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의 산실
당진 필경사&심훈기념관
2020.3.6
충청남도기념물 제107호인 '당진 필경사'를 돌아보고 왔다.
당진 필경사란,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251-12번지 소재의 한 고택을 일컫는 말로써,
소설 '상록수'로 유명한 심훈(1901-1936) 선생이 32세에 서울에서 이곳 당진으로 내려와
작품활동을 하면서 살았던 집으로, 1932년, 직접 설계하여 짓고 '필경사'라고 이름까지 붙였다.
이름의 뜻은. '붓으로 땅을 일군다'는 것으로, 1930년 '그날이 오면'이란 제목의 시집을 내려다
일제의 검열에 걸려 실패한 후 그 시집 원고 중에 있는 시의 제목에서 따 온 것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의 심정으로 글을 쓰겠다는 그의 의지의 표현이다.
집의 구조와 규모는 대지 661㎡에 건평 62㎡의 팔작지붕의 목조집으로,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네모 기둥을 세웠는데 측면 중앙 기둥을
중심으로 앞 뒤로 나누어 공간을 구성한 것이 특이하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자형
초가지붕 아래, 벽체는 황토를 짓이겨 바른 예전 농촌의 전형적인 주택형태이다.
그는 민족의식과 계급적 저항의식을 지닌 소설가이자 시인, 영화인으로 살면서
1935년 농촌계몽 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상록수'를 이곳에서 썼다.
심훈의 대표작 시 '그날이 오면' 시비
당진 필경사
(심훈의 고택, 충청남도기념물 제107호)
상록수의 작가 심훈 선생(1901-1936)이 1932년, 서울에서 그의 아버지가 살고있던 당진 부곡리로 내려와
작품활동을 하던 중 1934년에 직접 지은 집이다. 집 이름 '필경'은 심훈 선생의 1930년 7월 작품으로써
조선인들의 마음을, 붓으로 논밭을 일구듯,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필경사'라 명명하였다.
필경사 내부에는 선생이 읽었던 책들이 책상위에 흩어져있고 등불과 옷가지, 부엌의 아궁이, 화장실까지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선생은 민족의식과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지닌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1935년 농촌계몽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상록수'를 이곳에서 집필하였다.
시 '필경'
우리의 붓끝은 날마다 흰 종이 위를 갈며 나간다/
한 자루의 붓, 그것은 우리의 쟁기요 유일한 연장이다/
거치른 산기슭에 한 이랑의 화전을 일려면/ 돌부리와 나무등걸에 호미 끝이 부러지듯이/
아아 우리의 꿋꿋한 그 붓대가 몇번이나 꺾였었던고?//
그러나 파랗고 빨간 잉크는 정맥과 동맥의 피/ 최후의 한 방울까지 종이 위에 그 피를 뿌릴 뿐이다/
비바람이 험궂다고 역사의 바퀴가 역전할 것인가/ 동지여 우리는 퇴각을 모르는 전위의 투사다//
.......... 중략...........
스윗치를 제쳤느냐 윤전기가 돌아가느냐/ 깊은 밤 맹수의 포효와 같은 굉음과 함께/
한 시간에도 몇 만 장이나 박아 돌리는 활자의 위력은/ 민중의 맥박을 이어주는 우리의 혈압이다/
오오 붓을 잡은 자여 위대한 심장의 파수병이여!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비
내용을 소개하면,
심훈(본명 대섭) 여기 잠들다. 대표작: 1919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1930 그날이 오면/ 1935 소설 상록수. 2000년 월 일, 건국훈장애국장추서
심훈은 본명이 대섭으로서 삼일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는데 당시 그는 감옥에서
그를 염려하는 어머님께.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님 같으신 어머니가 몇 천 분이요 몇 만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님께서도 이 땅에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분이시고 저는 어머님보다도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심훈기념관
이곳 문 앞에도 '그날이 오면' 시비가 있다.
상록수를 상징하는 철 나무 뒤에는
'그날 쇠가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오라'는 간절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새, 심훈기념관
이곳에도 서 있는 심훈 선생의 '그날이 오면' 시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깨어질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매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재영 고택
소설 상록수의 남자 주인공인 박동혁의 모델인 심재영 선생께서 1930년에 건축,
1995년 소천하실 때까지 평생을 사셨던 집으로 선생은 여기서 청년 시절에 농촌계몽운동을
하셨다. 1932년 심훈 선생께서 이 고택으로 낙향하시어 1934년 이주할 때까지
'직녀성;과 '영원의 미소'등을 집필하였다. 현재는 심훈 가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입구에 세워진 심훈 선생의 '나의 강산이여' 시비
높은 곳에 올라 이 땅을 굽어보니/ 큰 봉우리와 작은 뫼뿌리의 어여쁨이여/
아지랑이 속으로 시선이 녹아드는 곳까지/ 오똑오똑 솟았다가는 굽이쳐 달리는 그 산줄기/
네 품에 안겨 딩굴고 싶도록 아름답구나/ 소나무 감송감송 목멱의 등어리는/
젖 물고 어루만지던 어머니의 허리와 같고/ 삼각산은 적의 앞에 뽑아든 칼끝처럼/
한번만 찌르면 먹장구름 살아질듯이/ 아직도 네 기상이 늠름하구나
1926년 5월 심훈
심재영(1912-1995) 선생 흉상
"경성농업을 졸업하고 낙향하여 낙후된 농촌의 발전에 젊음을 바친 농촌계몽운동의
선구자시며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의 실제 인물인 심재영 선생님을 추모하며
선생님의 높은 뜻이 후대에 영원히 전수되기를 소원하면서 여기 그 모습을 남갑니다 .
2016년 5월 1일, 순희 순옥 천보 덕보 영보
심재영 선생의 '애향가' 노래비
심재영 선생의 '눈 내리는 언덕 길' 시비
마음의 고향이었던 상록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