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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어린이날 여행
이번 어린이날, 애비 노릇을 하느라고 우리 집 어린이 3 명 - 막내는 아직 어린이가 아니라서 제외 - 을 모시고 산청에 다녀왔다.
5월 4일 일요일, 마침 큰놈 선우의 생일이기도 해서 아침에 생일 파티를 하고는 아이들에게 어디든 놀러가자고 제안을 했더니 3 명 모두 친구들과 선약이 있다며 거절을 한다. 생일 케이크를 자르자마자 아이들은 각자 친구들을 찾아 친구 집으로, pc방으로 가고, 아내는 아내대로 막내 선린이를 들춰 매고는 교회로 가니 졸지에 나 혼자 집에 남았다. 자리에 누워 읽다만 소설책을 손에 들었으나 섭섭하고 쓸쓸한 마음에 제대로 읽히지도 않았다.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온 모양인데, 둘째 선빈이가 내 배에 올라타고는,
“아빠, 빨리 일어나세요. 어디 놀러 가자면서요? 이제 출발해요. 빨리 일어나세요.”
하고 재촉을 한다. 부스스 일어나 눈을 떠보니 벌써 오후 2시가 지나있었다. 시간이 어중간하여 망설이고 있는데, 선우까지 합세하여 졸라대는 바람에 일단 출발해보기로 했다.
아내와 막내는 차도 좁고, 어린이도 아니라서 집에 남기로 하고, 초등학교 어린이 3 명만 집을 나섰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일단 운전대를 잡았는데, 문득 며칠 전 누군가에게 들은 ‘산청 한방약초 축제’가 생각이 났다. 그래 거기나 가보자 하고는, 2 번 국도를 타고 진주까지 가서 거기서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산청에 갈 작정을 했다. 마산 댓거리를 지나자마자 밤밭고개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하는데 ‘아이쿠, 길을 잘못 나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올 수도 없어 계속 가다보니 진전 삼거리에서 진주 쪽으로는 길이 뻥 뚫렸다. 이반성과 사봉 삼거리를 지나니 새로 확포장 중인 2번 국도가 진주까지 구간 개통하여 더욱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 진주 IC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진입한 후 곧 대진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산청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길도 좋고 차도 많지 않아 속도를 올리니 아들놈들은 신이 나서 “아빠, 더 빨리, 더 빨리요. 저 차를 앞질러요.”, “아빠, 뒤에 저 하얀 차가 쫓아오고 있어요. 우리도 더 빨리 가요. 잘못하면 따라잡히겠어요.” 하고 연신 소리를 쳐대는데, 선형이는 겁이 나는지 우는 소리로 “그러지 마요. 위험해요. 왜 이렇게 빨리 가요? 그러다 사고 나면 어떡해요.” 하면서 정반대 주문을 한다. 그러다가 결국 선빈이와 선형이가 싸우기 시작한다. 아이고, 괴로워라. 조용히 좀 해라! 한 번 고함을 치고는 마침 눈에 들어오는 산청휴게소로 진입했다. 연휴라서 그런가, 내가 이곳에 와 본 중에 가장 사람이 많았다. 차 댈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화장실도 인산인해였다. 아이들을 모두 화장실에 다녀오게 한 후 나도 화장실에 들렀는데 소변기 위해 붙어있는 명언이 재미있었다.
- 군자가 예절이 없으면 역적이 되고, 소인이 예절이 없으면 도적이 된다. (명심보감) -
거 참, 옛말 치고 그른 말이 없구만. 내 주변에 큰돈도 아닌 푼돈을 탐하는 도적놈들이 왜 이리 바글대는가 늘 궁금했는데 그 글을 보는 순간 평소의 의문이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 호두과자를 사 달라 아이들이 졸라대는데 “야, 눈이 있으면 봐라.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언제 줄을 서서 살래? 조금 뒤에 산청에 가서 사달라는 것 다 사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하고 달랜다. 속으로는 잠시 후면 산청에 가서 흑돼지구이로 저녁을 먹을 예정인데 미리 군것질을 하면 잘 안 먹을 테니..... 하는 계산을 하고 있다.
바로 다시 차를 몰아 곧 산청 IC로 빠져나간다. 톨게이트에서 나가자마자 왼쪽으로 큰 애드벌룬을 띄어놓은 것이 눈에 들어오고 사방에 ‘지리산 한방 약초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산청 공설운동장에 차를 세우고는 그 옆의 실내체육관으로 가서 전시물을 둘러본다. 갖가지 약초는 물론 나비, 풍뎅이, 사슴벌레 등의 곤충까지 전시해 놓았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재미있어 한다.
“야, 정말 여기 잘 왔네요. 이런 걸 할 줄은 몰랐는데...... 놀기도 하고 좋은 구경도 하고.”
선우가 큰놈답게 애비가 흐뭇해할만한 말을 해 준다. 나도 기분이 좋아져 길가에 늘어선 간이 음식점에서 닭꼬치와 구운 옥수수를 사 준다. 한 바퀴를 둘러보니 어느 새 6시가 넘어 지리산 너머로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어온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산청 읍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심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곧 경호강 옆으로 시골길이 나오는데 이왕 여기까지 온 것 끝까지 가보자 하고 계속 길을 따라 간다. 곧 ‘내리교’라는 다리를 건너고 또 고속도로 밑을 지나 시골 마을을 지나니, ‘웅석봉, 웅석계곡’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고 작은 댐을 한 두 개 지나니 오른 쪽으로 ‘지곡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계속 가니 왼쪽으로 졸졸졸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연휴를 맞아 캠핑 온 젊은이들이 텐트를 치고 있다. 이제는 꽤 어두운데 아이들이 물소리를 듣고는 바로 계곡으로 내려간다. 아이들은 곧 놀이에 열중한다. 한 참 후 물에 돌을 던지며 노는 아이들을 불러 다시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이제 어떻게 할까 상의한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니? 첫째,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간다, 둘째, 여기서 하루 자고 간다.”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루 자고 가잔다. 어디서 자나, 생각하며 내려오는데 지곡사를 지나자마자 왼편으로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민박’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비교적 깨끗해 보이기에 일단 그 집으로 차를 몰고 들어간다. 방이 하나 남았는데 6 만원을 달라기에 너무 비싸다며 그냥 나오려고 하니 5 만원만 달란다. 아이들의 의견을 물으니 집안을 들여다보고는 TV도 있고, 냉장고도 있으니 모두 여기가 좋단다. 돈을 지불하면서 혹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느냐고 하니 식사는 안 된단다. 주인에게 흑돼지 요리를 잘 하는 식당을 물으니 산청읍내의 ‘흑돼지와 누렁이’라는 상호를 알려준다. 바로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읍내로 나와 물어 물어 ‘흑돼지와 누렁이’를 찾았다. 메뉴를 보니 ‘흑돼지 생고기’와 ‘흑돼지 양념갈비’가 있는데, 나는 생고기 쪽, 아이들은 양념 갈비 쪽이어서 사이좋게 각각 2 인분씩 주문했다. 숯불에 고기를 구워주니 배가 고팠는지 잘들도 먹는다. 자식들 먹는 걸 보고 있으면 나까지 배가 부르다. 아이들은 고기만 먹고는 벌써 배가 부른지 공기밥을 반 이상 남긴다. 내 것은 안 시키기를 잘 했지,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남긴 밥을 깨끗이 먹어치운다.
식당 밖으로 나오니 깎다가 튀어나간 손톱 조각 같은 초승달이 예쁘게도 떠있다. 지날 때 보아두었던 슈퍼마켓 앞의 공중전화에서 아이들에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게 한다. 아이들은 번갈아 가며 신나서 엄마에게 떠들어댄다. 3 명 모두 통화를 끝내고 나니 전화카드에 남은 돈이 거의 없다. 그리고 나서는 슈퍼마켓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을 고르게 하니, 모두들 신이 나서 사이다, 과자, 푸딩 등을 잔뜩 안고 온다. 나는 내일 아침식사 준비로 쌀 1 kg과 김, 햄 등을 사고, 김치는 작은 봉지가 없어서 포기한다. 저녁에 먹으려고 캔맥주와 땅콩도 산다.
다시 민박으로 들어오니 아이들은 얼른 TV를 켜고는 누운 자세로 과자를 먹는다. 씻으라고 해도 들은 척 만 척이다. 집에 TV가 없어 오랜만에 TV를 보니 더욱더 몰두를 하는 것 같다. 그래, 그래라. 매일 엄마의 성화로 억지로 씻는 것, 오늘은 그냥 자자. 하루 안 씻는다고 뭔 일이 있겠냐? 나도 맥주 캔을 하나 따 시원하게 들이킨다. 담배를 피우려고 밖으로 나와보니 민박 옆 개천 가로등 밑에 올챙이들이 바글바글하고, 내 옆으로는 개구리가 뛰어다닌다. 모내기 준비를 하는 논에서는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고 옆 산에서는 ‘소쩍, 소쩍’ 소쩍새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이 TV에 빠져있는 방에 창문을 두드리며 “야, 여기 올챙이, 개구리 많다.” 하고 외치니, 선빈이와 선형이가 얼른 쫓아나온다. 선빈이는 어느 새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 푸딩 떠먹고 남은 투명 플라스틱 통 속에 가두어놓았다.
11시가 넘으니 한 놈 한 놈 말이 없어지더니 곧 코를 골기 시작한다. 저희들도 피곤했던 모양이다. 방은 보일러 시설이 잘 되어 꽤 따뜻하다. 아이들은 편안하고도 행복한 잠을 잘 것이다. 혼자 남은 나는 TV를 끄고 들고 갔던 소설책을 몇 장 넘기다가는 곧 안경을 벗고 잠을 청했다. 곧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에 눈을 뜨니 8 시이고 창밖이 훤하다. 창문을 여니 날씨가 화창하다. 아이들을 깨우니 잘 들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모두 밖으로 뛰어나간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침 준비를 한다. 방에 가스 렌지 시설이 돼 있어 차 트렁크에 늘 넣고 다니는 코펠을 들고 와 쌀을 씻고는 밥을 한다. 밥이 다 될 때쯤 아이들을 부른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가위, 바위, 보를 시켜 민박 주인집에 가서 김치를 얻어오게 한다. 아이들은 아빠도 같이 가위, 바위, 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이 노는 동안에 아빠는 힘들게 밥을 했으니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우긴다. 아이들은 곧 자기들끼리 가위, 바위, 보를 했는데 먼저 선형이가 이겨서 빠지고, 아들 둘은 긴장된 표정으로 다시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결국 선우로 결정되었다. 선우에게 “아주머니, 김치 조금만 주십시오” 하는 말을 몇 번 연습시킨 후 보냈더니 곧 의기양양하게 김치 한 접시를 얻어왔다. 밥도 그런대로 잘 되어, ‘식사 시작!’을 선언하자 반찬이라고는 김치, 김, 햄 뿐인 단출한 식탁은 아연 활기가 넘친다.
순식간에 식사가 끝나고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다시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닌다. 잠시 후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온 옆방의 중년 아주머니가 가스 렌지를 잠시 쓰겠다고 우리 방에 들어오셔서는,
“아저씨는 아줌마가 없어도 얼마든지 하시겠네요. 아이들도 엄마가 없어도 모두 밝게 잘 노네요.”
하고 말을 거는 것이 아무래도 나를 아내 없는 홀아비, 우리 아이들은 결손 가정 아이들로 보는 눈치이다. 그래서 얼른,
“집에 또 갓난쟁이가 있어서 아내는 함께 못 왔어요. 큰놈들은 어린이날 그냥 둘 수가 없어서 제가 데리고 나왔지요.”
하고 불필요한 설명을 한다.
잠시 후 선빈이가 손에 가재를 한 마디 잡아들고 오고 선형이가 그 뒤를 쫓아온다. 나는 큰 그릇 하나에 물을 담아 그 속에 가재를 넣으라고 한다. 선형이는 제 가방에서 종이와 색연필을 꺼내더니 가재를 그리기 시작한다. 선형이는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어디를 가나 꼭 종이와 색연필, 크레파스, 싸인펜을 갖고 다니면서 그림을 그린다. 내 딸이 그려서 그런지 내가 보기에는 아주 좋은 그림이다. 선형이는 내친 김에 어제 본 약초 중 하나를 기억해내서 그림으로 그린다. 그 그림도 아주 그럴 듯하다.
설거지도 끝내고 방청소를 끝낸 후 민박을 나서면서 주인 아저씨에게 명함을 청한다. 명함을 받고 보니 농협중앙회 창원대학교 출장소 소장 ‘조영배’ 씨이다. 그것 참 희한해서, 나는 마산의 경남대학교 교수인데, 어떻게 창원 사람이 여기서 민박을 하느냐고 물으니 주 5 일제가 된 후 주말이면 아버지에게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곳에 와서 재미 삼아 민박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수님, 앞으로 회의나 세미나 하실 일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한다. 그러겠다고 하고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다시 지곡사를 지나 어제 저녁에 놀았던 웅석 계곡으로 올라간다. 벌써 두 가족이 함께 온 팀이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굽고 있다. 날은 더 할 나위 없이 화창하고 계곡 물은 맑고 차다. 물로 뛰어든 아이들은 벌써 신발을 다 적시고 바지까지 홀랑 다 젖었다. 선형이가 걱정을 하기에 차에 새 바지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맘껏 놀라고 한다. 고인 물에서 올챙이를 잡던 아들 놈들은 곧 계곡 위로 올라가 돌로 댐을 쌓기 시작한다. 큰 바위 위에 혼자 누워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고, 저걸 저렇게 쌓으면 안 되지. 이쪽이 자꾸 뚫리잖아. 이번에는 이쪽에 돌을 쌓아야지’ 하며 답답해하던 나는 결국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댐 쌓기에 합류한다. 내가 가자 아이들은 더 좋아하면서 물 속으로 뛰어다니며 돌을 들고 온다. 아이들과 아빠가 힘을 합치자 댐이 곧 완성되어 물이 고이면서 수위가 높아진다.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나도 속으로 무척 좋아하면서,
“너희들 봤지, 아빠의 실력을? 아빠가 나서니까 금방 댐이 만들어지잖아.”
하며 잘난 척을 한다. 아이들은 동의하지 않고,
“아빠는 어른이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우리들이 더 많이 만들었어요.”
하고 아빠를 폄훼한다.
자연 속의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신이 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빠는 그저 한없이 흐뭇하다. 놀다 보니 어느 새 점심 시간이 다 되었다. 아이들을 차에 다시 태우고 마산으로 출발했다. 차 속에서 선형이는 젖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으며, 갈아입을 옷이 없는 선빈이는 팬티 차림으로 슬리핑백 - 트렁크에 늘 넣고 다닌다. - 을 펼쳐 덮고 있다. 선우는 햇볕에 그냥 말리겠다며 한사코 젖은 옷을 벗지 않는다. 이번에는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3번 국도를 따라 진주로 내려오는데 길은 좋고 차는 적어 고속도로보다 더 쾌적하다. 배가 고픈지 아이들은 어제 먹다 남은 과자며 음료수를 신나게 먹는다. 음료수는 차 속에서 데워져 미적지근한데도 군소리 한 마디 없다. 운전하는 나도, 과자를 먹는 아이들도 모두 기분이 최고다. 웃고 까불고 떠들어대던 아이들이 진주를 지나면서부터 점차 조용해진다. 뒤돌아보니 어느 새 모두 잠이 들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2시 15분이었으며, 산청으로부터 집까지의 거리는 꼭 100km였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니 눈을 뜨자마자 선우, 선빈이는,
“pc방 가게 돈 줘요. 집에 오면 보내 준다고 했잖아요.”
하고 징징대서 돈을 2 천원 씩 주었으며, 선형이는 친구들을 찾아 곧장 놀이터로 뛰어갔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간략한 보고를 하고는 막 잠에서 깨어난 선린이와 만 하루만의 반가운 상봉을 했다. 그리고는 곧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선우의 마지막 어린이날이다.
(2003.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