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교수님, 수필집 출간을 축하합니다.
책명: 얼굴 무늬
저: 김미옥 수필집
출:디자인
독정:2023년 8월 28일 월요일
◎ <얼굴 무늬>
표제어가 된 글이다. 지붕 처마마다 얼굴 무늬 수막새로 천년 고도를 장식한 여인의 미소를 바라보며 거기에 담긴 사연과, 지나온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보는 사고의 깊이가 작가의 필력으로 빛나고 있다.
기와가 웃는다’는 서두로 시작해서 ‘나쁜 기운을 멀리하고 행운을 불러오는 천년의 미소를 따라 내가 웃고 있다.’는 결구로 글의 짜임새와 격을 높였다. 이 수필이 아마도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에서 대상을 탄 작품이 아닐까 싶다. 한 편의 완성도 높은 글이 좋아 한 편을 전부 따라 적으며 나의 수필 습작 교재로 활용해보았다.
-입꼬리는 둥글려진 광대뼈 아랫부분과 맞닿아 있고 눈꺼풀은 자연스러운 반달 모양새다. 얼굴 무늬 수막새는 입술 양 끝이 위를 향하는 넉넉한 미소로 나에게 웃음 짓고 있다. 천년 시간이 무색하리만치 그녀 미소는 아름답다. 주름과 기미로 삶의 흔적을 담은 무표정한 내 얼굴과는 사뭇 다르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6~7세기경 손으로 빚었다고 전해지는 여인의 얼굴에는 사람의 온기가 남아 생동감이 넘친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는 우리나라 전역에 웃음을 전파할 기세다. 내게 말을 건넬 것 같은 표정에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온 역사적 공감대가 묻어 있다. 그저 반달 모양의 눈매나 웃는 입 모양만으로 천년의 미소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한옥을 감싸며 가족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표정이다. 기와의 끝은 원형으로 막는 수막새와 평면형으로 마감하는 암막새로 이뤄져 있다. 지붕 처마마다 얼굴 무늬 수막새로 장식한 것은 삶의 평온을 염원하고 싶었을 터이다. 세상 역경을 이고 견디려면 더 크고 힘센 기운의 문양을 새겼을 것 같은데, 천년고도의 경주에서는 여인의 미소를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소리 없이 빙긋이 웃고만 있다. 긴 세월 지붕의 기아 골 끝자락을 마감하던 수막새의 임무에서 웃을 일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 여전히 미소 짓는 그녀의 마음이 궁금하다. 어쩌면 집 한 바퀴를 돌아가며 장식했을 미소로 가족의 행복을 지켰는지 모른다. 그녀의 얼굴 무늬에 담긴 사연을 상상하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나는 열 살이 되기 전까지 한옥에서 살았다. 본채를 중심으로 마당 한가운데 우물을 낀 전통 가옥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오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마당을 뛰어다닐 때는 가지런한 민무늬 기와 아래에 앉은 할머니의 미소가 빛났다. 할머니는 종일 아버지를 기다리는 게 유일한 강이었다. 늘 같은 자리, 안방 앞마루 중간에서 기왓골 끝의 그림자가 비치는 곳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의 성난 얼굴 무늬를 풀어줄 그 어떤 방법도 없다고 느낄 때면 할머니는 살며시 자리를 피했다. 할머니가 비껴간 자리에 엄마는 아버지와 같은 얼굴 무늬가 되어 부딪쳤다. 나는 집안 전체가 흡사 기와가 깨져서 소란하게 흩어지는 것 같은 모습을 바라보며 밤새 흐느꼈다. 울음 속에 잠이 들어 아침을 맞으면 모든 것은 평화로웠다. 기와 끝자락은 아침 이슬에 맑게 빛났다. 수막새 여인의 미소 곁에 모진 풍파가 스쳐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천년을 거슬러 온 험난한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턱과 이마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이 눈에 띈다. 어쩌면 가족이 지나온 시간 동안 느꼈던 아픔이 그녀의 흉터에 고스란히 담긴 듯하다. 온전하지 않는 그녀의 얼굴에서 이토록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는 건 역사를 거스를 수 없는 위대한 미소의 힘이 아닐까. 세상을 향해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빛난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나쁜 기운을 멀리하고 행운을 불러오는 천년의 미소를 따라 내가 웃고 있다.-
이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 작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이런 결 고운 생각들을 건져 올렸을까? 작가에 대한 경애심으로 작품들을 읽어보았다.
◎ 사라져서 존재하는 것
-하얀 비누 표면이 까맣게 그을려 있다. 아버지는 이웃집 보일러실에서 먼저 쌓인 드럼통을 두들기고 만진 것이다. 아버지는 손톱까지 까만 흔적을 지우려고 비누로 비비고 문질렀다. 비누가 손을 씻는 게 아니라 손이 비누를 물들였다. 비누가 거무튀튀한 날은 그것을 지우려고 몇 번 문지른 후에 손을 씻었다. 가끔 비누에 풀과 흙 내음이 뒤섞여 코끝에 닿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아버지가 밭일을 나가 잡초를 뽑고 흙 고랑을 다듬었으리라.
어릴 적 비누를 쓸 때마다 색을 살피고 향을 맡는 버릇이 있었다. 향이 사라지고 색이 누런 비누를 쓰는 게 속상했다. 아버지의 희생이 묻는 비누 색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수고를 씻어내며 내일을 다독였을 것이다. 하얀 거품은 힘든 노고를 품고 사라지며 의미를 드러냈을 것이다. 표면적인 것만 바라보며 생각이 짧았던 그 시절의 후회와 반성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더욱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무심코 사용했던 비누에 대해 작가는 비누 표면의 색깔과 향기를 들여다보며 사고하는 섬세함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또 한 번 작가의 자질에 대해 배우게 하고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글향기를 맡았다.
-미리암 시디베의 ‘손 씻기의 단순한 힘’을 보면 비누로 손을 씻는 것은 250명의 어린아이가 비행기를 타고 추락하는 것을 예방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런 예화 또한 처음 들어보는 신선한 논리였다.
◎ <고령의 빛>
-우륵 박물관은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는 형상과 흡사하다. 1년 12달을 의미하는 12줄 가야금은 가야의 이름과 줄로 만들어져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의 온갖 동식물이 노래를 부르며 가야금을 연주하는 듯하다. 역사 속 자연이 생명체와 함께하는 대가야 협주곡은 고령의 무지갯빛을 닮은 희망과 새로운 성장을 느끼게 해준다. 옛 도읍지 고령은 역사의 흔적이 햇살이 되어 보석처럼 빛난다. 무지개 빛깔 자연으로 사람이 보석임을 알려준다. 자연의 햇살과 역사의 흔적이 우주를 돌아 태양 아래 한 줄기 빛으로 현재의 삶과 함께한다. 대가야를 돌아 집으로 오는 길에 그들이 나를 배웅하는 모습은 포근하고 든든하다. 그들이 꿈꾸던 미래를 진정 내가 살고 있는가?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 돌아올 때 빛줄기는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된다.-
◎ <엽서 한 장>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더라도 우체국을 보면 꼭 들렀다. 곧장 그 자리에서 엽서를 구해서 여행지에서 느낀 감상을 글로 썼다. 자신을 응원하는 문구나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집으로 보냈다.-
참 좋은 추억 이벤트인 것 같다. 나도 종종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내곤 했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려 주는 닮음에 작가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 <겨울 강>
-찻집에서 본다. 실내에 장식된 사진의 묘한 분위기에 이끌린다. 무채색 배경으로 노인, 아이, 여인이 홀로 앉아 기다림을 품은 묘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 <합창>
-화음을 맞추는 일은 서로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과 무척 닮았다. 첫 한음을 정확하게 잡기 위한 노력과 한 소절, 한 마디를 되풀이하는 노고는 반복하는 일상과도 흡사하다. 먼저 한음을 잡으면 나중에 두 번째 음이 화음을 이루도 다시 함께 하나 되어 어울린다. 누구든 합창은 서로에 대한 배려임을 느끼지 않을까-
◎ <물들다>
-삶의 외형에서 집 안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건 어쩌면 인간과 사물이 서로 공존하기 때문이 아닐까.
집은 사람과 물건이 서로를 길들이며 살아간다. 같은 공간에서 사물에 눈길을 던질 때마다 말을 걸어오는 듯하고 손길이 닿을 때마다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바깥 흔적을 털어 속내를 다듬고 진심을 끌어올려 내면을 정화한다. 말없이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서로를 물들인다.-
◎ <나를 보는 거울>
-어제 문제에 대한 해결책까지 복잡하게 어우러져 마음을 옥죈다.
존재하는 사랑은 과정에서 아픔과 슬픔이 겹겹이 쌓여 동여매진 덩어리 같다.
노을을 바라보는 저녁 시간은 오늘을 투영한 거울같이 좋다. 성장은 목표의 완성이 아니라 지나온 모든 시간을 연결하는 과정을 품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 책 속 레빈이 벼 베기 작업 과정에 몰입하는 모습은 시간을 잊고 집중하는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라 한다.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삶.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랑은 결국 나에게 있다.
◎ <달>
-지친 마음의 무게가 발끝에 뭉친 듯 자동차 페달을 밟는 순간 광음이 어마어마. 낯선 도심 한복판에서 자동차가 그대로 뻗은 것이다. 본의 아니게 도로를 점령한 사태는 차량의 온갖 소음으로 비난을 감당했다. 태양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 태양에 비친 반구는 밝지만, 반대쪽 반구는 암흑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며 스스로를 도닥이게 된다. 자신보다 세상 속 나를 빛으로 감싸는 그의 힘을 믿는다. 그는 언제나 같은 면을 지구로 향해 나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 <비의 추상>
-산다는 건 보편적이지만 견디는 건 개별적 슬픔이다. 남편도 비를 피해 나에게로 왔을지 모른다. 인생길에서 나만의 든든한 우산대를 잡고 있다고 여겼던 마음에서 결국 부부의 아픔은 서로 쓰다듬는(보듬는) 거란 걸 그때 깨달았다. -
◎ <상실의 틈>
-소리의 방향을 가늠하면 그 뜻을 알아채기 쉬운데 도통 진심은 드러내지 않고 표면만 긁어대고 있다. 이해하려고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이 더욱 많다. 펄떡거리지도 않는 생선 가시에 원인 모를 탓을 쏟아낸다-
◎ <알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스치고 지나면 그만인데 굳이 속 이야기를 엮어 의미를 붓는다. 생각은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 인연의 매듭을 엮기도 한다. 혼자만의 판단으로 혼란을 번복하기 일쑤다. 남편은 불쑥 ‘지난날 말로 상처를 준 게 많았다. 미안하다.’는데 지난 시간 속에 모난 돌기를 만지듯 울퉁불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녀 교육에 의견이 어긋났을 때나 부모님께 닿은 온도가 다를 때마다 현관문은 세차게 닫혔다.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길가에 흩날리는 잎들은 빛과 부딪쳐 더욱 아름답다. 앞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을이 내게 말을 거는 기분이다. 인연을 살핀다.-
◎ <삶의 저울>
-주말에 서울 출장이 잡힌 날은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곤 한다.-
◎ <시간 위에 길>
-걸어가는 길 위에 시간이 점점이 찍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를 일으켜 길을 만드는 것은 결국 내가 움직이는 거다.-
표지 뒷면에 남편 정영배 박사님의 한 줄, 응원의 메시지도 독자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박경선 선생님께>
부족하나마
그동안 글을 모아 엮었습니다.
선생님의 고운 동화책을
받았던 기쁨이 떠올라
조심스레 보내 드립니다
늘 감사합니다.
몸 건강하세요.
김미옥 드림-
책 첫 장에 작가 사인을 이렇게 정성껏 써 보낸 정성에 감동했다.
사람들을 무심히, 소홀히 대하지 않는 작가의 인격이 이 책 전체의 품격과 인상을 향기롭게 하고 있다.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