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감상 : 원칙론이냐, 상황론이냐?
- 오늘날의 사회갈등을 생각하며 감상하는 두 편의 시 -
☞ 아래 두 시의 배경은 1636년(병자년) 12월, 청(淸)의 대군이 열흘 만에 서울로 몰아친 병자호란(丙子胡亂)이다. 임금과 세자가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있는 긴박한 상황에 대처하는 신하들 사이에 두 견해가 격돌한다. 주화파(主和派)와 주전파(主戰派). ‘항복하여 화친 맺고 일단 살자’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마지막까지 싸우다 함께 죽자’는 예조판서 김상헌. 1643년 호란이 끝나자, 공교롭게도 두 대신은 청나라 심양의 한 감옥에 각각 다른 이유로 갇히게 되고 이 시들을 주고받으며 오해를 풀고 흉금을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주화파의 상황론은 본질과 현상, 원리와 현실을 조화롭게 하자는 것. 지천(遲川) 최명길의 상황론은 단순히 시기와 상황에 순응하려는 현실 영합적 태도가 아님이 분명하다. 항복문서를 찢어버리는 청음(淸陰) 김상헌에게 최명길은 말한다. “이 문서를 찢는 사람도 없어서는 안 되지만, 붙이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裂之者 固不可無, 補之者 亦不當有邪) 항복에 의분을 참지 못하는 것도 옳고,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옳다는 것. 그러나 이 세상살이에서는 현실의 격랑에 휘말려 도리와 원칙이 온데간데없는 경우가 너무나 흔하지 않던가?
어렵다! 불완전한 사람, 불완전한 현실에서 상반되는 두 견해를 동시에 다 택할 수는 없는 것. 무릇 ‘인간의 삶이란 선택(選擇)의 연속이다.’라 했으니…. 결국 원칙과 현실을 놓고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고 우선순위를 두느냐(경중과 완급)의 가치관(價値觀) 문제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때와 상황에 알맞게 보다 나은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제도[평가와 상벌]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황론(權道, 權變)과 원칙론(常道, 經常)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시를 잠시 감상하며, 더욱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오늘날의 사회갈등 해결에 있어서 ‘제3의 창조적 대안의 모색’이 중요함을 통감한다. 자, 감상하실까요?
※ 위의 글은 『시경(詩境) : 한시(漢詩)와 도(道)』 (금장태 지음, 박문사 펴냄, 2010)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썼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밝힌다.
첫댓글 "歸 衣 違 機" 두 5언 율시(律詩)의 네 운(韻)이 같다.
두 대신의 높은 기품(氣品)을 느끼게 된다.
환란과 인고의 시절, 벗들의 건승을 기원하며..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