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한문학, 빼어난 향미(香味) 「숭어회 감회(凍鯔膾感懷)」 수박향의 별미>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숭어(秀魚)는 향기로운 맛(香味)이 빼어나고 기름진 고기에 진귀한 맛(珍味)을 가진 물고기다. 또 숭어는 민물과 짠물을 오가는 바닷고기다. 그래서 하구(河口)처럼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 이도 저도 아닌 곳에 사는 중간자(中間子)이다.
숭어는 바닷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맛과 같은 생선이며, 숭어는 추울수록 잘 잡히고 제맛이 나는 생선이다. 예전에는 거제도 하천 하구 곳곳에서, 회귀본능이 있는 숭어가 떼로 몰려들 때면, 온 마을 모두가 숭어 별미의 잔치를 열었다. 싱싱한 숭어회는 입 안에서 감칠맛이 돌면서 수박향(西瓜香)을 가득 풍긴다. 숭어회 비빔밥은 멍게 비빔밥과 함께 별미 중에 별미다.
○ 이번 지면에는 거제시 고전학자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의 2017년 작품인 오언율시(五言律詩) 「숭어회 감회(凍鯔膾感懷)」를 소개하겠다. ‘지난 시절에 맛본 거제도 숭어회를 생각하며’ 「숭어회 감회(凍鯔膾感懷)」는 ‘빼어난 향미(香味)와 수박향의 별미’에 온갖 회포가 일어난다고 밝힌다. 게다가 빼어난 향기로운 맛(香味)이 입속에서 노니니 마치 사탕 구름이 이는 듯하다고 칭송했다.
○ 바다에서 태어난 숭어 새끼는 봄이면 어마어마한 무리를 이뤄 민물로 거슬러 올라온다. 이때 숭어는 눈에 우윳빛 꺼풀이 덮여 눈이 먼다. 숭어를 백안(白眼), 곧 '흰 눈'이라고도 하는 것은 이런 생리 탓이다. 숭어는 농어목 숭어과로 전 세계적으로 온대와 열대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또한 숭어는 치어(鯔魚), 수어(水魚), 수어(秀魚), 출세어라고도 하며 어릴 때에는 '모챙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숭어의 맛은 계절마다 다르다. 봄·겨울 숭어는 달고, 여름 숭어는 밍밍하며, 가을 숭어는 기름이 올라서 고소하다.
우리나라 속담에 ‘숭어가 뛰면 망둥이가 뛰고,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 ‘삼월엔 숭어 눈 어둡다’ 등 해학적 내용을 전하는 속담에서 ‘겨울 숭어 앉았다 나간 자리 개흙만 훔쳐 먹어도 달다’, ‘여름 숭어는 개도 안 먹는다’, ‘숭어 껍질에 밥 싸먹다 집 판다’ 등 식탐을 소재로 한 속담도 많다. 방언과 속담이 많은 것처럼 숭어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삶을 같이해 온 물고기다.
◉ '치어(鯔魚)'는 '숭어'의 한자 이름으로 '수어(秀魚)'라고도 적지만 우리말을 비슷한 소리대로 적은 것일 뿐이다. 鯔는 魚와 甾(꿩 치)로 이뤄진 글자로, 甾자가 들어가면 보통 검다는 뜻이 있다. 검은 고기 치어(鯔魚)는 달리 오지(烏支) 오두(烏頭) 오치어(烏鯔魚) 흑이치어(黑耳鯔魚)라고도 한다.
숭어는 척 보면 등이 회색(灰色)을 띤 청색(靑色)이고 배가 은백색(銀白色)이다. 그런데 왜 烏(까마귀 오)나 黑(검을 흑)이 이름에 들었을까? 지느러미 부분이 검기 때문이다.
수어(秀魚)를 숭어로 읽게 된 일은 중세 국어의 'ㆁ'(옛이응) 때문이다. 옛이응은 이응에 꼭지가 달린 글자로, 옛이응은 초성(初聲) 즉, 첫머리 자음일 때 앞에 다른 소리가 있으면 앞소리에 가서 붙어버린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創製)할 무렵 우리 선조들은 魚를 '응어'라고 읽었을게다. 그래서 부어(鮒魚)는 붕어, 이어(鯉魚)는 잉어, 사어(沙魚)는 상어, '노어(鱸魚)'는 '농어'가 되었다. 선조들이 ‘숭어(崇魚)’나 ‘수어(秀魚. 首魚)’라고 불렀는데 그 모양이 길고 빼어난 때문이다.
● 다음 ‘文’ 운목(韻目)의 오언율시 「숭어회 감회(凍鯔膾感懷)」는 거제시 고전학자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의 2017년 측기식 한시다. 고향 바닷가 하천 입구에, 때마다 숭어 떼가 몰려들 때면, 온 마을 모두가 숭어 별미 잔치를 열었다. 싱싱한 숭어회는 입 안에서 감칠맛이 돌면서 수박향(西瓜香)을 가득 풍긴다. 저자는 그 빼어난 향미(香味)를 잊을 수가 없어서 이 시를 지었다.
내용은 이러하다. 숭어는 바람 분 뒤 달빛의 그림자를 따라 기수역 물가로 몰려다닌다. 눈꽃 같은 숭어회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빼어난 향기로운 맛(香味)이 입속에서 노니니 마치 사탕 구름이 이는 듯하다고 칭송했다.
*「숭어회 감회(凍鯔膾感懷)」* / 고영화(高永和 1963~)
水潔鯔依影 맑은 물의 숭어는 그림자를 따르고
斜陽鳥喚群 해 저문 산새들은 벗을 부른다.
風後月華生 바람 분 뒤 달빛이 생겨나더니
汽水魚播芬 기수역 물고기가 향기 풍기네.
鯔膾佳雪花 숭어회가 눈꽃같이 아름다워도
珍味明可分 진귀한 맛을 환히 분간할 만한데
魚中最秀雅 물고기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것이라,
口內生糖雲 입 속에서 사탕 구름이 이는구나.
[주1] 기수어(汽水魚) : 기수역(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 강어귀에 사는 물고기.
[주2] 치어(鯔魚) : 숭어. 치회(鯔膾)와 동치회(凍鯔膾)는 숭어회를 말함.
[주3] 당운(糖雲) : 사탕 구름, 또는 솜사탕 구름으로 번역 가능함.
◉ 『경상도속찬지리지』(1469)에 수어(水魚)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수어(秀魚)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 ‘토공 및 토산조’에는 수어(秀魚)와 비슷한 음의 수어(水魚, 首魚)로 기록되어 있다.
《자산어보》에는 치어(鯔魚)라 기재하고, 숭어의 형태·생태·어획·이명 등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몸은 둥글고 검으며 눈이 작고 노란빛을 띤다. 성질이 의심이 많아 화를 피할 때 민첩하다. 작은 것을 속칭 등기리(登其里)라 하고 어린 것을 모치(毛峙)라고 한다.
맛이 좋아 물고기 중에서 제1이다.”라고 하였다. 숭어는 예로부터 음식으로서만 아니라 약재로도 귀하게 여겼다. 또 고급 술안주로도 이용하였는데 난소를 염장하여 말린 것을 치자(子)라 하여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대접하였다고 한다.
《난호어목지》에 “숭어를 먹으면 비장(脾臟)에 좋고, 알을 말린 것을 건란(乾卵)이라 하여 진미로 삼는다.”고 하였다.
《향약집성방》 《동의보감》에는 수어(水魚)라 하였고, “숭어를 먹으면 위를 편하게 하고 오장을 다스리며, 오래 먹으면 몸에 살이 붙고 튼튼해진다.
이 물고기는 진흙을 먹으므로 백약(百藥)에 어울린다.”고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건제품(乾製品)을 건수어(乾水魚)라 하며 자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소비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 우리나라에서 숭어를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만도 1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평안북도에서는 굴목숭어·뎅이·덩에·나머렉이·쇠부둥이라고 부르고, 황해도에서는 동어·애정어·사릅·나모래정어, 서울 지방에서는 동어·모쟁이·뚝다리라고도 불렀다.
충남 서산 쪽에서는 몰치·모쟁이 준거리·숭어, 경남 통영 쪽에서는 모모대미라 한다. 숭어에 숭상 받을 숭(崇)자를 붙인 것은 미끈하고 큼직한 몸매에 둥글고 두꺼운 비늘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기품이 있어 보이고 제사상뿐만 아니라 수라상에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맛도 뛰어났다.
이 때문에 숭어는 수어(秀魚)로도 불렸는데 조재삼(趙在三 1808~1866)이 쓴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이에 관한 일화가 있다.
중국 사신이 대부도에서 숭어 맛을 보고 고기 이름을 묻자 역관이 수어(水魚)라고 대답했다. 사신이 “물에서 나는 고기면 다 수어(水魚)가 아니냐?”고 반문하자 옆에 있던 다른 역관이 “100가지 물고기 가운데 가장 뛰어난 물고기여서 수어(秀魚)라고 한다.”고 답하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 또한 건수어(乾秀魚 마른 숭어)는 방언으로 모치, 모갱이, 준거리, 목시락이라 부른다. 민물과 바닷물을 오가며 생활하는 숭어는 이름이 많기로 유명하다.
숭어알로 만든 ‘어란’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전통음식인데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며 생산량이 많지 않은 귀한 것인데다 고급스러워 주로 대궐에 진상되거나 대가(大家)집에서 술안주로 사용됐다.
한방에서는 숭어가 진흙을 먹기 때문에 어떤 약과도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높게 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사람의 위를 열어 먹은 것을 통하게 하고 오장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살찌게 하며 이 물고기는 진흙을 먹으므로 온갖 약을 쓸 때도 꺼리지 않는다.”고 했고, 황필수의 「방약합편」에서도 “백약(百藥)을 기(忌)하지 않으니 이 점을 높이 산다.”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