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집 비평

[낙민]

문집 비평

저자	이덕무
출전	『청장관전서』 '살아 있을 때 간행한 문집(生時刊行文集)'

살아 있을 때 간행한 문집

중국에서는 지은이가 저술한 책은 반드시 살아 있을 때 간행하고, 사망한 다음에는 간행하지 않는 풍속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걸출한 선비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을 때는 저술한 책을 간행하지 못한다. 책자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베껴 놓기만 해도 사람들은 생문집(生文集)일 뿐이라며 비웃는다. 그리고 그 책의 지은이 또한 자신의 문집이라는 사실을 감히 밝히지 못하고 "그저 붓 가는 대로 끄적거린 만초(蔓草)요, 만록(漫錄)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아주 비루한 짓이지 겸손이라고 할 수 없다.

'집(集)'이란 합한다는 뜻이다. 내가 지은 시나 문장을 모두 합했기 때문에 집이라고 한다. 따라서 용렬한 시나 치졸한 문장이라고 해도 이미 책 속에 넣었다면 모두 집이 된다. 사람들은 겸손을 떤다고 만초요 만록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두려워서 집이라고 말하지 못한단 말인가?

요즘 중국의 풍속을 보면, 자기 이름 정도만 쓸 줄 알면 하잘것없는 장사치들조차 문집을 조판해 간행한다. 문집을 판각한다고 배나무와 대추나무를 함부로 베니, 그 재앙이 심각하다. 참으로 구역질이 날 정도다.

우리나라 선비 중에도 살아 있을 때 문집을 인각한 사람이 있다. 이색의 『목은집』에 보면, "나 판서가 자신의 『중순당집』을 상주에서 간행했다. 그때 내게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하면서, 속성으로 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가 시를 좋아하는 성품과 그것을 전하려는 마음이 이토록 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색은 다음과 같은 시를 써서 주었다.

아름다운 시구는 글을 읽는 선비들이 읊고
높은 뜻은 주변 나라들이 모두 아네.
그대는 마땅히 힘을 다해
요즘 찾아보기 힘든 기록을 모두 모아 남겼네.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도 생전에 문집을 간행한 대문장가들을 거론하고 있다.

"고려의 이규보와 우리 조선의 서거정, 강희맹의 문집은 그들이 살아 있을 때 인쇄하여 세상에 널리 퍼졌다."

• 메모

겸손한 체는 비열함이며
양보하는 체는 욕심이며
배려하는 체는 미움입니다.

겸손은 용기 중에 있고
양보는 사랑 중에 있고
배려는 기쁨 중에 있습니다.

원문

中國之俗。著書刊行當世。不必待身後入榟。我國則雖宏儒。不惟不得刊行於生時。若或精寫冊子。則人必嘲笑曰。此生文集也。亦或不敢題某集。必曰漫艸漫錄。此陋也非謙也。集者。合也。合吾之詩文。故曰集。雖劣詩拙文。旣書於冊。則都是集也。行謙何畏而不敢稱集哉。然中原近俗。粗記姓名。則稗販之徒。莫不有集雕版。令人歐哇。災梨禍棗。於斯極矣。東人亦有生時刻集者。牧隱集曰。羅判書將刊其中順堂集於尙州。托書於僕。以求速成。甚矣。其嗜詩而欲其傳於世也。仍贈詩曰。佳句儒林誦。高標海國知。願公宜用力。叢錄近來稀。案羅判書。卽興儒也。羅州人。自號錦南迂叟。屢擧不第。上書請使日本。恭愍王大喜。拜判典客寺事。遣之。日本人囚于太宰府。興儒紹曰。吾年百有五十。有神術。日本人以爲信然。放還。芝峯類說曰。前朝李奎報。本朝徐居正姜希孟集。及其生時印行于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