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유엔 권고를 '무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 국회와 헌재는 국가보안법 폐지로 답하라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1990년 4월, 대한민국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가입했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군부독재의 터널을 빠져나온 이 나라가, 이제 국제사회의 보편 규범 안에서 살겠노라고 스스로 국새(國璽)를 찍은 약속이었다.
그로부터 36년.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1992년 첫 권고 이후 2015년, 2023년, 그리고 지난해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요구해왔다. 국가보안법, 특히 제7조(찬양·고무죄)를 폐지하거나 근본적으로 개정하라고. 그때마다 우리 정부의 대답은 같았다. "한반도의 안보 위협이 해소되지 않았다." 2023년 11월 다섯 번째 심의에서 폐지 권고를 받았을 때에도 법무부는 같은 문장을 되풀이했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국가는 자신이 한 약속을 골라서 지킬 권리가 있는가.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유엔의 권고를 '무시할 권리'를 어디에서 부여받았는가.
권고가 아니라 의무 이행의 확인이다
"유엔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정부의 단골 답변은 절반의 진실로 전체를 가리는 화법이다. 권고 자체는 형식상 권고다. 그러나 그 권고의 근거인 국제인권규약은 권고가 아니라 '법'이다.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못박고 있다. 대한민국이 비준한 ICCPR은 우리 법질서 안에서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지닌 현행법이다.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권고는 외부의 참견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초청한 심사관이 발부한 의무 이행 성적표인 것이다.
국제법의 대원칙도 명확하다. 대한민국이 가입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6조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신의성실(信義誠實)의 원칙을, 제27조는 "국내법을 이유로 조약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선언한다. '남북 대치의 특수성'은 국내 사정이다. 국내 사정을 들어 조약 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국제법이 정면으로 금지하는 행태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1990년 규약 가입과 동시에 선택의정서에도 가입하여, 우리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유엔에 직접 진정할 수 있는 개인통보제도를 수락했다. 그리고 실제로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국가보안법 제7조로 처벌받은 이들의 사건에서 거듭 규약 위반을 판정하고 구제를 요구했다. 1998년 박태훈 사건이 그랬고, 그림 '모내기'를 그렸다는 이유로 화가가 처벌받은 2004년 신학철 사건이 그랬다.
개인통보를 수락해놓고 그 결정은 이행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국제사회 앞에서 서명은 하되 이행은 않겠다는 나라를, 우리는 다른 나라였다면 뭐라고 불렀겠는가.
국회와 헌법재판소,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36년
그렇다면 이행 의무를 진 두 헌법기관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헌법재판소는 1991년 이후 여덟 차례나 합헌 결정을 반복했다. 2023년 9월 여덟 번째 결정에서 헌재는 국제법존중주의 위반 주장에 대해 "헌법 제6조는 국제법과 국내법의 동등한 효력을 인정한다는 취지일 뿐"이라는 한 줄로 답을 대신했다. 규약과 국내 법률이 같은 효력이라면, 규약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률 조항의 운명을 어찌할 것인지에 대한 본안의 고민은 없었다. 심사의 회피다. 그러나 균열은 이미 시작되었다. 같은 결정에서 이적표현물 소지 조항에 대해서는 재판관 5인이 위헌 의견을 냈다. 다수가 위헌이라 판단했음에도 위헌 정족수 6인에 못 미쳐 연명한 것이다. 재판관 한 사람의 양심에 걸려 있는 법, 그것이 국가보안법 제7조의 현주소다.
국회는 어떠한가. 2004년 폐지의 문턱까지 갔다가 좌절한 이후 20여 년을 방치했다. 헌법재판소는 "입법자의 재량"을 말하며 국회로 공을 넘기고, 국회는 "헌재가 합헌이라 했다"며 헌재 뒤에 숨는다. 두 기관이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조약 불이행의 세월만 쌓여갔다. 그러나 분명히 하자. ICCPR 제2조는 당사국에게 규약상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입법 조치 의무를 부과한다. 국회의 입법 부작위 역시 조약 위반이다. 무시할 권리가 아니라, 미뤄온 의무가 있을 뿐이다.
같은 처지의 나라들은 이미 다른 길을 걸었다. 동서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독일은 사상 처벌 조항을 버리고 방첩 체계 현대화로 실질 안보를 지켰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머리 위에 이고 사는 대만조차 반란죄 조항을 대폭 축소했다. '특수한 안보 상황'을 이유로 유엔의 일관된 권고를 30년 넘게 거부하는 나라는, 규약 당사국 가운데 대한민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아홉 번째 심판과 스물두 번째 국회가 할 일
길은 이미 나 있다.
국회는 형법 제98조 간첩죄와 군형법, 방첩/사이버안보 체계를 보완하는 입법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를 결단해야 한다. 실제 이적 '행위'를 처벌할 법체계는 이미 충분하다. 폐지되는 것은 안보가 아니라, 생각과 표현과 만남을 처벌해온 냉전의 유물일 뿐이다. 안보 공백론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헌법재판소는 다가올 아홉 번째 심판에서 ICCPR을 심사의 척도로 정면 수용해야 한다. 헌법 전문이 선언한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의 정신, 제6조의 국제법존중주의를 살아있는 규범으로 되살리는 것, 그것이 헌법 수호자의 임무다. 소수의견 5인의 축적 위에 유엔의 최신 권고라는 법리적 촉매가 더해진 지금이 바로 그때다.
유엔 권고의 수용은 외세에 대한 굴복이 아니다. 그것은 36년 전 우리 스스로 한 약속을 우리 손으로 이행하는, 주권국가의 가장 당당한 자기 선언이다. 인권을 말하며 국제 규범을 어기는 나라는 K-민주주의를 수출할 자격이 없다.
1990년에 찍은 국새의 인주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국새가 찍힌 약속은 정권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요, 그 약속 앞에서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이제 하나뿐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그것이 약속의 이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