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꽃자리
박종규
불은 생물이다. 씨가 발아해 꽃 피우는 것 중 불만큼 빨리 자라는 생물이 있을까? 실바람에도 가물가물 꺼질 듯하나 불씨는 먹잇감에 따라 몸집이 하늘로 솟는가 하면 땅에 납작 엎드려 커다란 산허리를 살라 먹기도 한다. 불의 기세가 산을 덮으면 큰 재앙이 되지만 자연은 그 재앙 위에 새로운 생물을 탄생시키는 순환 질서의 순리를 지켜나간다. 태초로부터 인류는 불로 문명을 이루었고 불로 패망을 거듭하였으니, 사람들은 이런 불의 양면성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내게 와서 나의 모든 것을 지워버린 녀석도 처음에는 하찮은 불씨에서 발아했으리라.
전깃줄은 전기가 흐르기에는 비좁은 터널이었다. 전류가 터널을 벗어나 마른 벽지에 닿으면서 불씨를 낳았고 불씨는 마른 벽지를 불쏘시개로 몸집을 키웠을 것이다. 녀석은 회색 갈기를 뿜으며 응접세트를 야금야금 살라 먹은 다음 사물놀이 북 장구에 올라타 기세를 올렸고 가전제품에 이르러서는 환희의 폭죽을 터트렸으리라. 나름의 사연으로 내게 온 소중한 그림, 장서, 애장품들은 주인 없는 거실에서 불의 지옥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화마는 응접실 걸개가 된 치타마저 살려내 불춤을 추게 하였을까? 15년을 꼼꼼하게 챙긴 어설픈 농가일지 마지막 페이지는 쓰지도 못하고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애초에 대숲에 유폐되었던 집 마당에는 대나무가 빼곡했다. 그래도 앞으로 탁 트인 전망과 마을과의 적당한 거리, 높이, 대문 옆자리의 큼직한 멀구슬나무 등 운치가 나를 붙잡았다. 대숲에 둘러싸인 집은 대나무가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집주인을 사람으로 바꾸는 쉽지 않은 작업을 시작했다. 배경이 푸른 대숲이니 지붕은 빨간색 기와를 얹고 흙벽에도 횟가루를 발랐다. 이 강렬한 보색대비는 마을 분위기까지 살려주었다.
다음은 대나무 제거하기. 대나무가 사는 집을 사람이 사는 집으로 되살려야 했다. 대순이 불쑥불쑥 솟는 마당에 자갈을 붓고 소금과 제초제를 뿌리고 대 뿌리를 뽑고 돌가루를 뿌리면서도 끝내 시멘트를 들이붓진 않았다. 마당이 콘크리트가 되면 서울과 다를 게 무엇이겠냐 싶었다. 집은 다듬어지면서 점차 사람의 향기가 배어들었다. 어제 아침에도 돌담 밑에서 대 다섯 다발을 잘라 내버렸다. 자연석 모자이크처럼 예쁜 돌담이 드러나면 마당이 마당다워지고 집 꼴이 살아났다. 서울서 천 리 길을 두 달 멀다 하고 달려오는 것도 집을 살리기 위해서였으니, 집 또한 사람의 기척이 없으면 저절로 죽어가는 생물이었다. 서울에 있으면 어서 내려오라 했고 문밖에 나설 땐 떠나는 발길을 잡는 참 정 많은 내 집이었다.
그날 목포의 지인으로부터 점심을 같이하자는 연락이 왔다. 우리 부부는 오전 11시에 목포로 출발했고 돌아와서 다음 날은 떠날 생각으로 몸만 빠져나왔다. 30분 정도 지나 목포에 접어들 무렵 휴대전화가 왔다.
“느그 집에 불났다. 빨리 와라, 어디냐?”
친척의 다급했던 목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머물러 있다. 급히 차를 돌렸다. 목포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사정을 알릴 겨를도 없었다. 설마 연기 조금 나겠지. 그러나 얼마 뒤 휴대전화에서 들린 마을 이장의 허둥대는 목소리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집이 전소全燒했다! 집을 둘러싼 대숲이 마르면서 불길이 옮겨 타면 화력이 강한 대숲은 걷잡을 수 없는 큰 산불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가까운 곳에 가더라도 단단히 불단속을 하고 나가는데 웬일일까. 그때부터 나는 내가 아니었다. 집이야 어차피 탔으니까 운전 조심하라는 이장의 당부는 오히려 가속 페달에 힘을 보탰다. 전소라는 말은 다른 해석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 말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전소되었다면 큰 산불로 번졌다는 말도 되었다. 조마조마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멀구슬나무 옆으로 푸른 대숲에 싸인 빨간 기와집이 보여야 했다. 잿빛 연기가 운무처럼 대숲을 싸돌고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으나 대숲까지는 불이 번지지 않은 듯 보여 한 시름은 놓았다. 마을 어귀부터 빨간 차와 소방대원들이 북적거렸다. 내 집 언저리에서 검은 연기가 머리를 풀고 어른거렸다. 회관 앞에 차를 댄 뒤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 올랐다. 분주한 소방대원들 너머로 까맣게 아가리만 남은 허깨비가 붉은 개와 지붕을 떠받치고 뻘쭘하게 서 있었다. 배반감을 안겨주던 그것은 내 집이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나이 든 아짐들은 처연한 눈빛으로 ‘시상에 어짜끄나!’를 연발했다. 늦은 저녁이라도 대숲에 전등을 밝히면 동네 사람들은 마음이 든든해진다고 했다. 농사도 모르는 도시 촌뜨기라도 마을 사람들은 늘 반겨 맞았다. 나는 사물놀이 북을 둥둥둥 처대서 내가 왔음을 알리기도 했다. 장마철이라 고구마 몇 고랑 심어놓은 거 잘 자라나 볼 겸 내려온 길이었다. 동네 누구한테도 척진 일 없고, 나 마다한 사람 없었으니 화재 원인 규명이나 수사는 필요 없다며 36도 땡볕에 땀 흘리는 소방대원들을 다독였다. 그냥 누전으로 종결하자고. 정신 내놓고 뛰다 저녁이 되어서야 문뜩 내 몸을 뉠 집이 없는 걸 깨달았다. 친척 집에서 맞은 다음 날 잠을 잤는지 모르게 눈을 뜨니 아침은 여전한 아침이나 눈앞에 대숲이 보이지 않는다. 마당에 나와 눈길을 뒷산으로 보낸다. 내 집터를 품은 산어귀에 안개가 낮게 드리웠다. 혹은 아직도 못다 살라 서성거리는 연기 꼬리는 아닌지…. 모든 것이 재災가 되어버린 개운하지 않은 개운함이 인다. 이 개운함은 어디서 비롯하는지. 어차피 내게 올 재앙이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옳았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멀쩡하지 않은가.
집을 품었던 대숲에 빨간 기와집 대신 어두운 공간만 퀭하다. 그래도 내 집은 대숲에 불길을 보내지 않았다. 불더미를 집 안에 품고 불어리를 만들어 소방대원들 올 때까지 안으로만 온전히 태워 가면서 장렬하게 버텨내었다. 대숲은 집을 둘러싼 앞부분만 누렇게 변했을 뿐 거짓말처럼 멀쩡했다. 내 집은 그렇게 죽어갔다. 대숲이 움푹 패어 잔해들 가라앉은 곳은 대숲을 살리고 대신 내 집이 장렬하게 죽어 쓰러진 순교의 터였다. 15년간 내가 살려낸 집은 그렇게 내게 보답했다. 동네 아낙들은 뻘겋게 날름거리는 불 갈기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단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불타는 모습을 직접 보지 않았다. 아까운 물건 건져보겠다고 그 매서운 불길에 뛰어들 수도 있고, 정든 집 타들어 가는 것을 눈앞에서 빤히 보았다면 가슴 속에서도 불이 일었을 것이다. 나만큼이나 맘 졸이고 있을 목포의 지인에게 전깃줄이 낡아 어차피 날 불이었는데 덕분에 불을 보지 않았으니 도리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 터는 초록의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차피 내려놓아야 할 내 것이었다면 조금 일찍 놓아버린 것. 하지만 빈 가슴으로는 허허로움만 차 들어왔다.
옆 지기를 잃어버린 듯 초췌해진 멀구슬나무를 올려다본다. 집과 함께 재가 되어버린 내 인연의 표상들, 내 삶의 얼개들이 연기의 기억을 잊고 하나둘 정리되고 있다. 이런 마음자리의 리셋(reset)이 개운함의 정체였을까? 집터는 다시 꽃을 피우게 될 터이다. 새로운 꽃자리를 위해 비워냄은 자연의 자연스러운 순환 질서이다. 집은 나를 살려내려고 내가 할 수 없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텅 빈 집터에 올라 막걸리라도 한잔 올려야 하겠다. 밀려든 허허로움은 잿빛 꽃자리에 묻어 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