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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0일 토요일 설악산 대청봉 한계령
자차이용 : 일초님 (고인돌 님은 타라꽃산행 팀과 안산 탐방)
산행코스 : 오색 남부 탐방소 – 대청봉 – 중청 – 끝청 – 한계령
산행거리 : 약 18 km 산행시간 : 약 15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2176572
거리 18.1 km
소요 시간 15h 47m 20s
이동 시간 12h 29m 34s
휴식 시간 3h 17m 46s
평균 속도 1.5 km/h
최고점 1,723 m
총 획득고도 1,045 m
난이도 보통
주말 산행지를 보통 수요일쯤 되면 정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금요일까지 어디로 갈지 망설여진다. 고인돌 형님은 일찌감치 금요무박으로 꽃산행팀과 안산에 가기로 정했는데 나는 안산보다 대청봉 쪽 동정이 더 궁금하다. 무엇보다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에 있다는 국화방망이와 대청봉에서 중청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다는 참기생꽃 그리고 서북능선에 피는 만병초 꽃이 궁금했다. 물론 대청봉에 피어있을 만주송이풀과 바람꽃도 볼 겸 대청봉으로 마음이 쏠린다. 사니조은 님은 주중에 설악산 삼각점을 찾는 일을 도와줘야 한다며 1박 2일간 몹시 힘든 작업을 하는지 반응이 없다.
산악회 버스를 예약하려고 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꽃 탐방을 하다보면 시간에 쫒겨 늘 애를 먹곤 하기에 설악산까지 두 시간이면 되는 거리이니 차를 가지고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금요일 공장부지 상담건으로 당진시청에 다녀와 대락 준비를 하면서 단톡방에 올리니 일초님이 함께 가겠다고 한다. 늘 야생화에 파묻혀 사는 분이라 설악산 생각만 하면 가슴을 떠는 사람이다.
12시 도농역에서 일초님을 태우고 설악으로 가는 길에 벌써부터 하품이 쏟아진다. 산악회 버스를 이용하면 안대를 쓰고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는데 차를 가지고 가면 그게 좀 불편하다. 산악회 버스들이 늘 들르는 설악휴게소에 도착하니 고인돌 형님이 먼저 도착해있다. 형님이 타고 온 산악회 대장에게 부탁해 한계령에서 오색까지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계획했던 대로 일이 순조롭게 풀려간다.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새벽 2시 45분쯤 오색 탐방소에 도착하니 이미 수많은 산꾼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친구들과 즐겁게 얘기하거나 산행채비를 갖추거나 몸을 푸는 등 큰 산행을 앞두고 몹시 설레이는 것 같다. 마라톤을 뛰기 전 출발선상에 서 있는 선수들이다. 이 오색 코스는 설악의 최고봉인 대청봉까지 가장 빨리 올라갈 수 있는 코스다. 총 5 km 급한 경삿길이니 힘있는 사람들은 두 시간 남짓이면 정상에 이른다.
언제나처럼 3시 정각이 되어서야 문이 열린다. 가을 단풍철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게 많은 사람들이 좁은 문을 통과하여 대청봉으로 향하는 긴 대열에 동참한다. 앞사람과의 간격은 1미터도 채 안된다. 옆으로 추월하여 나갈 수도 없다. 힘이 부치면 옆으로 비껴서서 쉬면 좋겠지만 스틱을 잡은 채 길에 서서 숨을 고르고 있으면 행렬은 줄줄이 서서 대기해야 한다. 그렇게 긴 불빛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느린 걸음 속에 주변 사물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 허겁지겁 올랐다면 볼 수 없었을 꽃들이 랜턴 불빛에 들어온다. 하얗게 핀 참조팝나무 꽃이며 옛날 여인들 노리개처럼 생긴 박쥐나무 꽃이며 이제 피기 시작하는 노루오줌 꽃이 그렇다. 그리고 설악폭포쯤에서 만난 국화방망이 꽃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꽃을 보니 국화방망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국화처럼 긴 줄기에 잎 모양은 국화잎에 비해 끝이 날카롭고 결각이 뚜렷하다. 바위틈에 자리잡고 키가 60 센티는 되어보이는데 줄기 긑에 노란 꽃이 모여서 피어있다. 꽃은 참취꽃과 모양이 비슷하나 짙은 노란색이다. 이 꽃방망이로 맞는 사람은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국화방망이
처음부터 오늘 운이 좋게 풀린다. 천천히 걸으니 힘도 안든다. 정상기점 1 km 쯤 되는 곳에 길 보수작업을 위한 장비를 마대자루에 담아서 늘어놓았다. 코로나로 인해 숙박이 허용되지 않는 대피소 관리 인력을 동원하여 국립공원 안전시설 확충에 힘을 쏟는 모양이다. 지난 번 방태산에 갔을 때도 그 동안 깊이 파여있던 산길을 보수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별 다른 근거도 없이 오늘 일출이 화려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해 뜨는 시각이 5시 조금 넘은 시간이라 여름에는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가 매우 어렵지만 무박 산행을 할 때마다 늘 아름다운 해돋이를 꿈꾸곤 한다. 오색 코스 삼분지 이 정도 지나 가파른 오름이 지속되는 곳에서 이미 날이 훤히 밝았으나 햇살은 보이지 않는다. 뒤돌아본 점봉산도 안개에 싸여 희끄무레하다. 오늘은 야생화 탐방을 왔으니 조망 따위에는 연연해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햇빛이 강렬한 것보다는 차라리 약간 흐린 날씨가 꽃을 찾아다니기에 더 적절하다고 한다.
백당나무 꽃은 예술작품 같다. 아직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작은 좁쌀알갱이 같은 꽃봉오리가 가운데 옹알종알 모여있고 이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처럼 넓은 헛꽃잎들이 에워싸고 있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바, 이 꽃 모양이 마치 예쁘게 음식을 담은 접시같다고 하여 북한에서는 접시꽃나무라고 부른다 한다. 가장자리에 하얗게 피어 있는 헛꽃잎이 마치 단(壇)을 쌓아놓은 것 같아서 백단(白壇)이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백당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초파일 즈음 절 마당에 하얗게 피어있는 불두화(佛頭花)는 암술이나 수술이 없이 불두화의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무성화(無性花 헛꽃)만이 촘촘하게 박혀있는데 이는 백당나무의 돌연변이로 보인다.
백당나무
고도가 높아지면서 길 가 숲 속에 빨간색 인가목 꽃이 눈에 띈다. 푸른 숲에 피어있는 붉은색꽃은 쉽게 눈에 띄게 마련이다. 얇은 꽃잎이 5~6장 그리고 안쪽에 꽃술이 소복하게 나 있다. 줄기에는 촘촘한 가시가 나 있어 ‘나 건들지 마!’하고 경계하는 눈초리다. 하지만 날개가 달린 곤충들이야 어떻게 막겠나. 활짝 핀 꽃 속에는 진한 갈색의 벌레가 우글거린다. 붉은산꽃하늘소인 것으로 보이는데 곤충을 잘 모르는 나에게는 그저 보기에 징그러운 느낌을 주는 벌레일 뿐이다. 아마도 이 꽃에는 벌레들이 좋아하는 향기나 꽃가루가 있는 모양이다. 장미나무과에 속하는데 바닷가에 피는 해당화와 아주 비슷하다. 이 계절에 붉은색으로 숲 속에 피는 꽃은 인가목 뿐인 것 같다.
인가목
괴불나무 중에서도 꽃색깔이 붉은색으로 피는 게 있다. 개부랄처럼 붉은 열매 두 개가 붙어서 달려있는 것은 다른 괴불나무나 비슷하지만 꽃 색깔이 짙은 자주색으로 나뭇잎에 붙어서 피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붉은 홍(紅)자를 써서 홍괴불나무라 부른다. 이 작은 홍괴불나무꽃에도 뭐 먹을것이 있다고 붉은산꽃하늘소들이 꽃과 씨름을 한다.
홍괴불나무와 붉은산꽃하늘소
정상기점 500 미터 이정표가 나타나면 이미 정상에 선 기분이다. 가파른 오르막은 끝났고 늙었지만 키가 작은 사스레나무와 잣나무 분비나무 그리고 피나무 등이 작은 숲을 이루고 그 아래 게박쥐나물, 눈개승마, 두루미풀이 바쁘게 피어나는 곳이다. 평상시 내 발걸음은 이 구간에서 느려진다. 길 왼편으로 나무의 키가 작고 조밀하지 않아 풀이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자주솜대 - 연녹색이던 꽃이 점차 자주색으로 변하고 있다.
두루미풀
제일 먼저 찾아보는 것이 네잎갈퀴나물이다. 풀잎이 네 장 마주나고 있어 이렇게 부르지만 내가 귀동냥하여 알게 된 이 꽃이름은 아직 분분하다. 광릉갈퀴나물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이는 큰네잎갈퀴나물이라고도 한다. 마주난 잎 모양이 나비의 날개를 닮아서 나비나물이라 부르는 집안에 속한 여러해살이풀인데 덩굴손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잎자루 겨드랑이에 탁잎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그 종류를 구분하는 정교한 눈썰미가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재능이 부족하다. 올해까지는 네잎갈퀴나물이라고 부르고 혹시 내년에 좀 더 자세히 구분할 수 있으면 이름을 바꿔줘야겠다.
네잎갈퀴나물
은방울꽃
네잎갈퀴나물 곁에 늘 함께 피는 둥근이질풀은 아직 꽃이 피기 전이다. 풀밭에는 계절별로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는데 지금은 시작단계다. 낮은 곳에는 벌써 오래전에 진 은방울꽃이 한창 피어있다. 그리고 앞으로 피어날 물레나물이며 지리강활 등을 살펴보고 정상으로 향한다.
대청봉 (大靑峯 1708 미터)
눈 앞이 활짝 열리고 돌무더기 정상에는 아직도 많은 산꾼들이 올라와 정상석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인증사진을 찍으려 기다리고 있다. 우선 천불동과 공룡능선이 있는 외설악쪽이 궁금해 얼른 올라가 보았다. 흰구름이 공룡을 넘나들고 중청봉도 보이다 말다 반복된다. 올라올 때 하산하던 산꾼이 정상이 너무 추워서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내려가는 중이라는데 아마도 그는 대청봉의 진면목을 못봐서 하는 소리일게다. 내게는 살랑살랑 불어주는 바람이 시원해서 좋다. 바람은 구름을 옮기고 구름은 또 바람꽃에게 물기를 듬뿍 안겨주고 지나간다. 바람과 구름과 꽃이 한데 어우러져 대자연을 만들어가는 설악산이다.
대청봉에서 바라본 화채능선
신선대와 천화대 그리고 공룡능선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저 멀리 울산바위까지.
대청봉 정상석
중청봉이 안개구름과 숨박꼭질하고 있다.
대청봉 정상에는 범꼬리 꽃이 만발했다. 혼자서는 결코 화려하지 않은 그래서 늘 무더기로 피어있는 꽃이다. 작은 숲 속에서 꼬리를 치켜세우고 새끼범들이 노니는 모습이다. 일제시대 이미 우리나라 마지막 범이 사라져버려 지금은 동물원에 가야만 볼 수 있다. 범꼬리는 오랜 세월 우리나라 숲을 지배했던 범을 잠시나마 상기시켜주는 꽃이다.
범꼬리
두메잔대는 여기저기 많이 자라고 있다. 처음 이 꽃을 보았을 때는 아주 귀한 것으로 알았는데 서로 알고 나니 돌틈 곳곳에 싹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흔하게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다. 7월 중순이면 꽃이 피겠다.
두메잔대
정상에는 바람꽃이 꽃망울만 맺었다. 팥알만큼 부풀어오른 꽃망울이 언제든 당장이라도 터질 준비가 되어 있다. 중청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비로소 어린아이의 천진한 웃음처럼 싱그러운 바람꽃이 하얗게 피어있다. 이른 봄 천마산에서 너도바람꽃으로 시작하여 만주바람꽃으로 그리고 명지산 아재비고개에서 만난 변산바람꽃과 대덕산 검룡소 안쪽 계곡에서 보았던 나도바람꽃, 소백산 능선길에 피어있는 모데미풀과 새밭계곡 위 늦은매기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홀아비바람꽃까지 바람꽃의 행렬은 그치지 않았다. 이제 바람꽃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설악바람꽃이 피고 8월까지 이어지면서 바람꽃의 오디세이는 끝이 난다. 바람꽃은 이제 피기 시작하여 7월 말까지 이어질 것이다.
바람꽃 - 이 설악산의 바람꽃을 끝으로 봄부터 시작된 바람꽃 오디세이가 끝이 난다.
참기생꽃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설악산은 그야말로 자연의 보고다. 그 수많은 꽃과 나무 중에서 내가 보는 것은 겨우 내가 알고 있는 몇 종의 야생화가 전부다. 대청봉에서 중청 대피소쪽으로 내려가면서 왼쪽 눈잣나무 숲 아래를 유심히 관찰해 본다. 일초님이 전에 이 곳에서 참기생꽃을 보았다고 하여 오늘 이 꽃을 찾아보려 함이다. 작년 백두대간을 뛰면서 태백산 유일사 부근에서 참기생꽃 군락지를 보고 올 해는 꼭 이 곳을 찾으려 하였으나 어찌하다보니 또 때를 놓쳐버렸다. 사진으로만 본 적이 있는 참기생꽃을 보고 싶다.
참기생꽃
기생꽃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어떤가? 순백의 꽃잎이 얇아서 속이 비친다. 7개의 꽃잎이 아주 정교하게 붙어있다. 7개의 수술이 노란색으로 각 꽃잎 안쪽에 붙어있다. 가운데 암술을 두르고 있던 꽃잎은 수정이 끝나면 그 모양 그대로 통째로 떨어져 풀 잎에 얹혀진다. 그런 단아한 모습은 차라리 어느 양반잡 규수같다. 본디 기생이든 규수든 본 바탕은 다를 바 없거늘 철저한 신분제 탓에 누구는 양반으로 누구는 기생으로 살았을 뿐이니 양반집 규수 같은 기생이러니 분명 저 모습의 단하한 꽃은 기생꽃이요 크기가 작아 참기생꽃이라 부르니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눈잣나무
설악산에서나 볼 수 있는 눈잣나무에 꽃이 피었다. 소나무에 피는 꽃은 송화라 부른다. 잣나무에 피는 꽃은 송화와 똑 같다. 그러니 잣송화라고 부르면 될까? 암꽃은 저대로 잣방울이 될 것이다. 한 나무에 새로 꽃이 피어나고 작년에 맺은 잣방울은 이제 씨가 여물어가는 모양이다. 잣방울에 투명한 망사로 만든 봉지를 씌워놓았다. 잣씨앗을 잣까마귀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방안이겠지만 또한 그 씨앗을 모아 연구용으로 재배하기 위한 목적도 있으리라. 눈잣나무는 설악산처럼 높은 곳에 자라 키가 고작 4~5 미터 남짓 자라는 나무다. 대청봉 주위에 자라는 눈잣나무 키는 아무리 높게 보아도 2 미터 안쪽이다. 다른 나무처럼 똑바로 서 있지 않고 누워있는 잣나무라 하여 눈잣나무라 부른다. 이 곳에는 눈잣나무 외에 눈측백과 눈향나무도 많이 자란다.
눈잣나무 암꽃
잣까마귀로부터 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쇠로된 그물망을 씌워놓았다.
중청으로 내려가는 길 돌틈에는 참바위취가 많이 자란다. 두툼한 잎이 마치 선인장 잎처럼 윤이 나고 잎가에 굵은 톱니가 있다. 범의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주로 고산지대에 살기때문에 낮은 곳에서는 보기 어렵다. 2018년 덕유산에서 처음 보았고 그 뒤로 지리산과 설악산에서 보았다. 지금 꽃대가 올라와 있으니 2주쯤 지나면 활짝 필 것 같다.
참바위취
중청 대피소로 다 내려온 지점에 헬기장이 있다. 이 곳은 네귀쓴풀의 군락지다. 7~8월 한여름에 피는 네귀쓴풀은 꽃잎이 네 장인데 긑이 뾰족한 것이 마치 귀 네 개가 난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담과 쓴풀속에 속하는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 풀이다. 흰바탕에 파란색 점이 나 있는 꽃을 보면 청화백자(靑華白磁)를 연상시킨다.
멍덕딸기
땃두릅
만주송이풀
네귀쓴풀
등대시호
오전 11시 꽃 탐방을 하면서 천천히 걸었는데도 일초님은 몸이 방전되었나 보다. 더구나 받데리 충전 케이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핸드폰도 방전되어 간다며 대피소에서 충전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 한다. 코로나로 인해 운영이 중단된 대피소에는 많은 산꾼들이 모여서 쉬거나 식사중이다. 삼삼오오 모여서 라면을 끓여먹는 팀도 여럿 보인다. 나는 대피소 뒷편 데크 구석으로 가서 배낭을 베개삼아 잠시 눈을 붙인다. 마침 가방에 눈가리개도 있어 마스크에 눈가리개까지 하고 나니 쉽게 잠들 수 있었다. 한참 잤다는 생각이 드는데 곁에서 떠드는 소란에 깨어보니 겨우 10분쯤 잤는가보다. 그래도 몸이 개운하다. 일초님도 잠시 눈을 붙였다며 마침 전화기도 고속으로 충전되었다며 떠날 준비가 되었다 한다.
중청 대피소
중청 삼거리
오늘 보고자 했던 꽃은 거의 다 보았다. 중청으로 내려오는 길에 참기생꽃을 찾는다고 정신이 팔려 배암나무꽃은 못 보았으나 그 이외의 꽃은 다 본 셈이다. 이제 서북능선을 타고 가면서 만병초꽃을 찾아볼 예정이지만 굳이 그 꽃을 보지 못하더라도 이만하면 되었다.
중청봉에는 기상관측소가 있어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고 산길은 중청봉 아래로 봉우리를 가로지른다. 길은 빽빽하게 자란 관목으로 좁은 울타리 사이를 지나가는 것 같다. 매발톱나무와 떡갈나무 홍괴불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자란다. 잠시 길에서 벗어나 중청 능선으로 올라가본다. 둥근이질풀이 이제 피기 시작했다. 여기도 만주송이풀이 군락을 이룬다.
이 곳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댕댕이나무다. 달리 개들쭉나무라고도 부르는데 한달쯤 전에 노랗게 피어있던 꽃이 진 자리에 벌써 열매가 맺어 있다. 찌그러진 타원형의 댕댕이나무 열매는 아직 녹색이지만 곧 짙푸른 색으로 익어갈 것이다.
댕댕이나무
나무밑을 살피던 중 또 다시 참기생꽃을 보았다. 또 한 번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제까지 이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는데 하얀 꽃잎이 통째로 떨어져 잎사귀 위에 걸쳐있는 것을 보고 단박에 참기생꽃을 알아보았다. 이제 어디에서 보더라도 금방 알아볼 수 있겠다.
참기생꽃
다시 탐방로로 내려서 앞서가던 일초님이 길 가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무슨 나무냐고 묻는다. 낯설지 않은데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잎은 단풍나무처럼 다섯 갈래로 또 어떤 것은 신나무처럼 세 갈래로 갈라진 잎을 보며 무슨 나무일가 하고 내 머리속을 헤집어 본다. 팥알만한 열매가 대여섯개 뭉쳐서 달려있다. 이렇게 열매가 달리는 것은 야광나무도 있지만 이건 야광나무와 잎모양도 다르다. 꽃이 진지 오래 되지 않은 듯 열매 끝에 아직 꽃술의 흔적이 묻어있다. 그래 맞어. 꼭 산사나무같이 생겼다. 열매도 비슷하다. 잎에는 아주 작은 털이 보송보송 나 있다. 그런데 신사나무잎은 결각이 아주 뚜렷하여 이 나무와 좀 다르다. 계속 머리를 굴려도 딱 떠오르지 않아 나중에 꽃이름 알려주는 앱인 모야모에 올렸더니 이노리나무라고 알려준다. 이름이 생소하여 찾아보니 장미목 산사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 교목이다.
이노리나무
끝청으로 가는 길에 오른쪽 숲 속을 기웃거려본다. 혹시 만병초가 있을까 찾아보지만 역시 그렇게 호락호락 내게 ‘나 여기 있소’하고 나타날 그런 하챦은 꽃이 아니다. 애꿎은 자주솜대 군락에서 호기심이 발동해 자주솜대 한 뿌리를 캐 보았다. 둥굴레처럼 옆으로 길게 벋는 줄기뿌리에 마디가 져 있고 그 마디에 실뿌리가 잔뜩 달려있다. 물로 씻어 한 토막을 씹어본다. 섬유질이 많아 나무토막처럼 질기다. 약간 향이 있는 듯하면서 쓴 맛이 입안에 남는다. 아무래도 식용으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풀이다. 풀솜대는 옛날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달리 지장보살이라 부르는 대표적인 구황식물이었다고 하며 이 자주솜대도 같은 이치로 자주지장보살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어린 잎과 줄기를 나물로 먹었기에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자주솜대
끝청봉이 가까워지면서 오른쪽으로 조망이 트이고 설악의 뼈대가 눈에 들어온다. 공룡능선에서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마등봉과 황철봉 능선이 뚜렷하고 발 아래에는 그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용아장성이 펼쳐진다. 소청봉에서 떨어지는 능선상에서 소청대피소를 찾아보고 그 아래 봉정암도 가늠해본다. 나한봉 아래에 오세암이 있고 그 앞에 만경대가 있을 터이지만 그런 세세한 바위나 봉우리를 알아볼 만큼 내공이 쌓이지 않아 대충 그림만 그려본다. 오세암은 만경대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듯하다.
용아장성
설악의 아름다운 속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처에서 한 걸음 내려서는데 일초님이 빨리 와보라한다. 참기생꽃을 또 찾았다 한다. 오늘 세 번째로 참기생꽃을 만난다. 이번에는 꽃이 떨어지지 않고 온전하게 꽃대에 달려있는 모습이다. 오늘은 참기생꽃이 있어서 산행이 즐거운 날이다.
오늘 참기생꽃을 세 번이나 만난다.
끝청에 서면 남설악과 내설악이 한 눈에 보인다. 왼쪽에는 점봉산, 앞쪽에는 귀때기청봉과 더 멀리 가리봉과 주걱봉 그리고 더 멀리 대승령과 안산까지 보인다. 공기만 깨끗하면 좋으련만 오늘은 아침부터 공기가 맑지 않아 눈을 브릅뜨고 바라봐야한다.
“박샘은 사진을 어떻게 관리하세요?” 일초님이 묻는다. “외장하드에 다운로드해서 보관하지요.” 산행을 하고 나면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사진을 외장하드에 내려받는 일이다. 그리고 흐릿한 사진은 소위 뽀샵(photo shop)해서 날짜별로 파일을 만들어 보관하는 것이다. 일초님은 컴퓨터에 내려받아 꽃 종류별로 분류해서 보관하면서 동시에 혼자만 쓰는 밴드에 올려서 언제든 볼 수 있게 보관한다고 한다. 난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만일 이렇게 정성스럽게 찍은 사진이 기계의 실수로 다 날아가는 경우에는 어떤 기분일까? 사실 실제로 나에게 이런 일이 몇 해전에 일어났었다. 외장하드를 여러 번 땅에 떨어뜨려 그 안에 있는 데이터를 열어볼 수 없었다. 그 때의 기분이란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뜩했었다. 램블러에 일부 올려놓은 사진들이 있어 최악의 경우 그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다음 까페에 올려놓은 글과 사진이 있어 다행이라 여겼었다. 다행히 데이터 복구업체에 맡겨서 대부분의 사진과 데이터를 복원할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끔찍한 일이다.
나는 다른 한 편으로 사진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요즘은 디지털 기술 덕분에 손 쉽게 사진을 찍어서 컴퓨터 등 기기에 보관하고 다시 열어볼 수 있어 과거를 회상하거나 남에게 자신의 경험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어떤 원리로 사진을 찍는 것인지 모르는 우리 같은 문외인이라도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아주 쉽게 사진을 찍고 전송하고 또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사진에 담은 사물을 확대하고 분석까지 할 수 있는 시대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나 스스로에게 원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사물은 실존하는 것인가? 정말 터무니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물이야 분명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눈으로 본다는 것은 무어인가? 그것은 지구로부터 1억 5000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에서 발생한 빛 에너지가 사물에 반사해서 눈으로 들어온 빛 에너지를 분석하여 뇌가 인지한 형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만일 태양빛이 없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 많은 경험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들은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력을 잃은 사람도 손으로 만져서 사물을 알아차린다. 그럼 존재한다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가 보지 못하고 내가 만질 수 없고 내가 느낄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지구상에는 아니 이 우주에서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은 정말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어떤 것은 또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느낀다. 저 우주 구석에 있는 어떤 존재는 어떠한 사람도 볼 수 없는 것이고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라도 늘 시간 저편으로 흘러가고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사물은 과거에 본 것과 또 다른 것이다. 이러할진대 우리가 멋진 풍경이나 꽃이나 사람이나 사진에 담아서 보관하고 다시 꺼내보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억하기 위해서? 그럼 왜 기억해야 하지? 어짜피 사진이라는 것은 기억을 보조해주는 역할을 할 뿐인데. 내가 산행기를 쓸 때 살펴보는 사진 속 꽃들은 이미 다 져버리고 없다.
다시 나의 생각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나는 왜 이렇게 정성을 들여가면서 사진을 찍는가? 기억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 보여주고 싶은 남들이란 누구인가? 이 지구상에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인가?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인가? 만일 내가 보았든 보지 않았든 사물은 존재하는데 정작 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구나 내 후손들 중에서 아무도 내가 찍은 사진에 관심이 없고 내 외장하드가 깨어져서 없어져버린다면 내가 찍었던 사진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내가 사진을 찍었던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결론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모든 행동은 봄날 햇볕을 받아 나뭇잎이 돋아나고, 여름날 숲 속의 새가 먹이를 찾아 날개짓을 하고, 가을날 굶주린 새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땅속에 몸을 숨기는 굼벵이의 꿈틀거림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만병초
끝청봉에서 가파른 산길을 내려와 오솔길 같은 평지를 걷는다. 그냥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그런 길이다. 하지만 만병초에 대한 나의 집착은 걸어가면서도 계속 숲 속에 눈길을 던지게 한다. 그러다 멀리 만병초 나무 잎이라도 보이면 덩굴이 험하게 얽혀있는 숲 속으로 기어이 들어가 확인해본다. 참 이상하다. 나무도 크고 새 잎도 나왔건만 꽃은 보이지 않는다. 아주 마음을 비운 심마니에게만 산삼이 보인다더니 반병초도 마음을 비운 사람에게만 보이는 모양이다.
만병초 - 야생에서 만병초 꽃을 처음 보았다.
체념하고 그냥 길을 걸아서 한계령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그래도 쉽게 체념이 안된다. 그렇게 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길 서너 차례, 만병초 나뭇잎을 보고 깊숙이 들어간 숲 속에서 마침내 하얀 색 꽃을 보았다. 내 어깨 높이쯤 올라온 나무 끝에 두 송이 피어있다. 그래도 난 마치 심마니가 산삼을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웠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향기도 맡아본다. 내 코가 둔해서 그런건지 향기는 느낄 수 없다. 약간의 연분홍 빛이 감도는 흰 색 만병초 꽃은 진달래과에 속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꽃 모양이 철쭉꽃과 똑 같이 생겼다. 사실 귀하니까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지 만일 철쭉꽃만큼 흔하게 피어있다면 푸대접을 받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만병초도 희소성으로 인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머지않아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은 꽃봉오리가 몇 개 보인다. 하지만 내가 일 주일 후에 다시 올 수는 없을 터, 못내 아쉽지만 오늘 만병초 꽃을 보았다는 데 의미를 두고 숲을 벗어나 다시 탐방길에 오른다.
만병초 꽃봉오리
지난 번 많이 피어 있던 나도옥잠화는 이제 꽃 대신 열매를 달고 있다. 박새꽃은 유난히 풍년이 든 것 같다. 여기저기 키가 큰 박새꽃이 활짝 피어있다. 한계령까지 5.1 km 남은 지점부터는 아무리 걸어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듯하다. 그만큼 몸이 지쳐가는 모양이다. 올라올 때 설악폭포 위에서 빈 패트병에 물을 많이 담아온 덕에 물걱정은 안해도 되니 다행이다.
나도옥잠화 열매
박새꽃 - 올 해는 박새꽃이 풍년이다.
안산을 거쳐 남교리로 내려간 고인돌 형님은 서북 능선 귀대기청 넘어 큰감투봉에 장백제비꽃이 있다면서 한번 가보라고 하지만 체력으로나 시간으로나 그럴 여유가 없을 것 같다. 내년 장백제비꽃 피는 시기에 맞춰 한 번 찾아가봐야겠다.
4시 35분 마침내 한계령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한계령까지 2.3 km이니 한 시간만 내려가면 된다. 나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삼거리에서 귀때기청봉 쪽으로 백 여 미터 더 나아가 우주선 바위에 올라가 보았다. 혹시 바위틈에 장백제비꽃이 있을까하고 유심히 살펴보지만 자기를 너무 쉽게 보지 말라고 말하는 듯 코빼기도 안비친다.
맑은 하늘 -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부게꽃나무 꽃
한계령 삼거리
한계령 삼거리에서 한계령으로 내려가는 2.3 km는 그리 길지는 않지만 결코 호락호락한 길은 아니다.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돌계단 내리막길 1 km 는 가도가도 끝이 없는 내리막이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터덜터덜 걷다보면 한계령이 나오련만, 이 지루한 산길이 언제 끝날지 조바심만 난다.
서어나무
참조팝
한계령 휴게소 위 바위에서 바라본 모습
오후 6시 30분 조금 넘어서 마침내 한계령에 도착했다. 저녁해는 아직 산마루에 걸려있고 한계령 휴게소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린다. 모두 낭만을 주으러 온 사람들일게다. 서울로 돌아갈 일이 급한 우리는 휴게소 화장실에 들어가 간단하게 씻고 원통 터미널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려 찾아가다가 길 가에 있는 맛있는 된장국집으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된장국으로 저녁을 먹고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어느새 날은 저물고 열 시가 넘어서야 서울로 무사히 귀환하여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