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6.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최고선으로 규정할 때, 행복해지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물질적 성취만으로는 만족이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신을 숭배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사후 세계는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행복 추구는 개인의 노력에 달린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 철학가들은 그것을 집단적 과제로 간주하였다. 예를 들면, 18세기 말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최고선으로 선언하며, 세상 모든 사람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 가치 있는 목표라고 했다. 행복하기 위해서, 정치인들은 평화를 유지해야 하고, 기업가들은 부를 키워야 하고, 학자들은 지연을 연구해야 했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였다.
반면 19세기 부터 20세기에 걸쳐 국가가 생각하는 성공의 척도는 국민의 행복이 아니라 영토의 크기, 인구증가, GDP 증대였다. 국가가 필요한 것은 튼튼한 군인과 노동자, 더 많은 군인과 노동자를 낳을 여성, 아파서 집에서 쉬는 대신 오전 8시 정각에 꼬박꼬박 출근할 관료들이었다. 이젠 바뀌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살지 않고, 우리는 자신을 위해 산다. 우리는 행복추구권이 아니라 행복할 권리를 갖고 있다. 국민은 생산이 아니라 행복을 바란다. 생산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이 쉽게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을 오늘 아침 풀어보고 싶다.
에피쿠로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저술하는 데 바쳤다고 한다. 그는 300권 이상의 책을 남겼다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책은 없고, 제자들이 스승의 어록을 남긴 노트가 기적적으로 발견되었을 뿐이다. 기원후 79년 베스비오산이 화산 폭발할 때 폼베이 근처 헤라쿨라네움에 화산재가 떨어져 그 곳에 보관됐던 문헌이 발굴되었다. 그 문헌에 따르면, 행복한 삶을 위해 욕망을 치료하기 위한 네 단계 치료법이 소개된다고 한다. 흥미롭다.
(1)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
(2)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3) 선한 것은 얻기 쉬운 것이다.
(4) 최악의 상황은 견딜 만하다.
최근의 우리 나라 상황을 보면, 다들 자기 밥그릇 싸움에 너무 치열하다. 행복을 이야기할 겨를이 없다. 그래, 각자도생(各自圖生)하여야 한다. 그래 오늘 아침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치료법을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해본다. 배철현 교수의 글을 참고했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이상적인 삶은 허상으로 만든 신에 대한 제거에서 시작한다. 세상에 신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 신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인간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에피쿠로스는 신을 향한 기도를 이렇게 말한다. "만일 신이 인간의 기도를 들어준다면 모든 인간은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위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을 이용하는 인간의 욕망을 꾸짖었다.
그리고 그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았다. 그는 사후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 배교수는 비트겐슈타인의 비문을 소개하였다. "나는 원래 없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 있습니다. 나는 죽은 후에 더 이상 없습니다. 나는 죽음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21세기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생각도 에피쿠로스의 생각과 같다. 비트겐슈타인도 우리의 죽음은 인간 경험이 제거된 상태로 의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선한 것은 얻기 쉬운 것이다." 이 말이 언뜻 와 닿지 않는다. 그러니까 얻기 어려운 것은 선한 것이 아니라는 말일까? 이렇게 질문해 보니, 그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삶에 괴로움(불쾌)을 주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제 아침에 말했던 것처럼, 인간에게는 세 가지 욕망이 존재한다. (1) 자연스럽 필요한 욕망: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 (2) 자연스럽지만 불필요한 것: 식탐이나 성적 욕망과 같은 감정들. 이런 감정들은 소유하면 할수록 더욱더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에 수련을 통해 제어해야 한다. (3) 자연스럽지도 안고 필요하지도 않은 것: 명예와 권력. 생존에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은 쉽다. 반면 명예와 권력을 얻기는 쉽지 않다. 선한 것은 단순하고, 검소한 음식과 거주지이다. 이런 것들은 부와 권력과는 상관없이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더 좋은 음식과 거주지를 원한다면 탐욕이 작동한다. 탐욕은 필요 없는 욕망과 걱정을 야기하며 불행을 초래한다. 그러니 세번 째 말은 생존에 필요한 검소한 삶을 의미하며, 평온을 유지하기 위한 관조하는 삶을 살라는 말 같다.
"최악의 상황도 견딜 만하다." 난 이 말이 좋다. 나의 지난 경험들을 살펴 보면, 당시에는 죽을 듯이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끝났다. "극도의 고통은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며, 그 고통은 수년 동안 자신이 즐긴 쾌락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에피쿠로스는 말하였다. 그가 아테네 교외의 조그만 정원에서 시작한 공동체 운동이 당시 지중해 전역에 퍼진 이유를 이제 이해하겠다.
나도 기회가 되면, 이런 공동체 생활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래 작년부터 미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마을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짬 나는 대로, 한겨레 신문 조현 기자가 쓴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란 책으로 "함께하니 외롭지 않은 '혼삶', 독박 육아가 없고, 삶의 여백을 가르치는 공동체 교육, 문화가 살아 숨 쉬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골살이, 노후 불안이 없고 상처마저 치유되는 마음의 유토피아를 찾"고 있다.
조현 기자에 의하면, 그런 공동체를 찾고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남한테 자기의 잘난 점을 과시하고, 남의 약점을 발견해 짓밟으면서 상대를 이겨 출세하려는 식의 자본주의 방식과 다르게 살아 보는 것이다. 죽도록 달리다 보면 언젠가 행복해지겠지 하며 미래의 보험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소박하게 이웃과 서로 돌보며 친밀해짐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래 나는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어 처럼,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9월은 그렇게/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 하늘이 열리는 달"인 9월의 마지막 주말을 우리 마을 사람들과 주민자치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제주도에 간다. 가을 바다를 실컷 즐길 예정이다. 그리고 멋진 10월을 맞아 할 생각이다.
9월/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모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