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년 후백제의 침입으로 신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신라 경애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원병 요청하여 후백제와 일전을 벌였다. 이때 고려군에게 풍전위기에 처한 왕건을 신숭겸이 살리기 위해 왕건의 모습과 비슷하게 꾸며 적군의 눈을 속였고, 이틈을 타 왕건은 지묘동 북쪽의 산으로 피신해 화를 면했다.
이후 왕건은 피신하면서 동화사→염불암(일인석)→옛 지묘사→파군재→봉무동(독좌암)→불로동→도동측배수림→평광동→시랑이→매여동→안심→반야월→고모동(팔현마을)→고모령→조족산 자락→법이산→화암→신천→용두산→산성산입구→은적사(왕굴<은적굴>)→안일사→왕굴→대덕산→나팔바위→달비골 임휴사에서 김천 황악산과 철원을 거쳐 개경으로 환도했다.
그중에 염불암의 일인석을 관찰하기 위해 며칠 전 팔공산을 향했다. 비로봉 능선을 타고 다시 염불암으로 내려와 스님에게 바위를 물었으나 내겐 정답이 아니었다. 하산시간이 바빠 동화사를 거쳐 내려와야 했다.
팔공산 신림봉을 오른 사람들
동봉을 오르다가 뒤돌아 본 마운틴 블루 모습
능선을 오르면서 내려보이는 염불암
비로봉과 통신시설
팔공산의 최대 서어나무 군락지를 발견했다. 기사 자료가 되지만...
염불암 청석탑 - 벼루를 만드는 흑색점판암으로 만들었다. 지붕돌로 포갠 10층탑이 보인다.
염불암 극락전 뒷편에 큰 바위가 있다. 서쪽면에 마애불좌상, 남쪽면에 보살좌상이 있다.
이 염불암 인근에 태조 왕건이 앉았던 일인석을 찾았으나 아는 분이 없어 아쉬웠다. 당시 왕건이 피신해 이곳의 바위에 앉았을 때 큰 스님은 이미 왕이 온 것을 알면서도 누구가를 넌지시 믈었다는 얘기가 있는 곳이다.
동화사와 염불암지 사이의 소나무 숲, 나무의 키가 30~40m 정도다.
동화사 대웅전, 뒤편에 금괴가 묻혀있어 결국 문화재청으로부터 발굴허가를 득했다고...
통일약사대불, 국민안녕과 민족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1992년에 완공한 높이 33m의 대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