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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스마트폰으로 교류하는 여러 목사님들중 제일 유명한 목사님은 '김동호목사'님이신 것 같습니다. 제가 올리는 댓글에 답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저와 페이스북 친구로 되어 있어 그 분이 올리시는 글은 항상 제 페이스북 소식란에 뜹니다.
김동호목사님은 매일 묵상을 할 수 있을만한 감동있는 글을 올리시는데 이번 금요일 1월 11일은 '야망과 소명'이라는 주제로 글을 올리셨습니다.
김동호목사님의 글을 한 번 같이 들어보고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야망과 소명에 대한 글을 요즘 조금은 집착하며 쓰고 있다. 야망에 대한 욕심은 버려야 하지만 소명에 대한 욕심을 구별하지 못하고 함께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서다. 어느 친구분 하나가 야망과 소명을 구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려 놓음'이라는 댓글을 올려 주셨다. 참 명쾌한 댓글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그렇다. 나무는 열매를 보아 안다. 열심을 내서 얻은 열매를 자기 것이라고 욕심내고 집착하면 누가 뭐래도 그것은 야망이고, 열심을 내서 얻은 작지 않는 열매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든지 그것을 버릴 수 있고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소명이다. 살아오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연습하고 훈련해 온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족하지만 '내려 놓음'이다. '내려 놓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돈'과 '자리'였다. 아직도 많이 어렵지만, 처음 보다는 많이 쉬어 졌다. 돈도 제법 내려 놓을 줄 알게 되었고, 자리도 제법 내려 놓을 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크게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심스럽지만 든다. 아마 높은 뜻 연합선교회 제법 깨끗하게 물러설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잘 나가고 있는 열매나눔재단이나, 앞으로 세워질 근사한 씨앗학교도 다 손 떼고 내려 놓을 것이다. 그것은 별로 어려운 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내가 내고 있는 '문어발' 욕심은 야망이 아니고 소명인 것일까?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쉽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다. 아직 내려 놓지 못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려 놓은 것은 이제 별로 크게 어렵지 않은데, 내가 그와 같은 것들을 내려 놓았고 앞으로도 내려 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내려 놓지 못했다. 나는 그와 같은 것들에 집착하지 않는다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그것도 일종의 집착이다. 집착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는 셈이니까. 내가 과연 그것까지 버릴 수 있을까? 내려 놓을 수 있을까? 내려 놓음에 대한 기억과 자랑 까지도 내려 놓을 수 있을까? 돈과 자리에 대한 내려 놓음만 연습하였는데, 기억과 자랑까지도 내려 놓을 수 있도록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며 노력해야겠다.
그래도 내려 놓지 못할까봐 천천히 가지는 않을꺼다. 생각과 기억까지 내려 놓고 진짜 소명을 위하여 더 욕심을 내며 열심히 살아 갈꺼다. 문어발이 아니라 지내발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말이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딜레마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의 일을 하는 목회자와 주님의 뜻을 깨달아서 소명을 가지고 직업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의 사람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소명의 사람 세례 요한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례요한은 분명 소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어떻게 소명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지... 그는 소명의 사람으로서 어떤 결단을 하며 살아갔는 지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고 우리 또한 우리의 삶속에서 항상 소명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오늘 이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례요한이 소명자임을 알 수 있는 첫 번째 단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면 그 사역을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26절, 27절을 찾아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세례 요한은 영적 권위를 가지고 회개를 촉구하며 천국을 전파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운동과 천국복음전파는 큰 결실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세례 요한은 이미 수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며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지역에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모르고 세례 요한의 강론을 듣지 않으면 간첩으로 취급을 받을 정도로 인지도가 대단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정치권은 세례 요한을 두려워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30절에서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 즉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질문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마가복음 11장 30절에서 32절을 보시겠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세례 요한의 영향력은 이미 온 유대에 퍼져있었고 그의 영적 권위는 이미 온 세계에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세례 요한은 목회에 있어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봐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세례 요한의 제자중 한 명이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예수님의 사역을 알리며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견제를 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26절의 말씀이 그 말씀이 아닙니까?
"선생님, 선생님께서 전에 세례를 베푸시며 선생님께서 나중에 오실 위대한 선생이라고 하셨던 그 분이 세례를 베풀어주는데 사람들이 이제 다 그 분에게 갑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자기 집에 손님이 끓다가 어떤 계기로 바로 옆에 동종의 가게가 생겼는데 그 가게에 손님을 다 빼앗기게 되면 화가 납니다. 이건 장사니까 그렇겠지라고 생각이 들지만 우리가 흔히 교회사역에서도 종종 이런 경우를 보게 됩니다. 옆의 교회가 잘 된다는 소문을 듣게 될 때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이야기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어느 지역이 교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되게 유지되던 교회가 옆에 대형교회가 분립개척을 하게 된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든지,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유명 목사님이 그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려고 한다든지 라는 말을 듣게 되면 축하를 해주려는 마음보다 반대운동을 벌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저는 우리 고주리교회가 시골지역에 미자립상태로 참 힘든 목회를 하고 있지만 만약 이 근처지역에 장경동목사님, 김동호목사님, 김문훈목사님같은 인지도도 있고 불신자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목회자가 개척한다고 오신다고 하면 ‘대환영’입니다. 왜냐면... 그런 분들을 통해 이 지역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신 사명과 역할이 있지만 만약 그런 분들에게 그런 소명을 주셔서 오시고 오셔서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믿게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축하해줄 수 있어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예를 보면서 우리는 '소명''사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한 번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지혜롭게 다른 교회의 상황을 고려해서 설립이나 개척을 해야하는 '목회윤리'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면 어떤 교회가 우리 주위에 들어오더라도 내가 이 곳에 부르심을 받았고 나는 이 곳에서 어떤 사역을 담당하며 살아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소명, 즉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는 지를 먼저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에 대해 비교하면서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자신의 제자에게 아무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한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이신 것을 알지만 자기를 따르는 제자에게 강한 의도로 반박을 하면 사역자체를 함께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제자의 눈높이에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높여주는 말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면 아무리 보잘 것이 없어도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아무리 거창해보여도 결국에는 망하게 될 것이라는 교훈을 제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도행전의 유대교 지도자 가말리엘이 했던 말과 동일한 의미로 풀이됩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행하며 사람들이 베드로의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나오고 기적과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기 작정한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때 유대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을 중심으로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워 시행했지만 한 번 실패하여 분노하면서 어떻게든 죽이겠다는 살기등등한 선포를 할 때 가말리엘이 그들을 막으며 이런 말을 합니다.
사도행전 5장 38절과 39절 말씀입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믿음의 사람은 현상만을 보고 그 현상대로 우리의 감정이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현상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아무리 일이 잘 되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가 있고 지금 아무리 일이 되지 않아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주위에 일이 잘 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일이 하나님의 뜻으로 일이 잘 되는 것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인간적인 노력으로 일이 잘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 주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큰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그들의 사역을 통해 우리가 동기부여를 받을 수는 있지만 그 큰 사역 때문에 시기가 일어나고 부러움만 가지고 비교하면서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소명을 받은 사람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들이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소명의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 박수를 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이 소명의 사람이 되어 우리 주위에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러워하며 시기질투하기보다 그들에게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그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례요한이 소명자임을 알 수 있는 두 번째 단서는 세례요한은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해야할 역할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2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세례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해야할 역할을 자신이 분명히 알고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그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사람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그는 자연스럽게 사역무대에서 사라져야할 사람이요, 주인공을 준비하는 위대한 조연이었던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레너드 번 스타인이 텔레비전 대담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번 스타인씨, 수많은 악기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번 스타인은 “제2바이올린입니다. 제1바이올린 연주자는 구하기 쉬운데 제1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제2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2바이올린 연주자 없이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기는 불가능합니다.” 라고 응답을 했습니다.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보면 우리는 주인공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주인공 못지 않게 조연이 빛이 나야 작품이 성공을 합니다. 또한 조연 못지 않게 옆에서 도와주는 스텝들과 대본을 쓰는 사람, 의상, 조명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메인이 되기를 원하고 주인공이 되기를 원합니다. 항상 최고의 자리에 앉고 싶어하고 대접을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우리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외식을 질책했습니다.
누가복음 20장 46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사람들은 항상 대접받고 인정받고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호령하기를 원합니다. 어떤 자리에 가서라도 상석에 앉으려고 하고 어떤 조직에 들어가서도 자신이 메인이 되고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원합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인정받는 것은 못 참고 조금이라도 중심에서 밀려나면 들러리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심성입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완전한 결과물을 위해 보조가 되는 것이라든지 협력자로 서게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젊은 시절에 뜬 톱스타에게 찾아오는 공허감이 있습니다. 20대에는 젊은 나이에 항상 주인공으로 발탁되지만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면 젊은 주인공의 어머니같은 조연의 역할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50대가 되면 이제 차츰 중년부인의 역할을 넘어서서 할머니역할이 등장하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조연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주인공을 많이 했던 배우들은 더 공허감과 불안감이 크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에 조연을 많이 맡아서 감칠맛나는 연기를 하며 극의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을 했던 배우들은 계속되는 조연에도 오히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연기 내공이 쌓이고 인생의 맛을 즐기며 연기를 하는데 젊은 시절에 이미 큰 배역을 많이 맡았던 배우들은 그만큼 상대적 박탈감이 크기에 우울증을 앓고 정신불안증세를 가져오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하고 자신이 대접받아야 하고 자신이 최고의 위치에 앉아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입니다.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를 최고로 받들어주고 어느 사람보다 탁월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백성들의 심령을 만지며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행하였다고 할지라도 자신은 예수님앞에서는 조연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의 무대를 준비하고 물러날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러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부던히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가운데 영광받으실 분은 하나님이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그 분만을 높이고 그 분만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례요한이 소명자임을 알 수 있는 마지막 세 번째 단서는 세례요한은 하나님과 오실 메시야앞에서 자신의 사명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참된 소명자입니다.
30절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세례 요한은 자신은 이제 물러날 때가 되었고 예수님은 더욱 힘있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목적을 이루실 때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여전히 사람들이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가운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앞에서는 이제 자신은 사라질 일만 남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Luiz Inacio Lula Da Silva) 브라질 대통령은 "신은 한 사람에게 두 번 선물을 주지 않는다, 다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라는 퇴임사로 유명합니다.
2010년 12월 31일 8년간의 대통령직을 마치며 퇴임할 때 남긴 이 말은 전 세계의 권력에 대한 미련을 가진 모든 정치가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룰라 다 실바대통령은 1945년 브라질 북동부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중퇴를 하여 구두닦이, 금속공장 노동자를 거쳐 노조위원장을 거치고 브라질 노동당을 결성하여 정계에 입문, 연방하원의원을 거쳤습니다. 세 번의 대통령선거 낙선을 했고 네 번째 도전인 2002년에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어 34대 브라질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재임기간중 놀라운 경제성장을 통해 2006년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룰라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3년 브라질은 IMF구제금융으로부터 300억원의 원조를 받았지만 "경제성장촉진" 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고 또한 빈민퇴치프로그램을 통해 약 3,000만명이 극빈에서 탈출하여 중산층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재임기간중 경제도 성장과 분배, 정치권의 안정과 소통, 화합이 이룩되면서 브라질의 위상은 세계속에 우뚝서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제와 정치의 안정은 축구를 사랑하는 브라질 국민들에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유치라는 선물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개최권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룰라 다 실바대통령의 재임기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놀랄만한 일은 그가 퇴임할 때에도 국민의 80%가 대통령을 지지했고 이런 지지는 국민들로부터 헌법개정을 통해서라도 한 번 더 대통령을 해달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80%가 넘는 국민들이 박수칠 때 "아름다운 퇴장"을 택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큰 성과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다했다고 한다면 아무리 좋은 자리에 있어도 물러날 줄 알아야합니다.
군대에 가보면 초중고시절 학교에서 했던 조례같은 행사가 자주 있습니다. 심심하면 중대장, 대대장의 훈시를 듣는 행사가 있고 좀 더 큰 행사가 있으면 연대장, 사단장까지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행사를 하든지 이 본 행사보다 더 피를 말리는 것이 준비행사입니다. 이 준비행사를 담당하는 참모는 마치 자기가 대장이 된 것처럼 대장자리에 서서 리허설을 관장합니다. 리허설 때 실수하면 큰 일이 난다고 생각해서인지 꼼꼼하게 말투 하나하나 진행시간 하나하나 모두 피가 마를 정도로 챙깁니다.
그런데, 리허설이 끝나고 대장이 나타날 시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옆으로 빠져서 조용히 가만히 있습니다. 리허설 때는 자신이 대장이 된 것처럼 이리저리 모든 것을 관장하지만 대장이 나타나면 아무 것도 아닌 양 조용히 옆에 서 있습니다.
참모는 참모일 뿐 입니다. 아무리 준비과정에 대장의 역할을 했다고 할지라도 대장이 나타나면 참모로서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진짜 참모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물러나야할 때를 잘 깨닫고 있습니까? 특별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셔야할 일을 내가 가로채고 있는 것은 없는 지 생각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소명을 가지고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 하는 사람, 하나님의 소명을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자신은 낮추고 하나님을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주님이 살고... 주님을 높이면서 나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님을 인정해 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앙생활에 대해 말하면서도 내가 있어야 예수님이 있지.. 내가 있어야 종교가 있고 믿음이 있지.. 내가 잘되고 봐야 교회나갈 수 있지라고 말을 합니다.
내가 먼저 잘 되어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 과연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연말이 되어 연예대상, 연기대상, 가요대상 등을 시청하면서 상을 받게된 사람들이 수상소감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라고 말하는 연예인을 참 존경합니다.
우리나라의 분위기상 그런 말을 하기가 참 힘든 때도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좋은 형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강조하기보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나타내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런 연예인들이 바로 소명감을 가지고 연예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고 남들의 시선을 받으며 항상 최고의 자리에 서 있는 연예인들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대단하시다라고 고백한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명인의 자세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까? 소명을 가진 사람은 항상 자기의 일들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잘 되면 하나님께 영광... 못되어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더욱 잘 될 수 있기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소명을 가지고 하나님앞에서 나의 위치와 역할을 잘 분별하며 하나님만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제자들이 불안해하고 세례요한을 따르는 무리들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도 항상 기쁨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에 보시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세례요한은 결혼식의 들러리로 서 있는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며 신랑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겠습니다.
내가 차지해야 기쁘고 내가 주인이 되어야 기쁘고 내가 항상 중심에 서야 기쁘다면 우리는 주님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세워줄 수 있어야합니다. 무엇보다 나보다 우리 주님을 더 앞세우고 더 높여줄 수 있어야합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천국의 백성이요, 이 땅에서 주님의 소명을 받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항상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부르신 소명을 깨달아 나의 역할과 위치를 잘 분별하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역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