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우리는 '우물' 세대였다.
'상수도'가 없어 동네 공동우물에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
항아리에 담아 놓고 마셔야 했다.
4.우리는 '가마솥' 세대였다.
98%는 목욕탕이 없어 가마솥에 물을 끓여 목욕을 했다.
5.우리는 '손빨래' 세대였다.
100%가 세탁기가 없어 개울에 나가
추운 겨울에도 얼음장을 깨고 빨래를 했다.
6. 우리는 보행 ,자전거 세대였다.
95%는 자가용이 없어 대부분은 걷거나 일부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7. 우리는 '고무신'세대였다.
95%는 구두도 운동화도 없어 아이는 검정고무신
어른은 흰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8. 우리는 '까까중' 세대였다.
100%가 이발비가 적게드는 까까중 머리로 다녔다.
9. 우리는 '보자기' 세대였다.
98%는 책가방이 없어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차거나 어깨에 매고 다녔다.
10. 우리는 '고무줄' 세대였다.
100%가 장난감이나 놀이기구가 없어
여자애는 고무줄 넘기하고 머스마는 새총을 만들었다.
11. 우리는 '강냉이' 세대였다.
쌀이나 보리쌀이 없어 학교에서 주는 강냉이 가루로
빵이나 꿀꿀이 죽을 만들어 끼니를 때워야만 했다.
12. 우리는 '주경야독' 세대였다.
98%가 낮에는 가사일, 농사일 돕기, 풀베기, 나무하기,
소먹이기, 동생돌보기,등을 하고서 학교숙제를 했다.
13. 우리는 '주판' 세대였다.
100%가 전자계산기나 컴퓨터는 없고 다섯 알 짜리 주판을
굴리면서 셈을 했다. 급수를 따야 은행 등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14. 우리는 '일제고사' 세대였다.
100%가 입학 졸업은 물론이고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전교생이 일제히 시험을 치르고 등수를 매겨 경쟁했다.
15. 우리는 '입학시험' 세대였다.
100%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본고사 입학시험을
치르고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다.
16. 우리는 '공돌이 공순이' 세대였다.
하도 가난하여 진학하지 못하면 식모살이 아니면 구로공단 같은 공장에서
공돌이 공순이 버스차장을 하면서 땀흘려 일을 하고 야간에는 교복입고
야간학교에 등교했다.
17. 우리는 '삯 월세' 세대였다.
80%가 신혼 살림집을 구할 돈이 없어 거의 모두가 사글세 단칸방부터 시작하여
전세로 옮겨 다녀야만 했다.
18. 우리는 '월남전' 세대였다.
나라가 빈곤하여 목숨걸고 전쟁터에서 돈을 벌어 와야만 했다.
19. 우리는 '광부 간호사' 세대였다.
빈곤국가로 독일에 가서 석탄 광부와 시체 닦는 일로 돈을 벌어 와야 했다.
우리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꼰대이다
20. 우리는 '중동 노동자' 였다.
열사의 나라 중동지역에서 가족과 자식을 위해 돈을 벌었다.
70,80세대가 걸어온길은 몸으로 겪은 역사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어 우리들은 본래의 성과 이름을 되찾았다.
어리고,중학교 시절 처참한 6.25전쟁을 겪으면서 죽을 고생을 다 했다.
4.19가 터져 데모를 했으며,그후 5.16을 겪었다.
서울대 사학과 주경철 교수는,
이런 우리 세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현재 생존해 계신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관솔불로 불 밝히던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전등과 상하수도를 사용하고 리다오와 텔레비전을 거쳐
이제는 컴퓨터와 스마트폰까지 익숙하다.
식민지, 광복, 전쟁, 혁명, 군사정변, 계엄령,
대통령암살, 개헌 등,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구경하기 힘든 일들을
모두모두 겪으며 민주화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봤다.
무엇보다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최빈국 상태에서 벗어나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룬
세계 10위권 국가에서 노년을 보낸다.
향수 - 정지용 詩, 김희갑 曲/한국남성합창단