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2권 1-41 영사詠史 4 독당사讀唐史 당나라 사기를 읽고서
수계하판탕隋季何板蕩 수말隋末 어찌 그리 몰락했던가?
영웅루거망英雄漏巨網 영웅이 큰 그물을 빠져나갔네.
선리기진양仙李起晉陽 신선 이씨李氏 진양晉陽에서 일어났는데
괴오중소향魁梧衆所嚮 헌칠하여 여러 사람이 따르게 되었네.
진왕발란자秦王撥亂姿 진왕秦王은 난亂을 평정할 자격을 갖추어
배류수추장裴劉首推獎 배씨裵氏·유씨劉氏 맨 먼저 밀고 권했네.
정업건대당定業建大唐 큰 사업 정한 다음 대당大唐을 세워서
개국홍기장開國鴻基壯 나라를 개국開國하니 큰 터전을 넓혔어라.
►신선 이씨李氏
당제唐帝의 성姓이 이씨李氏이므로 그들은 “노자老子 이이李耳의 자손이다.”라 하고
노자교老子敎는 선仙을 지향하는 교敎이므로 선이仙李라고 한다.
►진왕秦王 당태종唐太宗은 처음에 진왕에 봉封해졌다.
►배씨裵氏·유씨劉氏 배적裵寂과 유문정劉文靜이 당태종唐太宗에게 권하여 거사하게 하였다.
차재수통초嗟哉垂統初 애닯구나, 큰 계통 세우던 처음
의형절인망儀刑絕人望 의법儀法은 사람들의 희망을 저버렸네.
규문형제간閨門兄弟間 가정 안의 일과 형제간의 일
미면초물유未免招物誘 사람들의 비평을 면치 못했네.
종차력대주從此歷代主 그로부터 역대歷代의 임금들은
화아자내장禍芽自內長 화禍의 싹이 안에서부터 자라서
►비평
당태종唐太宗은 황제의 지위 때문에 그 아버지 당고조唐高祖를 협박했고
그 형과 아우를 죽였으며 그 아우의 아내를 빼앗았다고 한다.
북문추성진北門醜聲振 북문北門에 추악한 이름 펼치고
어양가고탕漁陽笳鼓盪 어양漁陽에서는 피리와 북소리 들끓었네.
개불모연연皆不謀涓涓 모두 다 방울방울 작을 적에 도모하지 못해
경치흔천망竟致掀天浪 끝내는 하늘을 뒤흔드는 파도 되었네.
봉상납호골鳳翔納胡骨 봉상鳳翔에서는 호골胡骨을 모셔 들였고
액정동구향掖庭動毬響 궁중 뜰에는 공치는 소리 진동하였네.
잉지당조쇠仍之唐祚衰 그리하여 당나라 운수 쇠약해지니
정관도면앙貞觀徒緬仰 정관貞觀 시대를 한갓 멀리 우러러볼 뿐이었네.
►북문北門
당초唐初에는 중서사인中書合人을 두어 조고詔誥를 전장專掌케 하였으나 乾封 이후
재상들의 권한을 누르기 위하여 文士 원만경元萬頃 등을 불러 궁중의 의논에 참석하게 하고
또 문사文辭를 짓게 하였는데 모두 北門에 사후伺候한 까닭에
당시의 사람들이 이것을 가리켜 北門學士라고 비평했다.
►어양漁陽
지금의 河北省 밀운현密雲縣의 서남쪽에 있는 지명으로
당唐 玄宗 때에 안녹산安祿山이 이곳에서 반란反亂을 일으켰다.
►봉상鳳翔
섬서성 연양현의 동남쪽에 있는 지명으로
헌종憲宗이 이곳에 있던 불골佛骨을 서울로 모셔 들였다.
►구향毬響
당唐 말년에 황제들은 모두가 어리석고 어려서 내시의 손에 쥐였는데
그 내시들이 兵權을 잡고 軍兵들을 궁중에 불러들여 그들과 더불어 축구놀이를 하였다.
► 연연涓涓 (시냇물 따위의)흐름이 가늚. 涓涓→(삼수변 수氵)+(사사 사厶)+(달 月)
혼사천대보閽寺擅大寶 내시들 천자의 옥새 마음대로 하였고
번진수변괴藩鎮守邊壞 지방 장수는 변방 땅을 차지하였네.
이백구십력二百九十曆 이백 구십여 년의 책력 넘겼으나
위미난측장委靡難測掌 떨치지 못하여 손바닥도 헤아리기 어려웠네.
삼종칭영주三宗稱英主 삼종三宗은 영특한 임금이었고
왕위칭량상王魏稱良相 왕씨王氏·위씨魏氏도 현명한 정승이었네.
연이책비다然而責備多 그러나 책망하고 구비할 일 많으니
가의삼대상可擬三代上 삼대三代 위에 비의할 수 있으리.
►대보大寶
당唐나라 말년에 내시內侍들이 天子를 마음대로 하여 옥새玉璽까지 임의로 적어 주고 하였다.
►守邊
안녹산安祿山의 난亂 후에는 지방 절도사節道使들이 몇 고을씩 차지하고 조정의 명령을 거역하였다.
►삼종三宗 당나라의 헌종憲宗·무종武宗·선종宣宗을 말한다.
►왕씨王氏·위씨魏氏
왕王은 왕애王涯.
당唐 태원인太原人으로 자字는 광진廣津,
관官은 중서시랑中書侍郞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요 염철鹽鐵을 총할總轄했으며
다법茶法을 변경하여 선정善政을 베풀려 노력하였다.
이훈李訓 등과 함께 환관宦官을 죽이려다 일이 누설漏泄되어 살해되었다.
위魏는 위모魏謩. 위징魏徵의 5世孫. 字는 신지申之.
문종文宗이 위징의 후손을 구하자 천거薦擧되어
우습유右拾遺ㆍ우보궐右補闕ㆍ간의대부諫議大夫를 역임하고
어사중승御史中丞·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이부상서吏部尙書·
검교고서우복야檢校古書右僕射를 거쳐 재상이 되어 일을 帝前에서 의논함에
곧고 간절하여 피하는 것이 없었으며 저서에는 <위씨수략魏氏手略>이 있다.
피질열흥망披帙閱興亡 책 펴들고 흥망을 훑어보다가
엄권출하상掩卷出遐想 책 덮고 나서 먼 생각하노라.
사아생기세似我生其世 나 같은 자 그 세상에 났다 하여도
사희사추장乍喜乍惆帳 잠시 기뻐했다가 잠시 후 슬퍼하리.
왕래불탄번往來不憚煩 왕래하는 번거로움 꺼리지 않으니
숙운천재광孰云千載曠 누가 천년이 멀다고 말했던가?
감아우촉목感我偶觸目 내 우연히 눈길 닿는 데 느끼니
제조추림망啼鳥趨林莽 우는 새도 숲속에 날아든다.
●당서唐書
당나라의 정사正史로서 25史의 하나.
오대五代 후진後晉 왕조에서 유후劉昫, 장소원張昭遠 등이 편찬한 것으로서
당나라 고조高祖 무덕武德 1년(618)부터 애제哀帝 천우天佑 4년(907)까지의 역사를
기전체紀傳體 형식으로 쓴 200권의 책이다.
여기에는 제기帝紀 20권, 지志 30권, 열전列傳 150권이 포함되어 있다.
처음에는 단지 <당서>로 이룩하였지만 이후 북송北宋의 구양수歐陽脩, 송기宋祁 등이
<신당서新唐書>를 편찬한 바 있기 때문에
유후 등이 편찬한 것은 <구당서舊唐書>로 구별해서 부르기도 한다.
<구당서>는 200권으로 되어 있는데 당나라 멸망 직후의 사료가 부족하여 후반부가 부실하다.
전반부도 여러 사료에서 대강 발췌한 것이라 체제에 일관성은 없다.
그러나 당나라 때의 원 사료의 문장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신당서>는 225권으로 되어 있는데 송나라 때 <구당서>의 누락된 부분을 보충한 것도 많다.
표表가 많은 것도 특징이고 처음으로 병지兵志 ·선거지選擧志를 갖추었다.
문장은 당시 중시되던 고문으로 간결하게 기술하여 정사 편찬에 새로운 기원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원 사료의 문체까지 고치고 간략이 지나쳐 사료적 가치는 구당서에 비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