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고전 1:1~9
제목: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 기독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교회를 이루어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고전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현재 한국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특한 이단이 하나님의 교회라는 명칭을 무단으로 도용하고 있는데요. 하나님의 교회(고전1:2)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의 거룩한 호칭은 정통 기독교회만이 사용해야 하고 사용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단은 하나님에 의하여 거룩하여진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의 일과 음행으로 더럽혀져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단이 하나님의 교회를 사칭하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갈5: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보여주는 육체의 일은 애매모호하거나 해석하기 어렵지 않고 분명합니다(갈5:19). 그러한 육체의 일들에 대한 분명한 예시 중에 이단이 있고(갈5:20), 이 이단들의 절대다수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을 행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평신도들이 일일이 모든 이단을 다 분별하여 파악을 하기는 역부족입니다. 그러므로 개신교 주요 정통교단들이 이단으로 결정한 조직을 이단으로 알고 경계하는 것이 현명하고 현실적입니다.
● 구원의 서정(order of salvation)은 교단마다 학자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중생∙회심∙칭의가 성화에 앞서는 것은 대체적으로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칭의를 받은 결과로서 성화가 나타나고, 성화의 원인은 칭의입니다. 이것은 교파와 교단이 다를지라도 종교개혁의 후예인 개신교 정통교회 절대다수의 공통적인 이해입니다.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고전1:2)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들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집니다(고전1:2). 거룩하여 진다는 것을 한자로 표현하여 성화(聖化, sanctification)라고 합니다. 성화가 가능한 것은 신자가 성도가 되기로 자원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화가 가능한 것은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하나님이 부르시고 사랑해 주시는 대상자들이 성도(saints)들이고 이 성도들이 모인 모임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고전1:2).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은 변함이 없으며 성화를 거쳐 영화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의 믿음은 강약에 차이가 나고 일정부분 부침(浮沈, up & down)이 있을 수 있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효과적인(effectual) 것이기 때문이고 믿는 자의 주관적 상태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효과성은 아래 말씀에 나옵니다.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하나님의 부르심은 성화의 과정 속에서 점점 견고한 것이 증명됩니다.
고전1: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
중생∙회심∙칭의가 성화에 앞선다고 했는데요. 중생∙회심∙칭의 이전에는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이 있었습니다(고전1:2, 롬8:28, 롬11:29). 이러한 순서는 시간적 순서라기보다는 믿음 안에서 개념적∙논리적 순서입니다. 이러한 부르심과 구원의 서정을 잘 나타내는 성경구절은 아래(롬8:28∼30)와 같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얻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부르심, 소명, calling)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정, predestination)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심)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칭의, justification, 칭의의 결과로 성화가 나타남)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영화, glorification) |
● 성도와 위선자에게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았고 위선자는 교회에 다닐지라도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칭의의 결과인 성화가 나타나고 위선자는 교회에 다닐지라도 칭의의 결과인 성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구원의 서정을 나타내는 유명한 구절 로마서 8장30절만 보면 부르심(소명)-칭의-영화만 나오지만요. 오늘의 본문인 고전 1:1∼9를 함께 보면, 특히 1:2를 보면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짐(성화)이 나타납니다(“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롬8:28∼30과 고전 1:1∼9를 종합하여 보면, 부르심-중생∙회심∙칭의-성화의 순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하여 지는 것 즉 성화에는 결정적인 측면이 있지만(칭의의 ‘결과’) 점진적이고 과정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고전1:6.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
고전1:6의 견고하게 되는 것은 성도'가' 견인(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saints)하는 것입니다. 굳센 믿음으로 인내한다는 것을 한자로 표현하여 견인(堅忍)이라 합니다. 견인차가 고장 난 차를 견인해 가는 그 견인(牽引)이 아닙니다. 점진적 성화의 과정을 거치면 결국에는 책망할 것이 없는 완전한 상태가 되며 이것이 영화입니다.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고전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
●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인 성도는 죄와 투쟁하며 점진적 성화의 길을 걸으며 성도의 견인을 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영화의 단계에 이르는데 영화의 상태는 책망할 것이 전혀 없는 상태(고전1:8)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영화 또는 완전히 거룩한 상태(완전 성화)는 현세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가능합니다. 영화를 기준으로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완벽히 증명되는 시기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바라보며 성도의 견인을 하는 것인데요. 혹시라도, 이것이 많이 지루하고 답답하십니까? 미래를 보면 견인이고 인내하는 것이지만 과거를 보면 이미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는 후회나 번복이 없습니다(롬11:29). 그러므로 지루하거나 불안하거나 답답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이 있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롬8:28).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전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롬8: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연약한 우리의 변덕을 믿지 말고 미쁘신 하나님(고전1:9)을 신뢰하며 주님과 늘 교제하고(고전1:9) 그 사랑을 확인하는 은혜의 역사(롬8:39)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IVP 주석: 서신서> 고전1:8, 9
8절.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을 경시하던 사회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견고하게 하셔서 우리 주님의 날에 -구약의 표현 방식으로는 심판 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설 수 있게 하실 것을 강조한다.
9절. 이것이 그들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을 '그의 아들'의 '교제' 안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을 어길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든 열등 의식이나 자기가 부족하다는 감정 때문에 교회를 섬길 때 무력해져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들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노베 아멘!
@노베 아멘22
<칼빈주석: 고린도전후서> 고전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여기에서 “교제”로 번역된 헬라어 '코이노니아'를 에라스무스는 “나눔”(consortium)으로 번역하였고, 불가타 역본은 “교제”(societas)로 옮겼지만, 나는 “공유”(communio)를 역어로 선택하였는데, 그 이유는 “공유"라는 역어가 '코이노니아'의 의미를 좀 더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소유가 되게 하고,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소유하게 하실 때, 실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우리로 하여금 "공유하게 하시는데, 우리가 온갖 복들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바울이 여기에서 논증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너희는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서 그리스도와의 공유 관계 속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사망의 위협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너희는 사망을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에는, 두려움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에 참여하여 그리스도를 공유하는 관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있는 한, 자신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깨달아서, 그리스도의 모든 좋은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절대로 분리될 수 없고 끊어질 수 없는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고 확신한다면, 우리는 최종적인 견인(finalis perseverantia), 즉 우리가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을 지니게 될 것이다.
칼빈의 '공유' 설명이 너무 와닿고 예리하고 좋습니다.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하는 것이라는, 온갖 복들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는 설명이 뛰어납니다.
@코람데오 공감합니다.
@코람데오 공감합니다22
구원의 서정을 고전 1:2과 롬 8:28~30을 결합하여 설명하여 주셨군요. 부르심-중생,회심,칭의-성화-영화의 구원의 서정이 시간적 순서라기 보다는 개념적 논리적 순서라는 설명이 좋습니다.
성화는 성도의 견인으로 말미암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책망할 것이 없는 거룩한 상태가 되도록 힘쓰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해야 한다는 결론도 유익합니다.
늘 반복적으로 듣는 말씀이지만 쉽게 전달해주셔서 이해가 빠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댓글입니다. 제가 공감한 부분과 비슷하네요.
공감합니다.
<톰슨3 주석> 고전1:1-9
소명(1:1-9)
이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준비된 구원을 믿음으로 소유하라는 하나님의 초청이다. 소명에는 자연(롬 1:20), 역사(행 17:26), 혹은 양심(롬 2:14,15)을 통한 실물 소명과 특별 계시를 통한 말씀 소명이 있다(살후 2:14). 그러나 일반 계시의 영역에 머무는 실물 소명은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지 못한다(행 4:12). 한편 말씀 소명은 다시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외적 소명과 인간을 중생으로까지 이끄는 내적 소명으로 구분된다(24절:마 22:14;행 16:14;롬 11:29)
①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 : 외적 소명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나 성령의 중생시키는 역사가 뒤따르지 않으므로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마 22:2-14;막 16:15,16; 3:36 13:46; 살후 1:8). 반면에 내적 소명은 유효성이 있으며, 불변하며, 성령의 역사를 동반한다(9절;롬 8:30;엡1:10). 즉 성령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미리 정하신 자를 구원이라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부르신다(롬 8:29;엡1:4).
② 소명과 현실의 삶 : 바울에 따르면 소명은 하나님에게서 기원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부르심'(딤후 1:9) 이며 동시에 소망 중에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소명 받은 자의 삶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로, 삶에 대한 기독교적 소명은 교회라는 테두리 내에서 명료해진다(9, 26절; 엡 4:1-7; 벧전 2:9,10).
둘째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책임 있는 삶을 살게 된다(엡 4:1;살전4:7; 살후 1:11).
셋째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부르심을 받은 그 지위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7:17-24).
넷째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롬 8:28)는 사실을 알고 이를 체험한다
@장코뱅 소명에 의해서 변화된 현실의 삶을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역시 가성비가 좋은 주석입니다.
고전 1:2 하나님의 교회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비록 분열, 도덕적 타락, 영적 미성숙 등으로 혼란과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지만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구속적 섭리 가운데 있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과 하나님의 교회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바울의 겸손한 태도가 잘 드러나있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는
① 하나님의 교회는 지상의 유형적 건물이나 조직과 동일시될 수 없고
②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가 교회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으며
③ 교회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임을 깨달을 수 있다.
<-- <톰슨3 주석>, 고전1:2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이며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들의 모임임을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고전1:1-9와 로마서 8장 말씀을 종합하여 좋은 묵상을 올리셨고요. 저에게 은혜가 됩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