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회의 평균 나이는 39세…사진 한 장이 보여준 새 권력 (15)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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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16은 구질서의 권위와 기능을 정지했다. 그날 내가 작성해 KBS 방송으로 내보낸 포고문(4호)은 이랬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오늘 오전 7시를 기해 일체의 장면 정권을 인수한다. 민의원과 참의원, 지방의회는 오후 8시를 기해 해산한다. 국가기구의 일체의 기능은 군사혁명위원회가 집행한다.”
혁명위원회가 행정권을 장악하고 입법부를 해산시킨 것이다. 사법부 기능까지 집행한다고 했다. 군사혁명위의 3권 통합 행사 선언이었다. 5월 18일 피신했던 장면 총리가 나타났다. 그는 내각 총사퇴를 선언했다. 구질서의 중심인 그가 퇴진했다.
포고문은 이제 실행되기 시작했다. 정지된 헌법과 권력의 공백은 포고문이 메울 것이다. 새로운 시대, 결정적인 역사 전환의 무대가 열렸다. 이게 혁명이다. 혁명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이제까지 구질서 종료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새 질서 출발에 모아져야 한다. 17일 밤 나는 육군본부의 한 사무실에서 꼬박 날을 새웠다.
거사의 성공이 예감되던 시점이다. 나는 그동안 생각해두었던 신질서의 바탕이 될 통치 체제를 구체적으로 짰다. 혁명의 미래를 운영할 수단과 집행 방법을 담은 그랜드 디자인을 마련한 것이다.
“혁명엔 무서운 존재 필요”…‘씨에’라 불린 JP 야심작 (16)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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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과거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위세에 붙은 비유다. 김종필(JP)은 중앙정보부의 창설자이자 초대 수장이다. 그가 회고하는 창설 이유는 이렇다. “혁명 과업을 뒷받침하려면 무서운 존재가 필요하다.
” JP는 중정의 수사권 보유를 한시적인 특수 상황으로 규정했다. 민정 이양 때 수사권을 검찰에 환원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 구상만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혁명의 실질적 설계자 역할을 하고도 왜 최고회의 위원으로 나서지 않는가.” 1961년 6월 5일, 내가 중앙정보부장 신분으로 언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받았던 질문이다. 나는 답했다. “나는 앞에 나서지 않고 중앙정보부장으로 일하려 한다.”
1961년 8월 31일 서울 중앙정보부 남산청사를 방문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대화를 나누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오른쪽). 사진 국가기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