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학년 인생
5학년 어린님의 인생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 뻥도 치고, 멍도 때리고, 쓴맛도 보며 살아날 구석을 찾는구나.
6학년한테 뻥쳐서 존심 세우지요(잠시 동안 6학년)
엄마 찬스 써서 뻥치는 형아, 귀엽게 제압하고요(형과 논 날)
실존으로서 어린님의 현상학적 체험이랄까, 그냥 주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시간의 무게가 다르다고 할까. 물병의 물도 수업과 쉬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물병) 책에 빠졌을 때는 네 시간이 금방 가버린다나요(세상에서 가장 짧은 네 시간) 심지어 시간이 멈춰야 할머니 할아버지랑 오래도록 함께 한다지요(시간)
공부하다(하기 싫다), 상처 입어서(아픈 날), 난처해서(에어컨), 욕망 자제하다(스밍), 분실해서(안 보인다) 인생의 쓴맛도 본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목숨에 위로 받고(달팽이)
식구의 넉넉함과 보살핌이(할머니) 어린님들에겐 해방이자 살아나갈 물꼬지요.
■ [아래는 참고 글]
□ 5학년 글쓰기 ④ 7/4(5-3) 7/6(5-1)
- 겪은 일→하고 싶은 말
- 글감, 제목, 마디(4), 알맹이 첫마디
- 겪알-자세히-더 자세히-알짜
- 내 보온병, 같은 반 친구 글, 지각생 이야기 들려 줌
- 시간 남는 사람은 '알자더알' 네 마디로 글 느낌 그리기. 추상화처럼.
잠시 동안 6학년
김**(5)
오늘은 수영 수업 쉬는시간에 거짓말을 했다. 수영 수업 쉬는시간에 어떤 남자아이가 자꾸 장난을 치길래 내가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았다. 6학년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5학년이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6학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그 애는 ”아, 그래?“ 하면서 잘 속았다. 너무 웃겨서 웃었더니 그 애가 ‘왜 저래?’ 이런 눈빛으로 보았다. 그리고 수영 같이 다니는 동생이 있는데 그 애한테 거짓말 친 걸 얘기했더니 막 웃었다. 너무 웃긴다.
형과 논 날
최**(5)
형아는 공부해서 나에게 절대 놀아주지 않는다.
어느 날, 형아가 시험이 끝나서 내가 형아한테 놀아 달라 그랬다. 근데 시험도 끝난 형아가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형아 방을 나왔다. 형아 방을 내가 조금씩 조마조마하면서 봤는데 형은 공부가 아니라 내가 가니 방에서 노는 것이다. 형아는 거짓말쟁이다. 그렇게 나는 비장의 무기인 엄마 찬스를 썼다. 그런데 형아는 바로 일어나 나와 놀아주었다. 진짜 행복한 하루였다.
영어 학원에 우산일까?
박**(5)
”아, 망했다“ 나는 영어 학원에 우산을 깜빡 놔두고 왔다. ”야, 박00. 우산 가져 와.“라는 엄마 잔소리를 듣기 싫으니 나는 올라가야 한다. 나는 후회한다. 10분 전 친구를 잡으려다가 우산을 깜빡했으니...
겨우겨우 올라갔는데 뭐가 내 우산이지? 3분 정도 영어 학원에서 찾고 있는데 내 손에 우산이 있었다. 난 왜 올라갔지? 난 바보인가? 나의 인생을 후회하고 다시 다시 내려간다.
물병
이**(5)
꿀꺽꿀꺽 쉬는 시간에 물을 마신다. 수업 시간에 물을 마시려고 하면 어? 왜 물이 없지? 아, 맞다. 쉬는 시간에 물을 또 다 마셨구나. 왜 쉬는 시간에만 물이 계속 나오고 수업 시간에는 물이 마르는 걸까?
달팽이
박**(5)
오늘 나는 달팽이를 보았다.
어디선가 달려온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더니 우리가 말했다. ”얘들아, 달팽이 만지지 마.“ 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애들은 달팽이를 그냥 계속 만졌다. 우리는 애들이 못 만지는 곳에다가 달팽이를 두었다. 달팽이는 여기서 잠을 잔다. 참 많이 피곤했나 보다. 근데 달팽이는 일어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잠을 잔다.
참 다행이다.
하기 싫다
박**(5)
힘들다.
공부하는 것도 하기 싫고,
학원 가는 것도 하기 싫고,
숙제 하는 것도 하기 싫다.
지금 쓰고 있는 글쓰기도 하기 싫다.
엄마는 말한다.
”힘들어도 해야지. 그게 인생이야.“
그래도 나는 침대에 누워 쉬고 싶다.
아, 더워!
김**(5)
피구하다 손을 다쳤다.
피구공을 패스 받다가
손을 다쳐서 병원에 갔다.
인대가 늘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깁스를 했다.
나는 억울하다 내가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게 아닌데...
너무 아프다. 얼른 깁스를
풀고 싶다!
스밍
권**(5)
나는 왜 안 될까?
아이돌이 노래를 불러 곡이 나오면, 앨범도 나오고 스밍도 돌려야 한다. 스밍은 아이돌의 곡을 돈 내고 계속 듣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돌에겐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어봤는데 안 된다고 하셨다. 앨범보다 싸다. 엄마는 앨범은 사도 되고 스밍은 안 된다고 하니까 경제 관념이 박살난 것 같다. 나는 왜 안 될까? 참고로 내일 투바투컴백이다.
아픈 날
편**(5)
난 어제 아팠다. 몸이 좋지 않아서 보건실에 갔는데 역시 열이 있다. 난 어제 정말 힘들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엄마께 전화했다. 엄마가 또 꾀병이냐며 장난을 쳤다. 난 진짜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는 한참 말이 없더니 집으로 오라고 데리러 간다고 했다. 난 ”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집에 도착해 난 씻고 바로 잠이 들었다. 5시가 돼서야 일어나 밥을 먹었다. TV 속 김연아 언니가 유퀴즈나와 인생을 이야기해 주었다. 다시 봐도 너무 멋있었다. 아파서 그런지 누룽지 두 그릇을 해치웠다. 배불렀다. 그러고 아빠가 들어왔다. 아빠는 오자마자 내 걱정을 해 주었다. 감동이다. 그렇게 오빠도 들어오는데 ”왜 도은이는 쉬어요? 저도 발목 삐었어요!“ 정말 웃겼다. 그러다 엄마와 아빠가 집 앞 보배반점애 가서 저녁을 하고 오는 동안 난 숙제를 하고 TV를 봤다. 행복하면서 힘들었던 하루였다. 정말 힘들었다.
아빠가 매일 비타민을 먹으라 했는데 앞으로 열심히 먹어야겠다. 아빠 죄송해요!
안 보인다
백(5)
(잃어버렸다고 썼다가 진짜로 못 찾을까 봐 제목을 바꾼다.)
안 보인다.
5학년이 인형이 안 보인다고 슬퍼하는 걸 보면 유치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인형은 우리 엄마께서 7년을 기다리신 끝에 나를 임신하시고 우리 할머니랑 나를 위해 만들어 주신 귀여운 원숭이 인형이다. 어찌나 환하게 웃고 있는지 보는 사람마저 웃게 만들 인형인데 나는 그 인형이 어딨는지 안 보인다.
이건 그냥 보이지 않는 거지. 분명 우리 집에 있을 것이다. 분명히 우리 집에 있을 것이다.
그냥 안 보이는 것이다.
멍
오**(5)
나는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기분이 항상 멍하다.
뭘 하려고 하면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그럴 때에는 항상 정지 화면처럼 멈춰 있다. 멍 때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침에는 더 심하다. 아침에는 거짓말 안 치고 어제 내가 뭘 했는지도 생각이 안 난다. 그러면 도 멍을 때린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기억은 조금씩 생각이 나서 저녁에는 멍을 때리는 빈도가 줄어든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나의 멍 때리기를 고치고 싶다. 왜냐하면 집중을 방해해서 선생님의 말을 놓친다. 너무 고치고 싶다.
할머니집
서*(5)
할머니집 가는 날은 좋다.
가면 공부하라는 사람도 없다. 핸드폰을 해도 핸드폰 하지 말라는 사람도 없다. 젤리 초콜릿을 먹어도 먹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할머니 집은 천국이다.
선풍기
이**(5)
어젯밤 때 아빠가 약속이 있어서 아빠가 나갈 때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고 잘 때 선풍기를 틀지 말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아빠랑 말다툼을 살짝 했다. 그중 기억이 나는 말이 아빠가 뒤지고 싶으면 선풍기를 틀고 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유튜버에 찾아 보니까 거짓이라고 해서 선풍기를 틀고 잤다.
시간
안**(5)
그것이 오고 있다. 뭐가 오냐고? 사춘기.
시간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어제가 봄이며, 오늘은 벌써 겨울인 것 같다.
시간을 참 너무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려가려고 한다.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그러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건강하실 텐데.
시간이 참 밉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4시간
최**(5)
지난주 토요일 나는 누나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간 목적은 ‘귀멸의 칼날’이라는 만화책을 보려고 갔는데 그 책은 도서관에 없어서 ‘퀴즈 과학 상식’이라는 책을 쌓아두고 읽었다.
누나는 2층에 읽을 만한 책이 없다고 3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고 있는데 ‘뎅뎅뎅” 도서관이 문 닫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4시간이었다.
어이없는 에어컨
강**(5)
평화로운 어느 날 토요일 아침이다.
아니 전혀 평화롭지 않다. 무슨 일어나자마자 더워 죽겠다. 작년 여름보다 더 더운 여름 아침이다. 일어나서 바로 찬물로 잠 깨고 에어컨을 틀었다. 어라? 안 켜졌다.
부모님을 깨워 에어컨이 고장 났다 했더니 거짓말 치는 거냐며 혼났다. 하긴 어제까진 켜졌는데 이게 꿈이 아니면 거짓말일 수 있다. 근데 안 켜지는 걸 나보고 어떡하란 말인가. 더워 쪄 죽겠는데 선풍기도 고장 났다.
고통스러운 2시간이 지나고 부모님이 일어났다.
에어컨을 먼저 확인해본다. “켜지잖아! 자는데 시끄럽기만 하고 켜 보지도 않았네!” 아닌데! 분명 안 켜졌는데? 이게 무슨 장난인가. 왜 내가 하면 안 되고 부모님이 하면 되는지 어이없는 에어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