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다윗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가 겪은 그 모든 역경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시편 132:1]
시편 132편은
다윗의 하나님의 범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했던 다윗의 노력과 성취과정이 담긴 노래다.
시인은 다윗의 그 일을 위해 겪은 온갖 괴로움과 수고를 기억해 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시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기꺼이 법궤가 있는 그 곳에서 쉴 것이며(14), 머물며 복을 주겠다.
그 복으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빵을 배불리 먹고(15),
한결같은 마음을 지닌 이들이 매우 기뻐하며것(16) 함성을 지를 것이다.
기억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제대로 기억하는 일을 통해서 기쁨은 배가되고 고통은 치유된다.
하지만,
인간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함으로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억은 인간의 기억처럼 왜곡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하나님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신앙인인가?'
이 질문 앞에서 시편 132편의 시인처럼 "기억해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꺼리를 갖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실 때에 복주실 만한 일인가?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한 해를 돌아본다.
올해 나는 '하나님 기억해 주십시오!'할만한 어떤 일을 하였는가?
하나님께서 흔쾌하게 복주실만한 어떤 일을 했는가?
올해는 참으로 험난했다.
송구영신예배 순서지의 글을 나누면서 2024년의 시편묵상을 마감한다.
2024년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험난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생태계의 몸살로 인한 자연재해, 평화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죽어가는 이들, 암울한 미래의 전망 등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같은 기쁜 소식이 들여오기도 했지만, 다시 우리는 비상계엄이라는 수렁에 빠져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젊은이들의 재기발랄함에 다시 희망을 보고자했지만, 정치권력을 가진 이들의 저질스러운 행태는 다시 이 나라를 절망 속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것이 끝이길 바랐지만, 29일, 제주항공여객기 참사로 인해 저마다 소중한 사연들을 담고 살아가던 179명과 이별했습니다. 이런 참사마저도 정쟁으로 몰고 가고자하고, 주술에 빠져 국민이나 나라는 어찌되든 말든 제 살길만 찾는 이들을 끊임없이 지지하고 축복해주는 교회를 봅니다. 더는 교회의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2025년에 우리에게 “교회여, 다시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노래하자”고 격려하시며, 희망의 불을 끄지 말라고 하십니다.
새해에는 한남교회가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노래하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힘겹게 이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남교회에 속한 모든 이들이 한 마음으로 더불어 이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2025년에는 한남교회가 창립 70주년을 맞이합니다.
새해에는 한남교회가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 일은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되질 않습니다. 같은 마음을 품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더해질 때,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것입니다. 2025년 새해, 우리 모두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노래하는 눈부신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