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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 '양생'이라는 자가 있었다. 마음가짐은 허랑하고 집이 풍족하였는데, 늘 풍류가 있다고 자부했다.
관서 지방에 명기가 많다는 말을 듣고 한번 회포를 풀고자 마음먹었다.
마침 친척이 정주 목사가 되자, 양생은 집에 있는 재화를 모두 기울여 네 필의 말을 묶어 수레를 연이어 갔다.
목사가 명기를 택해 잠자리를 모시게 하니, 양생이 흠뻑 빠졌다. 3년 만에 그 많은 재화를 다 써 버리고 떨어진 옷에 한 필의 나귀로 처량하게 돌아갔다. 그 기녀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중도까지 뒤따라와 전송하며 고삐를 놓고 흐느껴 울었다. 양생은 차마 이별하지 못하고 스스로 헤아려보니 행장에 남은 것은 없고 단지 발에 신고 있는 가죽신 한 켤레가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그것을 벗어주고 나귀 등에 올라타 맨발로 앉아서 갔다. 한나절 길을 가다가 시냇가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말을 먹이고 시내 앞나무에 기대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우니, 길 가는 사람들 중에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한 장사치가 시냇가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손으로 턱을 괴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수염까지 적시며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양생이 물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기에 나처럼 슬피 우는가? 원컨데 함께 속사정을 털어놓고 슬픈 회포를 토로하도록 하세."
양생이 먼저 말했다.
"나는 3년 동안 정주에 머물면서 사랑하는 기생이 있어 정이 무척 깊었다네. 나만 그 기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고, 기녀 또한 갑절이나 더 나를 사랑하였지. 하루 아침에 떼어 놓고 이별한 것 때문에 우는 것이라네."
장사치가 말했다.
"소인 또한 정주에서 한 어린 기생을 얻어 3년 동안 머물러 살았지요. 그 기녀는 관아의 자제가 몹시 사랑하는 바여서 밤낮으로 틈이 없었는데, 매번 어머니를 문안한다는 핑계로 하루에 세 차례씩 나왔지요.
즐거움과 정이 바야흐로 흡족했는데 하루 아침에 작별하게 되어 이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드디어 서로 붙잡고 통곡하며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
양생이 물었다.
당신이 사랑한 기녀의 이름이 무엇인고?
그런데 장사치가 사랑한 기생이 바로
양생이 사랑한 그 기생이었다.
이에 민망해져서 잡았던 손을 놓고 옷을 떨치고
돌아와 이로부터 다시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양생이 준 것은 목면 일천 필, 상화지 삼천 속이었는데, 모두 한 기녀에게 소비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