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시편 50편 23절 Thánh Thi, bài 50 câu 23.
제 목 :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Người nào dâng tế lễ bằng lời cảm tạ.....
오늘 말씀은 시편 50편이며 23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전하려고 합니다.
Bài giảng hôm nay sẽ lấy lời phán ở câu 23 bài 50 phần Thánh Thi làm trọng tâm để truyền giáo.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시리라. 50편 23절
50:23 Người nào dâng tế lễ bằng lời cảm tạ tôn vinh Ta. Ai theo đường lối Ta, Ta sẽ chỉ cho thấy sự cứu rỗi của Đức Chúa Trời.
그리운 고국을 떠나 먼 타국 한국까지 와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땀을 흘리시는 사랑하는 하느님의 자녀들 위에 하느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Vì cuộc sống sinh nhai của gia đình, mà phải xa tổ quốc thân yêu để đến đất nước Hàn Quốc xa lạ, đổ môi xuống cực khổ, nên tôi mong các vị hãy cùng với tình yêu thương và ân huệ của Đức Chúa, để trở thành con cháu của Đức Chúa Trời.
한국 사람들은 그들만의 전통과 문화가 있고 중국 사람은 중국 사람들의 전통과 문화가 있으며, 또 베트남 사람은 그들의 전통과 문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 모든 나라는 그들의 전통과 문화가 있습니다.
Những người Hàn Quốc họ có truyền thống và văn hoá của riêng của họ, những người Trung Quốc họ cũng có truyền thống và văn hoá của Trung Quốc, và những người Việt Nam họ cũng có truyền thống và văn hoá của mình. Tương tự như vậy, tất cả các nước trên thế giới họ đều có truyền thống và văn hóa của họ.
저는 개인적으로 외국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일본을 두 번 가본 것이 해외여행의 전부인데, 개인적으로 가 보고 싶은 나라는 인도와 네팔,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 나라들입니다.
Cá nhân tôi không có nhiều kinh nghiệm đi nước ngoài. cả thảy được hai lần đi du lịch sang Nhật Bản , riêng cá nhân tôi, tôi muốn đi thăm đất nước Ấn Độ và Nepal, Mi-an-ma và các quốc gia Đông Nam Á đang có.
제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가보고 싶은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제가 가진 문화와 전통과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일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그 삶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Tôi muốn đi đến một số nước trong khu vực Đông Nam Á, không rõ lý do tại sao, nhưng có lẽ hình như là vì cái truyền thống và văn hoá mà tôi đang có, kèm theo cả truyền thống và văn hoá khác nữa, nói cho rõ hơn là vì muốn tìm hiểu cuộc sống của những người dân đang sống ở một đất nước khác với mình, thông qua đó để gặp Đức Chúa Trời .
.저는 세상 모든 만물을 하느님이 만드셨다고 믿는 기독교인입니다. 여러분이 기독교인이라면 틀림없이 여러분도 세상 모든 만물은 하느님이 지으셨다고 믿고 계실 것입니다.
Là một người theo đạo cơ đốc giáo , tôi tin là Đức Chúa Trời đã làm ra vạn vật trên thế gian này, Tôi chắc rằng nếu các vị là một người đạo Cơ Đốc giáo, thì các vị cũng sẽ tin rằng tất cả vạn vật trên thế giới đều do Đức Chúa Trời đã xây dựng lên.
맞습니다.
Đúng như vậy.
그렇다면 서양의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한국 사람들은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통해서 하느님을 말하며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Nếu vậy thì, Đạo Cơ đốc của phương Tây trước khi xâm nhập vào Hàn Quốc, những người HQ họ đã được nghe Đức Chúa Trời nói chuyện thông qua truyền thống và văn hoá của họ.
마찬가지로 인도사람들도 그들이 모두 아담의 후손이기에 그들의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었을 것이고 또 중국과 네팔 미얀마 스리랑카 할 것 없이 만국 백성은 그들이 경험하고 이해한 하느님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하느님을 얘기하며 고백하고 믿어 왔을 것입니다.
Tương tự, cũng như những người dân Ấn Độ, tất cả họ đều là con cháu của Adam, nên đã hết lòng tận tuỵ với Đức Chúa Trời theo phong cách của họ , và Trung Quốc, Nepal, Sri Lanka không có việc gì làm, dân các quốc gia, họ kinh nghiệm và hiểu được Đức Chúa Trời, theo cách riêng của họ, và nói về Đức Chúa và tin tưởng .
서양의 기독교는 아주 독선적이고 폭력적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아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생각했습니다. Đạo Cơ đốc phương Tây đã rất tự quyền và bạo lực
Tôi nghĩ những người có tôn giáo không phải Cơ Đốc giáo, là không tin vào Đức Chúa Trời.
그래서 서양 제국주의는 그들이 점령한 많은 나라들의 문화와 전통을 말살했습니다.
Vì vậy, các chủ nghĩa đế quốc phương tây, họ đã xoá bỏ nền văn hóa và truyền thống của nhiều quốc gia mà họ đã chiếm được.
심지어는 그들의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마저 죽여버리는 과오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Ngay cả khi vì lý do không tin vào tôn giáo của họ. đã bị giết vì phạm lỗi.
그것이 약 200년전 제국주의 와 함께 세계 각국을 침탈하여 제국주의적인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100년전에고 그러했고 요즘도 종교라는 명목하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Điều đó là hình dạng của chủ nghĩa đế quốc thuộc đạo cơ đốc cách đây khoảng 200 năm trước, cùng với chủ nghĩa đế quốc xâm chiếm các quốc gia trên thế giới.
Và 100 năm trước đây cũng vậy và bây giờ vẫn không phải là kết thúc chiến tranh.
서양의 기독교가 동양으로 들어오면서 오늘날 조금씩 서양기독교는 세계 각국에서 각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바탕으로 새롭게 접목을 시도하여 토착화라는 이름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Đạo Cơ đốc phương Tây xâm nhập sang phía Đông, Hôm nay, một ít văn hóa phương Tây bằng bản chất truyền thống và văn hoá của mỗi quốc gia trên thế giới. đang bắt đầu từ gốc bằng tên nguyên bản ghép cành mới mẻ .
저는 이렇게 다양한 민족이 그들만의 기독교를 만들어가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이것은 서양 기독교의 폭력적인 모습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세상 모든 백성을 사랑하신 하느님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중국 사람이 믿는 하느님과 다르지 않지만 틀림없이 우리는 서로 다르게 그 하느님을 표현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느님은 다르지 않습니다.
아담의 후손들이 언어가 갈라지자 그들이 부른 하느님의 이름은 민족마다 족속마다 다르게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서로 다른 민족이 되고 문화가 되고 전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5-6개국의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우리는 모두 한 하느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백성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더 편하고 부유하게 살기는 하겠지만 결코 한국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사람들이 네팔 사람보다 더 편리하고 더 부유하게 살기는 하겠지만 결코 네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행복은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 한 것은 예수님이 말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결코 부유한 것에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산을 오르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둘 다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만 둘의 표정은 정 반대였습니다.
한 사람은 땀을 흘리며 거친 산을 오르면서도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전하는가 하면 다른 한 사람은 길도 힘든데 사람이 너무 많다며 투덜대며 올라갑니다.
‘비온 뒤라 촉촉한 대지의 흙내음도 좋고 신록이 푸르다’며 한 사람은 산새 소리를 즐기며 올라가는데, 다른 한 사람은 길도 미끄러운데 새 소리가 시끄럽다 야단입니다.
둘은 드디어 산꼭대기에 올랐습니다.
한 사람은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오랜만에 산에 오니 맑고 상쾌하다”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다시 내려갈 걸 뭣 하러 산에 왔는지 모르겠다”며 힘만 들었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둘은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마을이 참 좋다면서 이웃집 누구 엄마는 저녁마다 플롯을 배우는데 점점 소리가 좋아진다며 언제 이웃들과 함께 음악회를 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다른 한 사람도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 동네에도 플롯을 배우는 사람이 있는데, 소리도 못 내면서 저녁마다 잠도 못 자게 한다며 하면서 민원을 넣어 못하게 하든지 이사를 가든지 해야겠다”고 투덜댑니다.
“이웃집 할머니는 개를 키우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길을 가면 어느새 따라와서 꼬리를 친다며 참 귀엽다”고 이야길 합니다. 옆 사람도 자기 동네에 늙은 할머니가 개를 키우는데, 지나 갈 때마다 따라와서 귀찮다고 이야기 합니다.
앞집에 큰 감나무가 있는데, 가을이 되면 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단풍이 들 때면 잎이 너무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자기 옆집에도 큰 감나무가 있는데, 가을만 되면 자기마당을 온통 어지럽힌다고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어두워져서 둘은 인사를 하며 내려갑니다.
한사람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가 참 좋은 마을에 살고 있다며 감사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참 나쁜 마을에 살고 있다며 불평하며 돌아갑니다.
둘은 돌아가면서 ‘둘은 서로 전혀 다른 마을에 살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치 자기 동네 풍경을 들은듯하다’며 고개를 갸웃합니다.
산 위에서 바라보니 둘은 “같은 한 마을”로 내려가는데, 한 사람은 ‘불평길’로 들어가고 한 사람은 ‘감사로’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면 세상은 아주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도와 한국은 한 집 건너에 있는 이웃집일 것입니다. 중국과 스리랑카 역시 한집 건너에 있는 이웃입니다.
세계는 넓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눈에 그러할 뿐입니다.
우리의 눈을 더 크게 열면 세상 모든 민족은 내 형제며 이웃이 될 것입니다.
더 이상 힘이나 가진 것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사랑과 섬김으로 “나와 다른 나”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이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시리라. 50편 2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소와 양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이젠 우리가 가진 소와 양이 아닌 감사함으로 드려 하느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행동을 바르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하심을 입을 수 있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