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의 종류와 발전-갑골문, 금문, 석고문
人類(인류)의 歷史(역사)가 변천해 감에 따라 서체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왔다. 우리는 보통 서체의 종류를 篆(전), 隸(예), 楷(해), 行(행), 草(초) 라는 五體(오체)로 구분하여, 그 서체가 생겨난 시대와 서체의 변천 과정을 말하고 있다.

甲骨文(갑골문)과 金文(금문)
- 甲骨文(갑골문)
甲骨文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글자이며 거북의 껍질이나, 또한 짐승의 뼈에 모양을 새겼다. 그리고, 그 내용은 모두가 占卜(점복)의 辭句(사구)이기 때문에 卜辭(복사) 또는 貞卜文字(정복문자)라 부르기도 한다.
갑골문은 칼을 사용하여, 딱딱하고 단단한 龜甲(귀갑)이나 獸骨(수골)에 새긴 글자이다. 그러므로 거의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곧고 날카로우면서도 강건하다. 전체적인 章法(장법)은 새로로 나란히 行(행)을 이루고 있으며 행의 순서는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일정하지 않다. 行(행)의 형식도 모두 똑같지 않고, 글자의 格(격) 또한 일정하지 않아 글자의 大小(대소), 長短(장단)과 넓고 좁음이 모두 다르다.
분명한 상형성을 띄고 있으며, 상당 수준의 定型的(정형적)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귀갑龜甲에 새긴 <갑골문> / 수골獸骨에 새긴<갑골문>
- 金文(금문)
金文이란 쇠붙이에 새긴 글로써, 靑銅器(청동기)의 표면에 文字(문자)를 鑄刻(주각)한 것이다.
이러한 청동기들은, 祭祀(제사) 지낼 때 술잔 또는 음식을 담는 그릇이나 악기, 兵器(병기), 거울, 인장 등에 나타나고 있다.청동기를 썼던 시기는 商朝(상조)의 중ㆍ후기부터이며 西周(서주)시대에 특히 성행하게 되었고, 秦代(진대), 漢代(한대) 이후로는 많이 줄어들었다.
金文(금문)은 상당기간 쓰여졌기 때문에 그 글자의 모양이 매우 다채롭고 다양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그 風格(풍격) 또한 높은 수준이다.
西周金文(서주금문)의 필력은 모두 圓筆(원필)이며 자형이 우뚝하고 뛰어나다.
周代(주대) 이후부터는 금문을 기초로 하고 그 위에 진일보시켜서 발전한 면이 보인다. 이때의 器物(기물)들은 대부분 기념물로 만든 것이며, 거기에 기념될 수 있는 사실을 기록하고 그 意味(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많은 글자를 새겨, 후손들에게 영원히 傳(전)하고자 하여 정성스럽게 썼으므로 그 모양이 곱고 단아하다.
이러한 金文(금문)을 銘文(명문)이라 부르는데 銘(명)은 새긴다는 뜻으로서, 이는 어떠한 사건이나 사실을 청도기나 鼎鐘(정종)등에 새겨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鼎鐘文(정종문)이라 하며 大篆(대전)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秦代(진대)에 만들어진 小篆(소전)이라는 글자와 구별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東周時代(동주시대)를 春秋(춘추)시대와 戰國(전국)시대로 나누어 본다면, 춘추시대의 금문은 대체로 西周(서주) 말기 형식 그대로 이어받은 한편, 필획과 字型(자형)의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서주 초기 금문<대우정> / 서주 중기 금문<대극정>
石鼓文(석고문) 기원전 828~782
石鼓文(석고문)은 篆書(전서) 中에서 大篆(대전)에 속하며 金文(금문)에서 小篆(소전)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대표적인 서체이다.大篆(대전)은 宣王(선왕)때에 太史(태사)인 (주)가 만들었으므로 文(주문)이라고도 한다.석고문은 현존하는 最古(최고)의 石刻文字(석각문자)이다.
石鼓(석고)는 처음에 中國 陜西省(중국 협서성)의 들판에 방치되어 있던 것이 唐(당)나라 때 발견되어 現在(현재) 北京國子監(북경 국자감)의 大成門(대성문) 殿內(전내)에 있다. 둥근돌의 上,下(상하)를 평판하게 하여 큰 북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石鼓(석고)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새겨진 字數(자수)는 歐陽修(구양수)가 조사하여 465字로 판명되었고 그 후 마모되어 지금은 약 300字 정도이다. 文字(문자)는 한자가 사방 4센티 정도의 크기이며 석고문이 가진 情趣(정취), 풍부한 妙味(묘미)로 후세의 詩人(시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詩歌(시가)를 짓게 했다.唐(당)의 韓愈(한유) 宋(송)의 蘇東坡(소동파)의 石鼓歌(석고가)가 유명하다.

그러면 소동파의 석고가를 소개한다.
暴君縱欲窮人力 폭군종욕궁인력
神物義不汚泰垢 신물의불오태후是時石鼓何處避 시시석고하처피
無乃天工命鬼守 무내천공명귀수
폭군(진시황제를 가리킴)은 욕망을 방자하게 굴어 인민의 힘을 혹사했다. 신물(석고를 가리킴)은 義(의)를 지켜 秦(진)나라의 더러움에 상처입지 않았다. 이때에 석고는 어느곳에 피해 있었던고? 이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하늘이 귀신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