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진 왕희지의 행서첩이다. 동진 묵제의 영화9년(353) 3월 3일 회계산음(저장성 소흥) 난정에서 당시의 명사 41명이 모여 계추를 하고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유흥을 하고 시흥에 젖었다. 그때 지은 시집의 서를 왕희지가 썼고 옛날에는 『임하서(臨河序)』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난정서』라고 하며 또 『계첩(稧帖)』이라고도 한다.당태종은 왕희지를 숭배하여 그의 글씨를 많이 수집하였는데, 특히 『난정서』에 관심이 깊어 지영(智永)의 제자 변재(弁才)에게 사자 숙익(肅翼)을 보내어 이것을 교묘히 빼돌렸다고 전한다. 태종은 그것을 평생 옆에 두고, 임종에 임하여 소릉(昭陵)에 순장하라고 하였다 한다. 현재 전하는 것은 정관년간(貞觀年問, 627~649)에 내부에서 꺼내어 베낀 것과 그것을 다시 베낀 것들이다. 왕희지의 대표적 행서이며 전28행으로 이루어졌고 수소(隨所)에 도말(塗抹)한 문자가 있고, 고서(稿書)의 체를 이룬다. 또 묵탁에는 구양순의 임사라고 하는 정무본(定武本)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