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과 갈보들이 화면에 넘쳐나고 사투리와 욕설, 그리고 걸쭉한 육담들이 거침없다. <김의 전쟁> 이후 줄곧 선이 굵은 남성 드라마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온 김영빈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 <나에게 오라>다. ‘미래로 세계로’를 외치는 시대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 기어코 할 말을 하고 마는 뚝심의 영화다.
1970년대 남도 땅 어느 시골장터. 두 명의 건달이 같은 날 고향에 스며든다. 둘은 의기투합해 사건들을 저지르고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한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 한 건달은 사랑과 의리를 실천하며 죽어가고 다른 건달은 막차로 고향을 떠나간다. 그러나 그때 그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영화의 원작인 송기원의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는 한국 장터에 대한 치밀한 민속지적 관찰을 밑바탕에 깔면서 통과의례를 통한 주인공들의 ‘남자되기’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영화감독은 동향의 선배가 엮어낸 절절한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그러나”를 외치고 있다. 김영빈은 대중영화의 기본은 영웅 만들기와 드라마틱한 갈등의 설정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소설의 가지치기와 접붙임 작업을 동시에 수행한다. 전자의 과정은 원제의 절반을 거두어 내어 영화의 제목을 삼은 것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후자는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버디 무비’적 구성과 두려운 적대자의 설정 등을 통한 드라마 만들기로 귀결된다. 원작에서는 시골 건달들의 우두머리 정도인 정석 역의 최민수가 카리스마를 가진 영웅으로 그려진 것은 영화의 주제까지를 훼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나친 타협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소설이 가지고 있지 못한 형식미와 재미의 요소를 흠뻑 갖게 되었다.
신인 이동삼의 카메라는 액션의 호흡과 그 격렬함을 잘 그리고 있다. 그리고 연기자들의 호연은 관객들이 야비하고 천박한 인물들을 동정하고 사랑하도록 만든다. 특히 박상민은 춘근 역을 맡아 ‘장군의 아들’이 그에게 선사하고 굴레 씌운 거대한 고정 이미지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나게 됐다. 또한 춘근의 애인 옥희를 연기하는 윤수진도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김영빈이 다시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를 외치는 액션장르로 후퇴할지, 아니면 액션드라마 속에서 인간과 시대를 읽는 진지한 영상 탐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 <나에게 오라>는 그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