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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르도-다빈치가 그린‘ #비트루비우스적인간 ’. 정사각형과 원 안에 팔다리를 활짝 뻗은 완벽한 비율의 남자를 그렸어요.
위키피디아
최근 이탈리아 연구진이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다빈치 (Leonardo da Vinci)의 가계도를 조사한 결과 그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10여 명 생존해 있다고 밝혔어요. 연구진은 많은 분야에서 천재적 능력을 발휘한 다빈치의 유전적 배경을 연구하기 위해 이런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다빈치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 자식이 없었어요. 후손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다빈치 부모와 형제들의 혈통을 연구한 거래요.
우리에게 ' #모나리자 ' ' #최후의만찬 ' 같은 걸작으로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인물'로 꼽혀요. 사망한 지 50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그의 창의성 원천에 대한 연구가 이뤄질 만큼 그가 현대 사람에게 주는 영감은 대단합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피렌체·밀라노·프랑스 오고 간 '코스모폴리탄'
다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 #피렌체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 빈치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이름은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라는 뜻이에요. 귀족도 아니었고 크게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죠.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다빈치를 친구였던 화가 #베로키오 에게 데려갔어요. 다빈치는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원근법 · #금속공예 기법 등을 배우며 예술가로서 기초를 다졌어요.
그는 고향 피렌체에서 재능을 크게 인정받지 못했어요.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들이 융성하던 시기였는데, 그는 #밀라노공국 으로 가서 군주 #루도비코-스포르차 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어요. 다빈치는 궁정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을 뿐 아니라, 무기와 수상스키 등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어요. 방적기·베틀 등 여러 기구를 고안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스포르차의 공국이 몰락하자 베네치아와 교황국을 거쳐 프랑스로 갔어요. #프랑수아1세 의 #궁정화가 로 일하면서 궁정 연회 등 대규모 행사를 기획하는 데 참여하기도 했죠. 1519년 5월 6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밀라노·베네치아·프랑스를 두루 돌아다니며 다양한 일을 했던 코스모폴리탄(세계 시민)이었답니다.
르네상스와 다빈치
그가 살던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어요. ' #르네상스 (Renaissance)'는 프랑스어로 ' #재생 '이란 뜻인데, 14~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그리스·로마 #문화부흥운동 을 뜻해요. 사상·문학·예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쳐 나타난 이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다른 서유럽 지역에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르네상스는 왜 이탈리아에서 시작됐을까요?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시대 이래로 오랫동안 비잔틴, 이슬람 세계와 서유럽을 연결하는 통로였어요. 12세기 #십자군전쟁 땐 십자군들의 이동 경로가 되면서 교역이 활발해졌고 그 덕에 여러 도시들이 발달했어요. 13세기 후반엔 부를 쌓은 상인들을 중심으로 시민 문화가 발달했고, 신에 대한 복종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문화 에 대한 욕구가 커졌죠. 그러면서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인간 중심적인 생활을 되찾으려는 풍조가 생겨났어요.
르네상스 시대엔 예술뿐 아니라 수학·천문학·공학 등 여러 분야에 능통한 '만능인'을 최고로 여겼어요. 다방면에 능력을 보이며 여러 분야를 접목한 다빈치는 그래서 '진정한 르네상스인'으로 불려요.
과학과 예술의 접목
다빈치는 과학과 예술을 접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빛·색채·인체·거리·움직임 등에 대해 정확히 알고 그리는 것이 진정한 회화라고 생각했어요. 과학이 예술만큼 중요하다고 보고 과학 지식을 예술 작업에 이용한 거죠. 예를 들면 그는 인체를 탐구하기 위해 30구가 넘는 시체를 해부했어요. 이런 과학적 탐구는 예술 작품에도 영향을 줬는데, '모나리자'의 미소도 그가 시체 해부로 얼굴 #근육 을 연구한 덕에 그려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와요. 또 #광학 (光學)을 연구해 이차원 평면에 그려진 물체가 삼차원처럼 보이게 하는 #명암 과 #원근법 도 사용했어요.
다빈치는 모든 것에 #의문 을 던지고, 궁금한 점을 알기 위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어요. 특히 #호기심 이 생기면 스스로 #실험 해서 해결해야 직성이 풀렸대요. 그는 항상 허리춤에 작은 노트를 갖고 다니며 보고 생각하는 모든 걸 메모한 ' #메모 광'이기도 했어요. 현재 전해지는 그의 기록·낙서 등이 7000페이지가 넘습니다. 그는 미래를 예견한 듯 자동차·헬리콥터·잠수함·대포 등 나중에 실제 등장한 많은 기계들을 고안하고 스케치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남아있는 회화 작품은 21점뿐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인물로 꼽히는 이유도 바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호기심을 갖고 여러 분야를 접목한 데서 나왔다고 분석됩니다. 창의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21세기 #혁신가 들도 그를 '롤모델'로 삼아요. 대표적 인물이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입니다. 빌 게이츠는 1994년 경매에서 다빈치의 친필 노트를 3080만 달러(약 357억원)에 낙찰받기도 했어요.
다빈치가 살던 시대엔 예술가를 주문받은 작품을 정해진 기간에 납품하는 #기술공 이나 #수공업자 같은 존재로 여겼어요. 그러나 다빈치는 스스로 '창조적 예술가'라고 생각했죠. 그는 작업 속도가 느리고 작업을 잘 끝맺지 못해 현재 전해지는 회화 작품이 21점에 불과해요. 하지만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추구한 그의 #독창성 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사생아·왼손잡이·채식주의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겐 우리가 몰랐던 면모가 많이 있어요. 그는 아버지 피에로 다빈치가 정식 결혼 전 한 여성과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 였어요. 그는 원래 #왼손잡이 였는데 후천적 노력으로 양손잡이가 됐대요. 여러 학자들이 그가 작품을 끝내지 못하고 다른 작품으로 옮겨간 행동 등을 볼 때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앓았을 것으로 봐요. 그는 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고 #동성애 · #채식주의자 로 알려져 있어요.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양한 #기계장치 들도 고안했는데, 거대 #석궁 (왼쪽), #헬리콥터 (오른쪽) 등이 #스케치 로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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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빌 게이츠가 경매에서 3080만달러(약 357억원)에 낙찰받은 #다빈치노트 의 일부(왼쪽). #다빈치 의 #자화상 으로 알려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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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진 양영디지털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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