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方廣佛華嚴經講義
(대방광불화엄경 강의 419회)
◇1. 世主妙嚴品 3卷 講義中◇
第七行 主空神衆 法得
제7행 주공신중 법득=➃
● 2020. 12. 29(화)●
카톡/불교교리 강좌 901회
第七行主空神 法得
제 7행주공신 법득=➃
{본문}▸
▸無礙勝力主空神
무애승력주공신
㉭무애승력(無碍勝力)주공신은
▸得普入一切 無所着福德力解脫門
득보입일체 무소착복덕력해탈문
㉭모든 것에 두루 들어가되 집착이 없는 복덕의 힘인 해탈문을 얻었고,
▸離垢光明主空神
이구광명주공신
㉭이구광명(離垢光明)주공신은
▸得能令一切衆生 心離諸蓋淸淨解脫門
득능영일체중생 심이제개청정해탈문
㉭일체 중생들의 마음에 모든 번뇌를 떠나서 청정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강의}
“집착하는 바가 없는 복덕의 힘”이란 쉬우면서도 얼마나 어려운 말이고 행동인가.
모든 사람이 복덕을 지을 줄도 알고 지어야 한다는 마음도 누구나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 복덕을 지으면서도 그 복덕에 너무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손해가 오고 씻을 수 없는 행동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주상(無住相)이라고 표현되는 것에 그것이다.
○무주상보시(無住相報施):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이 무주상보시는 ≪금강경≫에 의해서 천명된 것으로서, 원래의 뜻은 법(法)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로 표현되었다.
이 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내가 남을 위하여 베풀었다.’는 생각이 있는 보시는 진정한 보시라고 볼 수 없다.
내가 베풀었다는 의식은 집착만을 남기게 되고 궁극적으로 깨달음의 상태에까지 이끌 수 있는 보시가 될 수 없는 것이므로, 허공처럼 맑은 마음으로 보시하는 무주상보시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기의 보조국사(普照國師)가 ≪금강경≫을 중요시한 뒤부터 이 무주상보시가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조선 중기의 휴정(休靜)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한 몸이라고 보는 데서부터 무주상보시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 보시를 위해서는 맨손으로 왔다가 맨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살림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이에게는 분수대로 나누어주고, 진리의 말로써 마음이 빈곤한 자에게 용기와 올바른 길을 제시해 주며, 모든 중생들이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참된 보시라고 보았다.
어두움이란 본래 없는 것과 같이 번뇌(煩惱)란 공(空) 한 것이다.
본래 공한 공도 리만 알면 아는 즉시 떠나게 된다.
각지칙무(覺之則無) 부작착방편(不作方偏)이라고 하였다.
공도리(空道理)를 화두로 삼고 한 번 풀어보라. 그대는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본문을 묶어서 해석을 본다면 다음과 같다.
무애승력(無碍勝力)주공신은
모든 것에 두루 들어가되 집착이 없는 복덕의 힘인 해탈문을 얻었고,
이구광명(離垢光明)주공신은
일체중생들의 마음에 모든 번뇌를 떠나서 청정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비슷한 한자와 뜻}
○開(열 개): 열다, 열리다, 통하다, 비롯하다, 꽃이 피다, 개간하다, 말하다, 소멸하다, 끊다.
○蓋(덮을 개): 덮다, 덮어씌우다, 덮게, 이엉 덮개, 뚜껑, 항아리 덮개, 식기 덮게, 그릇 덮개.
{모른 한자 손가락으로 써보기}
○第(차례 제) ○行(다닐 행) ○主(주인 주)
○空(빌 공) ○神(귀신 신) ○衆(무리 중)
○偈(쉴 게) ○頌(기릴 송) ○讚(기릴 찬)
○歎(읊을 탄) ○無(없을 무) ○礙(거리낄 애)
○勝(이길 승) ○力(힘 력) ○得(얻을 득)
○普(널리 보) ○所(바 소) ○着(붙을 착. 저)
○福(복 복) ○德(큰 덕) ○解(풀 해)
○脫(벗을 탈) ○離(어려울 이) ○垢(때 구)
○光(빛 광) ○明(밝을 명) ○能(능할 능)
○令(령 영) ○生(날 생) ○諸(모든 제)
○蓋(덮을 개) ○淸(말을 청) ○淨(깨끗할 정)
○解(풀 해) ○脫(벗을 탈)
- 大韓佛敎 曹溪宗 靑岩寺-
講 主: 天地導引 靑 岩.
[출처] 불교, 대방광불화엄경 강의(419회) 청암 스님|작성자 김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