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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장 13-25절.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심. 요약설교
1.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적 사역의 첫 번째 해인 AD 27년 4월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신 일입니다.
(1)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국교로 정하고 있는 유대교의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채찍으로 제물 파는 사람들을 내어 쫓았습니다.
예컨대, 우리나라 어떤 문중에서 시제 지내려고 수백 명이 모여 있는데, 예수님이 채찍으로 사람들을 내쫓고 제상을 뒤집어엎었다고 합시다.
아마,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분노가 폭발하여 예수님에게 살인적인 마음으로 대항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시 유대 나라의 최대의 제사일인 유월절에, 유대교인들이 제사하는 성전에 들어가서, 제물 파는 사람들을 채찍으로 쫓아내고, 제물로 바칠 짐승들을 내쫓고, 헌금을 올려놓은 상을 뒤집어엎었으니, 얼마나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2) 그러자,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살인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죽이면, 다시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오늘 사건의 내용은, 유대교는 폐지되어야 할 거짓 종교이고,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제물 삼아 인간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교만이 참된 구원의 종교임을 밝히시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사 지낼 짐승들을 내어 쫓으신 것이, 유대교의 짐승 제사는 헛것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짐승 제사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제물 삼고, 예수님이 친히 피를 흘려서, 단번에 속죄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짐승으로 제물을 드리고, 쓸데없는 제사를 더 이상 드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제사는 예수님이 영원히 단번에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제사는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3. 따라서 제사드리는 성전도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도 시골에 가면, 제사 지내는 제각들이 상당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사를 완성하셨으므로, 더 이상 제각이 필요가 없습니다!
(1) 성전이 제 구실을 하려면, 제사 지낼 때 하늘에서 성령의 불이 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 이후로, 더 이상 하늘에서 불이 제단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2) 그러나, 예수님의 몸은 항상 성령이 임재해 계시는 참된 성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 일만에 다시 일으키리라”는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4. 그러므로 오늘날 제각을 지어놓고, 돼지고기로 제사드리는 일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참된 제물이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가 참된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너희 몸이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즉,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참된 성전입니다.
5. 이처럼, 예수님은 유대교의 허구성을 지적하시면서, 예수님만이 참된 종교의 주님이심을 말씀해주셨습니다.
6. 오늘은 <예수교만이 참된 종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7. 오늘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18절.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폐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신 내용입니다.
19-22절. 예수님의 몸이 참된 성전임을 말씀해주십니다.
23-25절. 기적을 보고 믿는 신앙은 헛된 것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만이 참된 신앙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13-18절.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폐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신 내용입니다.
14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15절.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성전 안에서, 제물을 팔고 있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고, 제물인 소와 양과 비둘기를 쫓아내셨습니다.
2.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은 유대교인들이 신성시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돌에 맞아 죽을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1)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 국가의 핵심 기관이었고, 성전의 제사장이 나라의 통치권자이었습니다.
(2) 그러므로, 예수님이 성전에서 제사 제도를 폐지하는 과격한 시위를 한 것은, 국법으로 처단받을 만한 돌출 행동이었습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 메시지는, 유대교의 짐승 제사가 폐지해야 할 무익한 제도임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신 행동 언어이었습니다.
(1) 왜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짐승 제사가 필요 없다고 보여주셨을까요?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되어서, 참된 제사를 드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죄악은 짐승 같은 제물로는 씻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써만, 인간의 죄가 사함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51:16-17. 주는 (짐승의)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짐승의) 번제를 기뻐 아니 하시나이다.
미가서 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에베소서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2) 그러면, 유대교의 제사는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네, 그것은 인간의 죄악이 생명체의 죽음으로써 사해지는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모형인 것입니다.
실제로 인간의 죄악은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의 죽음으로써만, 사해지는 것입니다!
4. 여기서 우리가 한 단계 높여서 생각해야 할 것은, 유대교가 세상 모든 종교를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는 참된 구원의 길을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세상 종교는 우리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할 뿐입니다.
오직, 참된 구원은 예수교에만 있습니다.
5. 예화
(1) 어거스틴(Augustinus, 354~430년)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① 이 사람의 고향은 아프리카 북단의 ‘힙포’라는 곳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너무나 방탕하여, 16세 때 벌써 사생자를 낳았습니다.
머리는 너무나 좋은데,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었습니다.
② 어거스틴은 자신의 죄악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문을 열심히 탐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최고 학문의 전당이라는 로마의 밀라노로 공부하기 위해서 갔습니다.
③ 우선 학문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통달했습니다.
그래도, 해답이 나오지를 않아서, 유대교를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래도,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를 않아서, 유교와 동양종교들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래도, 시원한 해결을 보지 못하여서, 불교를 연구하였습니다.
④ 그런데도,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을 믿게 되어서, 온전한 해답을 얻었습니다.
(2) 그래서, 어거스틴은 종교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결과를 이렇게 쉽게 비유적으로 말했습니다.
① 나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여행하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더러운 오물이 가득한 늪에 빠졌습니다.
나는 사람 살리라고 소리쳤습니다.
② 그 때,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내가 살려달라고 소리치니까, 소크라테스가 진지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늪이란 것은 물과 진흙이 섞인 것으로서, 물처럼 헤엄을 칠 수도 없고, 흙처럼 단단하지도 않아서, 딛고 나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늪의 성질을 잘 알아서, 어서 언덕으로 나오시오>
그러고서는, 가던 길을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몸이 점점 더 늪에 빠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람 살리라고 소리쳤습니다.
③ 그 때, 공자가 지나갔습니다.
내가 살려달라고 소리치니까, 공자가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도를 닦아 인격을 수련하면, 그렇게 소리치지 않게 될 것이요.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때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오.>
그리고서, 지나가버렸습니다.
나는 아무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려고 해도, 몸이 점점 더 빠져들기 때문에,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소리쳤습니다.
<누구 나를 좀 구해주세요!>
④ 그런데, 그 때 석가모니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목탁을 두드리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거 참 불쌍하게 되었구려, 인생이란 번뇌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라오. 참 안되었소. 중얼중얼>
그러고는, 가버렸습니다.
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유대교의 율법사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살려달라고 소리치니까, 나를 막 꾸짖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올바른 길을 가지 않고, 잘못된 발걸음질을 하다가, 불행에 빠지게 되었소. 인생이란 잘못을 하면, 반드시 그 댓가로 형벌을 당하게 되는 것이라오. 당신이 잘못한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소. 자신이 잘못에 대한 형벌을 마땅히 받아야 하지요.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마시오!>
⑥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런 훈계를 들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더욱 나는 비참해지고, 이제는 더 이상 숨을 쉴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소리 지를 힘조차 다 빠지고, 뻘이 이제는 목까지 차서, 더 이상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과 지옥 형벌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⑦ 그때,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고, 온 몸에 피를 흘리시면서도,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고 다가오셨습니다.
그 뒤에는 많은 군중들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사람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서는 뻘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피 흘리고 지친 몸으로 수렁텅이로 들어오셔서, 나를 밖으로 끌어내시고는 자신은 나 대신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나는 간신히 생명을 건짐받고서, 그 자리에 쓰려져 잠이 들었습니다.
모처럼, 말할 수 없는 평안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이제 천둥 번개가 치고, 어둠이 지나가더니, 삼 일만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저 멀리 강 건너서, 삼 일 전에 나를 살려주시고, 대신 죽으신 예수님이 빛난 얼굴로 웃으시면서, 나를 바라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한 없이 울면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서는, 이제 나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에 안고, 앞으로는 예수님을 위해서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겠습니다.
그 동안, 죄와 지옥으로 향하는 인생길에서 어떻게 자유와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길을 찾느라고 얼마나 헤맸던가!
이젠, 난 죽음에서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모시고, 열심히 천국 길을 가겠습니다!
6. 물론 다른 종교도 예수교와 같이 일반적 도덕 종교로서 공통적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컨대, (1) 공자(BC 551년~479년)는 “자기에게 베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베풀지 말아라”고 했습니다(중용 13장).
이것은 성경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 “무엇이든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과 상통합니다.
(2) 또한, 공자의 제자인 증자(BC 505~435년)는 “어진 사람은 쌓은 실력을 가지고, 남을 압제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예수님이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려 오셨다”는 말씀과 상통합니다.
(3) 또한 석가(BC 560-480년경)는, “만유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무한히 생성소멸 하는 무상한 존재라”하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도서에서,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말씀과 상통합니다.
(4) 또한, 석가는 “이 세상에는 두 극단으로 치우치는 길이 있다. 그러나,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육체의 욕구대로 자신을 내어 맡겨버리는 쾌락의 길은 정에 애착을 갖게 하는 반면, 육체를 학대하는 고행의 길은 마음을 번뇌케 한다. 그러므로,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 여호수아 1장에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과 상통합니다.
또한 전도서 7장 16-17절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는 말씀과도 상통합니다.
(5) 또한, 석가는 “인생의 문제는 고통이라는 데 있는데, 고통은 무상한 세상 것에 욕심을 가지고 집착한 데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세상 것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해탈하여 열반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 골로새서 3장 5절에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는 말씀과 상통합니다.
(6) 또, 석가는 “타인을 존중하라. 타인과 싸우거나 원망하지 말라.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부드러운 마음으로 노기를 가라앉히라. 선의로써, 악의를 이겨라. 증오는 증오에 의해서 결코 종식될 수 없다. 오직 사랑에 의해서 종식될 수 있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 마태복음 5장에서,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 편도 돌려대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과 상통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12장에서,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라”는 말씀과도 상통합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3장 9절에,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욕으로 욕을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는 말씀과 상통합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소위 고등한 종교들인 불교나 유교의 핵심적인 교훈들과 상통하는 보편적 진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의 보편적 윤리성을 신학적으로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7. 특히 오늘날은 모든 종교들의 상대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주장합니다.
(1) 지난 세기에 세계 사람들은 1, 2차 세계 대전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또 다시 3차 세계 전쟁이 터지면, 온 인류는 멸망하게 된다는 생각을 모두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헌팅턴(Samuel Phillips Huntington, 1927~2008년)을 비롯하여, 세계 3차 대전은 문명과 종교 전쟁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2) 그래서, 유엔을 비롯해서, 세계 종교 지도자들은 서로 종교 간의 대화와 상호 존중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생긴 것이 WCC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WCC안에는, <종교 다원주의>를 공식 교리로 채택하여, 다른 종교를 믿어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3) 그리하여, 죤 힉(John Harwood Hick, 1922-2012년)이라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시대와 문화와 지방에 따라서, 각각 유대교에서는 여호와와 메시아, 회교에서는 알라와 마호메트, 불교에서는 불타와 석가모니, 유교에서는 옥황상제와 공자로 나타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나라와 시대에 따라서, 이름만 다를 뿐이지, 기독교의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다른 종교에서도 동일한 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8. 그러나 다른 종교들은 도덕률을 가르치는 것일 뿐이고, 참된 구원의 종교는 예수교뿐입니다.
(1) 우리의 하나님은 다른 잡신들과는 다른 창조주시며, 홀로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종교의 신들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다가, 그릇되게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고, 잡신을 만난 것일 뿐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대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6절 말씀대로, 어떻게 하나님과 귀신이 같으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되며,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가 되겠습니까?
(2) 우리는 절간의 부처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호메트를 구세주로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듯이, 유교의 귀신에게 제사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골로새서 2장 8절 말씀처럼, <세상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노략당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4장 3절 말씀처럼, 유대교나 다른 종교들은 예수 믿기 전에 따르기 전 세상 <초등학문>일 뿐입니다.
믿기 전의 모든 사람은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 죄인일 따름입니다.
(2)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 말씀처럼,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3장 5-6절 말씀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처럼,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3) 이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나는 십자가에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사람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9절 말씀처럼, 무릇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9-22절. 예수님의 몸이 참된 성전임을 말씀해주십니다.
1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절.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1. 이 ‘성전’은 헤롯 대왕이 지은 소위 <헤롯 성전>을 가리킵니다.
헤롯 대왕은 AD 19년에 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헤롯이 짓기 시작한 예루살렘 성전이 46년 걸려서 지어졌다는 것은 AD 27년을 가리킵니다. (헤롯은 BC 4년에 죽었습니다)
즉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와 양을 내쫓으시고, 상인들을 내쫓으시고, 환전상들의 상을 뒤집어엎으신 이 사건은 AD 27년 4월초 유월절에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이 헤롯 대왕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포악한 왕이었는데, 건축 기술만큼은 당대에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헤롯 대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을 뿐만 아니라, 가이샤랴 항구도 건설했고, 헬라지역까지 가서 건축을 했습니다.
오늘 이 구절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역사적 연대를 규정하는데 중요한 구절입니다.
요한복음 2-3장은 27년 유월절 사건이고
요한복음 5장은 28년 유월절 사건이고
요한복음 6장 4절의 유월절은 29년 유월절이고
요한복음 12장 이후의 유월절은 30년 유월절입니다.
21절.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1. 유대교인들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께서 임재해 계신 예수님의 몸을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만에 일으키겠노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성전은 예수님의 몸이시고,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은 거짓된 성전이었습니다.
2.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마음속에 모셔들인 성도들은 성령의 전인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이처럼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은 성령님을 모시고 예배하고 계시기 때문에, 성령의 전 곧 성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님들의 모임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령의 전 곧 성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전이신 성도님들은, 성령님 모시고, 성전인 몸을 더럽히지 마시고, 거룩하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3-25절. 기적을 보고 믿는 신앙은 헛된 것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만이 참된 신앙임을 말씀해줍니다.
23절.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24절.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절.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1. 이 말씀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믿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이 참된 성전이 아니고, 예수님이 참된 성전이시라고 했습니다.
2. 요한복음 6장에서는, 예수님이 5병 2어의 기적을 행하시므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임금 삼으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씀이 참된 양식이라고 하시자, 12제자들 이외의 사람들이 다 떠나 가버렸습니다.
3. 그러므로 참된 신앙은 표적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니라,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신앙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고, 그 말씀을 믿고, 상 주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8:8-10,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물론 예수님 잘 믿으면, 일반적으로 영혼도 잘 되고, 건강하고, 잘 살고, 자손도 잘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불행한 일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을 더욱 굳게 믿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는 동안에 늘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늘 성령 충만한 생활과 복된 생활 하시고,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시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