠습니다.
생명나무는 예수님이었습니다. 다른 한 나무는 지식을 알게 하는 나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사탄입니다.
그 나무의 열매에서 나온 것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두 나무는 사람과 어떤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이 에덴동산 중앙에서 인간의 선택을 위해서 서 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 나무들은 인류와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과 목적 속에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라 결코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는 다 맞죠? 말씀은 명확하게 이 땅이 세워지기도 전부터 하나님의 목적은 그의 영원한 생명을
인간과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4.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5.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6.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느니라. 그 은혜 안에서 그분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받아주셨으니 7.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8.그 은혜 안에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분별을 넘치게 하사 9.친히
자신 속에서 작정하신 자신의 크신 기쁨을 따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10.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 11.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계시록13:8.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에게(사탄에게) 경배하리라."
영원한 생명은 "육신으로 표명된 하나님"을 통한 길 외에는 다른 길로는 공유될 수도 없었고,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영원한 예정된 목적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구속의 계획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작정하신 변하지 않는 영원한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이제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구세주로서, 하나님은 구세주가 될 이유와 목적을 자신에게 주기 위해서는
구원을 필요로 할 인간을 예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백 퍼센트 옳고 수많은 성서구절들이 증거 하는데,
로마서11:36.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그분께로 돌아가나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인간은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에 곧장 와서 참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나무의 영원한 생명은 먼저 육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을 일으키고 구원하기 전에,
하나님은 일으켜 구원할 죄인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인간은 타락해야 했습니다. 사탄에 의해 야기 될 타락은
타락 당할 수 있는 육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사탄도 육을 통해 와야 했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가 타락한 자들을
회복하려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실 것처럼, 타락을 만들기 위해 인간의 육체를 통해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뱀이라는 동물이 있었는데, 인간과 너무 흡사해 사탄이 그 짐승 안으로 들어가 그 짐승을 통하여,
인간의 육에 이르고 타락을 유발하고 그것으로 자신을 인류 속에 진입시킬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언젠가 오셔서 자신을 인류 속에, 인간의 육체 속으로 자신을 주입시켜서, 우리가 그의 영광스러운 몸
같은 몸을 가지게 할 부활이 있게 할 정도까지, 자신을 인류 속에 주입하실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기 에덴동산에서 행하신 일은 그분의 미리 아심에 의해서 예정하신 계획이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 필요한 일을 했을 때, 그때 인간은 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에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동물 하나가(동물이 타락을 유발했지 않습니까?) 잡혀
에덴동산에서 피가 뿌려졌을 때에, 그때서야 하나님은 다시금 인간과 함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다음엔 하나님이 육으로 나타나시고 그가 당하신 고난을 통해 타락한 인간을 회복하시고 영원한 생명에
참예하는 자로 만들 날이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여러분들은 뱀의 씨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이브가 먹은 것은 사과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브가 먹은 것은 씨(피)를 섞음으로
인한 인류의 타락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하나의 질문을 대답하고 나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기기 쉽다는
것을 아는데, 사람들은 "이브가 그렇게 타락했다면, 아담은 무슨 일을 해서 하나님이 아담을 꾸짖었죠?"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티끌 만한 별 먼지가
생성되기 전에, 그 말씀(하나님의 법)은 우리 성경에 있는 바와 꼭 같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만약 여자가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와 살면 간음녀이고, 더 이상 결혼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남편은 그녀를 다시 데리고 오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말씀은
에덴동산에서도 살아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이브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담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무튼 그 일을 했습니다.
이브는 아담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기꺼이 그녀의 책임을 자기가 맡았습니다.
아담은 이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브는 아담의 일부였습니다. 결국 이브는 아담의 아이를 잉태했습니다.
아담은 이브가 잉태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아담은 인류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브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브를 얻기 위해 인류를 죄에 팔아 넘겼습니다.
그래서 그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오염되어 있는 인류의 조상이 될 아들들입니다.
그런데 기록은 그들에 관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기록을 읽어 보십시오.
유다서1:14.아담으로부터 일곱 번째 사람인 에녹도 이들에 관해 예언하여 이르되,
창세기5장은 아담의 계보를 다룬 장입니다. 창세기5장은 그 계보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 아담, 2. 셋, 3. 에노스, 4. 게난, 5. 마할랄렐, 6. 야렛, 7. 에녹.
보시면 가인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아담의 노선은 셋을 통해 내려옵니다. 만약 가인이 아담의 자식이었으면,
장자권의 법은 가인에게 계보에 오를 권리를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주의 깊게 주목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창세기5:3.아담이 일백 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더라.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디에서도 가인이 아담의 형상을 닮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아담의 아들이라면
닮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재생산의 법칙은 각자 닮은 형상을 낳으리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와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계보에서 가인은 빠져 있다는 사실을 또한 믿어야만 합니다.
가인이 아담의 아들이었다면 어딘가에 가인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 아담의 아들, 가인"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 없으므로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 그것은 비밀입니다. 아무에게나 알려질 수 없는 하나님께서 숨겨 놓으신 신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도록 커튼으로 막아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그 막아 놓았던 커튼은 열릴 것입니다.
모든 씨가 시작된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베일에 쌓여 있었던 그 사건들이 사람들의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것들은 오직 성령의 계시에 의해서 각 각의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만 알려 질 것입니다.
물론 성경 연구가들은 오랫동안 두 노선의 인간을 제시해오고 있습니다.
한 노선은 셋의 후손들에게서 발견된 경건한 노선이고 다른 하나는 가인에 의해 창시된 경건치 않은 노선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가들이 아벨과 셋은 영적이고 경건한 노선에 있는 사람인 반면 가인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는지
우리에게 말해준 적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사실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대적하며 강력하게 맞섰기 때문에 악한 자로 나옵니다.
성경에서 가인처럼 어느 누구도 그렇게 악하게는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성경은 서로 논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 기록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기름부음을 받은 눈이 보도록 거기에 있습니다.
뭔가 목적이 있어서 거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 말씀 안에서는 말합니다.
창세기3:20.아담이 자기 아내의 이름을 이브라 하였으니 이는 이브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라.
그런데 성경은 한 번도 아담이 모든 산 자의 아버지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함축이 창세기3:20절에 놓여 있지 않다면, 왜 이브는 모든 자의 어미라고 언급이 되고, 아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이브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였지만, 아담은 모든 산 자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4장1절에서 이브는 "내가 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아담이 가인의 아버지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4:25에서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하나님이 내게 다른 씨를 정하셨다.(appointed)“
고 말합니다. 이브는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다른 씨를 주셨다고(given)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신 씨는 그리스도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주어졌습니다. 이 아들 셋은 아벨 대신에 정해준 아들이었습니다. 이브는 아담에 의해서
나온 아들을 인정합니다. 반면 가인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유는 그가 뱀에 의해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브가 아벨을 대신한 다른 씨를 말하는데 이는 가인이 아벨과 다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아벨과 가인이 똑같은 아버지를 통해 나왔다면 이브는, "내게 더 많은 씨가 주어졌다,"고
말했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읽는 것을 모두 다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1963년 3월 1일자 라이프 지가 심리학자들이 우리가 지금
토론하고 있는 동일한 것을 말한 것을 보도하고 있는 것은 정말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 모든 심리학자들이 서로 의견을 같이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뱀에 대한 공포감은 의식적인 혐오감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혐오감입니다. 만약 그것이 자연적인 공포감이라면
사람들은 고릴라나 사자 울타리 앞에서 기뻐 흥분한 상태로 서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무의식적 생각들은 그들로
하여금 계속 뱀을 지켜보게 합니다. 뱀의 매력은 깨닫지 못하지만 관능적입니다.
시대들을 통해 있어온 것은 세대가 바뀌어도 똑같은 일을 경험해온 사람들에 의해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뱀은 혐오스럽지만 매력적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뱀은 항상 좋기도 하면서 나쁘기도 한 것을 나타내
왔습니다. 전 시대를 통해 뱀은 남근의 상징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의 묘사와 똑같이, 우리는 뱀이 격렬한 악의
화신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개한 각양각색의 부족들 사이에서 뱀이 성행위와 관련되고 종종 성행위와 결합되어
숭배 받는 것은 거의 만연된 일입니다. 성학(性學)의 연구는 여러 경우에서 그 사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이 교육도 받지 않았고 성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 어디서 그것을 알아냈는지
알고 싶습니다. 하지만 홍수 이야기가 세계전역에 알려져 있듯 인간의 타락의 진실도 알려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던 일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제게 이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브에게 뱀을 조심하라거나 뱀이 그녀를 유혹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까? 라고요.
자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해 한 마디도 말씀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핵심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선 단순히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에 참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에 참예하라.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은 다 사망이었습니다.
이브는 말씀 하나가 바뀌어 지게 허락했고 바로 그때 사탄(뱀)이 그녀를 취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열매를 따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보아라 그 말은 맞다고 할 수 있다. 네가 너무 많이 따 놓으면 썩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여기 열매를
보관할 방법이 있다. 그러니 따고 싶은 만큼 다 딸 수 있다. 그러면 알다시피, 넌 네 식과 하나님의 식을 동시에
가질 수가 있어,"하고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바로 거기서 이브를 이겼을 것입니다. 율법의 한 점을 어긴
자는 전 율법을 어긴 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소홀히 다루지 마십시오.
그 일이 주후 170년 경에 끝이 날 때까지 에베소 시대에서 일어났던 일이 바로 그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무엇을 만들어냈습니까? 지식의 나무는 사망을 낳았습니다.
가인은 그의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죽였습니다. 그 일은 패턴을 정해 두었습니다.
그 일은 선지자들이 말한 대로 모든 일들의 회복이 있기까지는 그 패턴을 지킬 것입니다.
지식의 나무는 영리한 사람들, 명성이 높은 사람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길은 사망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단순하지만 영적인 생각을 가지고 말씀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자연을 기대며 조용히 흙을 일구고 부보다는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뱀의 씨는 엄청난 상업과 놀라운 발명품들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것 모두는 사망을 몰고 왔습니다.
그들의 탄약과 원자탄은 전쟁시에 살상을 하고 평화시에도 그들의 기계적인 발명품들, 자동차 같은 것들이,
난리시 전쟁의 발명품들이 멸하는 것보다도 평화로운 때에 더 많은 이들을 죽입니다. 사망과 파멸은 지식의
수고한 열매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아비 마귀와 자기 조상 가인과 같습니다. 그들 둘은 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갑니다.
그들은 가라지가 밀과 섞이듯이 의인들과 섞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패시키고 니골라당 종교를 만듭니다.
그들은 가인이 아벨을 죽였듯이 하나님의 씨를 멸하고자 온갖 방법으로 독을 퍼뜨립니다. 그들의 눈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은 결코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망가운데서도 그들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결 론.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것을 생각만 해도 얼마나 전율이 흐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접근할 수 없었던 에덴동산에 있는 그 생명나무는 이제 이긴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것을 지키던 그룹의 화염검(율법)은 이제 칼집에 꽂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칼날이 어린 양의 피로 피투성이가 되기 전까지는 칼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왜 생명나무가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 부인되었는데, 이제는 다시 허락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 사실을
잠시 묵상해 봅시다. 자기 피조물인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자신의 말씀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를 보호하고, 살아갈 수 있는 말씀을 주셨는데, 말씀에 의해 산 생명은 표현된
말씀이 될 것입니다. 사실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담이 그 말씀을 지키며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모든 말씀을 지키며 살아야 했는데 한 말씀을 부인함으로 실패했습니다. 그 다음에 모세가 일어났습니다.
모세는 얼마나 위대하고 강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러나 모세도 모든 말씀을 지키며 살지 못했습니다.
장차 오실 대 선지자의 예표였던 그 선지자는 분노로 인해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그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또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자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인 다윗이 일어났습니다.
구약에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선지자이며, 제사장인 이 세 가지 직분을 가진 사람은 오직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험을 받았을 때 간음함으로 실패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실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충만해지자, 한 사람,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도 또한 그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지 보기 위해 시험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의 계획을 성사시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살았던 분이 오셨고,
하나님의 창조의 근원이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표명시키고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 표명된 완전하신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완전한 희생제물을 위한 하나님의 완전한 어린 양이
되어서. “나무” 위에서 그는 저주받고, 상처를 입고 죽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에 의해서, 그분의 덕분에
이제는 믿는 자들이 생명나무의 과실에 참여하여 먹을 수 있고, 그리고 값없이 주어진 그 생명이 우리가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표명(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그로 말미암아 이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낙원과 예수 그리스도와 끊임없이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이제는 더 이상 결코 그에게서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가 가는 곳에 그의 신부도 갈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것을 공동상속자 관계에서 그의 사랑하는 자와 나눕니다.
비밀스런 일들은 나타내질 것입니다. 어둠 속에 있던 일들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알던 그대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과 같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어린 양의 피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의 말씀으로 이긴 자들의 유업입니다.
굽었던 길들이 곧게 펴지고, 영원 속에서 그분과 함께 있게 될 그 날을 우리는 얼마나 고대하는지 모릅니다.
그날이 어서 오기를, 우리가 그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서두르고 그것으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나눠가짐에
합당함을 증명하기를 기도드립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첫 에베소 교회시대가 성령이 하시는 음성을 듣지 않았던 일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처음에는 올바르게 시작 되었지만 성령의 말씀 대신에 사람들의 가르침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마지막 시대에 한 무리가 일어날 것인데, 마지막 때의 진실한 신부입니다.
신부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명된 편지로 이 시대 읽혀지게 될 것입니다.
캄캄한 어둠이 덮이는 날에는 복음의 빛이 순수한 말씀에 의해 다시 되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환영하기 위해 오순절의 권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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