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 앞에서, 시간을 줍다
운곡 조이무
서울 광장시장에서 발걸음을 옮기면 불과 십여 분 남짓한 거리다. 도시의 속도는 어느 순간 천천히 숨을 고른다.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동묘앞역에 내리면 사람들은 먼저 벼룩시장을 떠올린다. 낡은 축음기, 손때 묻은 군복, 녹슨 자물쇠, 이름 모를 시인의 시집, 주인을 잃은 안경 하나까지. 그러나 동묘는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라, 시간을 사고파는 조금 허술한 장터로 보인다. 이곳에는 물건의 가격표보다 세월의 흔적이 먼저 붙어 있다. 새것은 편리고 고급스럽게 보이지만, 오래된 것은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은 물건을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기억을 고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묘는 조선 선조 때 충의의 상징인 관우를 모시기 위해 명나라의 요청으로 세워진 사당이다. 임지왜란 당시 파병의 명분으로 공사를 했으나 조선의 자율적인 행위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왕조는 사라졌고, 근대의 격랑도 이곳을 스쳐 갔다. 그 긴 세월 끝에 동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품는 시장이 되었다. 역사는 늘 위대한 인물의 발자취만 기록하지만, 동묘는 이름 없는 서민들의 발걸음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시장을 걷다 보면 문득 묘한 풍경과 마주한다. 젊은이는 낡은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백발의 노인은 오래된 LP판을 쓰다듬는다. 어떤 이는 군화를 신어 보고, 어떤 이는 낡은 시계를 귀에 대고 초침 소리를 듣는다. 고장이 났는데도 버리지 못한 세월이 그 안에 들어 있기에 서로 공감하며 함께 어울어진다.
흥정을 하는 풍경 또한 재미있다.
"만원이면 안 될까요?"
"그럼 나는 오늘 점심은 굶어야지."
주인은 웃으며 말하고 손님도 웃는다. 결국 만오천 원에 거래가 끝난다. 손해를 본 사람도 없고 크게 이익을 본 사람도 없다. 어쩌면 흥정이란 돈을 깎는 일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거리를 조금 좁힐 수 있는 시장사람들의 의식인지도 모른다.
대형마트에서는 가격이 정직하지만 대화는 짧다. 동묘에서는 가격은 들쭉날쭉하지만 사람 냄새는 일정하게 풍긴다. 계산대보다 웃음소리가 먼저 오가는 풍물의 모습이다
농사를 짓는 나는 이곳을 걸을 때마다 밭이 떠오른다. 흙의 성질도 이곳과 비슷한 형편이다. 겉보기에는 메마른 토양이지만 뒤집어 보면 수많은 미생물이 살아 움직인다. 오래된 퇴비가 새로운 생명을 키우듯, 오래된 물건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면 다시 살아난다. 사람들은 그것을 폐품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에는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숙성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준다. 자연은 기다림 끝에 열매를 맺고, 동묘는 기다림 끝에 인연을 맺는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도시의 퇴비장'이라 부르기도하고. 보물을 숨겨노은 지도라고 부른다. 퇴비는 썩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명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동묘 역시 버려진 물건들의 무덤이 아니라 기억을 발효시키는 장소다. 낡은 의자는 다시 누군가의 쉼터가 되고, 오래된 책은 새로운 독자를 흥분시키기도한다. 또한 빛바랜 사진은 낯선 사람의 상상 속에서 또 다른 가족을 맞이한다. 젊은 시절에는 새것을 선호하며 빠른 길, 높은 자리, 화려한 명함을 꿈꾼다.그러나 세월이 등을 살짝 밀기 시작하면 비로소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배운다. 얼굴의 주름은 실패가 아니라 계절의 변환이고, 굽은 허리는 패배가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연륜이다.
만약 인생에도 중고시장이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내놓아 좌판을 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그려본다. 욕심은 팔고, 미움은 헐값에 넘기고, 후회는 무료 나눔으로 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가벼워질까. 대신 배려 하나, 웃음 하나, 용서 하나쯤은 비싸게 사 오고 싶다.
동묘는 물건보다 사람을 먼저 구경하게 만드는 시장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 머물면서 가던길을 계속 걷는다. 어느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라디오 앞에 앉아 흘러나오는 옛 노래만 듣는다. 또 어떤 이는 먼지를 털며 책장을 넘긴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시간조차 이곳에서는 손님이 된다. 철학자들은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이라 정의했다. 그러나 동묘를 걷다 보면 인간은 기억을 모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쌓여 추억이 되고, 추억이 쌓여 삶이 된다. 삶이 쌓여 비로소 한 사람이 완성에 도달한다. 도가에서는 모든 존재가 제자리를 찾아 순환한다고 말한다. 씨앗은 흙으로 돌아가고, 낙엽은 거름으로 돌아가고, 물은 강을 돌아 다시 바다에 이른다. 사람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은 '인간'으로 존재하지만, 세월을 견디며 타인을 품을 줄 알게 될 때 비로소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래서 동묘는 헌 물건을 파는 시장이 아니다.
시간이 사람을 어떻게 익혀 가는지를 보여 주는 배움의 성지다.
나는 오늘도 빈손으로 시장을 나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돌아오는 길은 무겁다. 낡은 시계 하나를 산 것도 아니고 오래된 책 한 권을 품은 것도 아니다. 대신 오래된 시간 몇 조각이 마음속에 들어앉았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동묘에서는 물건을 주운 것이 아니라, 세월을 주웠기 때문이다.
동묘 앞에서,
운곡 조이무
광장시장을 지나 십오 분쯤 걸었을까
동묘의 낡은 골목에 한쪽 무릎을 내려놓는다
햇볕에 바랜 군복 한 벌, 멈춘 지 오래된 손목시계, 귀를 떠난 축음기 등
주인을 잃고도 세상을 또렷이 바라보는 안경 하나
이곳에서는 버려진 것들이 먼저 말을 건넨다
낡은 중절모와 반짇고리와 보릿고개를 넘던 짚신의 숨결
막걸리 한 사발로 서러움을 삼키던 농부의 저녁까지
모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천 원짜리 가격표를 달고 있다
세월은 참 염치도 없다 사람의 한평생을 흔들어 놓고
마지막에는 “골라, 골라!”
관우의 붉은 얼굴은 오래된 사당 안에서 충의라는 칼을 내려놓지 못하고
사당 밖 사람들은 녹슨 칼보다 무딘 하루의 좌판 사이를 건너간다
왕조는 사라졌으나 장터는 남았고, 장수의 이름은 높이 걸렸으나
백성의 이름은 헌 옷 주머니에 영수증처럼 구겨저 있다.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단추 하나를 주었다.
누구의 가슴을 여미던 것이었을까? 사랑을 붙잡았을까?
아니면 떠나는 옷깃에서 마지막으로 떨어졌을까?
이름없이 수 많은 사람의 저녁이 지나간다
세상에 왔다고 믿었지만 살다보니 석양이 지척이다
인생은 자꾸 낡아가는 일이 아니라 낡은 것 속에 숨어 있다
골동품이라 부르고, 고물이라 부르지만 시간은 버려진 적이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옮겨갈 뿐이다.
해 질 무렵 상인들은 천막을 접고 비둘기들은 처마 밑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사지 않았는데 주머니가 묵직하다
새것을 향해 서둘러 달려가지만, 거꾸로 걸으며 버려진 어제를 줍는다.
어쩌면 시간이 사람을 조금씩 내려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바닥에 떨어진 기억 하나를 주워 가슴에 달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