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목소리도 평소보다 조금 높았고 가끔 떨리기도 했다.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은 아니었다. 학술세미나에서 논문을 발표하면서 보인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일정 부분 논란도 감수한 듯 했다.
신규탁 교수(연세대·사진)는 5월 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암사상과 조계종의 정체성’ 주제 학술세미나에서 〈한암 선사의 ‘승가오칙’과 조계종의 신행〉에 대해 발표했다. 이 논문은 한암 선사가 1926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제정한 ‘승가오칙’을 중심으로 조계종의 정체성에 대한 역사적인 검토와 미래 대안을 모색한 것이다. ‘승가오칙’이란 승려가 지켜야 할 본분으로 참선, 염불, 간경, 의식, 가람수호다.
신 교수는 조계종의 뿌리에 한암 선사가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조계종은 한암 선사의 이념과는 상당히 다른 쪽으로 변해왔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먼저 종조(宗祖) 문제를 거론했다. 조계종은 종헌 제6조에서 종조를 도의 국사로 하며 선종(禪宗)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종헌 제1조에서는 ‘제종포섭(諸宗包攝)’한 자로서 태고보우를 명시하고 있다. 신 교수는 “조계종이 태고보우를 ‘제종’ 포섭한 인물로 평가하고 그를 중흥조로 한다면 순수한 선종만의 종단이 아님을 스스로 자임하는 모순을 짓는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신 교수는 승가오칙을 중심으로 조계종 정체성 문제를 짚어나갔다. 조계종의 대표적 수행법인 ‘참선’. 그는 조계종에 속한 승려 일부가 간화선을 할 뿐 “대부분의 절에서는 오히려 선(禪)보다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하는 정토염불 내지는 기도가 더 성행하고 있다”며 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를 예로 들었다. ‘염불’도 비판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신 교수는 “관음시식, 49재, 불공의 내용을 보면 모두 ‘부처님의 신력’에 의지하거나 ‘대비주의 신력’에 힘입어 영가나 재자의 소원을 빌어주는 것”이라며 “지금 조계종의 본말사에서 통용되는 염불은 타력신앙으로서의 염불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한암 선사를 비롯한 역대 선사들이 권장했던 자성미타(自性彌陀) 염불이 아니라는 얘기다.
‘간경’ 문제에 대해서도 “《전등록》을 읽고 그것을 법회에 활용하는 출가자들이 얼마나 될까?”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조계종은 종헌 제3조에서 소의경전(所依經典)은 《금강경》과 전등법어(傳燈法語)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석예불부터 전통에서 멀어져 있다”는 신 교수는 조계종이 ‘의식’에 소홀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7정례’는 조ㆍ태분규 이전에는 없었고, 예전에는 큰스님의 기신제에 ‘종사영반’을 했지만 지금은 ‘관음시식’하는 곳도 많다고 예를 들었다.
신 교수는 “삼보(三寶)의 상주물이 개인 승려의 사유물이 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며 선방 수좌와 강원 학인을 받들고 보호하는 것이 ‘가람수호’의 첫 걸음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신 교수는 “조계종이 자기 정체성에 대해 전면적으로 고려해 봐야 한다”며 간화 수행과 정토 염불, 화엄 교학을 저마다의 인연에 따라 하나 또는 겸해 전수하는 풍토로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법(계)맥의식 등 봉건적 요소를 척결하고 전통사찰보존법 같은 일제 잔재를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선거로 총무원장을 뽑고 본사 주지를 뽑는 것도 불교 본래적인 방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