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기다림[이은화의 미술시간]〈262〉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3-04-13
“나는 차라리 50년 혹은 100년 후의 관객을 기다리겠다.”
1917년 변기를 미술 전시회에 출품했다가 거절당해 논란을 일으켰던 마르셀 뒤샹이 한 말이다.
약 한 세기가 지난 후, 스코틀랜드의 젊은 작가 케이티 패터슨은 아예 100년 후에 완성될 작품을 선보였다.
그것도 미술관이 아니라 공공도서관 안에.
노르웨이 오슬로의 명소 다이히만 도서관은 극장, 강당, 카페, 게임방 등을 갖춘 21세기형 공공도서관의 롤모델이다. 한데 이곳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의외로 꼭대기 층에 있는 ‘미래 도서관’(사진)이다. 곡선형 복도가 딸린 작고 조용한 방인데, 패터슨이 기획하고 디자인했다. 나무로 된 실내 곳곳에 박힌 투명한 서랍들은 문필가들의 미발표 원고를 위한 타임캡슐들이다.
사실 ‘미래 도서관’은 하나의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오슬로 근교 숲에 1000그루의 묘목을 심고 100년을 기다린 후 그 나무로 작가 100인의 책 100권을 만드는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2014년부터 매해 작가 한 명이 초대됐고, 그들의 원고는 봉인됐다가 2114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가장 처음 초대된 이는 캐나다의 유명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였고, 2019년에는 소설가 한강이 아시아 작가 최초로 선정됐다. 한강은 오슬로 숲에서 진행된 기증식에 직접 참석해 ‘사랑하는 아들에게’라는 미발표 소설을 전달했다. 소설가도 현재의 독자들도 책 출간까지 살지는 못할 게다. 이렇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관객들을 위해 세계의 작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기꺼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어쩌면 100년 후에는 정말 종이책이 사라지거나 숲이 불타거나 도서관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패터슨은 100년의 기다림을 강조한다. 속도와 무한 경쟁의 시대에, 느리지만 행복한 동행에 우리를 초대한다. 지금 무엇을 하든 100년 후를 생각하자고 권한다. 그것이 예술이 됐든, 책이 됐든, 정책이나 제도가 됐든 말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