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610~540 B.C.)
아낙시만드로스도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의 궁극적인 원리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하였다. 그러나 그는 탈레스의 입장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 의하면 물은 특수한 종류의 물질로서, 변화와 대립의 근저에 놓여 있는 물질이라기보다는 그 자체 대립하는 물질 중 하나이다. 즉 여러 물질들은 물이 존재하는 여러 방식이 아니라, 물과 서로 대립해 있는 여러 존재인 것이다. 예컨대 물은 불을 생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없애는 것이다. 따라서 만물의 근본물질은 물과 같은 어떤 특수한 물질에서 찾아질 수 없다.
물이 다른 물질과 ‘대립’된다는 사실에서부터 물은 다른 물질에 의해서 양적으로 제한될 뿐만 아니라 성질적으로 구별된다는 사실이 도출되어 나온다. 이러한 설명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에도 타당하다. 그러므로 일체의 대립을 넘어서 있는 만물의 근본물질은 양적 제한을 가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물질과 성질상 구별되는 물질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러한 물질에 ‘아페이론’(apeiron)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페이론은 공간적 의미에서 무한정하고(Boundless) 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Indeterminate)이다. 대립자들 또는 규정되어 있는 것들은 바로 이 무한정한 무규정자로부터 생겨나서, 그것에로 사라지기 때문에, 이 무한정한 무규정자는 대립자들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세계를 대립하는 성질들 즉 온-냉과 건-습이 서로 다투는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하나의 요소가 다른 요소를 잠식하는 것을 부정(不正)으로 표현한다. 예컨대 온은 여름에 부정을 범하고 냉은 겨울에 부정을 범한다. 규정되어 있는 것들은 무한정한 무규정자 즉 아페이론에로 흡수됨으로써 자신들의 부정을 보상한다. 이것은 법칙개념을 인간생활로부터 우주론에로 확대한 예라 할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규정되어 있는 것들이 이 아페이론으로부터 어떻게 분리되어 나와서 이 세계가 형성되었는가를 설명한다. 그는 선회운동에 의해서 이것을 설명한다. 선회운동에 의해서 냉하고 습한 요소가 차츰 하나의 습한 흙덩어리로 되어 중심부에 위치하게 되고 건조한 불은 주변에 놓여 있게 되며, 공기는 그 사이에 위치한다. 그런데 주변에 위치해 있는 불의 영향 때문에 지구의 여러부분들은 말라버리기 시작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처음으로 생물이 따뜻한 진창 내지 진흙 속에서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난 다음 이들 생물로부터 인간을 포함한 여러 육지동물이 진화되어 나왔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사고는 만물의 근본물질을 눈에 보이는 어떤 물질 중에서 취한 것이 아니라 보다 추상적 사고를 통해 찾아보려는 점에서 탈레스에 비해 보다 깊은 사고의 일면을 보인다. 더 나아가서 그는 또한 자신의 독특한 우주 진화론을 통해서 세계가 이러한 근본물질로부터 어떻게 생성되어 나왔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대답하고자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