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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장코뱅 추천 5 조회 435 23.07.29 10:10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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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7.29 10:40

    첫댓글 <IVP 주석: 서신서> 고전1:8, 9

    8절.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을 경시하던 사회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견고하게 하셔서 우리 주님의 날에 -구약의 표현 방식으로는 심판 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설 수 있게 하실 것을 강조한다.

    9절. 이것이 그들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을 '그의 아들'의 '교제' 안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을 어길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든 열등 의식이나 자기가 부족하다는 감정 때문에 교회를 섬길 때 무력해져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들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 23.07.29 17:34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 23.07.30 08:09

    @노베 아멘!

  • 23.07.30 17:04

    @노베 아멘22

  • 작성자 23.07.29 10:44

    <칼빈주석: 고린도전후서> 고전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여기에서 “교제”로 번역된 헬라어 '코이노니아'를 에라스무스는 “나눔”(consortium)으로 번역하였고, 불가타 역본은 “교제”(societas)로 옮겼지만, 나는 “공유”(communio)를 역어로 선택하였는데, 그 이유는 “공유"라는 역어가 '코이노니아'의 의미를 좀 더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소유가 되게 하고,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소유하게 하실 때, 실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우리로 하여금 "공유하게 하시는데, 우리가 온갖 복들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바울이 여기에서 논증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너희는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서 그리스도와의 공유 관계 속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사망의 위협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 작성자 23.07.29 10:45

    왜냐하면, 너희는 사망을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에는, 두려움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에 참여하여 그리스도를 공유하는 관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있는 한, 자신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깨달아서, 그리스도의 모든 좋은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절대로 분리될 수 없고 끊어질 수 없는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고 확신한다면, 우리는 최종적인 견인(finalis perseverantia), 즉 우리가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을 지니게 될 것이다.

  • 23.07.29 11:16

    칼빈의 '공유' 설명이 너무 와닿고 예리하고 좋습니다.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하는 것이라는, 온갖 복들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는 설명이 뛰어납니다.

  • 23.07.29 17:35

    @코람데오 공감합니다.

  • 23.08.01 14:02

    @코람데오 공감합니다22

  • 23.07.29 10:56

    구원의 서정을 고전 1:2과 롬 8:28~30을 결합하여 설명하여 주셨군요. 부르심-중생,회심,칭의-성화-영화의 구원의 서정이 시간적 순서라기 보다는 개념적 논리적 순서라는 설명이 좋습니다.
    성화는 성도의 견인으로 말미암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책망할 것이 없는 거룩한 상태가 되도록 힘쓰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해야 한다는 결론도 유익합니다.
    늘 반복적으로 듣는 말씀이지만 쉽게 전달해주셔서 이해가 빠릅니다. 감사합니다.

  • 23.07.29 17:35

    좋은 댓글입니다. 제가 공감한 부분과 비슷하네요.

  • 23.07.30 17:04

    공감합니다.

  • 작성자 23.07.29 10:55

    <톰슨3 주석> 고전1:1-9

    소명(1:1-9)

    이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준비된 구원을 믿음으로 소유하라는 하나님의 초청이다. 소명에는 자연(롬 1:20), 역사(행 17:26), 혹은 양심(롬 2:14,15)을 통한 실물 소명과 특별 계시를 통한 말씀 소명이 있다(살후 2:14). 그러나 일반 계시의 영역에 머무는 실물 소명은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지 못한다(행 4:12). 한편 말씀 소명은 다시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외적 소명과 인간을 중생으로까지 이끄는 내적 소명으로 구분된다(24절:마 22:14;행 16:14;롬 11:29)

    ①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 : 외적 소명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나 성령의 중생시키는 역사가 뒤따르지 않으므로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마 22:2-14;막 16:15,16; 3:36 13:46; 살후 1:8). 반면에 내적 소명은 유효성이 있으며, 불변하며, 성령의 역사를 동반한다(9절;롬 8:30;엡1:10). 즉 성령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미리 정하신 자를 구원이라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부르신다(롬 8:29;엡1:4).

  • 작성자 23.07.29 10:59

    ② 소명과 현실의 삶 : 바울에 따르면 소명은 하나님에게서 기원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부르심'(딤후 1:9) 이며 동시에 소망 중에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소명 받은 자의 삶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로, 삶에 대한 기독교적 소명은 교회라는 테두리 내에서 명료해진다(9, 26절; 엡 4:1-7; 벧전 2:9,10).
    둘째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책임 있는 삶을 살게 된다(엡 4:1;살전4:7; 살후 1:11).
    셋째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부르심을 받은 그 지위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7:17-24).
    넷째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롬 8:28)는 사실을 알고 이를 체험한다

  • 23.07.29 17:36

    @장코뱅 소명에 의해서 변화된 현실의 삶을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역시 가성비가 좋은 주석입니다.

  • 작성자 23.07.29 11:04

    고전 1:2 하나님의 교회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비록 분열, 도덕적 타락, 영적 미성숙 등으로 혼란과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지만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구속적 섭리 가운데 있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과 하나님의 교회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바울의 겸손한 태도가 잘 드러나있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는

    ① 하나님의 교회는 지상의 유형적 건물이나 조직과 동일시될 수 없고
    ②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가 교회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으며
    ③ 교회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임을 깨달을 수 있다.

    <-- <톰슨3 주석>, 고전1:2

  • 23.07.29 17:38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이며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들의 모임임을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 23.07.30 08:09

    @노베 공감합니다.

  • 23.07.29 17:39

    고전1:1-9와 로마서 8장 말씀을 종합하여 좋은 묵상을 올리셨고요. 저에게 은혜가 됩니다.

  • 23.07.30 17:05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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