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글] 정 대리의 운전 습관 / 정희연
광주 제2 순환도로는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문흥 분기점)과 광산구 신창동(산월 나들목)을 잇는 21.81Km 도시 고속화 도로다. 기존의 대남대로, 필문대로, 서암대로, 죽봉대로를 묶은 제1 순환로가 광주 시내에 위치하고 제2 순환로는 광주 외곽으로 이어졌다.
그중 내가 공사에 참여한 곳은 1구간이다. 왕복 6차선 길이 5.6km, 두암 인터체인지에서 소태 인터체인지까지다. 4개의 터널·10개의 교량·1개의 매표소·2개의 대절토·건축·전기시설로 현장 직원이 43명에 이르며, 공사비는 2400억이다.
아침 여섯 시 50분이면 아침 체조(국민 체조)를 한다. 현장 직원이 유일하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체조가 끝나면 식사를 하고 일곱 시 30분부터 공정 회의가 시작된다. 담당별, 팀별, 공구별 회의를 한다. 2개 공구 · 3개의 팀 · 19명의 담당으로 나누어 공사를 시행하고, 여기에 품질, 안전, 공무로 나누어 현장이 관리된다. 나는 지산교 다리 공사를 담당했다. 착공한지 5~6개월 지나서 투입되어 규모가 작은 곳을 맡았다.
공동 도급 방식으로 컨소시엄(consortium, 2개 이상의 업체가 공동의 과제를 수행하려고 일시적으로 구성한 연합체)을 이루어 참여하였다. 주관사는 대우 건설로 현장 관리도 대우 건설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현장 사무실은 소태 아이씨(IC)에서 광주 시내 방향으로 200m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보통 100억이 넘으면 중·대형 공사에 속한다. 이천억이 넘고 다른 회사 직원이 모여 성과물을 완성해야 하므로 특별한 관리가 요구되었다. 매일 아침은 직원과 매주 한번은 협력사와 공정 회의를 한다. 계획 대비 5% 미만이거나 계약 기간 내 준공에 차질이 예상되면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이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원활히 진행되는 현장은 무리 없이 지나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물을 계약 기간 내 끝낼 수 없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75조(지체 상금률)는 천분의 0.5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만약 계약 기간 내에 준공하지 못하면 계약 금액(240,000백만 원) X 지체 상금률(0.5/1000) X 지체일 수(5일) 5일 늦었을 때 600억에 해당하는 금액이 된다. 만약 현장 관리 소홀로 공사가 늦어지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도로를 만드려면 경제성이 검토 대상이 된다. 제2 순환도로 1구간은 도심지를 지나면서 무등산 능선을 통과해야 하므로 도로의 높이가 주변 가옥의 지붕보다 높았다. 주변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높은 곳은 보강토 옹벽을 적용했다. 구체(콘크리트 제품)를 세우고 그 뒤로 보강재를 설치하여 한 층 한 층 완성 면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다. 높이가 10m가 넘다 보니 집중 품질 관리 대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한도를 넘어 지나치게 관리하다 보니 배부름 현상이 생겼다. ‘과하면 부족한만 못하다’란 걸 이때 배웠다.
1999년 1월 1일부터 2001년 1월 31일까지 근무했다. 동료들보다 먼저 철수했다. 업무별 직속 상관은 한솔건설 차장이었다. 문제점이 발생하면 30분 일찍 출근하여 1안, 2안, 3안으로 나누어 결재판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런 일은 같이 한 팀을 이루어 시작할 때부터 마감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상사는 만족스러워 하며 자기 회사 직원보다 나를 더 아꼈다. 휴대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며 나를 그룹사인 한솔텔레콤 매장에서 휴대 전화를 사 주었다. 광주광역시 한 복판에서 불통이라니 아마도 주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 이유로 아들의 생일과 같은 번호를 갖게 되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나에게 러브콜 제의가 들어왔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나를 이끌어준 본사 임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직 했더라면 또 다른 삶이 만들어졌을 것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차선을 바꾸려면 깜빡이를 켜고 몇 초 이상 기다라며 끼어들 준비를 해야 한다. 차의 앞머리부터 밀어 넣지 않고 차체를 천천히 붙여야 한다. 옆 차선의 차가 빠르게 다가오면 그 차의 뒤로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다. 교통량이 적은 곳에서 미리 차선을 바꾸어야 쉽다. 업무도 이와 같다. 목적지를 정하고 참여자가 같은 마음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앞의 상황을 살피며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앞길을 열어 두어야 한다.
영리하거나 재주가 많지 않다. 그렇다고 행동이 빠르지도 않다. 그래서 빨리 시작한다. 미리 준비한다. 여유가 있을 때 머릿속에 그려 넣는다. 이것이 정 대리의 업무 운전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