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막:
하늘에서의 전쟁
모든 인류, 지금까지 살았던,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고 잠시 상상해보자. 당신도 가족과, 친구들과, 심지어 원수들까지도 같이 거기에 함께 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최고로 중요한 무언가에 집중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군중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날이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또는 여기에 설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믿도록 잘못 인도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완전히 숨을 죽이고 그 영화의 장면들이 그들 앞에 펼쳐지는 것을 본다. 그 영화는 그들이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중요한 영화이며, 사실상 지구에서 상영되는 마지막 영화이다.
그곳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당신도 그 두 부류 중 하나에 속해 있다. 이 두 부류는 무엇이며, 무얼 보고 있으며, 왜 보고 있는 것인가?
그 장면들이 펼쳐지는 동안, 지금은 다른 장면으로 가보도록 하자. 과거로 돌아가 역사의 “되감기”버튼을 눌러 이 땅에 생명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앞에 펼쳐지는 장면은 완전한 평화와 안식이 있는 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태초에 우리가 사는 세계가 창조되기도 전에, 천국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사들이 모두 그분의 뜻과 조화되어 그분의 보좌와 정부에 즐거이 순종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천국의 평온한 상태를 깨트리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 이 모든 일은 루스벨(Lucifer)이라는 이름의 천사로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그의 이름은 나중에 사단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성경은 이렇게 설명한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에스겔 28:14, 15).
“그룹(Cherub)”은 천사라는 말이다. 그러나 루스벨은 평범한 천사가 아니었다. 그는 “지키는” 혹은 “덮는” 그룹이었다. 덮는 그룹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의 중요한 사물들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짓도록 명하셨던 특별한 건물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 광야에서 “성소”를 짓도록 지시하셨고, 성소는 때때로 “성막”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곳은 매우 거룩한 장소였고, 오늘날의 교회나 성전과도 같은 곳이었으나 그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었다. 이 성소 건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깃드시는” 혹은 “거하시는” 곳이었으며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다. 이 구조물은 강력한 실례(實例)였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정부를 소형화한 모형, 천국에서 그분의 보좌에 대한 청사진이었기 때문이다. “모양”이라는 단어가 다음 구절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애굽기 25:1, 2, 8, 9).
이 땅에 지어진 첫 성소는 들고 다닐 수 있었고, 큰 천막과도 같았다. 나중에 성소는 더 무거운 건축자재들로 고정식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모든 성소들은 같은 디자인이었다. 성소는 뜰과 두 방(성소와 지성소)으로 나누어져 있는 천막(혹은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라고 불리는 금으로 도금된 상자가 있었다. 언약궤 위에는 시은좌(속죄소, Mercy Seat)가 있었고, 그 위에 쉐키나라 부르는 하나님의 영광(임재)이 거하였다. 시은좌는 그러므로 천국에서의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신약의 히브리서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모세는 또한 천사의 형상을 만들도록 지시 받았는데, 한 명씩 시은좌 양쪽에 위치되었다. 이 두 천사들을 “덮는” 그룹이라고 불렀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언약궤를 지키는 천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형상들은 천국에서 하나님의 곁 가장 가까이 있는 천사들을 나타냈다.
이는 우리에게 천국에서의 루스벨의 위치가 그 어떤 천사들보다도 하나님과 가장 가까웠음을 알려준다. 성경은 이 그룹천사들을 이렇게 묘사한다:
“금으로 그룹 둘을 시은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시은좌 두 끝에 시은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찌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시은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시은좌를 향하게 하고, 시은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출애굽기 25:18-21).
만일 루스벨이 덮는 그룹이었다면, 우린 그가 하나님 옆에 서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그가 덮고 있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였다 (이사야 6:1, 2). 성소의 시은좌(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함)는 언약궤 위에 위치했고, 그것은 금으로 도금된 특별한 기물로 하나님의 율법을 담고 있었으며 시은좌의 기초로써의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우린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그분의 율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직 천사들이 이 율법에 순종할 때만 천국이 평화의 장소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 “사랑의 율법”으로 묘사된 (로마서 13:8-10) 이 율법이 루스벨이 한 때 덮었던 법이었다. (“덮는”이라는 말의 의미는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덮는 그룹이었던 루스벨은 한 때 하나님의 율법의 수호자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루스벨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 “불의”가 그에게서 드러난 것이다 (에스겔 28:15). 죄의 또 다른 표현인 불의는 천국의 평화를 어지럽혔다. 이것이 천국에서의 반역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중대한 질문이 있는데, 죄가 무엇인가? 우리가 만약 그 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하나님과 사단 간의 싸움의 귀중한 퍼즐 조각 중 하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아두라.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요한일서 3:4).
한때 하나님의 율법의 수호자였던 루스벨은 그가 지키던 바로 그 율법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늘의 반역은 하나님의 보좌와 율법에 기초한 그분의 정부를 경시(輕視)함으로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 죄의 결과로 루스벨은 천국을 전쟁상태로 몰아넣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는 궁극적으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에스겔 28:16을 참조하라.)
그렇다면 계시록의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기록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소유하게 하며, 그 문들을 지나 그 도시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로다” (계시록 22:14 흠정역). 루스벨은 율법에 대항하여 싸운 것으로 인해 도성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그 도성에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도록 하고, 지금은 다시 천국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겠다.
루스벨은 한 때 그가 빛냈던 율법을 등졌다. 그러나 그는 혼자서 반역한 것이 아니라, 수천 수만의 다른 천사들도 그의 반역에 합세하도록 설득했다. 그리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했던 주장, 그리고 여전히 오늘날도 사용하는 주장은 지극히 기만적이었는데, 천사들에게뿐만 아니라, 루스벨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이사야 14:12-14).
루스벨은 정해진 법을 지키지 않고도 가장 높은 분과 같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다시 말해, 그는 하나님의 법 없이도 선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천사들의 행위를 통제할 법이 필요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거룩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 없이도 살 수 있었으며, 그들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게 사실이었다면, 하나님은 불의하신 것이며, 너무 많이 참견하시고, 독재적이며, 이기적인 데다가 천사들이 그들의 완전한 잠재력을 깨닫길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 되는 것이었다.
루스벨의 주장은 직접적으로 악한 행동을 조장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복종 없이도 선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에 대한 그의 반역은 하나님 없이도 선함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자기기만(自己欺瞞)이 하늘 천사의 삼분의 일을 미혹시킨 것이었다 (계시록 12:4). 마치 정치 운동처럼, 루스벨은 그의 연속적인 거짓 주장을 펼쳐나갔고, 그는 그저 천사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정부를 개혁하려 노력하는 것뿐이며, 하나님의 정부는 너무 개입이 심하며, 천사들은 자신의 꿈과 소망을 스스로의 규칙을 통해 성취하여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곳 지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그와 동일한 주장을 따랐다. 예를 들어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어도 선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심지어 많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도 거룩해지기 위해 하나님의 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철학을 받아 들여왔다 (로마서 3:31). 이 주장이 바로 하늘의 전쟁을 일으킨 원인이었으며, 결국엔 이 땅에서도 반역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계시록 12: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