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 26
묵은세배와 설 세배
<우리는 하나, 고마움과 기원>
“조상님, 올해도 이제 저물었습니다. 덕분에 아무 탈 없이 지냈습니다.”
섣달그믐 저녁입니다. 아버지는 제상을 차리고 조상께 세배를 드립니다. 제상에는 조촐하게 만둣국과 술, 그리고 떡 정도가 제물로 올려져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만둣국제사’라고도 합니다.
“아버지, 왜 만둣국을 제물로 올려요.”
나는 몹시 궁금해서 물었지요. 아버지는 힐긋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두에는 정성과 복이 있단다.”
만두를 빚는 일이 시골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만두소가 무엇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만두소를 만들기에는 여러 날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보통 꿩만두를 많이 올렸는데요. 꿩만두를 빚기 위해서는 꿩사냥을 해야 하고,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 숙주나물을 만드는 등의 여러 손길이 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후손이 정성으로 만두를 빚어서 조상께 올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복만두’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는 만두를 ‘섬’으로 생각해서 ‘섬만두’라고 부르는 뜻과 같습니다. 만두 하나가 곡식을 담는 ‘섬’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복만두’, ‘섬만두’라 부르는 뜻은 만두가 풍요를 가져다주는, 곧 복(福)을 담고 있다는 의미로 봤습니다. 마치 정월대보름에 ‘복쌈’이라 해서 김이나 배춧잎에 밥을 싸서 먹는 풍습과 같았지요.
그러니 섣달그믐에 만둣국 제사를 올리는 이유는 조상께 후손이 정성으로 만두를 빚어 올리고, 복을 달라고 기원하는 풍속이었습니다.
또 이날은 가까이 사는 웃어른께 묵은세배라 해서 한해의 안부를 여쭈면서 절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세배에 담긴, 따뜻한 공동체>
섣달그믐 밤은 제야(除夜)라 해서 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 않고 보내는 풍속이 있었지요. 이는 묵은해가 새해로 바뀌는 틈을 타서 사악한 귀신이 집으로 들어옴을 막는 풍속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정선 사람들은 한 번쯤 밤을 새워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아침을 맞으면, 제일 먼저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茶禮)는 조상과 후손을 하나로 잇는 의식이며, 새해가 왔음을 조상께 고하면서 세배를 올리는 풍속입니다. 차를 다려 조상께 올린다고 해서 제사라 하지 않고, 차례라 합니다. 그래서 차례에는 축문을 읽지 않고, 단잔 재배로 끝납니다.
사실 제물도 단출했는데, 요즘은 아주 많이 올리지요. 그런데 설 차례에는 떡국을 올립니다. 물론 메와 떡국을 같이 올리는 집도 있습니다.
“아버지, 왜 차례에는 메를 올리지 않고 떡국을 올려요.”
“떡국이 무엇처럼 생겼니?”
“동전 모양이요.”
밥은 일상으로 먹는 음식이지만, 떡은 특별한 날이어야만 먹을 수 있었잖아요. 그만큼 특별하고 정성이 많이 가는 음식입니다. 게다가 떡국을 끓이는 떡은 썰어놓은 모양이 동전처럼 둥급니다. 옛날 상평통보처럼 둥글게 생겨서 이 떡을 ‘복떡’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떡국은 조상께 정성으로 올리면서, 후손들에게 발복을 달라고 기원한 의미가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돈 많이 벌기를 바라는 소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차례가 끝나면, 집안의 웃어른께 세배를 올립니다.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새해를 맞는 각오와 다짐, 그리고 희망을 담았지요. 집안 세배가 끝나면 마을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올렸습니다. 가끔 어떤 동네에서는 합동 세배인 도배를 행하기도 하지만, 정선 지방에서는 대개 개인별로 동네 어른을 찾아 세배를 올렸습니다. 세배는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마을 어른이 곧 집안의 어른이라는 공동체 의식의 발로였습니다. 참 풋풋한 정 나눔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풍속이 많이 사라져 아쉽습니다. 도배처럼 합동 세배라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정선 사람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병오년 새해에는 모든 가정에 건강과 복락이 넘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