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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구용(阿諛苟容)
남에게 아첨하며 구차스럽게 얼굴을 꾸민다는 뜻으로, 자신의 이익을 따라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하는 행동을 말한다.
阿 : 언덕 아(阝/5)
諛 : 아첨할 유(言/8)
苟 : 구차할 구(艹/5)
容 : 얼굴 용(宀/7)
(유의어)
아유첨녕(阿諛諂佞)
투합구용(偸合苟容).
출전 : 맹자(孟子) 등문공장구 하(滕文公章句下)
우리 속담에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이 성어는 맹자(孟子) 등문공장구 하(滕文公章句下)에 나오는 말인데, 경춘(景春)이라는 사람이 맹자(孟子)에게 대장부(大丈夫)에 대해 물었다.
이에 맹자가 대답했고, 이에 대해 주희(朱熹; 朱子)가 해석한 맹자집주(孟子集注) 권6(卷六)에 보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景春曰: 公孫衍張儀, 豈不誠大丈夫哉? 一怒而諸侯懼, 安居而天下熄.
경춘(景春)이 말하였다. '공손연(公孫衍)과 장의(張儀)야말로 진실한 대장부가 아닌가요. 한번 노(怒)하면 제후(諸侯)가 두려워하고, 편안히 있으면 천하가 조용하지 않습니까?'
孟子曰; 是焉得爲大丈夫乎? 子未學禮乎? 丈夫之冠也, 父命之, 女子之嫁也, 母命之, 往送之門, 戒之曰: 往之女家, 必敬必戒, 無違夫子! 以順爲正者, 妾婦之道也.
맹자(孟子)가 말했다. “이들이 어떻게 대장부가 된단 말인가? 그대는 예의를 배우지 않았는가? 장부(丈夫)가 관례(冠)할 때는 아버지가 명(命)하고, 여자가 시집 갈 때는 어머니가 명(命)하는 것이니, 갈 적에 문에서 보내며 훈계하기를 '네가 시집가서는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조심하여 남편의 뜻을 어기지 말라'고 하나니, 유순한 것으로 바름을 삼는 자는 부녀자의 도(道)이다.”
[맹자집주] 주희(朱熹)
加冠於首曰冠。
관을 머리에 더하는 것을 관이라 한다.
女家, 夫家也。
여가는 남편의 집이다.
婦人內夫家, 以嫁為歸也。
부인이 남편의 집으로 시집감으로써 귀라 한다.
夫子, 夫也。
부자(夫子)는 남편이다.
女子從人, 以順為正道也。
여자는 사람을 따르니 순히 함으로 바른 도를 삼는다.
蓋言二子阿諛苟容, 竊取權勢, 乃妾婦順從之道耳, 非丈夫之事也。
대개 두 사람(공손연, 장의)은 아유구용(혀끝으로 아첨하고 구차하게 용납하는 일)하여 권세를 절취하였으니, 이에 첩부가 순종하는 도요, 장부의 일이 아니다.
[蛇足1]
진(秦)나라 2세 황제 때 박사로 임용한다는 조서(待詔博士)를 기다리고 있던 숙손통(叔孫通)이라는 사람은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난 소문을 듣고 2세 황제가 반란이라며 노하자 반란이 아니고 쥐새끼 같은 도적이라고 아첨을 하여 목숨을 구하고서 고향 설현(薛縣)으로 돌아갔다.
그곳에 항량(項梁)의 반란군이 투항했다. 항량이 정도(定陶)에서 패하고 죽자 초회왕(楚懷王)을 따라갔고, 회왕이 의제(義帝)가 되어 장사현으로 옮기게 되자 이번에는 항우(項羽)를 섬기게 되었다.
BC 205년에 유방(劉邦)이 제후들의 군대를 이끌고 팽성(彭城)을 공격하자, 한군(漢軍)에게 투항했다. 유방이 한(漢)나라를 세우자 공신이 되고 한나라 조의(朝儀, 조정과 군신 간의 예의 거동에 관한 규정)등을 만드는 등 부귀영화를 누렸다.
[蛇足2]
여포(呂布)는 삼국지(三國志)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등에서 후한(後漢) 말기의 군웅(群雄) 가운데 가장 무용(武勇)이 뛰어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삼국지(三國志)에 주(註)로 인용되어 있는 조만전(曹瞞傳)에 따르면 민간에서는 그가 탔다고 전해지는 적토마(赤兎馬)와 함께 '사람 가운데는 여포, 말 가운데는 적토마(人中呂布 馬中赤兔)'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던 인물이지만 절개가 없으며 물욕이 많아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아유구용(阿諛苟容)을 보자.
처음 병주자사(幷州刺史) 정원(丁原)의 가신(家臣)➡️ 정원(丁原)을 죽이고 동탁(董卓)의 수하가 됨➡️ 사도(司徒) 왕윤(王允)이 초선貂蟬)을 미끼로 동탁을 죽임➡️ 이에 반발한 곽사(郭汜), 이각(李傕)에게 패➡️ 원소(袁紹)에 합세 했다가➡️ 장막(張邈)에 의지하였다가, 다시 하내(河内)로 가서 장양(張楊)의지➡️ 다시 유비(劉備)에 의지하였다가 유비의 본거지인 하비(下邳; 지금의 江蘇省 邳州市)를 빼앗고➡️ 원술과 손을 잡고 조조(曹操)에 맞섬. 조조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서주(徐州)를 공격하자 여포는 하비성(下邳城)에서 조조의 군대에 포위되어 3개월 동안 농성전(籠城戰)을 벌였지만 결국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아유구용(阿諛苟容)
돈이나 권세 앞에, 또는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알랑거리는 아첨(阿諂)은 누구나 배격한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아부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불이익을 준다고 내세우고는 비위나 맞추는 부하를 좋아한다.
아랫사람도 알랑거리는 것과는 담을 쌓았다고 큰소리치지만 은연중에 상사가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인간은 아첨하는 동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힘 앞에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나타내는 말이 많은 것도 아첨을 조심하라는 말이겠다.
상관의 수염을 불어주고 변까지 맛본다는 불수상분(拂鬚嘗糞), 그름과 치질을 핥아준다는 연옹지치(吮癰舐痔), 말똥 위에서 무릎으로 긴다는 슬행마시(膝行馬矢) 등 여럿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阿諛) 구차스럽게 얼굴을 꾸미는(苟容) 일도 맹자(孟子)가 아첨으로 여겨 가치를 두지 않았다. 등문공(滕文公) 하편에 실린 내용이다.
뛰어난 언변으로 제후들을 설득하는 변설가 경춘(景春)이란 사람이 맹자에게 공손연(公孫衍)이나 장의(張儀) 같은 종횡가가 진정한 대장부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들이 한번 성을 내면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가만히 있으면 천하가 조용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나 맹자는 남자가 관례를 할 때나 여자가 시집을 갈 때 부모가 훈계를 한다면서 말을 잇는다.
반드시 공경하고 삼가서 뜻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순종하는 것을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은 아녀자의 도리(以順爲正者 妾婦之道也)’라며 일축했다.
두 종횡가는 제후의 뜻을 따르기만 할 뿐 진정으로 보필하지 못했으므로 대장부가 될 수 없고 아녀자의 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주희(朱熹)의 맹자집주(孟子集註)에는 이들 두 사람을 ‘군주에 아첨하여 구차하게 꾸몄으니 권세를 절취한 것(蓋言二子阿諛苟容, 竊取權勢)’이라 혹평했다.
사기(史記)에는 조(趙)나라의 명장 염파(廉頗)가 자신의 식객들이 벼슬에서 물러나니 빠져나갔다가 권세를 찾으니 몰려들어 아부하는 것을 阿諛苟容이라 한탄했다고 나온다.
좋은 자리도 오래 가지 못하고 그것에 따라 몰려드는 아첨배들도 자기에 이득이 없어졌다 하면 언제든 빠져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꾸준히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이 빛을 늦게 볼지는 몰라도 믿음을 주는 사람이다. 높은 자리의 상관이 진정 조직을 위한다면 어떤 사람을 두어야 할지는 답이 나와 있다.
아유구용(阿諛苟容)
남에게 아첨하여 구차스럽게 굴며 살아감
1. 아첨과 비난이 돈과 권력의 기반이 되는 세상
특정 연예인이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어떤 일만 일어나면 악성 댓글이 만연하여 한동안 악플(악성 댓글)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 선플(선한 댓글)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현상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어떤 정치인은 자기 정당의 나팔수가 되고, 그 나팔수 역할로 정치적 자리를 보존한다. 그는 상대 당, 상대 정치인을 비난하기 위해 정치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는 아예 상대 당과 상대 정치인을 비난하고 헐뜯는 일에만 몰입한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다음 문제이다. 일단 문제를 제기하고 관심을 집중시키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는 그 대가로 자리를 보존한다. 정당은 그런 자가 있어야 상대 당을 헐뜯고 비난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등용하고 옹호한다. 권력과 정치가 부패한 세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국민 중에도 상당수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편을 갈라 싸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에서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여 각자의 주장을 펴는 일은 기본이며 상식이지만,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너무 많다. 자기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정당과 정치인, 심지어는 일반인들까지 무조건 비난하는가 하면 같은 편은 무조건 옹호한다.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은 각자의 입맞에 맞는 편에 서서 박수를 보내고 후원을 한다. 그 과정에서 특정인(정치인, 유튜버 방송인 등)은 자리를 얻고 유지하며, 돈을 벌고 존재 이유를 찾는다. 어떤 이들은 유튜브 등 매체를 통해 특정인을 비방하고 특정인을 옹호하는 것으로 돈을 왕창 벌기도 하고 그것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삼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일상적인 상황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자본주의가 부패하면 사람을 비난하고 옹호하는 것으로 돈을 버는 일이 만연해진다. 사람을 비난하고 특정 권력자의 비위만 맞추어 권력과 돈을 얻고 삶을 지탱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부패한 정치 사회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사회에 그런 모습이 만연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가 최소한의 기본적인 원칙을 잃어버리면 돈의 노예가 되어 사람을 도구로 하여 돈을 벌게 된다. 사람을 도구로 하는 경우는 많지만, 특히 사람을 비방하고 옹호하는 일로 정치적 입장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구미(口味)를 맞추는 것으로 돈을 버는 일은 참으로 비겁한 행위다.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인이 특정 정치인이나 상대 당을 비방하고 자기 당, 자기를 지지하는 정치인을 무조건 옹호하므로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고 획득하는 사람 또한 매우 비겁한 정치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갈수록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진실의 문제는 논외의 문제이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지지와 호응을 얻을 수 있느냐와 상대를 얼마나 치명적으로 공격할 수 있느냐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진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진실과 윤리적 양심과 정치적 진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기와 자기편의 이익에만 몰입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상황이 바뀌면 함몰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기편에 대해서는 관대한 표퓰리즘을 발휘하지만, 반대편에 대해서는 이빨이 날카로운 이리가 된다.
일본 세이케이대학교 문학부 미디어론 교수인 이토 마사아키는 그의 책 '플레이밍 사회'에서 이런 사회를 플레이밍 사회라고 한다. 플레이밍 사회 사람들은 누군가의 잘못에 ‘불같이’ 달려들어 비판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플레이밍이란 ‘활활 타오른다’는 의미로 비난, 비방 등의 글이 빠르게 올라오는 것을 지칭하는데 그는 이 책에서 ‘플레이밍(flaming)’ 현상을 분석한다.
플레이밍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모두 이야기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가 만연한 세상에서 플레이밍(악성 게시물, 사이버불링, 해시태그 운동, 캔슬 컬처 등)은 끊임없이 일어나며 대립과 갈등 구조를 재생산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감정, 욕망, 이데올로기 등에 주목하면서 정치, 경제, 취향 등의 성향을 들추며 열광하고 집착한다. 인터넷이 무한대로 발달하는 세상에서 제어하기 힘든 무한한 욕망과 자유의 극대화는 이런 현상을 방관하고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사회는 분열되고 양극화되고 상처를 주고 받는다. 그런 가운데 진실은 은폐되고 거짓이 진실의 가면을 쓰고 난무한다. 마치 히틀러시대처럼.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런 것들이 권력과 돈벌이의 수단이 되고 그것이 또한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유구용(阿諛苟容)을 일삼으며 자기 지지자를 규합하고 거짓을 확대 재생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적의 위치에 있는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도 한다. 진실이 밝혀진 후에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어렵다. 이런 사회는 전통적인 윤리로 보면 분명 비인간적인 것이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선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인되고, 때로는 해프닝으로 끝나기도 한다.
2. 아유구용(阿諛苟容)이 확대되는 플레이밍 현상
아유구용(阿諛苟容)에서 아유(阿諛)는 ‘아첨하다’ ‘알랑거리다’의 의미이다. 구용(苟容)은 ‘구차하게 비위를 맞추는 행동’을 말한다. 아유구용(阿諛苟容) 하는 자들은 자기와 뜻을 같이하거나 정치적 혹은 금전적 이익이 되는 경우에는 상대편을 가차 없이 공격하고 자기편은 철저하게 옹호한다. 그가 누구인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에게 권력과 이익을 줄 수 있는 권력자나 후원자, 그리고 지지자의 구미만 맞추면 된다.
오늘날 이런 유형의 정치인들은 대체로 비례대표로 뽑힌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정당의 입장, 정당 권력자의 이익에 충실하였기에 등용이 되었고 그 자리를 보존하고 다음 기회에 또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공천권자나 핵심 권력자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 따라서 핵심 권력자와 정당의 전위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의 비례대표제는 본래의 취지인 전문성을 살리는 일보다 정당과 권력에 충견을 구하고 기르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상당수의 정치적 유튜브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정치적 입장의 권력과 지지자들에게만 충실하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고 재수 좋으면 정치적 지위를 얻을 수 있으며, 지지자들의 후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들 역시 권력과 지지자 양쪽에 아유구용(阿諛苟容) 한다. 이들은 아유구용(阿諛苟容)이 확대 재생산되는 플레이밍 현상을 확대 재생산한다.
3. 고사에 나타난 아유구용(阿諛苟容)과 그 풍자시
이러한 아유구용(阿諛苟容)은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아유구용(阿諛苟容)하는 자는 넘쳐난다. 그래서 아유구용(阿諛苟容)이 난무하는 세상은 그만큼 세상이 혼란스럽다는 증거가 된다.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아유구용(阿諛苟容)으로 자리를 얻고 보존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고사에 나오는 아유구용(阿諛苟容)과 관련한 이야기를 보자.
소평은 원래 진(秦)나라 때 동릉후(東陵侯)였다. 그가 진나라의 동릉후(東陵侯)로 있을 때는 벼슬이 높았기에 ‘비단옷을 입고 허리에 구슬 띠를 두를’ 수 있었다. 그러나 권력은 무상한 것, 진나라가 멸망한 후 장안성 동쪽에서 평민으로 가난하게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는 참외 농사를 지었는데 그 맛이 아주 특별하여 사람들은 그 참외를 “동릉과(東陵瓜)”라고 불렀다. 소평은 모든 벼슬을 내려놓고 세상을 조심스럽고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새로운 정권(한나라)에 대하여 비판이나 대항의 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았다. 그러했기에 그는 천명을 다하여 살았다.
소하(蕭何)는 한(漢)나라 초기 상국을 지낸 인물이다. 진나라 멸망 후 한 고조 유비가 세운 한나라 10년에 여후(呂后)가 소하(蕭何)를 이용하여 명장 한신(韓信)을 죽였다. 소하는 여후의 명에 따라 한신을 음해하고 죽일 계책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때 유비는 한단(邯鄲)에 머물고 있었는데 장안(長安)에서 온 사자에게서 한신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고 매우 기뻐했다. 유방은 전선에서 곧바로 한신을 죽이는데 기여한 공로로 소하를 상국(相國)으로 승진시키고, 5천호를 봉하였으며, 병사 5백 명을 주어 도위(都尉) 한 사람에게 상국을 호위하게 했다. 소하는 일약에 높은 벼슬에 올랐다. 권세가 대단했다. 아첨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농사를 짓던 소평(邵平)은 소하를 만나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제부터 당신의 화(禍)는 시작입니다. 황상께서는 지금 외지에 나가 고생하며 싸우고 있는데, 상국께서는 도성에서 수비만 하고 편안히 있습니다. 더군다나 당신은 전쟁에서 아무 공도 세우지 않았는데도, 상국에 봉해지고 봉지를 늘려 주고, 호위 병사까지 증강해준 것은 회음후(淮陰侯) 한신의 반란 때문입니다. 아마 황상께서는 상국인 당신도 의심할 것입니다. 그러니 상국께서는 봉지를 반납하고, 가산을 군량으로 내놓으면 황상께서 기뻐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매우 그럴 듯하였다. 소하는 곧 소평의 의견을 따라 실행했다. 한고조 유방은 매우 기뻐했다. 2년 뒤 한나라 12년, 유방은 경포(黥布)의 반란을 토벌하러 나가 불시에 소하에게 사람을 보냈다. 소하는 곧바로 가산을 내어 이전과 같이 군량을 충당시켰다. 유방은 그런 소하를 칭찬했다.
그러나 또 소하를 걱정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상국께서는 머지않아 멸족의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지금 공이 많아 상국에 임명되었으나 이제 더 줄 지위가 없습니다. 상국께서는 관중(關中)에 오신 이후로 백성의 마음을 얻었고, 백성들도 상국을 칭찬하고 있으니, 황상께서 어떻게 마음을 놓겠습니까? 그러니 상국께서는 농토를 싼값으로 매입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듣는다면, 황상께서도 상국에게 경계를 풀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소하는 그렇게 했다. 유방이 경포의 반란을 진압하고 장안으로 돌아오는데 백성들이 길을 막고 상소했다. 소하가 백성들의 농토와 집을 싼값으로 매입하였다고 원망했다. 소하가 유방을 알현했다. 그때 유방은 소하에게 백성들의 고소장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상국이 이제까지 백성들을 위해서 한 일이요? 상국이 직접 가서 이 고소 문제를 해결하시오” 하고 말했다. 그러나 유방은 소하를 꾸짖기는커녕 기뻐하고 있었다.
그때 소하는 유방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장안은 땅은 좁은데 사람은 많습니다. 폐하의 상림원(上林苑)에는 큰 공터가 있는데 아직 쓰지 않고 그냥 있습니다. 백성들을 상림원으로 불러 농사를 짓게 하고, 수확한 양곡은 백성이 가져가고, 볏짚과 보릿대는 겨울철에 관에서 말의 사료로 먹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하의 이 말에 유방은 크게 노하며 “상국은 분명 상인들에게서 재물을 받았나 보오. 하여 짐의 상림원으로 그들에게 인정을 베풀려 하는 것이오”하고 말하며 정위(廷尉)에게 소하를 심문하게 했다.
정위는 소하를 죄인 취급하고 수갑을 채워 감옥에 가두었다. 며칠이 지났다. 그때 유방의 시중을 드는 시위(侍衛)인 왕(王)이 고조에게 아뢰었다. “상국이 어떤 대죄를 지어서 폐하께서 감옥에 가두셨습니까?”
유방이 대답했다. “내가 듣기로는 이사(李斯)가 진시황제를 보필할 때, 좋은 일은 황제에게 돌리고, 나쁜 일은 자기에게 돌렸다고 하던데, 지금 상국은 상인의 돈을 받고 짐의 상림원을 요구하여, 백성의 비위를 맞추고 있으니, 그의 죄가 크네.”
“대부분의 일은 백성에게 이익이 되면, 황상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상국이 한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어찌 상국이 상인의 돈을 받았다고 의심하십니까? 게다가 폐하께서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초국과 싸울 때도, 진희와 경포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폐하께서 친히 군대를 인솔하여 산동 지역으로 토벌을 나갔을 때도, 상국은 폐하를 위해 관중을 수비했습니다. 만약 상국이 조금이라도 흑심을 품었다면, 관중 서쪽은 벌써 폐하의 영토가 아닐 것입니다. 상국이 수년간 폐하께 충성했는데, 어떻게 지금에 와서 상인의 돈을 받고 폐하를 속일 수 있습니까? 진(秦) 왕조는 황제가 자신의 과실에 대한 고언을 듣지 않아서 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사는 잘못을 모두 자신에게 돌리므로 황제의 비위를 맞추고, 왕조의 붕괴를 재촉했는데 어찌 그것을 모방하려 하십니까? 폐하의 상국에 대한 의심은 상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생긴 것입니다.”
시위 왕의 말을 들은 유방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그날로 상국을 석방하고 사면시켰다.
소하는 유방에게 끝까지 예의를 지켰고 자신을 낮추며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소하는 나이가 들어 유방을 알현했다. 유방은 소하의 공에 대한 표창으로 신발을 신고 들어가 황제를 뵐 수 있게 허락했지만, 소하는 항상 신발을 벗고 걸어 들어가 사죄하듯 알현했다.
그때 유방은 “상국은 이제 돌아가 쉬시오. 나는 상림원에 대한 상국의 청을 허락하지 않았소. 나는 걸왕(桀王)이나 주왕(紂王)같은 황제에 불과하지만, 백성들은 상국을 현명한 재상으로 생각할 것이오. 그래서 내가 상국을 며칠 동안 가두었으니, 백성들은 또 나의 과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오”하고 말했다.
소하와 조참(曹參)은 평소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유방이 죽고 그 아들 혜제(惠帝)가 즉위했지만 소하를 여전히 상국으로 삼았다. 소하가 늙어 병이 위중해지자 혜제는 친히 상국에게 문병을 갔다. 혜제가 상국에게 말했다. “만약 상국이 백세를 누린 뒤라면, 누구를 상국으로 임명하면 좋겠습니까?” 상국이 대답했다. “신보다는 폐하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이어 혜제가 “조참이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황상께서 조참을 상국으로 삼으신다면, 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소하는 늙어서 궁벽한 곳에 전답과 집을 마련하고 소박하게 살다가 죽었다. 소하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후세의 현명한 사람이라면 나의 검박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후세의 현명하지 않은 사람은 이런 집과 토지를 가진 권세가를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평과 소하의 삶을 두고 뒷날 사람들은 풍자시를 읊었다. 홍만종은 순오지에서 참설(讒舌)이야말로 인간이 해야 할 짓이 못되며 참소야말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인데 세상은 그것이 난무하니 슬픈 일이라 했다. 그러면서 그는 권력자에게 참설(讒舌)을 팔아 권세와 재력을 구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시를 소개하고 있다. 그야말로 뒷날 사람들이 읊은 참설(讒舌) 풍자시이다.
秦時東陵千戶侯(진시동릉천호후)
진나라 때 동릉으로 있던 천호후는
華蟲被軆腰蒼璆(화충피체요창구)
비단옷을 입고 허리에 구슬 띠를 둘렀네
漢初沛邑刀筆吏(한초패읍도필리)
한나라 초기의 패읍에 있던 도필리는
析腰如磬頭搶地(석요여경두창지)
허리를 굽신거리며 종노릇을 하였네
蕭何厥初謁邵平(소하권초알소평)
소하가 맨 처음 소평을 알현할 때에는
中庭百拜百不應(중정백배백불응)
백번이나 절을 해도 못 본 척 하더니만
邵平後來謁蕭相(소평후래알소상)
소평이 나중에 소하를 알현할 때는
故使一拜一惆悵(고사일배일추창) 절
한번 할 때마다 슬픈 생각이 나게 하였네
秦時東陵千戶侯(진시동릉천호후)는 앞에서 말한 소평의 이야기다. 소평은 동릉후로 있었기에 ‘비단옷을 입고 허리에 구슬 띠’를 두를 수 있었다. 이는 높은 작위의 관복을 입은 모습이다. 그러나 자기가 섬기던 나라가 망하고 새 나라가 들어섰을 때는 초야에 묻혀 농사를 지으며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로지 평화로운 삶을 추구했다.
도필리는 한나라 초기부터 문서를 관리하던 아전이었다. 그는 절대로 권력에 대항하거나 딴지 거는 소리를 하지 않고 오로지 명하는 대로 수행하면서 윗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었다. 비록 굽신거리며 종노릇을 하였지만, 자리와 명(命)을 보존할 수 있었다.
소하는 진 나라 사람이지만 한 나라가 들어섰을 때 유방의 마음을 읽고 유방의 편에 서서 한신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였다. 그래서 재상의 지위를 누렸다. 그리고 끝까지 유방의 비위를 맞추며 검소 검약하게 살았다. 유방은 자기보다 더 나은 신하, 자기보다 백성의 신임이 두터운 신하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신의 주살(誅殺)이었다.
소하에게 조언을 한 소평이나 주변 사람들도 유방의 그런 성향을 알기에 그렇게 하였고 소하는 유방의 그런 것을 깨닫자 철저하게 유방에게 엎드리며 자기를 낮추었다. 소하는 그래서 죽을 때까지 관직과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살려면 쓸개는 개를 주어야 했다. 그러나 소평은 달랐다. 자기가 섬기던 나라가 망했기에 아예 벼슬을 내려놓고 농사를 지으며 평민으로 살았다. 사람들은 재상까지 한 소하를 아유구용(阿諛苟容)한 인물로, 나라가 망하자 평민으로 검박하게 살았던 소평을 선비의 지조를 지킨 인물로 평가하며 위와 같은 풍자의 시를 읊은 것이다.
4. 아유구용(阿諛苟容)에 대한 평가
아유구용(阿諛苟容)은 처세술인가? 선비의 지조를 버린 치졸함인가?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것 같다. 권력자가 아무리 조언과 직언을 듣고자 한다고 하나 속성상 쓴소리를 싫어한다. 그때 유연하게 쓴소리를 하며 자존을 지키고 정사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권력에 도취한 권력자는 겉으로는 직언을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아유구용(阿諛苟容) 하는 자를 좋아한다.
임진왜란 때 백성들의 신뢰를 잃은 선조가 날이 갈수록 백성의 찬양이 높아지는 이순신을 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순신은 아유구용(阿諛苟容) 하지 않았기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사기(史記)의 집대성자인 사마천 또한 아유구용(阿諛苟容) 하지 않았기에 궁형(宮刑)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다.
성삼문, 하위지 등 사육신은 아유구용(阿諛苟容) 하지 않고 선비의 지조를 지켰기에 끝은 죽음이었지만 역사에서 명분과 자존심은 살렸다. 그러나 신숙주 등은 지조를 버리고 아유구용(阿諛苟容) 하였기에 높은 관직을 받고 명을 다해 살았고 대를 이어 관직을 하였으나 역사에는 지조 없는 변절자로 기록되었다.
김시습은 생육신으로 지조를 지키면서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다가 생을 마감하였기에 역사에서 존경은 받으나 본인의 생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유구용(阿諛苟容) 하지 않고 지조와 의리, 정의를 지킨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때로는 목숨까지 담보하여야 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역사는 항상 아유구용(阿諛苟容) 하지 않는 지조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바로 세워져 왔다.
아유구용(阿諛苟容) 그것은 어쩌면 비겁한 짓이고 어쩌면 처세에 능한 짓이다. 그러나 권력은 그 아유구용(阿諛苟容) 하는 자들에 의해 부패하고 세상은 더 혼란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아유구용(阿諛苟容) 자는 지위와 돈,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순신이나 사마천과 같은 선비의 지조를 지키는 자들에 의해 세상은 늘 바로 선다. 진시황에 죽은 후 승상인 이사가 지조를 끝까지 지켰다면 진나라는 멸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금 한국에는 아유구용(阿諛苟容) 하는 소하와 같은 자가 많은가? 지조를 지키고 초야에서 사는 소평과 같은 자가 많을까? 정의를 위해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이순신과 같은 자가 많을까? 아유구용(阿諛苟容)이 확대되는 플레이밍 현상이 극에 달하는 지금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 阿(언덕 아, 호칭 옥)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휘어 구부러지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可(가, 아)로 이루어졌다. 山(산)의 굽은 곳 또는 언덕의 뜻을 나타내고, 倚(의; 추종의 뜻)와 통하여 아부하다의 뜻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阿(아, 옥)는 (1)성(姓)의 하나 (2)아프리카 주 등의 뜻으로 ①언덕, 고개, 구릉 ②물가(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 ③대답하는 소리 ④모퉁이 ⑤기슭 ⑥집, 가옥(家屋) ⑦처마(지붕이 도리 밖으로 내민 부분), 차양(遮陽: 처마 끝에 덧붙이는 좁은 지붕) ⑧마룻대(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⑨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양 ⑩의지하다 ⑪두둔하다, 편들다 ⑫아름답다 ⑬알랑거리다, 영합하다 ⑭한쪽이 높다 그리고 호칭 옥의 경우는 ⓐ호칭(呼稱)(옥)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언덕 구(丘), 언덕 애(厓), 언덕 원(原), 언덕 구(坵), 언덕 파(坡), 언덕 강(堈), 밭두둑 롱(壟), 언덕 안(岸), 언덕 치(峙), 언덕 강(崗), 언덕 애(崖), 언덕 구(邱), 언덕 판(阪), 언덕 릉(陵), 언덕 고(皐), 언덕 부(阜)이다. 용례로는 한쪽이 높은 언덕을 아구(阿丘), 세상에 아첨함을 아세(阿世), 딸이나 또는 여자를 아녀(阿女), 쇠가죽을 진하게 고아 굳힌 것을 아교(阿膠), 남의 마음에 들려고 간사를 부려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리는 짓을 아첨(阿諂), 돈을 달리 이르는 말을 아도물(阿賭物), 여인이 남편이나 애인을 친근하게 일컫는 애칭을 아랑(阿郞), 자기의 아버지를 아옹(阿翁), 비위를 맞추며 순종함을 아순(阿順), 너그럽게 용서하거나 용납함을 아용(阿容),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아첨하고 두둔함을 아호(阿護), 몹시 아플 때에 내는 소리를 아포(阿謈), 나이가 어린 사람을 이르는 말을 아해(阿孩), 알랑거림을 영아(迎阿), 아첨함을 의아(依阿), 큰 집이라는 뜻으로 국가를 상징하여 이르는 말을 대아(大阿), 며느리를 부아(婦阿), 골짜기의 굽은 곳을 간아(澗阿), 남에게 잘 보이려고 구차스럽게 아첨함을 아유구용(阿諛苟容), 자기의 주견이 없이 남의 말에 아부하며 동조함을 아부뇌동(阿附雷同), 전란이나 그밖의 일로 인하여 큰 혼란 상태에 빠진 곳을 아수라장(阿修羅場),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이라는 아비규환(阿鼻叫喚) 등에 쓰인다.
▶ 諛(아첨할 유)는 형성문자로 谀(유)는 간체자, 䛕(유)는 속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臾(유)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諛(아첨할 유)는 ①아첨하다(阿諂--) ②비위를 맞추는 말 ③즐겨 따르는 모양 등을 이르는 말이다. 유의어로는 媚(아첨할 미/예쁠 미), 諂(아첨할 첨) 등이다. 용례로는 남에게 아첨함을 유녕(諛佞), 아첨하여 기쁘게 함을 유열(諛悅), 아첨하는 말씨를 유사(諛辭), 아첨하는 말을 유언(諛言), 알랑거려 남의 환심을 삼을 유미(諛媚),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림 또는 그런 말이나 짓 또는 아첨을 잘하는 사람을 첨유(諂諛),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림 또는 그런 말이나 짓을 아유(阿諛), 대면하여 아첨함을 면유(面諛), 교묘하게 아첨함을 교유(巧諛),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아첨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아유자(阿諛者), 아첨하여 한쪽으로 치우침을 이르는 말을 아유편파(阿諛偏頗), 남에게 아첨하여 구차스럽게 굶 또는 그런 행동을 이르는 말을 아유구용(阿諛苟容), 권세가에게 아첨하여 남의 지위를 빼앗음을 이르는 말을 아유경탈(阿諛傾奪), 아첨하는 버릇을 이르는 말을 첨유지풍(諂諛之風) 등에 쓰인다.
▶ 苟(진실로 구/구차할 구)는 ❶형성문자로 茍(구)는 통자(通字), 芶(구)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句(구)로 이루어졌다. 본디 풀 이름으로 음(音)을 빌어 적어도 결코의 뜻의 부사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苟자는 ‘진실로’나 ‘참으로’, ‘구차하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苟자는 艹(풀 초)자와 句(글귀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苟자를 보면 양쪽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개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개가 주변을 ‘경계’를 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소전에서는 개가 귀를 세우고 있는 모습을 句자와 艹자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글자의 구성만으로 뜻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苟자는 개가 주변을 철저히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진실로’나 ‘참으로’라는 뜻을 가지게 된 글자이지만 지금은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구차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苟(구)는 ①진실로, 참으로 ②다만, 단지(但只) ③겨우, 간신히 ④만약(萬若) ⑤구차(苟且)하게 ⑥바라건대 ⑦잠시(暫時) ⑧구차하다, 구차하게 굴다 ⑨미봉(彌縫)하다(일의 빈 구석이나 잘못된 것을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주선하여 꾸며 대다) ⑩낮다 ⑪탐(貪)하다, 탐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또 차(且)이다. 용례로는 몹시 가난하고 궁색함을 구차(苟且), 한때 겨우 편안함을 구안(苟安), 구차하게 겨우 살아감을 구생(苟生), 겨우 합치함이나 아부함을 구합(苟合), 겨우 채움을 구충(苟充), 간신히 액을 벗어남을 구면(苟免), 구차한 목숨을 구명(苟命), 구차스럽게 삶을 구존(苟存), 구차하고 과람함을 구람(苟濫), 구차하게 참아 견딤을 구모(苟冒), 진실로 사양함을 구사(苟辭), 구차하게 좇음을 구순(苟循), 구차스러운 말을 구언(苟言), 비굴하게 남의 비위를 맞춤을 구용(苟容), 일시적으로 구차하게 따름을 구종(苟從), 구차하고 가난함을 간구(苟艱), 눈앞의 안일을 탐냄을 구투(苟偸), 가난하고 구차함을 간구(艱苟), 구차스럽게 겨우 목숨만을 보전하며 부질없이 살아감을 이르는 말을 구명도생(苟命圖生), 구차하게 생명을 보전함을 구전성명(苟全性命), 아부하여 남의 환심을 사려고 힘씀을 구합취용(苟合取容), 남에게 잘 보이려고 구차스럽게 아첨함을 아유구용(阿諛苟容), 구차하게 세월을 보냄을 구연세월(苟延歲月), 질은 돌보지 않고 그 수효만을 채움을 구충기수(苟充其數) 등에 쓰인다.
▶ 容(얼굴 용)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谷(곡, 용)이 합하여 이루어졌다. 谷(곡)과 큰 집에(宀)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듯이 많은 표정을 담을 수 있는 얼굴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容자는 ‘얼굴’이나 ‘용모’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容자는 宀(집 면)자와 谷(골 곡)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谷자는 계곡에 흐르는 물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모양자로 응용되었다. 우선 갑골문에 나온 容자를 보면 內(안 내)자에 항아리가 하나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창고에)물건을 보관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방안에 항아리가 자리 잡은 모습을 통해 ‘보관하다’라는 뜻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모습이 마치 사람의 얼굴과도 같아 후에 사람의 ‘얼굴’이나 ‘용모’를 뜻하게 되었다. 요즘 중국에서 囧(빛날 경)자를 ‘난감하다’라는 뜻으로 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容(용)은 ①얼굴 ②모양, 용모(容貌) ③몸가짐 ④용량 ⑤속내, 속에 든 것 ⑥나부끼는 모양 ⑦어찌 ⑧혹(或), 혹은(그렇지 아니하면) ⑨담다, 그릇 안에 넣다 ⑩용납하다 ⑪받아들이다 ⑫용서하다 ⑬치장하다, 몸을 꾸미다 ⑭맵시를 내다 ⑮조용하다, 누긋하다(성질이나 태도가 좀 부드럽고 순하다) ⑯권하다, 종용하다 ⑰쉽다, 손쉽다 ⑱어렵지 아니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물건을 담는 그릇을 용기(容器), 관용을 베풀어 벌하지 않음을 용서(容恕), 사람의 얼굴 모양을 용모(容貌), 무릎을 간신히 넣는다는 뜻으로 방이나 장소가 매우 비좁음을 용슬(容膝),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의 언행을 받아들임을 용납(容納), 아주 쉬움을 용이(容易), 입을 놀림 또는 옆에서 말참견을 함을 용훼(容喙), 용납하여 인정함을 용인(容認), 용기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분량을 용량(容量),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의심을 받고 있는 사람을 용의자(容疑者), 사물의 속내나 실속을 내용(內容), 남의 문물이나 의견 등을 인정하거나 용납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수용(受容), 허락하여 받아들임을 허용(許容), 도량이 넓어서 남의 잘못을 이해하여 싸덮어 줌을 포용(包容), 마음이 넓어 남의 말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을 관용(寬容), 범법자 등의 특정한 사람을 일정한 장소에 모아 가둠을 수용(收容), 사물의 어떠함을 말이나 글 또는 시늉을 통하여 드러냄을 형용(形容), 침착하고 덤비지 않음을 종용(從容), 여자의 꽃다운 얼굴을 가용(佳容), 위엄 있는 모습을 위용(威容), 얼굴과 몸매가 뛰어나게 크고 씩씩하고 훌륭함을 용모괴위(容貌魁偉), 얼굴 모습과 몸매가 가지런하여 아름다움을 용자단려(容姿端麗), 대지가 만물을 포용하듯이 마음이 크고 너그러움이라는 용지여지(容之如地)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