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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홍련
문을 닫는 진동이 세면대에 담긴 물에 파장을 일으킨다. 의사가 간단하게 손을 씻고 간호사가 천천히 수미를 데려와 의자에 앉힌다. 간호사가 나가고 의사도 의자에 않는다.
의사: 오늘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어? 자…어디 우리 얘기 좀 해볼까? 음? 우선 자기소개부터 좀 해봐.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해?
수미는 고개만 푹 숙인 채 반응이 전혀 없다. 의사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의사: 여기… 여기 이 사람 누구지? 모르겠어? 가족사진인데‥ 다시 한 번 볼래? 응?
수미는 여전히 반응이 없다.
의사: 아, 좋아. 그럼… 그 날 일에 대해 좀 얘기해 줄 수 있을까?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자신한텐 굉장히 생생한 일이었을 텐데… 응? 괜찮아. 지금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얘기해봐.
수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창밖을 본다.
인적이 드문 시골. 차창 밖으로 숲이 지나가고 강도 지나간다. 갈대밭도 지나가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소담하게 피어 있는 신작로 끝에 일본식 목재 가옥이 홀로 서 있다. 장 씨가 대문을 열어주고 차는 정원에서 멈춘다. 무현, 내려서 장씨에게 짐을 건네고 차로 온다.
무현: (차 창문을 두들기며)안 내려?
차에서 수미와 수연이 내린다. 수연은 차를 오래 타서인지 머리를 흔든다. 두 자매, 집을 둘러본다. 무언가를 발견한 수연. 빨간 꽈리나무 앞에 가서 꽈리 하나를 따 껍질을 벗겨보지만 속이 빈 꽈리. 그냥 버리고 또 다른 꽈리의 껍질을 벗겨 입에 넣는다. 너무 떫은 꽈리, 수연은 "퉤" 하고 꽈리를 뱉는다. 집을 계속 둘러보는 수미. 흥미가 없는지 수연을 부른다.
수미: 수연아, 수연아!
수연은 입 속이 계속 떫은지 쩝쩝거리기만 한다. 수연은 수미에게 달려가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간다.
선착장. 두 자매는 물속에 발을 담그고 앉아있다. 수미는 그대로 누워버린다.
수미: 음∼ 예쁘다.
수연은 자신의 발을 쳐다본다.
수미: 손 줘봐. (수연이의 손금을 봐 준다.) 음… 저 쪽!
수연: 왜?
수연의 물음에 수미는 미소만 짓는다. 멀리서 무현이 부른다.
무현: 수미야!
두 자매. 옷을 털고 신발을 챙겨들고 집으로 간다.
집 안으로 들어온 두 자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문을 열고 올라간다.
은주: 어∼ 너희들 왔구나. 어서 와. 이게 얼마 만이니? 수연인 그동안 많이 변했네. 더 예뻐졌다. 근데 니들 너무 섭섭하다, 얘. 난 하루 종일 집안 청소며 음식도 만들면서 니들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쩜 니들은 오자마자 이럴 수가 있니? 뭐 했어? 어? 놀다 온 거야? 선착장에 갔다 온 거야? 아∼ 그럴 거면 들어와서 옷이라도 갈아입고 나갈 것이지. 너희들도 참……. 어쨌든 니들 내려온 거 정말 축하하고 환영해.
수미와 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손만 꼭 잡는다. 은주는 수연에게 다가가려 하는데 수연은 화들짝 놀란다.
은주: 허… 너 왜 놀래니? 너 건강해졌구나. 네가 건강해져서 난 너무 기뻐. 너 점점 엄마 닮아간다. 수미 너도 많이 나아진 거지?
수미와 수연은 그냥 2층으로 올라가 버린다.
은주: 어, 그래, 그래. 피곤하지? 어서들 올라가. 일단 푹 쉬었다가 저녁 먹으러 내려들 와. 너희들 좋아하는 특별 요리를 준비하는 중이었어. 어, 그래도 나한테 약간의 시간은 줘야 된다. 이것저것 준비할게 많거든.
수미.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커튼을 열고, 모자를 벗고, 시계를 맞춰놓는다.
가방에서 책과 일기장을 꺼내 보관함에 넣으려고 보관함 문을 여는 수미. 보관함 속에 똑같은 책과 일기장이 있는 것을 보고 순간 놀란다.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는 수미.
붉은색 옷장 문을 열자 똑같은 옷만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은주는 침실에서 무현의 속옷을 갖고 나오다가 마루에 자신이 갖고 나온 것과 똑같은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무현은 전화중이다.
무현: 조금 전에 도착했어. 지금 상태는 그렇게 좋은 것 같지 않거든. 내려온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그래. 알아, 알아. 나중에 다시 통화하지. 나가 봐야 될 것 같아. 그래,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아참, 어… 선규랑 선규 처 오기로 했어. 괜찮을 거야.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끊어.
전화를 끊고 서랍을 열어 담배 한가치를 꺼내 입에 문 무현. 주머니를 뒤져도 라이터가 나오지 않자 담배를 서랍 속에 던져버린다.
저녁 식사시간. 모두 식탁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 은주는 가족들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입을 연다.
은주: 아, 정말……. 이번 주말에 선규랑 선규 처 불러서 저녁 같이 먹기로 했어요.
무현: 그래?
은주: 모처럼 애들도 왔는데 멀리 있는 애들도 아니고 그동안 연락도 못했고 그래서요.
무현: 흠…(물 마신다) 아, 잘 먹었다. 정리할게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 피곤 할 텐데 이거 내일 치우지…
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은주는 수미와 눈이 마주친다.
은주: 아빠 내의 네가 갖다 논거니? 그런 거 내가 해도 돼. 내 일인 것 같아.
수미: 내 방 정리도 내 일이야. 왜 남의 물건들에 손을 대?
은주: 전부터 그렇게 돼 있었어.
수미: 전에도 똑같은 옷들이 수 십 벌 씩 걸려있었어?
무현은 은주 앞에 알약 두 개를 놓고, 물을 따라주고 간다.
수미: 난 저녁 같이 안 할 거야.
은주: 뭐?
수미: 그 사람이랑 저녁 같이 안 할 거라고.
은주: 그 사람이 아니고 너의 삼촌이야. 아…오늘 첫날인데 그만 하자.
수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올라 가버린다. 은주는 수연을 쳐다본다.
은주: 넌?
수연: 예…?
은주: 넌 왜 안 따라가? 언니 하는 대로 따라 야하잖아.
수연도 자리에서 일어나 올라 가버린다.
계단을 오르던 수연은 계단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미와 함께 방으로 간다.
수미: 그 여자가 뭐라 그랬어?
수연은 말없이 고개만 설레설레 흔든다.
수미: 그 여자가 뭐라 그러면 나한테 말해. 전에처럼 그러지 말고……. 알았지?
은주는 새장 속에 있는 새에게 인사하고 덮개를 씌운다.
은주: 잘 자라.
문단속을 하고 불을 끄는 은주.
무현은 깜깜한 마루에서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생각에 잠긴다.
침실 화장대에서 화장을 지우고 있던 은주. 무현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후다닥 침대에
눕고 책을 읽는 척 한다. 무현이 들어온다.
수미와 수연은 곤히 잠들었다.
무현은 잠이 안 오는지 뒤척이다가 결국은 마루에 있는 소파에서 잠을 잔다.
은주는 누군가가 집안을 쿵쾅거리며 뛰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다.
수연의 방. 무언가가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방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린다. 문을 여는 누군가의 손을 본 수연은 너무 무서워 반대쪽으로 누워버린다. 하지만 천천히 이불이 벗겨지기까지 하고 너무 무서운 수연은 "쾅" 하고 방문을 닫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난다. 누군가가 쿵쾅거리며 집안을 뛰어다닌다. 베개를 껴안고 방문을 열고 나온 수연은 수미의 방으로 간다.
수미의 방. 자고 있던 수미는 이불 속에 누군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불을 벗긴다. 수연이가 있다.
수미: 왜 그래? 꿈 꿨어?
수연은 고개만 설레설레 흔든다.
수미: 옷장 때문에 그래?
수연은 이번에도 고개만 설레설레 흔든다.
수미: 그럼 왜 그래?
수연: 자꾸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수미: 오랜만에 와서 그런 걸 거야. 괜찮아, 자자.
수연: 누가 내 방에 있다 나갔어.
수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마루 쪽으로 간다. TV는 방송시간이 지나 기직 거린 채 켜져 있다. 무현에게 다가가 이불을 잘 덮어주는 수미. 무현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은주: 아빠 주무시잖아.
수미: 알아.
은주: 근데 왜 깨우려고 그래?
수미: 누가 깨워?
은주: 지금 네가 깨우려고 하고 있잖아. 아빠한테 뭐 할 말 있어?
수미: 상관 하지 마.
은주: 내 얘긴 아빠 지금 주무시니까 깨우지 말란 얘기야. 내 말 못 알아듣겠니?
수미: 나 물 마시러 내려 온 거야.
은주: 아빠 주무시니까 조용히 얘기해.
수미는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마신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 물 냄새도 아니다. 무언가를 발견한 수미. 물통을 냉장고 문에 넣고 피에 젖은 종이뭉치를 천천히 연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내용물을 본다.
수미: 악!
깜짝 놀라 종이뭉치를 떨어뜨린다. 생선이 썩어있다.
마루. 은주는 수미의 비명소리에 부엌 쪽을 쳐다본다.
수미의 방.
수연: 내 방에 가봤어? 발버둥 쳐봐도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엄마라고 부를 사람은 안타깝게도 나밖에 없어. 알아? 죽은 네 엄마 사진 붙들고 울며불며 해봐야 바뀌는 거 아무것도 없어. 견디기 어렵지? 근데 어쩌겠어? 세상일이라는 게 다 이래. 네가 그리는 대로 세상이 아주 달콤하게 돌아가는 게 아니야. 아주 더러운 꼴을 보면서도 참고 살아야 돼 . 내가 지금 너희들을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면도를 하던 무현은 밖에서 들리는 말소리를 듣다가 수도꼭지를 잠근다.
은주: 뭐? 너 도대체 왜 내려 온 거니? 허∼ 또 그런 말을 나한테 하 네 … 너 아직 병이 나은 게 아니었구나.…
수미는 몸이 굳는다. 은주는 찻잔에 차를 따르려는데 수미는 테이블 위에 있던 것들을 몽땅 내팽개쳐버린다.
무현은 욕실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를 듣는다.
수연은 계단 위에 조용히 앉아있다.
밖으로 나온 무현. 수미가 부엌 구석으로 가는 것이 보인다. 계단 위에 있던 수연이 일어난다.
부엌 구석에서 웅크린 채 눈물을 훔치는 수미. 무현은 수미에게 손을 대려 한다.
수미: 건들지 마.
수미는 눈물을 닦고 일어나 부엌을 나간다.
무현은 수미의 손을 잡는데 수미는 날카롭게 손길을 뿌리친다.
수미: 놔!
무현: 너 왜 이러는 거야?
수미: 몰라서 그러는 거야? 그 더러운 손으로 건들지 말란 말이야.
무현: 수미야, 내 말 들어봐.
수미: 필요 없어. 다 똑같아.
무현: 그렇지 않아. 네가 잘못 생각하는 거야. 네가 조금도 받아들이고 있지 않잖아.
수미: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거야? 왜 나한테만 이해하라고 그러냐고?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무현: 그래, 아빠도 모를 수 있어. 나도 모르는 게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게 뭔지 네가 속 시원히 말해 줘. 말해 줘 봐.
수미: 변하는 게 있어? 바뀌는 게 있어?
무현: 수미야, 너…너 정말 이러지 마. 너 이러면 안 돼. 이러면…너 또 다시 아프게 돼.
수미: 뭐…? 알았어. 앞으로 이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전화벨이 울린다.
수미: 아빠가 불러놓은 이 모든 더러운 일…아빠가 책임져. 더 이상 할 말 없으니까 전화나 받아.
수미는 등 돌려 가버린다.
캄캄한 밤. 차 한 대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차안에는 선규와 미희가 타고 있다.
무현의 집. 은주는 오디오에 CD를 집어넣고 재생 버튼을 누른다. 클래식이 집안 가득 울린다. 꽃나무에 물을 주던 은주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아래층을 내려다본다. 무현이 선규와 미희를 데리고 들어온다. 계단을 내려오는 은주는 두 사람을 보고 활짝 웃는다.
식탁. 유리잔에 와인이 채워지고 은주는 앞 접시에 고기를 잘라준다.
은주: 그런 적이 있었지? 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아. 그게 몇 년 전이니? 얘! 너 그건 기억나니? 왜, 동네 조그만 냇가에서 네가 고기 잡는다고 뛰어 들어갔다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온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놨었잖아. 어?
은주 혼자서 시끄럽게 떠들고 혼자서 웃는다.
은주: 한 번은,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어요. 어,…그 뭐지? 어…아, 그래, 그래, 맞다, 맞다. 동네에 미친 사람 하나 있었잖아. 근데 웃기는 게 그 사람이 평상시엔 아무렇지도 않다가 비만 오면 갑자기 핑 도는 거야. 밭에 가서 밭 갈다가도 비가 오면 갑자기 옷을 막 훌러덩 훌러덩 벗어 던지고 길거리로, 신작로로 막 뛰어다니고 그랬잖아. 제일 웃겼던 게…한번은 비가 오락가락 한 거야. 그랬더니 이 사람이 옷을 입었다 벗었다 입었다 벗었다… 그러더니 자기가 지치니까 그냥…그냥 집으로 들어갔잖아. 아∼ 아∼ 그때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배를 잡고…웃었는지…아, 근데 쟤가, 쟤가 그걸 한번 보고서, 쟤가 아주 어렸을 땐데, 그걸 한번 보고선, 자기도 그 사람…같이…같이 뛰는 거야.
은주는 여전히 혼자서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댄다.
은주: 아∼ 우리 엄마가 그 광경을 보고 질색했잖아. 너 그거 기억 나? 기억나지…?
아, 왜 말을 안 해? 기억 안나…? 기억…기억 안나…? 기억나지…?
선규: 아니, 기억 안나.
은주: 뭐…?
선규: 그런 기억, 없다고!
은주는 웃음을 참으며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댄다. 숨을 가다듬는 은주. 말투가 공격적이다.
은주: 왜 기억 안 나? 너 미쳤어?
무현은 조용히 와인 잔을 내려놓는다. 갑자기 기침을 시작하는 미희. 세 사람의 시선이 미희에게 간다. 미희는 숨이 넘어갈 듯 기침을 하다가 옆으로 넘어간다.
선규: 미희야!
접시에 담긴 음식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미희는 가슴을 치며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선규와 무현은 미희의 팔을 잡고 진정시키려 하지만 미희는 소리까지 질러대며 고통스러워한다. 선규와 무현은 미희의 팔을 잡으려 하지만 미희는 몸을 뒤흔들며 발작한다. 물 한잔을 가져온 무현은 미희에게 물을 먹이려 하지만 미희는 물 잔을 팽개쳐버린다. 무현은 놀라서 이 광경을 지켜보기만 한다. 선규는 밖에서 약통을 가져와 약을 꺼내 미희에게 먹이려 한다. 무현은 미희의 팔을 잡고 선규는 미희에게 약을 먹이는데 미희는 한두 번 구역질을 하더니
먹은 것을 토해버린다. 미희는 싱크대 밑에서 무언가를 본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은주.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무현은 이런 은주를 쳐다본다.
은주: 아악∼ 아악∼
2층에서 잠을 자던 수연이 눈을 뜬다.
정원. 선규는 미희가 차에 타도록 부축한다.
차 안. 미희는 숨을 가다듬는다.
선규: 미안해, 미희야. 나도 내려오기 싫었는데 매형이 하도 부탁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
미희: 자기야.
선규: 어.
미희: 나 아까 그 집에서 이상한 걸 봤어.
선규: 뭘 봤는데?
미희: 싱크대 밑에 어떤 여자 애…
미희는 무현의 집에 있을 때 봤던 것을 회상한다. 싱크대 밑에 어떤 여자아이가 있었다.
무현의 집. 무현은 바닥에 흩어진 음식 조각들을 천천히 주워 담고 은주는 의자에 앉아있다.
무현: 들어가.
무현이 부엌 밖으로 나간다. 갑자기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나고 은주는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본다. 싱크대 문이 저절로 열린다. 은주는 순간 놀라지만 천천히 싱크대 쪽으로 간다. 싱크대 문을 천천히 열어 안을 살펴보고 다시 닫는 은주. 그리고 몸을 낮춰 싱크대 밑을 살핀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본 은주는 몸을 일으키는데 식탁 의자에 초록색 옷을 입은 누군가 앉아서 흐느끼는 듯하다. 은주는 천천히 식탁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만 아무도 없다. 그런데 싱크대 앞에 머리핀 하나가 떨어져 있다. 천천히 손을 가져가는 은주. 머리핀을 집는 순간 싱크대 밑에서 손 하나가 나와서 은주의
손목을 콱 잡는다.
은주: 아∼악!
은주는 뒷걸음질 쳐서 일어나려는데 초록색 옷을 입은 누군가와 맞닥뜨린다.
손에 알약 두 개가 쥐어진 은주. 무현은 뒤돌아 가려고 한다.
은주: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
무현: 왜?
은주: 이상해.
무현: 아, 뭐가 이상해?
은주: 이상해. 애들이 이 집에 내려오고 나서부터 집에 자꾸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잖아.
무현: 제발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은주: 당신 아까 못 봤어?
무현: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서 그래. 좀 쉬면 나아질 꺼야.
은주: 아니야. 이 집에……. 뭐가 있는 것 같애.
무현: 내가 둘러볼게. 누워있어.
무현, 나간다.
부엌에 온 무현. 대충 살펴보는데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침실. 은주는 불안한 듯 손톱을 물고 안절부절못한다. 그런데 위층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발소리가 들린다. 은주는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거실. 무현은 마룻바닥을 따라 흩어진 새의 깃털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새장 앞에 선다. 조심스럽게 새장 덮개를 연 무현은 처참하게 죽은 새의 시신을 보고 기겁하지만 천천히 숨을 고르고 새장을 들고 나간다. 창문 밖에서 은주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수연의 방 앞. 은주는 잠긴 방 문고리를 세차게 흔들고 쾅 쾅 두들긴다.
은주: 문 열어! 열어! 문 안 열어? 이것들을 그냥…
은주는 서랍을 열어 열쇠를 찾다가 나오지 않자 아예 서랍을 엎어버리고 열쇠를 찾아낸다. 수연의 방문을 열고 들어온 은주는 자고 있는 수연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다가 무언가를 발견한다. 테이블 위에 놓인 가족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기는 은주는 자신이 나온 부분은 찢어낸 사진을 보고 기겁한다. 이불을 확 벗기는 은주. 수연은 놀라 잠에서 깬다.
은주: 일어나. 내려와. 내려오라고! 안 내려와?
은주는 수연의 침대 위로 올라가려다가 무언가를 깔고 앉은 느낌을 받고 요를 걷어낸다. 새의 시체가 있다. 기겁하는 두 사람. 은주는 수연을 잡아 끌어내려 한다.
은주: 내려와! 내려와!
수연이 은주의 팔을 할퀴자 은주는 뒤로 물러난다.
은주: 이게 진짜…….
은주는 수연을 바닥으로 끌어낸다.
은주: 말해! 어!
수연은 스탠드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은주는 수연을 질질 끌고 장롱 쪽으로 간다.
은주: 도대체가… 이 집은 날 가만 놔두질 않아. 너 사실대로 말해. 누가 이랬어?
수연은 힘껏 소리를 지르며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은주: 누구야? 사실대로 말해, 너. 어! 누가 그랬어? 어? 네 언니가 그랬어?
은주는 장롱 문을 열고 수연을 거칠게 집어넣는다.
은주: 네 언니가 그랬어?
수연을 장롱 안에 넣은 은주는 테이블에 있는 사진들을 가져와 수연에게 거칠게 던진다. 수연은 훌쩍거리지만 은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롱 문을 닫아버린다. 수연은 장롱 속에서 소리를 지르며 필사적으로 문을 두들긴다.
은주: 그래. 죽은 네 엄마 물건 보니까 속이 시원하지? 어? 사진 보니까 이제 살 맛 나?
은주는 장롱 문을 잠가버린다.
은주: 말해, 잘못했다고…잘못했다고 말하기 전에 거기서 나올 생각도 하지 마.
수연은 장롱 속에서 엉엉 운다.
은주: 울어도 소용없어. 잘못 했다는 말을 하고 용서를 빌어.
수연: …잘못 했어요…
은주: 뭐라고? 똑바로 말해봐.
수연: …잘못 했어요…
은주는 장롱 문을 연다. 수연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은주: 다시 한 번 묻겠어. 네가 잘못한 거 인정 한 거지?
수연은 계속 훌쩍이며 울기만 한다.
은주: 울음 그쳐. 시끄러우니까 그만 그치란 말이야! 너…너 분해서 이래? 어? 분해서 이러는 거야? 그래. 네가 얼마나 버티나 두고 보자.
은주는 장롱 문을 다시 잠가버린다. 수연은 소리를 지르며 장롱 문을 두들긴다.
은주: 너희 것들은 이래야 알아들어.
수미의 방. 수미는 엄마와 수미와 찍은 사진을 손에 든 채 자고 있다가 은주가 방을 나오는 소리에 사진을 떨어뜨리고 잠에서 깬다. 누군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은 수미는 방문을 열어보는데 은주의 그림자가 계단을 내려가는 게 보인다.
수미는 수연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하지만 방안은 엉망진창이고 수연은 보이지 않다. 장롱 쪽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은주는 천천히 1층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천천히 장롱 쪽으로 다가가는 수미. 수연이가 장롱 속에 있음을 알아챈다.
수미: 수연아!
장롱 문을 연 수미는 장롱 안에서 수연 이를 본다.
수미: 수연아!
1층 복도. 은주는 수미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본다.
수연의 방. 두 자매는 서로 껴안고 울기만 한다.
수미: 수연아, 미안해. 언니가 못 들었어. 미안해, 수연아. 미안해.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이런 일 없을 거야.
정원. 무현은 곡괭이로 땅을 파고 그 안에 새의 시체를 넣고 흙을 덮는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뒤를 본 무현은 창문에서 그림자를 본다.
수연의 방. 수연은 엄마 신발을 만지고 있고 수미는 수연을 달랜다.
수미: 울지 마, 이제 괜찮아. 응?
무현이 방안으로 들어오자 두 자매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현은 은주가 찍힌 부분만 잘라낸 사진들을 본다.
무현: 말해봐.
수미: 뭘?
무현: 도대체 왜 그러는지…네가 여기 내려와서 했던 말들, 행동들…도대체 왜 그러는지 말 좀 해보란 말이야.
수미: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무현: 그게 뭔데? 그게 뭐냐고?
수미: 그 여자가 우리한테 한 짓 말이야.
무현: 그러니까 그게 뭔지 말해 보란 말이야.
수미: 수연 이를 자꾸 괴롭히잖아.
무현: 뭐?
수미: 못 알아들었어? 그 여자가 자꾸 수연 이를 괴롭히고 있단 말이야. 악랄하게도, 악질적으로 매번… 매번 수연 이를 옷장 안에 가둬놓고…
무현: 수미야, 제발 그러지 마.
수미: 뭘 그러지 말라는 거야? 아빠도 알잖아. 수연이가 무서워하는 거…수연아, 네가 말해봐. 아빠한테 말해봐. 바보처럼 울지만 말고 어서 말해봐. 빨리 말해 보란 말이야.
수미는 수연 이를 다그친다.
무현: 제발 그러지 마! 수연인 죽었잖아…
수미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수미: 뭐…? 아니야…
무현: 수연인 이미 죽었어. 이젠 정신 차려, 수미야.
수미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무현: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니, 응?
수미: 아니야, 수연아.
수연: 아악∼ 아악∼
수미: 수연아, 아니야.
수연: 아악∼ 아아악∼
수연 이는 소리만 지른다.
무현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무현: 내일 내려와 줘. 도저히 내 힘으로는…응.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그래, 내가 나갈 테니까 내려오면 바로 전화 해.
아침. 은주는 피에 흥건히 젖은 커다란 자루를 질질 끌고 마루로 향한다. 자루 안에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들어있다. 골프채를 가져온 은주. 피에 젖은 자루를 마구 때리기 시작한다.
비명소리가 들리고, 장롱이 쓰러지고, 수연이의 사진이 깨지고, 누군가 장롱에 깔린다. 수미는 꿈에서 깼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수미는 방문 아래에 쪽지를 발견한다. '수미야, 잠시 외출한다. 오후에 들어올 거야. 문 꼭 걸어 잠그길 바란다.'라고 쓰여 있다.
수연이의 방문이 잠겨있다. 수미는 수연 이를 부른다.
수미: 수연아! 수연아! 수연아!
수미는 방문이 못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마루로 내려온 수미.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디선가 "언니"하는 수연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미: 수연아…….
수미는 수연이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뛰어간다.
수미는 마룻바닥을 따라 길게 난 핏자국을 보고 놀란다. 천천히 핏자국을 따라가는 수미. 현관 앞에서 피에 젖은 자루를 발견한다. 천천히 자루에 손을 대는 수미는 깜짝 놀란다. 자루 안에 수연이가 있는 것 같다. 수미는 울먹이며 자루에 묶인 끈을 풀어보려 애쓰지만 잘 풀리지 않는다. 부엌 서랍을 열어 가위를 찾는 수미는 갑자기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주전자 물이 끓는 소리를 듣고 놀란다.
마루에서는 은주가 물 한잔을 마시며 땀을 닦아내고 있다.
부엌을 나오려는 수미는 멈칫 한다. 약을 먹는 기억, 무언가를 힘껏 때리는 기억들이 스친다. 부엌을 나온 수미. 피에 젖은 자루가 없어진 것을 보고 놀란다. 천천히 핏자국을 따라가는 수미는 장롱 앞에 다다른다. 장롱 문을 열어보니 안에 피에 젖은 자루가 있다. 조심스레 손을 갖다 대는 수미는 자루 안에 무언가가 움직여서 깜짝 놀란다.
부엌. 은주는 행주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낸다. 그리고는 주전자를 들고 부엌을 나선다.
서랍에서 가위를 찾아낸 수미. 자루를 묶고 있는 끈을 잘라내고 다급하게 자루를 연다.
수미: 수연아…수연아…
수미는 뒤에서 인기척을 느낀다. 은주는 아직도 김이 나오는 주전자를 들고 있다.
은주: 내가 아주 네 집 식구들이라면 지긋지긋해. 주전자로 태워버리겠다!
수미에게 주전자 물을 끼얹으려 하는 은주. 순간 수미는 장롱 문으로 막는다. 주전자에 손을 덴 은주는 수미에게 달려들지만 수미는 가위로 은주의 오른손을 찌른다.
은주: 아∼악! 아∼으!
은주는 비명을 지르고 수미는 당황한 나머지 가위를 떨어뜨린다.
은주: 아∼악!
은주는 벽 쪽으로 수미를 민다. 구급함 유리문에 머리를 부딪친 수미. 구급함 유리창이 깨진다. 은주는 구석으로 수미를 팽개치는데 선반 위에 있던 낚시 바늘 통이 바닥에 떨어져 낚시 바늘들이 흩어진다. 흩어진 낚시 바늘 위로 쓰러진 은주. 비명을 지른다.
은주: 아∼!
다시 수미에게 달려드는 은주. 몸을 피하는 수미의 발목을 낚아채자 수미는 선반에 머리를 부딪치고 바닥에 쓰러진다.
복도. 은주는 낑낑대며 수미를 질질 끌고 와서 팽개쳐놓는다.
어렴풋이 정신을 차린 수미. 복도에 나 있던 핏자국이 사라진 듯하다.
은주는 낑낑대며 석고상 하나를 힘겹게 끌고 온다.
수미를 팽개쳐놓고 숨을 고르는 은주.
은주: 도대체…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전에 했던 말…기억 나? 이런 날이 올 거라고 했던 말 기억 나? 너…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뭔가 잊고 싶은 게 있는데…깨끗하게 지워버리고 싶은 게 있는데…도저히 잊지도 못하고, 지워지지도 않는 거 있지. 근데, 그게 평생 붙어 다녀. 유령처럼…
수미: (나지막하게) 날 도와줘…
은주: 그래, 내가 너 도와줄게. 우리 여기서 끝내자.
은주는 일어나서 석고상을 들고 수미의 얼굴을 보고는 석고상을 머리 위로 든다. "쾅"하고 누군가 현관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석고상이 "쨍그랑"하고 깨진다.
무현이 들어와 현관문을 닫고 집안을 살피다가 부서진 석고상 잔해와 함께 쓰러진 수미를 발견한다.
무현: 수미야! 수미야! 수미야!
무현은 수미를 안고 소파에 눕힌다. 수미의 손을 잡고 있던 무현의 손에 피가 묻어 있다.
약을 꺼내려 구급함 앞에 온 무현. 구급함 유리문이 깨져있다. 약을 꺼내 갖고 방을 나오는데 장롱 안에 커다란 인형이 들어있는 자루가 있다.
소파에는 은주가 앉아있다.
은주: 수미는요? 예?
무현: 제발 그만 좀 해. 나도 이젠 지쳤어.
무현은 은주의 손에 약을 쥐어준다.
무현: 약 먹어. 한결 나아질 거야.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본다. 초인종 소리가 나자 밖으로 나가는 무현. 잠시 후 누군가 들어오자 은주는 크게 놀란다. 또 다른 은주가 온 것이다.
또 다른 은주: 수미야.
그 때, 소파의 은주가 수미로 변하고, 수미는 여태껏 자신이 이중인격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동안 은주가 했던 행동은 자신이 한 행동임을 깨닫는다. 은주와 무현이 했던 말들도 기억난다.
은주: 아직도 모르겠어?
무현: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서 그래.
은주: 병이 나은 게 아니었구나.
무현: 그 옷장 얘기는 안 하기로 했잖아.
은주: 어쩜 나랑 날짜가 똑같을 수가 있지?
무현: 수연 이는 죽었잖아.
선규: 아니, 기억 안나.』
(『』는 수미의 회상)
자신이 새를 죽였고 자신이 약을 먹던 것도 기억난다.
과거,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차에서 내리는 수미. 혼자 내리는 수미. 애초부터 수연 이는 없었다.
현실, 수미는 슬퍼한다. 은주와 무현이 수미를 바라보고 있다. 수미는 손에 있는 알약 두 개를 삼킨다. 약병이 바닥을 굴러간다.
병원. 은주는 복도 대기석에 앉아있고 멀리서 무현과 간호사가 대화하는 것이 보인다.
수미의 병실. 은주가 수미 옆에 앉는다.
은주: 수미야,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여기서 편히 쉴 수 있을 거야. 잘 지내고, 자주 찾아올게.
은주는 수미의 손을 잡는다.
은주: 잘 있어. 갈게.
은주가 일어나는데 수미는 은주의 손목을 덥석 낚아챈다.
은주: 수미야, 왜 이래? 이거 놔. 이거 놔, 수미야. 제발 이러지 좀 마. 이거 놔.
은주는 간신히 수미의 손을 뿌리치고 병실을 나간다.
차 안. 무현과 은주가 타고 있다.
병실. 수미는 슬픈 표정이다.
수미의 엄마도 있고 수연이도 있던 과거. 수미와 수연은 그네를 타고 있다가 무현의 차가 정원으로 들어오자 두 자매는 그네를 멈춘다. 차에서는 무현과 은주가 내린다. 엄마는 집 안에서 무현과 은주를 보고 멈칫 한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무현과 은주를 보고 두 자매는 걱정이 된다.
현실, 부엌. 은주는 의자에 앉아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수미의 엄마도 있고 수연이도 있던 과거. 수미는 식사를 다 하지도 않고 수저를 식탁에 내려놓고 부엌을 나간다. 무현은 수미를 쫓아가고 수연과 은주는 눈이 마주친다. 수연의 수저를 빼앗는 은주. 수연은 음식을 싱크대에 버린다.
수연이 방으로 와 침대에서 우는데 엄마가 와서 수연 이를 어루만진다.
수연: 엄마…….
엄마도 눈물을 흘린다.
현실, 병실. 생전에 엄마가 좋아했던 자장가를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수미: 수연아…….
부엌. 은주는 휘파람 소리와 누군가 2층을 뛰어다니는 소리를 듣는다. 2층 쪽을 쳐다보던 은주는 복도를 천천히 걸어간다. 바닥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
수연의 방문을 열고 들어온 은주. 방 불을 켰는데 커튼 뒤로 무언가가 숨었다. 방안은 매우 추운지 은주는 덜덜 떨며 천천히 커튼 쪽으로 다가간다.
커튼을 확 젖히는 은주. 아무것도 없다. 갑자기 방문이 확 닫히고 불도 꺼진다. 저절로 열리는 장롱 문. 은주는 놀라지만 장롱 앞으로 가서 안을 살핀다. 끈 같은 것을 발견한 은주 조심스럽게 끈을 잡아당기는데 무언가 움직이자 은주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난다. 끈적끈적한 액체를 흘리며 은주에게 귀신이 점점 다가온다.
은주의 비명 소리가 집 전체에 울린다.
병실. 수미는 누운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수미: 수연아…….
수미의 엄마도 있고 수연이도 있던 과거. 수연 이는 잠에서 깬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데 장롱 문 한쪽이 열린다. 장롱 문을 연 수연 이는 엄마가 장롱 안에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엄마는 약을 먹고 목을 매달았다.
수연: 엄마…엄마…엄마…엄마! 엄마! 엄마! 엄마…엄마…엄마! 엄마! 악!
엄마의 시신을 잡아끌던 수연은 장롱이 넘어지는 바람에 깔리게 된다. "쿵" 하고 육중한 소리가 집 안에 울린다.
부엌에서 식탁을 치우던 은주와 미희, 정원에서 차를 보던 무현과 선규, 방안에 있던 수미는 이 소리를 듣고 수연의 방 쪽을 본다.
2층으로 올라가는 은주는 수연의 방에 들어온다. 넘어진 장롱 아래로 수연의 손이 보이자 은주는 놀란다. 수연의 액자가 떨어져 깨진다. 수연은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은주는 방에서 나온다. 멈칫 하는 은주. 다시 수연의 방으로 가려는데 수미가 나온다.
은주: (덜덜 떨며) 무슨 소리 못 들었니?
수연은 장롱 아래에서 괴로워한다.
수미: 여기 왜 올라 온 거야? 안방은 1층 아니야?
은주: 그게 무슨 말이야?
수미: 이젠 엄마 행세까지 하려드네…부탁인데 우리 일에 상관하지 말아 줘.
수미는 앞길을 막고 있는 은주를 바라본다.
수미: 좀 비켜줄래? 나, 나가야 되거든.
은주는 수미를 붙잡는다.
은주: 너……. 지금 이 순간 후회하게 될 지도 몰라. 명심해.
수미는 은주의 손을 뿌리친다.
수미: 당신이랑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것보다 더 후회할 일이 있겠어?
수연은 장롱 아래에서 괴로워한다.
수미: 당신이 이 집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때 될 수 있으면 멀리 떨어져있고 싶어서 그래. 이해 해?
수미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수연은 장롱 아래에서 몸부림친다.
무현이 현관으로 들어오려 하는데 수미가 나온다.
무현: 수미야. 수미야!
수미는 문을 열고 집을 나와 갈대밭을 걸어가다가 발걸음을 멈춘다.
장롱에 깔린 수연은 나지막이 소리친다.
수연: 도와줘, 언니…언니…언니…언니…
수연은 그대로 숨이 끊어진다.
수미는 집 쪽을 쳐다본다. 발코니에 나와 있던 은주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수미는 천천히 가던 길을 간다.
수미가 퇴원하던 날, 수미는 홀로 선착장에 앉아있다. 애초부터 수연 이는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