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그런 나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습니다.
그런 나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했습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했습니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시 여기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라게 기억해냈습니다."
28.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경(初更)에 증득한 첫 번째 명지(明知)(*10)입니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나듯이,
내게도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11)이 일어났습니다."
29. "그런 나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습니다.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것을 꿰뚫어 알았습니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말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射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말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것을 꿰뚫어 알았습니다."
30.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이경(二更)에 증득한 두 번째 명지(明知)(*12)입니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나듯이,
내게도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났습니다."
(*10) “‘명지(明知, vijjā)’란 알게 하는 것(vidita-karaṇa)이라는 뜻에서 명지라 한다.
무엇을 아는가? 전생(pubbe-nivāsa)을 안다.”(MA.ⅰ.126)
『청정도론』에서는 명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명지(vijjā)’란 세 가지 명지도 있고, 여덟 가지 명지도 있다.
위빳사나의 지혜와 마음으로 [만드는 몸의] 신통(manomaya-iddhi)과 함께 여섯 가지 신통지[六神通]를 더하여
여덟 가지 명지를 설하였다.
즉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의 육신통가운데
본경에 나타나는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의 셋을 세 가지 명지 즉 삼명(三明)이라하며
이 육신통에다 위빳사나의 지혜와 마음으로 [만든 몸의] 신통을 포함시키면
여덟 가지 명지(aṭṭha vijjā) 즉 팔명(八明)이 된다.
(*11) “‘무명(avijjā)’은 전생을 알지 못하게 한다는 뜻에서, 그것을 덮어버리는 어리석음(moha)을 말한다.
‘어둠(tamo)’은 바로 어리석음을 말하는데, 덮는다는 뜻에서 어둠이라 한다.
‘광명(āloka)’은 바로 명지를 말하는데, 비춘다는 뜻에서 광명이라 한다.”(MA.ⅰ.126)
(*12) “여기서의 ‘명지(vijjā)’는 천안통의 명지를 말한다.
‘무명(avijjā)’은 중생들의 죽음과 재생연결을 덮는 무명을 말한다.”(MA.ⅰ.126)
31. "그런 나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13)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14)로 마음을(*15) 향하게 했습니다.
그런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16)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습니다."
(*13) “‘마음이 집중되고(samahite citte)’에서의 마음은
위빳사나의 기초가 되는 제4禪의 마음을 말한다.”(MA.ⅰ.126)
(*14)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 āsavānaṃ khaya-ñāṇa]’는 아라한도의 지혜를 말한다.
왜냐하면 아라한도는 번뇌를 제거하기 때문에 번뇌들의 소멸이라 부른다.
이것은 그것에 대한 지혜를 말한다.”(MA.ⅰ.127)
(*15) “여기서의 ‘마음(citta)’은 위빳사나의 마음이다.”(MA.ⅰ.127)
(*16) ‘꿰뚫어 알았다.;는 것은 abbhaññāsiṃ을 옮긴 것인데,
주석서에서 “알았다, 꿰뚫어 알았다(jāniṃ paṭivijjhiṃ)의 뜻이다.”(MA.ⅰ.127)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32.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나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했습니다.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에서도 마음이 해탈했습니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에서도 마음이 해탈했습니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겼습니다.(*17)
'태어남은 다했다(*18) 청정범행(*19)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았습니다."
33.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삼경(三更)에 증득한 세 번째 명지(明知)(*20)입니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나듯이,
내게도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났습니다."(*21)
(*17)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겼다’는 것은 반조의 지혜를 말한다.
세존께서는 이 지혜로 반조하실 때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라는 등을
꿰뚫어 아셨다는 말이다.”(MA.ⅰ.127)
(*18) “‘태어남은 다했다(khīna jāti).’라고 하셨다.
그러면 세존의 어떤 태어남이 다했으며, 어떻게 그것을 꿰뚫어 아셨는가?
이것은 과거의 태어남이 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래의 태어남이 다한 것도 아니다. 미래에 정진이 없기 때문이다.
금생의 태어남이 다한 것도 아니다. 지금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를 닦지 않았을 때는
한 가지 무더기[一蘊]나 네 가지 무더기[四蘊]나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의 존재 가운데서
한 가지 무더기와 네 가지 무더기와 다섯 가지 무더기로 분류되는 태어남이 일어나지만,
도를 닦아서 다시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얻음으로써 태어남이 다한 것이다.
세존께서는 도를 닦아서 버려진 오염원들을 반조하시고
오염원들이 없을 때 비록 업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미래에 재생연결을 만들지 않는다고 아시면서 꿰뚫어 아셨다.”(MA.ⅰ.127)
여기서 한 가지 무더기의 존재는 몸의 생명기능만 유지되는 우상유정천의 존재이고,
네 가지무더기의 존재는 물질이 없는 무색계의 존재이고,
다섯 가지 무더기의 존재는 그 외의 존재들이다.( 『청정도론』 ⅩⅦ.255를 참조할 것)
(*19) ‘청정범행’으로 옮긴 원어는 brahma-cariya인데,
중국에서는 범행(梵行)으로 옮겼으며, 이것은 성행위를 완전히 하지 않는 삶을 의미한다.
(*20) “여기서 ‘명지’는 아라한도의 지혜인 명지를 말하고,
‘무명’은 사성제를 덮어버리는 무명을 말한다.”(MA.ⅰ.128)
(*21) “이렇게 해서 숙명통(pubbenivāsa-ñāṇa)으로는 과거에 관한 지혜(atītaṃsa-ñāṇa)를,
천안통(dibba-cakkhu)으로는 현재와 미래에 관한 지혜(paccuppanna-anāgataṃsa-ñāṇa)를,
번뇌의 소멸[누진통, āsava-kkhaya]로는 모든 세간·출세간의 공덕(sakala-lokiya-lokuttara-guṇa)을 보이셨다.
이와 같이 세 가지 명지[三明, te-vijjā]를 통해 모든 일체지의 공덕(sabbaññu-guṇa)을 들어 보이시면서
세존의 어리석음 없이 머묾(asam-moha-vihāra)을 바라문에게 보여주셨다.”(MA.ⅰ.128)
34. "바라문이여, 그대는 이와 같이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탐욕을 없애지 못했고 성냄을 없애지 못했고
미혹을 없애지 못하여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는구나.'라고
바라문이여, 그렇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두 가지 이익을 보면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합니다.
내 스스로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묾을 보고,
또한 다음 세대를 연민하기 때문입니다."
35. "참으로 아라한이신 정등각자께서 다음 세대를 연민하시는 것처럼,
고따마 존자께서 다음 세대를 연민하십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두려움과 공포 경(M4)이 끝났다.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203-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