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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성11동기회 두목회/보견회 합동 야유회 5월12일 두목회 봄 소풍 그리고 보견회 봄 유적지탐방 행사로 찾은 곳은 공주의 마곡사와 예산의 대흥동 슬로시티 그리고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이다. 아침 7시30분 서울역에서 출발한 관광버스는 서초동 교대역에서 대부분의 회원을 태우고 마지막으로 고속도로변 동천동 환승센터에서 5명을 태우니 버스 탑승자가 모두 26명이다. 두목회,보견회 회원 외에도 전현석,대구의 이영길,그리고 카나다에서 잠시 귀국한 김홍배 동문까지 참가하여 범 세계적인? 행사가 되었다. VIP리무진 28인승 버스라 좌석이 넓고 편하다. 박두열 사무총장이 준비한 김밥,물,바나나를 배급하고 차 내에서 마실 음료수ㅡ술 그리고 과자도 충분히 준비했단다. 평일이긴 하지만 행락철이라 도로가 밀릴줄 알았는데 어찌나 소통이 잘 되던지 마곡사에 도착하니 10시반. 예상보다 한시간가량 빠른 스케쥴이다. 미리 버스 안에서 마곡사 자유관람을 위해 유념해서 보아야 할 전각과 보물 등에 관해 설명을 해 주어서 참고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천년고찰 春 麻谷寺 하도 오랫만에 찾는 마곡사. 들어가는 입구조차 물어가며-- 긴 입구를 찾아 들어가니 드디어 묵직하게 서 있는 일주문이 나온다. 여초(如初)김응현(金應顯)선생의 泰華山 麻谷寺라는 예서체의 아름다운 현판이 시선을 끈다. 곧 있을 부처님오신날에 대비들어가는 입구 양쪽에는 알록달록한 연등이 줄지어 서 있고 부처님과 함께라는 깃발과 2008년 세계문화유산 등재기원을 적은 깃발이 나부낀다. 잠시 눈을 의심했다. 마곡사가 세계문화유산? 자세히 보니 2018년을 목표로--그리고 등재 기원이라는 표현이다. 기원? 모두 웃음이 나왔다. 속은 기분이지만 원하는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마곡사는 정말 아름다운 절이다. 春麻谷 秋甲寺란 말이 널리 퍼져 있듯 봄경치가 제일이라는 마곡사이다. 마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텍리지 정감록 등 여러 비기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640년(선덕9)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낙성식을 할때 법문을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삼대(麻)와 같이 무성했다고 하여 마곡사라 칭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2층 건물로 가장 윗쪽에 자리한 보물 제 801호인 대웅보전과 그 아래쪽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보물 제802호),또한 보물제 800호 영산전과 강당인 흥성루,해탈문,천왕문,응징전,명부전 등이 있다. 해탈문을 지난다. 이미 몸과 마음은 속세를 떠나 부처님 세상에 든 것 같은 말하자면 해탈의 경지에 들어선 기분이다. 천왕문을 지나니 개천의 맑은 물이 흐르고 극락교가 일행을 맞이한다. 극락교에도 연등이 달리고 나무 가지에 작고 예쁜 연등을 메달아 마치 꽃이 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아이디어가 기가 막힌다. 연등꽃이라니-- 우측에 높다랗게 범종루가 보이고 법당 마당이 나서는데 온통 연등밭이다. 마당 가운데 그 유명한 오층석탑(보물 제799호)이 서 있다. 우측으로 보이는 심검당(尋劍堂)부터 가보았다. "칼을 찾는다" 이는 곧 지혜의 칼로써 번뇌를 끊는다는 의미이다. 심검당은 보통 승려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한평생 청빈히게 삶을 살다 간 松下 曺允亨의 글씨가 편액으로 걸려 있다. 시선을 끄는 팻말-"그대의 발길을 돌리는 곳" 출입금지를 재미있게 표현하여 미소를 머금게 한다. 아마도 스님들의 사적 공간인 것 같다. 웅장한 대광보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본당으로 뒤는 백의관음도가 그리고 바닥은 삿자리로 유명하다. 보물 제802호이다. 그 뒤쪽 높은 곳에 자리한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은 1651년 각순이 중수한 것으로 현판글씨가 김생의 글씨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2층건물로 조선중기의 사원건축의 양식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 건물 기둥을 안고 돌면 6년을 장수한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일행들이 어느 기둥을 안아야 할지 물어온다. 오래 살고싶은 욕심은 누구에게나-- 안을 들여다 본다 불신도들이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모셨다. 대웅보전 옆으로 가니 냇물이 시원스레 흘러가고 돌다리가 놓여 있어 건너서 산책길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일행 몇명도 돌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좀더 법당과 경내를 자세히 보기 위해 내려 가면서 조사전(祖師殿)을 들렀다. 조사전은 마곡사를 창건하신 자장율사를 비롯하여 역대 조사 15분의 진영을 모신 곳이다. 고려의 보조국사,조선시대 서산,사명,영규대사 조계종의 선풍을 새롭게 한 경허,만공스님,불화의 맥을 이은 금호스님등 익히 알고 있는 대 스님들이 모셔져 있다. 아! 향나무가 보인다. 김구선생이 심었다는--백범 명상길이란 이름으로 설명이 붙어 있다. 백범당 건물과 백범의 사진이 걸려 있고- 김구 나이 21살,국모 민비가 시해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장교 츠치다 죠스케를 죽이고 인천 감옥에 갇혀 사형집행 직전 탈옥하여 이곳 마곡사에 은신하여 머리를 자르고 스님으로 출가 6개월만에 금강산을 거쳐 중국으로 건너갔다.조국광복운동을 시작한 역사의 시발-광복후 마곡사를 찾은 김구선생이 향나무를 기념식수한 바로 그 향나무가 키도 크고 오랜 연륜을 자랑한다. 응징전 앞으로 갔다. 응징전은 제봉선사가 창건하여 전내에는 본존으로 석가여래,좌우에 미륵보살,갈라보살과 아난존자,가섭존자 그리고 16나한,제석천과 범천을 배치했다. 응징전의 나한 기도는 영험하기로 소문나 있다고 한다. 벽돌로 쌓아 만든 크지만 아름다운 굴뚝이 시선을 끌고 그 옆 정원에는 수선화가 만발해 있어 봄철 마곡사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부속건물인 영화당을 일별하고 미처 못본 영산전을 찾았다. 입구에 공사를 하고 있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단다. 약품처리 중이라고- 보물 제 800호인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과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건물은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각순 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1651) 고쳐 지은 것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해탈문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다시 천왕문,해탈문을 거쳐 일주문으로 나와 속세로 들어섰다. 좀 이르긴 해도 배꼽시계가 점심시간이 다가옴을 알린다. 미리 예약해둔 서울식당으로~산채정식에 협찬술 위스키,매실주에 막걸리와 소주. 시간이 많으니 술꾼들이 살판 났다. 이야기꾼 이영길 주변이 소란하다. 카나다에서 온 김홍배와도 얘기가 넘친다. 그는 전공한 건축도답게 절 누각건축에 일가견도 있었다. 산악회 불사춘 회장의 잠시 유고로 빈자리를 메꾸자며 의견이 나와 일사천리로 장세원동문을 2대회장으로 모시기로 합의, 이이춘회장 병문안겸 만나서 얘기 나누기로 했다. 다음 코스인 예산 대흥동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40-50분)고 해서 버스에 올랐다. 마곡사 일주문 해탈문 보현 문수 동자와-
천왕문과 사천왕 명부전이 보인다 연등꽃 극락교 범종각 오층석탑 심검당 대웅보전 대웅보전 내 세 부처님 대광보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디딤돌을 딛고 내를 건너 산책길에- 조사전 백범이 기념식수한 향나무 백범당 응징전 굴뚝과 수선화 연화당 영산전 흥성루 예산 대흥동 슬로시티/대흥동헌/의좋은 형제마을 예당저수지 입구 있는 대흥동을 찾지 못해 저수지 전체를 한바퀴 돌았다. 시간은 좀 지체 했지만 저수지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낚시터로 옛부터 유명한 곳이나 요즘은 낚시뿐만 아니라 산책코스로도 각광을 받는다고 한다. 해설사와 여러번 통화끝에 대흥동 슬로시티 입구에 도착했다. 1986년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전 세계로 확산된 슬로푸드 운동이 슬로시티 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느린 마을 만들기 운동으로 시작돼 지역이 원래 갖고 있는 고유한 자연환경과 전통을 지키고 지역민이 주체가 돼 자연을 느끼면서 그 지역의 먹을거리와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마을의 새로운 이름이다. 2012년 6월까지 25개국 150개 도시로 확대되었으며 한국도 10개의 슬로시티가 가입되어 있다. 첫 인상이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며놓은 자연 친환경도시였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의좋은 형제집을 찾아 보았다.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나온 이성만과 이순 두 형제의 보릿단 몰래 갖다주기 내용은 잊혀지지 않는 대목인데 동생집과 형 집을 차례로 보고 의좋은 형제상 동상도 구경했다. 소원터널에는 수많은 소원들이 소담하게 걸려 있는데 사랑,자식,행복 등 주제도 다양하다. 동네 담벼락에는 솟대그림으로 대흥슬로시티를 예쁘게 그려놓았다. 현재 면사무소로 사용한다는 대흥관아는 사또가 근무하던 관청으로 任城衙門의 큼직한 현판이 걸려 있고 입구에 28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역사를 말해주듯 높이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죄를 다스리는 형틀도 있고 근무하는 모습도 재현해 놓았다. 뒤 뜰은 장독단지가 마당 가득한데 예전 "산너머남촌에는"이라는 드라마 촬영지로 사용되어 아직고 촬영지로 기억되는 곳이다. 또 화령옹주의 태실 석실도 있고 대원군의 쇄국 척화비도 진열되어 있다. 당시는 지금의 저수지 땅이 대흥면의 중앙이라서 거기에 설치된 것을 옮긴 것이다. 멀리 봉수산이 보이고 백제의 마지막 보루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봉수산 임존성을 보며 흑지상지의 처절한 몸부림이 세월의 흔적에 묻어 있는 듯 느낌이 새롭다. 대흥초등학교가 아직 존립하고 있고 옆에는 마을 주민들의 협동조합 느린손으로 만든 공예품을 파는 곳도 있었다. 길거리 골목 어디에도 휴지조각 하나 발견할 수 없이 깨끗하다. 이런 협동심이 바로 슬로시티가 되는 조건이 아니겠나 싶다. 의좋은 형제공원 아우집 형집 효제각 주말엔 공연장이 공덕비가 많다. 의원집 소원터널
대흥초등학교
대흥슬로시티 담벼락 솟대 그림 의좋은 형제상 280년된 느티나무 임성아문 드라마 산넘어남촌에는 촬영지 드라마 촬영지로- 화령옹주 태실 대원군 척화비 대구의 이영길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몇년전 과천의 추사박물관을 보견회에서 방문시 다음 기회에 예산에 있는 추사 고택과 기념관을 찾겠다고 약속한 것이 오늘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해설사를 기념관에서 만났다. 추사의 출생과 일생 그리고 고택과 묘소에 관해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추사 김정희선생은 당시 한마디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대왕의 둘째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됨으로써 내척이 되었고 추사고택은 1700년대 중반에 건립된 53칸 규모의 양반 대갓집으로 추사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추사선생의 연보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25세까지는 어린 시절 서예의 소질에 박제가,체제공 선생으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고 생부 김노경이 동지겸사은부사가 되어 연경으로 갈때 추사가 자제군관으로 수행하여 청나라의 문물에 눈을 뜨고 옹방강 석학, 대학자 완연의 제자로 관계를 맺고 완당이라는 호는 이런 연유로 지어졌다. 54세까지는 북한산순수비 확인,문과급제 예조 참의 병조,형조 참판이 되는 등 급속한 승진으로 출세를 하는 시기이다. 55세 되던해 윤상도 옥사사건으로 당쟁에 몰려 제주도에 유배되고 세한도라는 명작을 남기기도--그 뒤에도 북청으로 유배생활을 하고 67세에 풀려나 과천에서 별세하였다. 나의 관심은 그가 남긴 추사체 글씨에 관해 작품 사진 수집에 있다. 기념관에서 그리고 고택에서 사본으로 걸려있는 글씨들과 기둥 주련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행초서체의 대세는 왕희지체가 대세이지만 새로운 지평을 연 추사체에 많은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요즘 심취하여 연습 중이다. 그가 태어난 고택에서 우리나라 양반가의 주택에 관해 일행과 해설가 사이에 토론도 있었다. 고택을 나와 그가 묻힌 묘소로 향했다. 71세로 마감한 그의 생애는 전반부는 화려한 집안배경과 그의 천재적인 예능감각으로 그리고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노년에는 심한 고통의 유배생활로 이어진 점이 특징이다. 제주도에서 외로운 시기를 보낼때 같이 중국으로 갔던 이상적이 수많은 청나라 귀한 학술서르 보내주어 그 고마움으로 그려 선물했다는 세한도. 국보로 그 가치가 새로이 평가받고 있다. 두사람의 진정한 우정과 함께-- 추사기념관 단체사진 해설사를 만나다. 초상 추사 연보 제주 유배생활 진흥왕순수비 청나라 옹방강과 완원을 스승으로- 옹방강과 완원 옹방강의 시경 천축고선생댁 계산무진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권돈인 시 염화취실 산수 부친께 보낸 편지 일로향실 침계 아들께 보낸 편지 찬사글 서예 기법 추사 인감 유천희해(遊天戱海) 고택 ㄱ고택 죽로지실 천량수 세한도 유복량수 신안구가 추사영보-영정이 모셔져 있다.
주련 추수문장 불염진 추사선생 묘소와 묘비 예정시간대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경길에 올랐다. 죽전휴게소에 도착하니 예정보다는 일찌기 도착했지만 하루 한끼도 집에서 신세를 지지 않고 영식님으로 대접 받기 위해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우동종류로 남은 소주와 함께 배를 채우고-- 동천역으로 갈 수지죽전 친구들 5명만 남고 나머지 일행은 서울로 향했다. 오늘 슬로시티도 방문 했지만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스케쥴--시간이 어쩌면 이토록 정확히 맞아드는지--여유로운 계획이 앞으로도 필요할 것 같다. 전체 예산수립과 탑승회원 연락,김밥,간식,주류 등 준비물 준비에 만전을 기한 박두열 두목회 사무총장,차 수배에 헤설사 선물준비,보견회원 챙기기를 담당한 김민효 사무총장, 두분의 열성으로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두목회,보견회 회원들과 전현석,이영길,김홍배 친구들이 동참하여 더욱 빛나는 봄 행사가 되었음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참석자>강순중/강종웅/강태일/김능태/김문헌/김민효/김상철/김수철/김홍배/문의용/박두열/박상보/박 호/서강조/서상호/안연효/이선국/이영길/오상평/장극두/장세원/전현석/최문택/최상탁/허정길 /허 현 26명 <결산> 두목회 스폰서 박두열 200,000원 박상보 200,000원 벅정륭 200,000원 보견회 스폰서 오상평 200,000원 장극두 200,000원 당일회비(26명) 530,000원 수입 계 1,530,000원 차량 대여료 850,000원 김 밥 60,000원 물,주류,안주 등 116,960원 점심(서울식당) 336,000원 해설사 음료 10,000원 저녁(우덩) 137,000원 기타(통신비등) 5,000원 지출 계 1,514,960원 잔여 15,040원(두목회 계좌입금) #보견회 잔고는 전월과 동일합니다. 감 사 합 니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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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중한 기회를 할애하여주신 집행부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계절의 여왕, 신록의 5월에 소중한 벗들과 함께한 유익한 하루였네요.
준비하시느라 고생들 하셨읍니다.
아주 잘 정리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진을 보내주신 장세원,김문헌,박두열 세분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