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참 자아를 찾은 자의 삶
06/23금(金)눅 19:1-10 / 딤전 1:15-16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딤전 1:16)
삭개오의 이름은 ‘순수하다’는 뜻이 있지만 실제 그의 삶은 순수하지 못하고 추한 거짓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작은 키로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고, 돈 주고 권력을 사서 세리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 많은 나, 권력 있는 나를 만들었지만 만족이 없고, 사람들에게 민족을 팔아먹은 매국노, 죄인이란 소리를 들으니 불행한 것입니다. 그는 돈 벌기 전의 자아도 거짓 자아요, 돈을 번 지금도 거짓 자아입니다. ‘병들고 잘못된 너’ 즉 깨어진 거울에 나를 맞추어 산 것입니다. 그는 어른이고, 세리장이라는 체면도 버리고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은 수많은 사람 중에서 그를 만나주심으로 참 자아를 찾는 구원의 복을 받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는 축복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이 삭개오에게 찾아오심으로 참 자아를 찾아 구원의 삶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눅 19:4-5). 놀라운 일은 많은 사람 가운데 삭개오를 발견하시고 그집에 유하신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할 때 주님은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소개하며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눅 19:9).
▣주님을 만나 참 자아를 찾은 삭개오는 세상 모든 것에서 해방받았습니다.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주겠습니다”(눅 19:8). 돈은 삭개오의 지난 삶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의 모든 것에서 해방됩니다. 이제 그의 삶은 자신이 만든 환경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환경 때문에 행복한 삶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삭개오는 기쁨의 삶을 살았습니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눅 19:10). 우리가 거짓 자아에서 벗어나 참 자아를 찾게 되면 하나님 편에서 잃어버린 자식을 찾은 것과 같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매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눅 15:4-6) 우리는 이 기쁨을 알기 때문에 세상에서 정체성을 찾지 않습니다. 남이 알아주기 원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거짓 자아에서 해방이 됩니다.
And...
‘잘못된 너’ 속에서 나를 만들면 어둠의 역사로 사단과 연합된 거짓 자아를 이룹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너’이신 주님을 만나면 그분과 연합된 존재,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한 원형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아, 참 나입니다. 진정한 자아, 참 자아의 삶은 이제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늘 보이는 것에 붙들려 삽니다. 물론 육신을 입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작은 것을 소홀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작은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은 틈을 허용해서 큰 어둠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그 생각에 붙들립니다. 그 생각은 아무리 기도해도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뿐아니라 강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엘리야에게도 이런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850:1의 싸움에 완승 후 이세벨이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인간의 나약한 모습입니다. 두려움, 인간의 한계에 부딪힌 것입니다. 엘리야는 한순간 주님의 은혜를 잊었습니다. 지금까지 싸움에 이기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 해도 얼마든 하나님께서 막아주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문제를 더 크게 본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찾아왔을 때 그 문제에 묶이는 것이 거짓 자아에 붙들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허용하신 분은 주님이시고, 그 문제를 통해 내가 주님이 원하는 태도를 갖출 때 그 문제는 주님이 해결하십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내가 해결하려고 접근하니 염려 걱정이 들어 오는 것입니다. 염려 걱정은 거짓 자아가 주는 생각입니다.
생각지 않은 문제를 만날 때 순간 왜 내게 이런 문제가 왔지? 라는 생각에 우울함이 찾아옵니다. ‘주님, 이 문제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주님께서 최선으로 인도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세요.’ 문제를 기도로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마음에 평안이 올 때까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기다리는 도중 불편함이 찾아옵니다. 또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방법과 그분의 때에 가장 최선으로 해결해 주실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미리 올려드립니다. 문제가 해결되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넉넉히 해결하실 주님이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 뜻과 내가 정한 시기, 내가 원하는 방법이 거짓 자아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뜻대로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나를 굴복시키는 것이 우리가 거짓 자아에서 참 자아의 삶으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결론은 ‘진정한 나’는 ‘주님 안에 있는 나’입니다. 주님의 통치를 받는 나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통치가 내게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통치가 임하면 내 자아를 죽음의 자리로 넘기는 것이 쉽습니다.
오늘은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집사님이 방문하셨습니다. 강한 영적 싸움을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셨고, 이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사는 집사님이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만나게 하셨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갑니다. 집사님은 승리의 간증을 이번 ‘기도의 비밀’을 통해 나누어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둠이 주는 소리에 속지 않고 말씀으로 물리쳐야 한다는 귀한 간증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함께 나누게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이 죽은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은혜는 나눌수록 더 큰 은혜가 부어짐을 체험합니다. 집사님이 사는 지역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음을 선포하며 집사님을 통해 그 나라가 확장되기를 기도합니다. 신앙의 승리는 거짓에 속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정체성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 바라보는 나입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생명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천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주님의 마음이 되어 주님이 슬퍼하는 일에 슬퍼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일에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의 옷자락 만지며 주의 두 발을 씻기며
주님 그 발에 입 맞추며 나의 왕관을 놓으리
주의 옷자락 만지며
https://youtu.be/c2thCaVZN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