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꼬막을 삶는 저녁
안미현
삼천구백원어치 바다가 냄비안에서
타닥타닥 플라멩고를 춘다.
먼 여행에서 돌아온
바다의 뒤꿈치는 깨져 있거나
파도를 깨문 입술은 더러 튿어져 있다.
밖에는 꼬막의 허연 배때기처럼
눈이 나린다.
생사의 경계는 언제나 모호해서
참을성 없이 떠오르는 거품들이
뻐끔뻐끔 가쁜 숨을 토해낸다.
예기치 않은 검은 구멍들과
삶을 망가뜨렸던 소문들이 가볍게 떠오른다.
바다를 오해했던 입맛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비릿한 피 비린내 조차
시간의 손끝에서 한송이 장미로 벙글고
마술처럼 속수무책의 흰가루가 뿌려지는 저녁
점액질의 꽃잎을 씹으며 묻는다.
살아가는 일이 왜 이토록 짜디짠 것인지
살아가는 일이 왜 이토록 거품투성인지
그럼에도 이 질곡의 해안가를 왜 서성이는지
대답해다오 바다여
정녕 이 붉은 꽃잎의 원산지가
발목을 낚아채는 저 뻘밭이란 말인가
눈이 그치고
마술도 곧 끝나면
내용증명처럼 쌓이는 껍질들의 무덤
대답은 이미 들은 걸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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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현 시인
피꼬막을 삶는 저녁
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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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14 16:4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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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걸 왜 인제 봤지? 좋아요. 삶을 보는 눈이 점차 깊어지고 있는 듯.......그럴 나이가 됐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